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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7.05 :: 팔일26. 내가 무엇으로 그를 관찰하겠는가
- 2020.07.05 :: 팔일25. 공자의 음악 비평
- 2020.07.05 :: 팔일24. 그대들은 어찌 벼슬 없음을 근심하는가
- 2020.07.05 :: 팔일23. 공자의 음악론
- 2020.07.05 :: 팔일22. 관중의 그릇이 작구나
- 2020.07.04 :: 팔일21. 토지신의 신주
- 2020.07.04 :: 팔일20. 공자의 시 비평
- 2020.07.04 :: 팔일19. 군주와 신하의 관계
26(66). 子曰:「居上不寬,爲禮不敬,臨喪不哀,吾何以觀之哉?」
공자가 말했다. “윗자리에 거하면서 너그럽지 않고, 예를 행함에 공경하지 않으며, 상에 임함에 슬퍼하지 않는다면 내가 무엇으로 그를 관찰하겠는가.”
居上主於愛人,故以寬爲本。爲禮以敬爲本,臨喪以哀爲本。旣無其本,則以何者而觀其所行之得失哉?
윗자리에 거할 때에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주로 하기 때문에 너그러움을 근본으로 삼는다. 예를 행함에 공경함을 근본으로 삼으며, 상에 임함에 슬퍼함을 근본으로 삼는다. 이미 그 근본이 없다면 무엇으로써 그 행한 바의 득실을 관찰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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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65). 子謂韶,「盡美矣,又盡善也。」謂武,「盡美矣,未盡善也。」
공자가 소악을 평하면서 ‘지극히 아름답고 또 지극히 좋다.’라고 하였고, 무악을 평하면서 ‘지극히 아름답지만 지극히 좋지는 않다.’라 하였다.
韶 : 음악 이름 소
韶,舜樂。武,武王樂。美者,聲容之盛。善者,美之實也。
韶는 순 임금의 음악이다. 武는 무왕의 음악이다. 美는 소리와 모습이 성한 것이다. 善은 아름다움의 실제이다.
舜紹堯致治,武王伐紂救民,其功一也,故其樂皆盡美。然舜之德,性之也,又以揖遜而有天下;武王之德,反之也,又以征誅而得天下,故其實有不同者。
순 임금은 요 임금을 이어 다스림을 이루었고, 무왕은 주왕을 정벌하여 백성을 구제하였으니 그 공이 한 가지이다. 그러므로 그 음악이 모두 지극히 아름답다. 그러나 순의 덕은 본성대로 한 것이고 또 읍하고 사양함으로써 천하를 소유하였고, 무왕의 덕은 잃은 본성을 되찾은 것이고 또 정벌하고 주살함으로써 천하를 얻은 것이므로 그 실제에 같지 않음이 있다.
程子曰:「成湯放桀,惟有慚德,武王亦然,故未盡善。堯、舜、湯、武,其揆一也。征伐非其所欲,所遇之時然爾。」
정자가 말했다. “성탕이 걸왕을 유폐함에 부끄러워하는 덕이 있었는데 무왕 또한 그러하였으므로 지극히 좋지는 않다. 요 임금, 순 임금, 탕왕, 무왕의 법도는 하나이니, 정벌은 하고자 해서 한 것이 아니라 만난 때가 그러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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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64). 儀封人請見。曰:「君子之至於斯也,吾未嘗不得見也。」從者見之。出曰:「二三子,何患於喪乎?天下之無道也久矣,天將以夫子爲木鐸。」
의 땅의 봉인이 뵙기를 청하며 말했다. “군자가 여기에 이르렀을 때에 내가 일찍이 만나 뵈지 못한 적이 없었다.” 종자가 뵙게 해주자, 나오면서 말했다. “그대들은 어찌 벼슬 없음을 근심하는가? 천하에 도가 없음이 오래되었으니, 하늘이 장차 부자를 목탁으로 삼을 것이다.”
