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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9.17 :: 춘추명자해고 상(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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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淸]王引之 『經義述聞』 第二十二 「春秋名字解詁 上」 一百五十五條
001. 鄭游吉字子大叔。
정(鄭)나라 유길(游吉)의 자는 자대숙(子大叔)이다.
[襄二十八年《左傳》。]
[『좌전』 양공 28년에 보인다.]
取大吉之義也。大當如字讀。二十二年、二十四年傳《釋文》1)竝音泰,非也。大叔,《論語》〈憲問〉篇2)作‘世叔’。世、大聲相近。大,正字也;世,俗字也。桓九年傳《正義》曰:“諸經稱世子及衛世叔申,經作世字,傅皆作大。”然則古者世之與大,字義通也。案《公羊》經文十三年,‘世室屋壞’,《左氏》、《穀梁》竝作‘大室’。《左氏》經昭二十五年‘樂大心’,《公羊》作‘樂世心’。〈曲禮〉:“不敢與世子同名。”,鄭注曰:“世或爲大。”則大、世古通用也。《爾雅》:“父之昆弟,先生爲世父,後生爲叔父。”《釋名》:“父之兄曰世父,言爲嫡統繼世也。”案世亦大也。叔、小雙聲。世、大疊韻。世父、叔父相對成文。則叔爲小,世爲大也。若但以繼世爲解,則何以解於父之仲兄不爲後者乎?3)
대길(大吉)의 뜻을 취한 것이다. 大는 마땅히 여자(如字)로 읽어야 한다. 『경전석문』 (좌전 양공) 22년, 24년의 전에서는 모두 음을 태(泰)라고 하였으나, 잘못이다. 大叔은 『논어』 「헌문」 편에는 世叔으로 되어 있다. 世와 大는 소리가 서로 비슷하다. 大는 정자(正字)이고 世는 속자(俗字)이다. 『(좌전)정의』 환공 9년에서는 “여러 경문에서는 世子와 위나라 世叔申이라고 칭했는데, 경문에서는 世 字로 되어 있는 것이 전문에서는 모두 大로 되어 있다.”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옛날에는 世와 大의 자의가 통했을 것이다. 살펴보건대 『공양전』 경문 문공 13년의 ‘世室屋壞’가 『좌전』과 『곡량전』에서는 모두 ‘大室’로 되어 있다. 『좌씨전』 경문 소공 25년의 ‘樂大心’이 『공양전』에서는 ‘樂世心’으로 되어 있다. 「곡례」 편의 “감히 세자와 이름을 같게 하지 못한다.”라는 구절에 정현(鄭玄)은 “世는 혹 大로 되어 있다.”라고 하였으니, 곧 大와 世는 옛날에 통용되었다. 『이아』에 이르기를, “아버지의 형제 중에서 먼저 태어난 사람을 세부(世父)라고 하고, 뒤에 태어난 사람을 숙부(叔父)라고 한다.”라고 하였고, 『석명』에 이르기를, “아버지의 형을 세부(世父)라 하는데, (그렇게) 말하는 것은 적통으로 대를 잇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생각건대 世는 또한 大이다. 叔과 小는 쌍성이다. 世와 大는 첩운이다. 세부(世父)와 숙부(叔父)가 상대되어 문장을 이룬다. 그렇다면 叔은 小가 되고, 世는 大가 된다. 만약 단지 대를 잇는 것으로 풀이를 삼았다면, 어째서 아버지의 둘째 형을 해석하여 후자(世父)라고 하지 않는 것인가?
1) 『經典釋文』 「春秋音義」 양공 22년 전에는 ‘大叔’의 大에 대해 ‘音泰’라고 하였고, 양공 24년 전에는 子大叔의 大에 대해 ‘音泰’라고 하였다.
2) 『論語』 「憲問」 편에는 '외교문서를 만들 때에 비침(裨諶)이 초안을 작성하고 세숙(世叔)이 검토하여 따지고 행인(行人) 자우(子羽)가 가감을 하고 동리(東里)의 자산(子産)이 윤색했다.'(‘爲命,裨諶草創之,世叔討論之,行人子羽修飾之,東里子産潤色之。)라고 되어 있다.
