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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0.25 :: 맹자집주서설 2
- 2020.07.05 :: 양혜왕장구하16. 노 평공이 맹자를 만나지 않은 이유
- 2020.07.05 :: 양혜왕장구하15. 등나라는 작은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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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7.04 :: 양혜왕장구하13. 제나라를 섬길까 초나라를 섬길까
- 2020.07.04 :: 양혜왕장구하12. 노나라와 추나라의 전쟁
- 2020.07.01 :: 양혜왕장구하11. 제나라의 연나라 정벌(2)
凡七章。
모두 일곱 장이다.
1-1. 孟子見梁惠王,
맹자가 양 혜왕을 만나뵈었는데,
梁惠王,魏侯罃也,都大梁,
양 혜왕은 위나라 후작 앵이니 도읍을 대량에 하고,
罃 : 물독 앵
趙氏曰:按魏初都安邑,在漢河東郡安邑縣。至惠王徙大梁,在漢陳留郡浚儀縣。
僭稱王,諡曰惠。《史記》惠王三十五年,
왕을 참칭하고, 시호를 혜라고 하였다. 《사기》에 혜왕 35년에
新安倪氏曰:按《綱目》,周顯王三十三年乙酉,為惠王三十五年。
卑禮厚幣,以招賢者,而孟軻至梁。
예를 낮추고 폐백을 후하게 하여 현자들을 초빙하니 맹가가 양나라에 이르었다고 하였다.
問:孟子不見諸侯,其見惠王,何也?朱子曰:不見諸侯,不先往見也。見惠王,答其禮也。先王之禮,未仕不得見諸侯。時士鮮自重,而孟子猶守此禮,故所居之國,未仕必君先就見,然後往見。異國君不得越竟,必以禮先焉,然後往答其禮耳。《史記》得其事之實矣。
1-2. 王曰:叟不遠千里而來,亦將有以利吾國乎?
왕이 말했다. "어르신께서 천 리를 멀다고 하지 않으시고 오시니 또한 장차 내 나라를 이롭게 함이 있겠습니까?"
叟,長老之稱。王所謂利,蓋富國彊兵之類。
'叟'는 장로의 호칭이다. 왕이 말한 바 利는 대개 부국강병의 종류이다.
西山真氏曰:當時王道不明,人心䧟溺,惟知有利而已。故惠王利國之問,發於見賢之初。
1-3. 孟子對曰:王何必曰利?亦有仁義而已矣。
맹자가 대답하였다. "왕께서는 하필 이로움을 말씀하십니까, 또한 인과 의만이 있을 뿐입니다.
仁者,心之德,愛之理。義者,心之制,事之宜也。
仁은 마음의 덕이고 사랑의 원리이며 義는 마음의 제도이고 일의 마땅함이다. 이 두 구절은 곧 한 장의 취지이다. 아래 문장에 상세하게 말했으니 뒤에도 이를 모방한 것이 많다.
朱子曰:仁言心之徳,見得可包四者。義者心之制,只是說義。
〇心之德是混淪說愛之理,方說到親切處。心之制是說義之體,程子所謂處物為義是也。事之宜是就千條萬緒各有所宜處說。揚雄言義以宜之,韓愈言行而宜之之謂義。若只以義為宜,則義有在外意思。須如程子所言,則處物者在心而非外也。事之宜雖若在外,然所以制其宜則在心也。
〇心之制如利斧,事來劈將去,可底從這一邊去,不可底從那一邊去。
〇仁兼義言者,是言體。專言者,是兼體用而言。
〇仁對義為體用,仁又自有仁之體用,義又自有義之體用。
〇所謂事之宜,方是指那事物當然之理,未說到處置合宜處也。
〇問:人所以為性者五,獨舉仁義何也?曰:天地所以生物,不過隂陽五行,而五行實一隂陽也。人性雖有五,然曰仁義,則大端已舉矣。以隂陽五行言,則木火皆陽,金水皆隂,而土無不在。以性言,則禮者仁之餘,智者義之歸,而信亦無不在也。
又曰:禮者仁之著,智者義之藏。
又曰:仁存諸心,性之所以為體也。義制夫事,性之所以為用也。然以性言之則皆體也,以情言之則皆用也。以隂陽言之,則義體而仁用也。以存心制事言之,則仁體而義用也。錯綜交羅,惟其所當,而各有條理焉。
〇疊山謝氏曰:夫子罕言仁,不過於随事發見處言。孟子仁人心一語,直說仁之本體,此朱子於論註先言愛,而孟註先言心,直得孔孟之要㫖。
〇諸葛氏曰:語之為仁,猶曰行仁,以仁之用言,故集註先言愛之理。孟子此章以仁之體言,故《集註》先言心之德。
〇雲峯胡氏曰:心之德是體,愛之理是用,心之制是體,事之宜是用。《孟子》所言仁義,是包體用而言。《論語》所謂為仁,是以仁之用言。
此二句乃一章之大指,下文乃詳言之,後多放此。
이 두 구절은 곧 한 장의 취지이다. 아래 문장에 상세하게 말했으니 뒤에도 이를 모방한 것이 많다.