儀,衛邑。封人,掌封疆之官,蓋賢而隱於下位者也。君子,謂當時賢者。至此皆得見之,自言其平日不見絕於賢者,而求以自通也。見之,謂通使得見。喪,謂失位去國,禮曰「喪欲速貧」是也。木鐸,金口木舌,施政教時所振,以警衆者也。
儀는 위나라 읍이다. 封人은 봉지의 경계를 담당하는 관원이니, 아마도 어질면서 낮은 자리에 숨어 있는 사람인 듯하다. 君子는 당시의 어진 사람을 말한다. 이곳에 이르렀을 때에 모두 만나 뵐 수 있었다는 것은 스스로 그 평상시에 어진 사람들에게 거절당하지 않았음을 말하여, 스스로 통하기를 구한 것이다. 見之는 통하여 알현할 수 있게 함을 말한다. 喪은 자리를 잃고 나라를 떠나는 것을 말하니, 『예기』에 ‘벼슬을 잃으면 빨리 가난해지려고 한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木鐸은 쇠 입에 나무 혀로 되어 있는데 정사와 교화를 베풀 때에 흔들어 대중을 경고하는 것이다.
言亂極當治,天必將使夫子得位設敎,不久失位也。
혼란이 극심하면 마땅히 다스려지니, 하늘이 반드시 장차 부자로 하여금 자리를 얻고 교화를 베풀게 하여 오랫동안 자리를 잃지 않게 할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封人一見夫子而遽以是稱之,其所得於觀感之間者深矣。
봉인이 한 번 부자를 알현하고 갑자기 이렇게 칭송하였으니, 관찰하고 느끼는 사이에 얻은 것이 깊다.
或曰:「木鐸所以徇于道路,言天使夫子失位,周流四方以行其教,如木鐸之徇于道路也。」
혹자가 말했다. “목탁은 도로를 따라가는 것이니, 하늘이 부자로 하여금 자리를 잃게 하여 사방으로 두루 유랑하면서 그 가르침을 행하도록 하기를 마치 목탁이 도로를 따라가는 것 같이 할 것임을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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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63). 子語魯大師樂。曰:「樂其可知也:始作,翕如也;從之,純如也,皦如也,繹如也,以成。」
공자가 노나라 태사에게 음악에 대해 말했다. “음악은 아마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처음 시작할 때에 합하여 울리고, 풀어놓을 때에는 조화를 이루고 분명하게 울리다가 계속 이어지면서 이루어집니다.”
翕 : 합할 흡 皦 : 분명할 교
語,告也。大師,樂官名。時音樂廢缺,故孔子教之。翕,合也。從,放也。純,和也。皦,明也。繹,相續不絕也。成,樂之一終也。
語는 말해 주는 것이다. 大師는 악관의 이름이다. 당시에 음악이 폐해지고 일그러졌으므로 공자가 그에게 가르쳐 준 것이다. 翕은 합함이다. 從은 풀어놓음이다. 純은 조화로움이다. 皦는 분명함이다. 繹은 서로 이어져 끊어지지 않는 것이다. 成은 음악이 한 번 끝나는 것이다.
謝氏曰:「五音六律不具,不足以爲樂。翕如,言其合也。五音合矣,清濁高下,如五味之相濟而後和,故曰純如。合而和矣,欲其無相奪倫,故曰皦如,然豈宮自宮而商自商乎?不相反而相連,如貫珠可也,故曰繹如也以成。」
사씨가 말했다. “다섯 음(宮, 商, 角, 徵, 羽)과 여섯 음률(太簇, 姑洗, 黃鐘, 蕤賓, 夷則, 無射)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음악이 되기에 부족하다. 翕如는 그것이 합쳐짐을 말한다. 다섯 음이 합하여졌으면 청탁과 고저가 마치 다섯 맛(酸, 苦, 甘, 辛, 鹹)이 서로 도와준 후에 조화를 이루는 것과 같으므로 純如라고 말한 것이다. 합하여 조화를 이루었으면 서로 차례를 빼앗음이 없고자 하므로 皦如라고 말한 것이다. 그러나 어찌 궁이 스스로 궁이고 상이 스스로 상이겠는가. 서로 반대되지 않고 서로 이어지는 것이 마치 구슬을 꿴 것과 같아야 한다. 그러므로 繹如也以成이라고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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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62)-1. 子曰:「管仲之器小哉!」
공자가 말했다. “관중의 그릇이 작구나!”