3) 아버지의 둘째 형도 대를 잇는 것은 마찬가지이므로 단지 대를 잇기 때문에 아버지의 형을 世父라고 부른다면 아버지의 둘째 형도 世父라고 불러야 한다.
002. 晉梁養字餘子。
진(晉)나라 양양(梁養)의 자는 여자(餘子)이다.
[閔二年《左傳》。案餘子,猶言子餘也。冉求字有,而哀十一年傳謂之有子。有子,猶言子有也。晉有梁五、梁由靡、梁丙、梁益耳,俱以梁爲姓,梁餘子亦是也。文十一年《左傳正義》曰:“古人連言名字名者,皆先字後名。”案《傅》中有姓名與字竝稱者,若百里孟明視、苑羊牧之1),梁餘子養之類,皆先字而後名。《廣韻》及《元和姓纂》,以梁餘爲複姓,非也。]
[『좌전』 민공 2년에 보인다. 생각건대 여자(餘子)는 자여(子餘)라고 말한 것과 같다. 염구(冉求)의 자는 유(有)인데, 애공 11년의 전에는 그를 유자(有子)라고 이른다. 유자(有子)는 자유(子有)라고 말한 것과 같다. 진(晉)나라에는 양오(梁五), 양유미(梁由靡), 양병(梁丙), 양익이(梁益耳)가 있었는데, 모두 양(梁)을 성으로 삼았으니, 양여자(梁餘子) 또한 이렇다. 『좌전정의』 문공 11년에서는 “옛날 사람들이 이름과 자를 연달아 말할 때는 모두 자를 먼저 하고 이름을 나중에 한다.”라고 하였다. 『좌전』 중에서 성과 이름, 그리고 자를 아울러 칭한 것이 있으니, 백리(百里) ‘맹명(孟明)’ 시(視)와 원(苑) ‘양(羊)’ 목지(牧之)와 같은 것이다. 양(梁) 여자(餘子) 양(養)의 종류이니, 모두 자를 먼저 하고 이름을 나중에 한 것이다. 『광운』과 『원화성찬』에는 양여(梁餘)를 복성이라고 하였는데, 잘못이다.]
《大戴禮記》〈夏小正〉:“時有養日。”〈傳〉2)曰:“養,長也。”字或作羕。《爾雅》曰:“羕,長也。”餘,亦長也。《廣雅》:“餘,長,久也。”《老子》曰3):“脩之於家,其德乃餘。脩之於鄕,其德乃長。”長、餘,皆久也。養與餘,皆有長久之意,故名養字餘子。
『대대례기』 「하소정」에 이르기를, “때에는 긴 날이 있다.”라고 하였는데, 그 전(傳)에 이르기를, “養은 긴 것[長]이다.”라고 하였다. (梁養의) 자(字)는 羕으로 쓰기도 한다. 『이아』에 이르기를, “養은 긴 것[長]이다.”라고 하였다. 餘 또한 긴 것[長]이다. 『광아』에 이르기를, “餘와 長은 오래가는 것[久]이다.”라고 하였다. 『노자(도덕경)』에 이르기를, “집에서 (도를) 닦으면 그 덕이 넉넉할 것이다. 마을에서 (도를) 닦으면 그 덕이 오래갈 것이다.”라고 하였다. 長과 餘는 모두 오래가는 것[久]이다. 養과 餘는 모두 장구(長久)한다는 뜻이 있으므로 이름을 양(養)으로 하고 자를 여자(餘子)라 한 것이다.
1) 일반적으로는 苑羊 자체를 복성으로 여기나, 왕인지는 『左傳』 소공 20년에 苑何忌라는 사람이 등장하므로, 苑이 성이라고 주장하였다. 王引之, 「春秋名字解詁 下」 39B면.
2) 『대대례기』 「하소정」은 경과 전으로 이루어진 편이다.
3) 『도덕경』 54장이다.
003. 吳伯嚭字子餘。
오(吳)나라 백비(伯嚭)의 자는 자여(子餘)이다.