1-4. 王曰:何以利吾國?大夫曰:何以利吾家?士庶人曰:何以利吾身?上下交征利而國危矣。萬乗之國,弑其君者,必千乗之家。千乗之國,弑其君者,必百乗之家。萬取千焉,千取百焉,不為不多矣。苟為後義而先利,不奪不饜。
왕께서 말씀하시기를, '무엇으로 내 나라를 이롭게 할까'라고 하시면, 대부는 말하기를 '무엇으로 내 집을 이롭게 할까' 하며, 사와 서인은 말하기를, '무엇으로 내 몸을 이롭게 할까' 하여 위아래가 서로 이익을 취한다면 나라가 위태롭게 됩니다. 만승의 국가에서 그 군주를 시해하는 사람은 반드시 천승의 집이고 천승의 국가에서 그 군주를 시해하는 사람은 반드시 백승의 집입니다. 만에서 천을 취하며 천에서 백을 취함이 많지 않음이 아니지만 진실로 의로움을 뒤에 하고 이로움을 먼저 하면 빼앗지 않고는 만족할 수 없습니다.
饜 : 만족할 염
此는 言 求利之害하여 以明上文何必曰利之意也라 征은 取也니 上取乎下하고 下取乎上이라 故로 曰交征이라 國危는 謂將有弑奪之禍라 乘은 車數也라 萬乘之國者는 天子畿內地方千里에 出車萬乘이요 千乘之家者는 天子之公卿采地方百里에 出車千乘也라 千乘之國은 諸侯之國이요 百乘之家는 諸侯之大夫也라
이는 이익을 구하는 해로움을 말해서 윗 문장에 '하필 이로움을 말씀하십니까'의 뜻을 밝힌 것이다. '征'은 취하는 것이니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서 취하고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서 취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서로 취한다고 한 것이다. '國危'는 장차 시해하고 빼앗는 재앙이 있을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乘'은 수레의 수이다. 만승의 국가는 천자의 경기 안에 땅이 방천리여서 만 승의 수레를 내보내고, 천승의 집은 천자의 공과 경으로 채지가 방천리여서 천 승의 수레를 내보낸다. 백승의 집은 제후의 대부이다.