管仲,齊大夫,名夷吾,相桓公霸諸侯。器小,言其不知聖賢大學之道,故局量褊淺、規模卑狹,不能正身修德以致主於王道。
관중은 제나라 대부로 이름은 夷吾이니, 환공을 도와 제후들의 패자가 되게 하였다. 器小는 그가 성현의 대학의 도를 알지 못했으므로 국량이 좁고 얕으며 규모가 낮고 협소하여 몸을 바르게 하고 덕을 닦아서 군주를 왕도에 이르게 할 수 없었다고 말한 것이다.
局量 : 남의 잘못을 이해하고 감싸주며 일을 능히 처리하는 일.
22(62)-2. 或曰:「管仲儉乎?」曰:「管氏有三歸,官事不攝,焉得儉?」
혹자가 말했다. “관중은 검소했습니까?” “관씨는 삼귀라는 누대를 가지고 있었고 관속의 일을 겸직시키지 않았으니, 어찌 검소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或人蓋疑器小之爲儉。三歸,臺名,事見說苑。攝,兼也。家臣不能具官,一人常兼數事,管仲不然,皆言其侈。
혹자는 아마도 그릇이 작다는 것이 검소한 것이 되는지 의심했던 것 같다. 三歸는 누대의 이름이니 일이 『설원』에 보인다. 攝은 겸함이다. 가신은 관속을 다 갖출 수 없어 한 사람이 항상 여러 일을 겸하는데 관중은 그렇게 하지 않았으니, 모두 그 사치스러움을 말한 것이다.
22(62)-3. 「然則管仲知禮乎?」曰:「邦君樹塞門,管氏亦樹塞門;邦君爲兩君之好,有反坫,管氏亦有反坫。管氏而知禮,孰不知禮?」
“그렇다면 관중은 예를 알았습니까?” “나라의 임금이라야 병풍으로 문을 가리는데, 관씨는 또한 병풍으로 문을 가렸다. 나라의 임금이라야 두 임금의 우호를 위하여 잔대를 두는데, 관씨는 또한 잔대를 두었다. 관중이 예를 안다면, 누가 예를 알지 못하겠는가?”
坫 : 잔대 점
或人又疑不儉爲知禮。屏謂之樹。塞,猶蔽也。設屏於門,以蔽內外也。好,謂好會。坫,在兩楹之間,獻酬飲畢,則反爵於其上。此皆諸侯之禮,而管仲僭之,不知禮也。
혹자가 또 검소하지 않은 것이 예를 아는 것이 되는지 의심한 것이다. 병풍을 樹라고 말한다. 塞는 蔽(가림)과 같다. 병풍을 문에 설치하여 안과 밖을 가리는 것이다. 好는 우호적인 회맹을 말한다. 坫은 두 기둥의 사이에 있어 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여 마시는 일이 끝나면 그 위에 잔을 되돌려놓는 곳이다. 이는 모두 제후의 예인데, 관중이 참람하게 썼으니, 예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楹 : 기둥 영
愚謂孔子譏管仲之器小,其旨深矣。或人不知而疑其儉,故斥其奢以明其非儉。或又疑其知禮,故又斥其僭,以明其不知禮。蓋雖不復明言小器之所以然,而其所以小者,於此亦可見矣。故程子曰「奢而犯禮,其器之小可知。蓋器大,則自知禮而無此失矣。」此言當深味也。
내가 생각하기에, 공자가 관중의 그릇이 작다고 비판한 것은 그 뜻이 깊다. 혹자가 알지 못하고 그 검소함을 의심하였으므로 그 사치스러움을 지적하여 그것이 검소함이 아님을 밝혔다. 혹자가 또한 그가 예를 알았는지 의심하였으므로 또 그 참람함을 지적하여 그가 예를 알지 못했음을 밝혔다. 대개 비록 작은 그릇의 이유를 다시 분명하게 말하지는 않았을지라도 그 작은 까닭을 여기에서 또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정자가 ‘사치스러우면서 예를 범하니, 그 그릇이 작음을 알 수 있다. 대개 그릇이 컸더라면 스스로 예를 알아서 이러한 잘못이 없었을 것이다.’라고 말했으니, 이 말을 마땅히 깊이 음미해야 한다.
