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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1.03 :: 조어(祖語, protolanguage)의 재구(再構, reconstruction)와 그 한계점 2
다음은 서통장 저, 이재돈 역, 《역사언어학》의 5장을 요약정리하고 내 의견을 약간 덧붙인 것이다.
0. 역사비교언어학과 조어
역사비교언어학의 연구 성과는 祖語(protolanguage)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역사비교언어학이 탄생하기 이전에, 조어는 신화, 전설 혹은 터무니없는 이야기로 여겨졌으나, 역사비교언어학 연구 성과를 이용하여 친족어를 연구하고 나아가 성공적으로 조어를 재구할 수 있게 되자, 조어 문제가 비로소 가치 있게 되었다.
1. 조어의 재구
처음으로 조어를 재구하고자 했던 사람은 슐라이허(August Schleicher, 1821-1868)이다. 그는 인도유럽어족 언어의 비교를 통해, 원시인구어의 단어, 어형 변화 및 음운체계를 재구하였으며, 이것이 선사시기에 실제로 존재하였던 원시인구어라고 여겼다. 그는 이렇게 재구해 낸 조어를 가지고, 《양과 말(Avis akvāsas ka)》라는 우화를 쓰기도 하였다. 조어를 재구하는 것은 역사비교언어학적 방법을 크게 발전시킨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간단명료한 방법으로 최근의 연구 성과를 구체적으로 눈앞에 보일 수 있게 되었다. 재구에 대한 수요는 학자들로 하여금 어음 변화의 세부 사항까지도 주의를 기울이게 하였다. 이러한 방법은 언어에 대한 역사적 비교 연구에 있어서 상당히 큰 흡인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조어의 재구는 당시 역사비교언어학의 주요 임무가 되었다.
조어는 친족어의 집합점으로, 비록 이것이 자료가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세워진 가설이라 하더라도, 조어를 통하여 각 친족어들을 역사적 변천의 시야에 집어넣어, 언어의 변천 과정을 효과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역사비교언어학을 통해 조어를 재구하기 이전에는 친족어들의 유사 시기의 역사만을 설명할 수 있었을 뿐이었고, 그것들의 선사 시기 상황 및 그들 간의 상호 관계에 관해서는 말하기가 어려웠다. 역사비교언어학적 방법을 통해, 조어를 재구하면 각 언어의 역사를 연장할 수 있으며, 그것들을 분화시킨 원시형식을 재건하여 그것을 하나의 점에 모이게 함으로써, 언어의 변화를 설명하는 데 있어 편리하고 설득력 있는 조건을 제공할 수 있다.
조어의 재건은 친족어 자료들의 집합점이며, 혹은 음변화를 해석하는 참조점이라고도 할 수 있다. 재구된 형식은 어느 정도 언어 현상을 해석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한다. 근거한 자료가 풍부하고 믿을 만할수록 재구한 형식도 원래의 상황에 더욱 접근할 수 있고, 해석력도 더욱 강해진다. 참조점으로서의 조어의 재구가 없는 언어사의 연구는 자료의 축적일 뿐이고, 사람들이 분명한 실마리를 정리할 수 없다. 중국어의 어음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 역사적 비교방법을 운용하기 전에는 역사적 음변화 현상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일례로, 청나라의 음운학자인 단옥재(段玉裁, 1735-1815)는 고염무(顧炎武, 1613-1682)와 강영(江永, 1681-1762)이 분류한 상고한어의 支部를 다시 支部와 脂部, 之部의 세 운부로 나누었는데, 그것이 어떻게 구분되는지는 알지 못하여 답답해하기도 하였다.
조어를 재구한다는 것이 원래 존재했던 언어 상태를 복원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재구할 때는 가능한 한 실제 언어와 가까워야 하며, 재구를 통하여 윤곽이 드러난 언어는 반드시 진짜 언어와 비슷하게 해야 한다. 가능한 한 신뢰할 만하고 정확하게 재구를 해야 한다. 또한 역사적 비교방법을 운용해 얻을 수 있는 성과는 자료의 풍부함, 신뢰성과 정비례한다.
조어는 현존하는 방언이나 친족어 자료에 의거하여 재구된 것이므로, 재건된 조어(母語)는 각각의 子語(daughter language)와 합리적으로 유사해야 하며, 자어와 조어 사이의 유사함의 정도는 각 자어간의 유사도보다 높아야 한다. 각 자어는 조어로부터 태어난 이후 각자 자신의 변화 규율에 따라 변화하였으며, 분화된 시간이 길수록 상호간의 차이도 커지기 때문이다. 각 자어는 먼저 공동의 선조로 거슬러 올라가야만 자신의 자매어(sister language)를 효과적으로 찾을 수 있다.