《前漢·刑法志》:殷周以兵定天下矣。天下既定,戢藏干戈,教以文德,而猶立司馬之官,設六軍之衆。【司馬掌邦政,軍旅屬焉。萬二千五百人為軍,王則六軍也。】因井田而制軍賦,地方一里為井,井十為通,通十為成,成方十里。成十為終,終十為同,同方百里。同十為封,封十為畿,畿方千里。有稅有賦,稅以足食,賦以足兵。四井為邑,四邑為丘。丘,十六井也,有戎馬一疋,牛三頭。四丘為甸,甸,六十四井也,有戎馬四疋,兵車一乗,牛十二頭,甲士三人,【在車上者。】卒七十二人,干戈備具,是謂乗馬之法。【一井八家,一甸六十四井,計田五百七十六頃,五百一十二家出士卒七十五人,則殷周之制,不及七家給一兵也。又兵車一乗,有牛馬共十六,計三十二家又出一馬或牛也。】一同百里,提封萬井。【提,舉也,舉四封之内也。】除山川沈斥、城池邑居園囿術路三千六百井。【沈斥,水田舄鹵也。沈,謂淵深冰之下也。斥,鹹鹵之地。術,大道也。】定出賦六千四百井,戎馬四百疋,兵車百乗,此卿大夫采地之大者也。【采,官也。因官食地,故曰采地。】是謂百乗之家。一封三百一十六里,提封十萬井,定出賦六萬四千井,戎馬四千疋,兵車千乗,此諸侯之大者也,是謂千乗之國。天子畿方千里,提封百萬井,定出賦六十四萬井,戎馬四萬疋,兵車萬乗,故稱萬乗之主。戎馬車徒,干戈素具。
弑,下殺上也。饜,足也。言臣之於君,毎十分扶問反,下同。而取其一分,
'弑'는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죽이는 것이다. '饜'은 만족하는 것이다. 신하가 군주에 대하여 매번 십분의 1을 취하였으니,
新安陳氏曰:以制地定法,言天子萬乗,諸侯取十之一,得千乘。諸侯千乗,大夫取十之一,得百乗。
亦已多矣。若又以義為後而以利為先,則不弑其君而盡奪之,其心未肯以為足也。、
또한 이미 많은데 만약 또 의로움를 나중에 하고 이로움을 먼저 하면 그 군주를 시해하고 전부 빼앗지 않고는 그 마음에 즐겨서 만족하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慶源輔氏曰:《集註》發明不奪不饜,最說得人心求利之意出。蓋尚義則循理而有制,徇利則橫流而無節,故不弑逆而盡奪之,其心猶有所不足也。
〇新安陳氏曰:此章始末兼言仁義,中單言義者,蓋仁有温然慈愛之意,義有截然斷制之意,取其斷制以勝私去利,則義之用為尤切。兼言仁義,該體用之全也;單言義,取功用之切也。下文仁施於親,義施於君,此對君言之,故單言義亦通。
1-5. 未有仁而遺其親者也,未有義而後其君者也。
인하면서 그 부모를 버리는 사람은 없고 의로우면서 그 군주를 뒤로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此言仁義未嘗不利,以明上文亦有仁義而已之意也。遺,猶棄也。後,不急也。言仁者必愛其親,義者必急其君,故人君躬行仁義而無求利之心,則其下化之,自親戴於已也。
이것은 인과 의가 일찍이 이로운 것이 아님을 말하여 윗 문장의 '또한 인과 의만이 있을 뿐입니다'의 뜻을 밝힌 것이다. '遺'는 '棄(버리다)'와 같고, '後'는 급하게 여기지 않음이다. 어진 사람은 반드시 그 부모를 사랑하고 의로운 사람은 반드시 그 군주를 급하게 여김을 말한것이다. 그러므로 인군이 몸소 인과 의를 행하고 이익을 구하는 마음이 없으면 그 아랫사람이 교화되어서 스스로 자신을(군주를) 친애하고 떠받듦을 말한 것이다.
朱子曰:仁者,人也。其發則專主於愛,而愛莫切於愛親,故人仁則必不遺其親矣。義者,宜也。其發則事皆得其宜,而所宜者莫大於尊君,故人義則必不後其君矣。
〇慶源輔氏曰:仁義,人心之固有。人君躬行仁義以感之,而無求利之心以誘之,則人心之固有者亦皆興起,而自然尊君親上,有不待外求而勉強為之也。
〇雲峯胡氏曰:人性有五,仁義為先。人倫有五,君親為先。所以孟子揭此於七篇之首。然此二句本文仁義二字指下之人而言。《集註》必自人君躬行上說来者,蓋上文先言王而後言大夫士庶,惟上之人求利而後下皆求利,故《集註》於此揭人君躬行仁義而無求利之心,故其下化之而自有仁義之利也。
〇新安倪氏曰:孟子謂何必曰利,亦有仁義而已矣,是以利對仁義而分言之。《集註》於此節云仁義未嘗不利,是以仁義合利而貫言之,若與孟子上文有不同者,何哉?蓋有仁義中之利,有仁義外之利。外仁義以求利,孟子之所戒,此章之大㫖也。行仁義而得利,《集註》之所發明,亦孟子此節之本意也。不遺其親,即是親親之仁。不後其君,即是尊君之義,豈非仁義中自然之利乎?