[哀八年《左傳》。]
[『좌전』 애공 8년에 보인다.]
嚭之言丕也。《說文》:“嚭,大也。”物小則不足,大則有餘,故名嚭字子餘。或曰:“嚭與餘,皆謂眾多也。”嚭、伾,古同聲。《廣雅》曰:“伾伾,眾也。”高誘注《呂氏春秋》〈辯士篇〉曰:“餘猶多也。”孔晁注《周書》1)〈糴匡篇〉曰:“餘,眾也。”
비(嚭)라는 말은 크다[丕]는 것이다. 『설문해자』에 이르기를, “嚭는 크다[大]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물건이 작으면 부족하고 크면 남음이 있다. 그러므로 이름을 비(嚭)라 하고 자를 자여(子餘)라 한 것이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嚭와 餘는 모두 매우 많다[眾多]는 것을 이른다.”라고 한다. 嚭와 伾는 옛날에 음이 같았다. 『광아』에 이르기를, “伾伾는 많은 것[眾]이다.”라고 하였다. 『여씨춘추』 「변사편」 고유(高誘) 주(注)에 이르기를, “餘는 많다[多]는 말과 같다.”라고 하였다. 『주서』 「적광편」 공조(孔晁) 주(注)에 이르기를, “餘는 많은 것[眾]이다.”라고 하였다.
1) 『周書』는 『逸周書』를 말한다.
004. 楚秦商字子丕。
초(楚)나라 진상(秦商)의 자는 자비(子丕)이다.
[《史記》〈仲尼弟子傳〉。]
[『사기』 「중니제자열전」에 보인다.]
商與章,古字通。[〈費誓〉:“我商賚女。”《釋文》曰:“商,徐音章。”《呂氏春秋》〈勿躬篇〉:“臣不如‘弦章’。”《韓子》〈外儲說〉作‘弦商’。1)]商之言章,盛也,大也。《呂氏春秋》〈審時篇〉:“得時之稼,其氣章。2)”高誘注曰:“章,盛也。”《孝經內事圖》:“帝座章而光。”宋均注曰:“章,大也。”[孫瑴《古微書》引。3)]商有盛大之義,故字子丕。《爾雅》曰:“丕,大也。”孔子弟子,卜商字子夏。《漢書》〈儒林傳〉:“許商字伯長。”〈漢繫陽令碑陰〉:“張商字伯瑋。”[與億同。]夏也,長也,瑋也,皆大也。
商과 章는 옛날에 글자가 통했다. [『서경』 「주서」 비서편에 이르기를, “내가 헤아려 너희들에게 줄 것이다.”라고 하였다. 『경전석문』에 이르기를, “商은 서원(徐爰)의 음으로는 章이다.”라고 하였다. 『여씨춘추』 「물궁편」에 이르기를, “신은 ‘현장(弦章)’과 같지 않습니다.”라 하였는데, 『한비자』 「외저설 좌하(外儲說 左下)」에는 ‘현상(弦商)’으로 되어 있다.] 商이라는 말은 章이며, 성한 것[盛]이고 큰 것[大]이다. 『여씨춘추』 「심시편」에 이르기를, “때를 얻어 농사를 지으면 그 기운이 성하다.”라고 하였다. 고유(高誘) 주에 이르기를, “章은 성한 것[盛]이다.”라고 하였다. 『효경내사도』에 이르기를, “오제좌(五帝座)가 커지고 빛난다.”라고 하였다. 송균(宋均) 주에 이르기를, “章은 큰 것[大]이다.”라고 하였다. [손곡(孫瑴)의 『고미서(古微書)』에서 인용하였다.] 商은 성대하다는 뜻이 있으므로 字를 子丕라고 한 것이다. 『이아』에 이르기를, “丕는 큰 것[大]이다.”라고 하였다. 공자의 제자 중에 복상(卜商)은 자가 자하(子夏)이며, 『한서』 「유림전」에 이르기를, “허상(許商)은 자가 백장(伯長)이다.”라고 하였고, 「한번양령비(漢繫陽令碑)」의 비음(碑陰)에 이르기를, “장상(張商)은 자가 백위(伯瑋)이다.”라고 하였으니[(瑋는) 億과 같다.], 夏, 長, 瑋는 모두 큰 것[大]이다.