2. 조어 재구의 성과와 한계
재구하는 동원성분에는 어음 형식도 있고 의미도 있다. 어음 형식에 근거하여 언어 구조를 조망할 수 있고, 의미에 근거해서 조어 사용자의 몇 가지 비문화적 상태를 추론할 수 있으며, 사회사 연구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언어에 대한 역사적 비교연구는 母語(元始語)를 말하였던 집단의 생활환경에 대해 어떤 시사점을 제공할 수 있다. 불룸필드(Leonard Bloomfield, 1887-1949)는 영어처럼 snow(눈, 눈이 내리다)를 명사와 동사로 쓰는 것이 일반적으로 인구제어에서 보이므로, 원시인구어를 사용하는 집단의 거주 구역이 인도일 수는 없다고 여겼다. 이는 역사적 비교방법의 연구 성과가 사회학, 민족학 등 학문의 연구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존재했던 조어를 재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메이예(Meillet, 1866-1936)는 앞서 말한 슐라이허의 작업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의견을 표명하였다. "재구를 통해 사람들이 말했던 진정한 라틴어를 얻어낼 수는 없다. 어떠한 재구도 일찍이 말한 적이 있는 '공통어'를 얻어낼 수는 없다. 역사상 이미 동족이라고 실증된 몇몇 언어를 사용하여 인구어를 재구해 냈다는 것은 슐라이허의 일종의 천재적인 대담함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재구되어 나온 언어로 문장을 쓴 것은 그의 또 다른 심각한 잘못이었다. 비교의 방법은 근사한 체계를 얻어낼 수 있을 뿐이며, 한 어족의 역사적 기초를 세우는 것이라 간주할 수는 있지만, 진정한 언어와 그것이 포함하는 모든 표현 방식은 얻어 낼 수 없다."
그러나 조어를 재구하는 역사적 비교방법도 심각한 결점과 한계를 가지고 있다. 어떤 것들은 방법론 자체에서 생긴 것이며, 어떤 것들은 다른 원인이 야기한 것이다. 방법론 자체로 말하자면, 재구한 원시형식의 단어가 어느 시대에 속하는지 결정지을 수 없으며, 그래서 재구된 원시형식의 단어들은 모두 동일한 연대 층위의 언어 현상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사실은 재구된 각각의 형식이 반드시 동일한 연대 층위에 속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고대 인도어의 e, o, a가 a로 합류하고 ē, ō, ā가 ā로 합류한 것에 대해, 종전에는 모두 그것을 동일한 연대 층위에 귀속시켰으나 사실 그 가운데 장모음의 합류현상이 단모음의 합류현상보다 먼저 발생하였다.
언어가 변화하는 상황은 복잡해서, 분화도 있고 통일도 있으며 상호 영향도 있지만, 역사적 비교방법은 단지 언어의 분화에만 적용될 뿐이어서, 마치 친족어를 사용하는 각 집단은 조어를 사용하는 집단의 분열의 결과이며, 분열된 후에는 각자 변화하여 상호간에 영향이 없는 것 같이 보이게 한다. 그러나 실제 상황은 그렇지 않다. 언어 현상은 확산을 통해 다른 언어에 침투할 수 있으며, 사회도 단 한 번의 분열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조어에도 방언의 분기가 있을 수 있지만, 역사적 비교방법은 이 점을 고려할 수 없다. 이런 것들은 방법론 자체의 결점이라고 할 수 있으며, 방법 자체의 세부적인 사항을 개선하는 것만으로는 극복하기 어려운 것이다. 블룸필드는 역사적 비교 방법에 대해 "우리를 데리고 매우 유한한 한 구역의 노정을 갈 수 있을 뿐이다"라고 했다.
신중하게 비교 방법을 사용하면 재구 결과도 믿을만해지지만, 그것의 정확하고 적절한 독음은 결정할 방법이 없다. 원시인구어의 순음화된 설근음은 설근음에 뒤이어 원순이 오는지, 아니면 설근과 입술의 오그라듦이 동시에 나타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언어의 변화 과정 중에 어떤 요소들이 소멸하여, 방언이나 친족어 중에 어떠한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면, 이렇게 소멸한 요소의 원시형식은 재구해 낼 수가 없다. 이런 점에서 재구해야 할 조어의 시대가 오랠수록 자료의 한계도 더 커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어를 재구하는 것은 언어 연구의 발생학적인 면에서 여전히 중요한 의의를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언어의 변화에 대해 유효 적절히 설명하는 것은 조어의 재구 없이는 어렵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