1-6. 王亦曰仁義而已矣,何必曰利?
왕께서는 또한 인과 의를 말씀하셔야 할 뿐인데 하필 이로움을 말씀하십니까?"
重言之,以結上文兩節之意。
거듭 말하여 윗 문장 두 절의 뜻을 맺은 것이다.
〇此章言仁義根於人心之固有,天理之公也。利心生於物我之相形,人欲之私也。
이 장은 인의가 사람 마음의 고유한 것에서 근원하였으니 천리의 공변됨이고, 이롭게 여기는 마음은 물건과 내가 서로 나타남에서 생겼으니 인욕의 사사로움이다. 천리를 따르면 이익을 구하지 않아도 스스로 불리하지 않게 되고, 인욕을 따르면 이익을 구하나 얻지 못하고 해로움이 이미 따름을 말했으니 이른바 터럭만큼의 차이가 천 리만큼이나 어긋난다는 것이다. 이는 《맹자》라는 책에서 단서를 만들고 시작을 의탁한 깊은 뜻이니, 배우는 사람이 마땅히 정밀하게 살피고 밝게 분별해야 할 바이다.
繆 : 그릇될 류
慶源輔氏曰:利心人本無之,只縁有已有物,彼此相形,便生出較短量長、争多競少之意,遂欲巳長人短,人少己多,偏詖反側,惟已是徇,故曰人欲之私也。
循天理,則不求利而自無不利。徇人欲,則求利未得而害已隨之。
천리를 따르면 이익을 구하지 않아도 스스로 불리하지 않게 되고, 인욕을 따르면 이익을 구하나 얻지 못하고 해로움이 이미 따름을 말했으니
慶源輔氏曰:循天理者,無所為而為,故不求利。然成已成物,各得其宜,故自無不利。徇人欲者,有所為而為,故雖求利而未必得,然妨人害物,招尤取禍,故害常随之。
所謂毫釐之差,千里之繆。此《孟子》之書所以造端託始之深意,學者所宜精察而明辨也。
이른바 터럭만큼의 차이가 천 리만큼이나 어긋난다는 것이다. 이는 《맹자》라는 책에서 단서를 만들고 시작을 의탁한 깊은 뜻이니, 배우는 사람이 마땅히 정밀하게 살피고 밝게 분별해야 할 바이다.
繆 : 그릇될 류
覺軒蔡氏曰:學者細玩而已矣與‘何必’之辭,見孟子語意嚴厲,斬釘截鐡,斷斷然只說仁義,更不向利上去。若董子正其誼不謀其利,明其道不計其功,意亦得其傳者歟。
〇雲峯胡氏曰:子朱子深有取於三山黄登之言,曰,天下一切人都把害對利,事事上只見得利害,不問義理。須知利字乃對義字,明得義利,便自無乖爭之事。集註所謂循天理則不求利而自無不利,是以利字與義字對,而利不出乎義之外。徇人欲則求利未得而害已随之,是以利字與害字對,而害已藏於利之中。
○太史公曰
태사공이 말했다
新安陳氏曰:司馬談為太史令,子遷尊其父,故謂之公。遷繼其職,仍稱太史公。西漢龍門人。
余讀《孟子》書,至梁惠王問何以利吾國,未嘗不廢書而嘆也。曰:嗟乎!利誠亂之始也。夫子罕言利,常防其源也。故曰:放於利而行,多怨。自天子以至於庶人,好利之弊何以異哉!