蘇氏曰:「自修身正家以及於國,則其本深,其及者遠,是謂大器。揚雄所謂『大器猶規矩準繩,先自治而後治人』者,是也。管仲三歸反坫,桓公內嬖六人,而霸天下,其本固已淺矣。管仲死,桓公薨,天下不復宗齊。」
소씨가 말했다. “몸을 닦고 집안을 바르게 하는 것으로부터 나라에 미친다면 그 근본이 깊고 그 미침이 원대할 것이니, 이를 큰 그릇이라고 말한다. 양웅이 이른바 ‘큰 그릇은 규구준승과 같아 먼저 스스로 다스린 뒤에 남을 다스린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관중은 삼귀를 소유하고 잔대를 두었고, 환공은 안으로 여섯 명을 사랑하면서 천하를 제패하였으니, 그 근본이 진실로 이미 얕았다. 관중이 죽고 환공이 훙하니 천하가 다시는 제나라를 종주로 삼지 않았다.”
楊氏曰:「夫子大管仲之功而小其器。蓋非王佐之才,雖能合諸侯、正天下,其器不足稱也。道學不明,而王霸之略混爲一途。故聞管仲之器小,則疑其爲儉,以不儉告之,則又疑其知禮。蓋世方以詭遇爲功,而不知爲之範,則不悟其小宜矣。」
양씨가 말했다. “부자가 관중의 공을 크게 여겼으나 그릇은 작다고 하였다. 대개 왕을 보좌할 만한 재주가 아니면 비록 제후를 규합하고 천하를 바르게 할 수 있었을지라도 그 그릇은 칭찬하기에 부족하기 때문이다. 도학이 밝지 못하여 왕도와 패도의 경계를 뒤섞어 한 길로 만들었다. 그러므로 관중의 그릇이 작다는 말을 들었으면 그것이 검소함이 되는지 의심하고, 검소하지 않았다고 알려주면 또 그가 예를 알았는지 의심하였다. 대개 세상이 바야흐로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부귀를 얻어 누리는 것을 공으로 여겨 그것을 궤범대로 할 줄을 알지 못하였으니 곧 그 작음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 마땅하다.”
詭遇 :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부귀를 얻어 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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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1)-1. 哀公問社於宰我。宰我對曰:「夏后氏以松,殷人以柏,周人以栗,曰使民戰栗。」
애공이 토지신의 신주에 대해 재아에게 물었다. 재아가 대답하였다. “하후씨는 소나무를 사용하였고, 은나라 사람은 잣나무를 사용하였고, 주나라 사람은 밤나무를 사용하였는데, 백성들로 하여금 전율하게 하려고 해서였습니다.”
以 : 用과 같다.
栗 : 慄(두려워하다)과 같다.
宰我,孔子弟子,名予。三代之社不同者,古者立社,各樹其土之所宜木以爲主也。戰栗,恐懼貌。
재아는 공자의 제자이니 이름은 予이다. 세 왕조의 토지신의 신주가 같지 않았던 것은 옛날에 토지신의 사당을 세울 때에 각각 그 토지에 마땅한 나무를 심어 신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戰栗은 두려워하는 모양이다.
宰我又言周所以用栗之意如此。豈以古者戮人於社,故附會其說與?
재아는 또한 주나라가 밤나무를 사용한 이유의 뜻이 이와 같다고 말했다. 아마도 옛날에 토지신의 사당에서 사람을 죽였기 때문에 그 말을 부회한 것 같다.
21(61)-2. 子聞之曰:「成事不說,遂事不諫,旣往不咎。」
공자가 그것을 듣고 말했다. “이루어진 일이라 말하지 않으며, 다 된 일이라 간하지 않으며, 이미 지나간 일이라 허물하지 않는다.”
