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보'에 해당되는 글 2건
- 2020.01.05 :: 이규보-주뢰설(舟賂說)
- 2020.01.05 :: 이규보-경설(鏡說)
李子南渡一江、有與方舟而濟者、兩舟之大小同、榜人之多少均、人馬之衆寡幾相類、而俄見其舟離去如飛、已泊彼岸、予舟猶邅廻不進。問其所以、則舟中人曰:″彼有酒以飮榜人、榜人極力蕩槳故爾。″ 予不能無愧色、因歎息曰:″嗟乎!此區區一葦所如之間、猶以賂之之有無、其進也有疾徐先後、況宦海競渡中?顧吾手無金、宜乎至今未霑一命也。″ 書以爲異日觀。
이자(이규보)가 남쪽으로 한 강을 건너는데, 다른 쪽에도 배를 타고 건너는 사람이 있었다. 두 배의 크기가 같고, 사공의 수도 같았으며, 사람과 말의 수도 서로 비슷하였다. 내가 보니 그 배는 나는 것 같이 떠나가서 이미 하안에 정박하였는데, 내 배는 아직도 제자리에서 빙빙 돌 뿐 나아가지 않았다. 그 까닭을 물으니, 배에 있는 사람이 말하길, “저 배에는 술이 있어서 사공이 마셨으니(저 배는 술을 사공에게 주어 마시게 했으니), 사공이 힘을 다하여 노를 저었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였다. 나는 부끄럽지 않을 수 없었으며 따라서 크게 탄식하며 말하기를, “아아, 이 조그마한 한 척 나룻배가 나아가는 중에도, 오히려 뇌물이 오고 가는 것에 따라 그 나아감에 질서(疾徐)와 선후(先後)가 있으니 하물며 벼슬이라는 바다를 건너는 경쟁에 있어서랴? 나를 돌아보매 손에 돈이 없으니, 지금까지 작은 벼슬 하나도 없지 못한 것이 당연하구나.”라고 하였다. 글로 써서 다른 날에 보려고 한다.
이 글은 현실주의적 세계관을 피력한 '경설'보다는 앞서 쓰인 것 같다. 저자 이규보가 자신이 벼슬이 없음을 한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규보는 이 글에서 벼슬을 하는 것을 배로 바다를 건너는 것에 비유하면서 자신이 벼슬이 없는 이유를 깨닫는다. 두 배의 속성이 모두 같은데 한 배는 가만히 돌고 있고 한 배는 이미 건너갔다.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바로 술이었다. 건너간 배는 사공에게 술을 주었던 것이다. 이규보는 이를 보고 자신이 뇌물로 줄 돈이 없어서 벼슬을 하지 못한 것이라고 한탄한다. 요즈음에도 이런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다. 부정청탁, 채용비리 등으로 조건이 똑같은데 한 사람은 붙고 한 사람은 떨어진다.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한문학 > 한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규보-경설(鏡說) (0) | 2020.01.05 |
---|
居士有鏡一枚. 塵埃侵蝕掩掩, 如月之翳雲. 然朝夕覽觀, 似若飾容貌者. 客見而問曰: "鏡所以鑑形, 不則君子對之, 以取其淸. 今吾子之鏡, 濛如霧如, 旣不可鑑其形, 又無所取其淸. 然吾子尙炤不已, 豈有理乎." 居士曰: "鏡之明也, 妍者喜之, 醜者忌之. 然妍者少, 醜者多, 若一見, 必破碎後已, 不若爲塵所昏. 塵之昏, 寧蝕其外, 未喪其淸. 萬一遇妍者而後, 磨拭之, 亦未晚也. 噫! 古之對鏡, 所以取其淸, 吾之對鏡, 所以取其昏, 子何怪哉." 客無以對.
거사는 거울 한 장을 가지고 있었다. 먼지가 점점 끼니, 흐릿하니 꼭 달이 구름에 가린 것 같았다. 그런데도 아침저녁으로 들여다보며 마치 용모를 꾸미는 자같이 하였다. 손님이 보고서 묻기를, “거울이라는 것은 형체를 비추는 것인데, 그렇지 않다면, 군자는 그것을 대하여 그 맑음을 취합니다. 지금 당신의 거울은, 흐릿하여 부슬비가 내린 듯하니, 그 형체를 비출 수 없고, 또한 그 맑음을 취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오히려 비추기를 그만두지 않으니, 무슨 까닭입니까?”라고 하였다. 거사가 대답하기를, “거울이 맑으면, 예쁜 사람은 기뻐하나 못생긴 사람은 꺼려합니다. 그런데 예쁜 사람은 적고 못생긴 사람은 많으니, 못생긴 사람이 한 번 보면, 반드시 깨뜨려 버리고 말 것이니, 먼지로 흐릿해지는 것만 못합니다. 먼지의 흐릿함은, 겉을 흐리게 할지언정 그 맑음을 잃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예쁜 사람을 만난다면, 그 후에 그것을 닦아도 늦지 않습니다. 아아, 옛날에 거울을 대한 것은 그 맑음을 취하는 까닭이고, 내가 거울을 대하는 것은 그 흐릿함을 취하는 까닭이니, 당신은 무엇을 이상하게 여깁니까?” 객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규보는 '경설'에서 부정적 현실을 받아들일지언정 사람의 맑은 본질은 흐려지지 않는다면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제시한다. 바로 현실주의적 세계관인 것이다. 굴원의 '어부사'에 나오는 성인은 세상에 얽매이지 않고 세상을 따라 추이해야 한다는 어부의 세계관이 생각난다. 무신의 난 이후 이규보의 정치 행보와 연관지어 생각해보면, 이 글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규보는 무신의 난 이후 최씨 정권과 적극적인 관계를 맺으며 입신한다. 이 글은 이규보가 불의한 최씨 정권에서 벼슬하는 자신을 스스로 변호하는 글인 것 같다.
'한문학 > 한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규보-주뢰설(舟賂說) (0) | 2020.01.05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