1) 『여씨춘추』 「물궁편」에는 '신이 弦章과 같지 않으니, 그를 大理로 세우소서.'(‘臣不若弦章,請置以爲大理。’)라고 되어 있는 것이 『한비자』 「외저설 좌하」에는 '夷吾는 弦商과 같지 않으니, 그를 大理로 세우소서.'(‘夷吾不如弦商,請立以爲大理。’)로 되어 있다. 여기서 『여씨춘추』와 『한비자』는 같은 이야기를 전하고 있고, 弦章과 弦商은 문맥상 같은 사람이다.
2) 『여씨춘추』 「심시편」에는 '이 때문에 때를 얻어 농사를 지으면 그 향기가 향기롭고, 그 맛이 달며, 그 기운이 성하다.'(‘是故得時之稼,其臭香,其味甘,其氣章。’)라고 되어 있다.
3) 孫瑴의 『古微書』 卷31 孝經內事圖에 ‘왕 노릇을 하는 사람이 혐의를 피하고 미묘한 부분을 분별하며 귀천을 다르게 하고 교만한 신하를 억누르며 소동을 잊어버리면, 병성이 밝고 윤택해지며, 오제좌가 크고 밝아진다.’(‘王者遠嫌別微,殊貴賤,抑驕臣,忘亂子,則屏星爲之明以潤,帝座章而光。')이라 되어 있으며, 宋均은 ‘병성과 오제좌가 밝고 윤택해지는 것이다. 章은 큰 것이다.’(‘屏星、五帝座明以潤。章,大也。’)라고 주석하였다. 屏星은 屛宿를 가리키며, 五帝座는 자미원과 태미원에 있는 다섯 방위를 주재하는 신들의 별자리이다.
005. 衛卜商字子夏。
위(衛)나라 복상(卜商)의 자는 자하(卜商)이다.
[〈仲尼弟子傳〉。]
[「중니제자열전」에 보인다.]
〈樂記〉曰:“夏,大也。”秦商字子丕,則商亦大也。商、章,古字通。[見上。]《漢書》〈遊俠傳〉:“萬章字子夏。”與此同意。或曰:“取章夏爲義也。”〈春官鐘師〉:“九夏1)有章夏。”杜子春云2):“臣有功,奏章夏。”或曰:“商,殷商也。夏,夏后氏也。3)”
「악기(樂記)」에 이르기를, “夏는 큰 것[大]이다.”라고 하였다. 진상(秦商)의 자가 자비(子丕)이니, 곧 商 또한 큰 것[大]이다. [위에 보인다.] 『한서』 「유협전」에 이르기를, “만장(萬章)의 자는 자하(子夏)이다.”라고 하였으니, 이것과 뜻이 같다. 혹자가 말하기를, “장하(章夏)를 취해 뜻으로 삼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주례』 「춘관 종사」에 이르기를, “구하(九夏) 중에 장하(章夏)가 있다.”라고 하였다. 두자춘(杜子春)이 말하기를, “신하에게 공이 있으면 장하(章夏)를 연주한다.”라고 하였다. 혹자는 말하기를, “商은 은상(殷商)이고, 夏는 하후씨(夏后氏)이다.”라고 하였다.
1) 鐘師는 鐘과 鼓로 九夏, 곧 아홉 가지 곡을 연주하는 관직이다. 『주례』에 따르면 九夏는 다음과 같다. 「王夏」, 「肆夏」, 「昭夏」, 「納夏」, 「章夏」, 「齊夏」, 「族夏」, 「祴夏」, 「驁夏」.
2) 두자춘(杜子春)은 서한(西漢) 말엽의 학자로 정중(鄭衆), 가규(賈逵) 등의 스승이다. 두자춘의 이 말은 『周禮』 「春官 鐘師」의 정현(鄭玄) 주(注)에 보인다.
3) 하(夏)나라의 시조 우왕(禹王)을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