遂事,謂事雖未成,而勢不能已者。
遂事는 일이 비록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형세가 그만둘 수 없는 것을 말한다.
孔子以宰我所對,非立社之本意,又啓時君殺伐之心,而其言已出,不可復救,故歷言此以深責之,欲使謹其後也。
공자는 재아가 대답한 것이 토지신의 사당을 세운 본뜻이 아니며, 또 당시 임금의 살벌한 마음을 열어 주었으나 그 말이 이미 나와 다시 구제할 수 없었으므로 차례로 이것을 말하여 깊이 책망하고 그 뒤에 삼가게 하고자 한 것이다.
尹氏曰:「古者各以所宜木名其社,非取義於木也。宰我不知而妄對,故夫子責之。」
윤씨가 말했다. “옛날에는 각각 마땅한 나무로 그 토지신의 신주를 썼고, 나무에서 뜻을 취하지는 않았다. 재아가 알지 못하고 함부로 대답했으므로 부자가 꾸짖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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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일18. 예를 다하는 것을 아첨한다고 하니 (0) | 2020.07.04 |
20(60). 子曰:「關雎,樂而不淫,哀而不傷。」
공자가 말했다. “「관저」 편은 즐거우나 지나치지 않고, 슬퍼하나 상하지는 않는다.”
關雎,周南國風詩之首篇也。淫者,樂之過而失其正者也。傷者,哀之過而害於和者也。
關雎는 「주남 국풍」이니, 『시경』의 첫 편이다. 淫은 즐거움이 지나쳐 그 바름을 잃어버린 것이다. 傷은 슬퍼함이 지나쳐 조화로움을 해친 것이다.
關雎之詩,言后妃之德,宜配君子,求之未得,則不能無寤寐反側之憂;求而得之,則宜其有琴瑟鐘鼓之樂。蓋其憂雖深而不害於和,其樂雖盛而不失其正,故夫子稱之如此。欲學者玩其辭,審其音,而有以識其性情之正也。
「관저」의 시는 후비의 덕이 마땅히 군자와 짝해야 하니, 구해서 얻지 못한다면 자나 깨나 잊지 못하고 이리저리 뒤척이는 근심이 없을 수 없고 구하여 얻으면 마땅히 금슬과 종고의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였다. 대개 그 근심이 비록 깊으나 조화로움을 해치지 않고, 그 즐거움이 비록 성하나 그 바름을 잃어버리지 않았으므로 부자가 그것을 칭송하기를 이와 같이 한 것이다. 배우는 사람이 그 말을 완상하고 그 소리를 살펴서 그 성정의 올바름을 알 수 있게 하고자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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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일17. 곡삭제의 희생양 (0) | 2020.07.04 |
19(59). 定公問:「君使臣,臣事君,如之何?」孔子對曰:「君使臣以禮,臣事君以忠。」
정공이 물었다. “군주가 신하를 부리며 신하가 군주를 섬기는 것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공자가 대답하였다. “군주가 신하를 예로써 부리며, 신하가 군주를 충으로써 섬겨야 합니다.”
定公,魯君,名宋。二者皆理之當然,各欲自盡而已。
정공은 노나라 군주이니, 이름은 宋이다. 두 가지는 모두 이치의 마땅함이니 각자 스스로 다하고자 할 뿐이다.
呂氏曰:「使臣不患其不忠,患禮之不至;事君不患其無禮,患忠之不足。」
여씨가 말했다. “신하를 부림에 그가 충성하지 않음을 걱정하지 말고, 예가 지극하지 못함을 걱정해야 한다. 군주를 섬김에 그가 예가 없음을 걱정하지 말고, 충성스러움이 부족할까 걱정해야 한다.”
尹氏曰:「君臣以義合者也。故君使臣以禮,則臣事君以忠。」
윤씨가 말했다. “군주와 신하는 의로써 합해진다. 그러므로 군주가 신하를 예로써 부리면, 신하가 군주를 충으로써 섬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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