. "내가 《맹자》 책을 읽다가 양 혜왕이 무엇으로 내 나라를 이롭게 할까 묻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일찍이 책을 덮고 탄식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아, 이로움은 진실로 어지러움의 시작이니 부자(夫子)가 이로움을 드물게 말한 것은 항상 그 근원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이익에 따라서 행동하면 원망이 많다'고 하였으니 천자로부터 서인에 이르기까지 이익을 좋아하는 폐단이 어찌 다르겠는가."
問:太史公之嘆,其果知《孟子》之學耶?朱子曰:未必知也。以其言之偶得其要,是以謹而著之耳。
程子曰:“君子未嘗不欲利,但專以利為心則有害。惟仁義則不求利,而未嘗不利也。”
정자가 말했다. "군자가 일찍이 이롭고자 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단지 오로지 이로움으로써 마음을 삼으면 해가 있다. 오직 인과 의를 따르면 이로움을 구하지 않아도 일찍이 불리하지 않다.
慶源輔氏曰:利者,民生所不可無者也。故乾之四徳曰利,《書》之三事曰利。此所謂君子未嘗不欲利,但專欲求利,則不顧義理,專欲利己而必害於人。惟能循仁義而行,則體順有常,而自無不利。
當是之時,天下之人惟利是求,而不復知有仁義。故《孟子》言仁義而不言利,所以㧞本塞先,則反源而救其弊,此聖賢之心也。
이 때를 당하여 천하의 사람들이 오직 이익을 구하고 다시 인과 의가 있는 줄 알지 못했다. 그러므로 맹자가 인과 의를 말하고 이로움을 말하지 않은 것은 발본색원하여 그 폐단에서 구하려고 하는 까닭이니 이는 성현의 마음이다."
龜山楊氏曰:君子以義為利,不以利為利,使其民不後其君親,則國治矣,利孰大焉?故曰亦有仁義而已,何必曰利。
〇朱子曰:凡事不可先有箇利心,才說着利,必害於義。聖人做處只向義邊做,然義未嘗不利,但不可先說道利,不可先有求利之心。蓋縁本耒道理只有一箇仁義,更無别物事。義是事事要合宜,以利心為仁義,即非仁義之正,不待有不利,然後仁義阻也。
〇雲峯胡氏曰:孟子之得於子思者曰‘仁義所以利之也。及告梁王,則言仁義而不言利。蓋子思所言者,利物之利,梁王所問者利己之利也。程子以為㧞本塞源者,所以救當時流弊之極。朱子以為造端託始者,所以謹夫學者心術之初。
〇新安陳氏曰:《孟子》一書,以遏人欲、存天理為主,何必曰利?遏人欲也,亦有仁義存天理也。自此以後,鮮有不可以此六字該貫章㫖者。
〇東陽許氏曰:君子利己之心不可有,利物之心不可無。孟子不言利,是專攻人利己之心。絶利己之心,然後可行利物之事。然利物乃所以利己也。至於不遺親後君,則已亦無不利矣,但不可假仁義以求利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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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記列傳》曰:孟軻,
《사기열전》에 이르기를, '맹자는
趙氏曰:孟子,魯公族孟孫之後。《漢書注》云,字子車,一說,字子輿。
조씨가 말했다. "맹자는 노(魯)나라 공족 맹손의 후예이다." 《한서》의 주석에 이르기를 자는 子車라 하고, 일설에 자는 子輿라고 한다.
騶人也,
騶(추)나라 사람이니
騶,亦作鄒,本邾國也。
'騶'는 '鄒'라고도 쓰니 본래 주(邾)나라이다.
受業子思之門人。
자사의 문인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다.
子思,孔子之孫,名伋。《索隱》에 云,王劭以人爲衍字,而《趙氏注》及《孔叢子》等書,亦皆云,孟子親受業於子思,未知是否。
자사는 공자의 손자이니 이름은 伋이다. 《사기색은》에 이르기를, 왕초(王劭)는 '人'이 연문이라고 했고, 조씨의 주석과 《공총자》 등의 책에 또한 모두 이르기를 맹자가 친히 자사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다고 했으니 옳은지 알 수 없다.
慶源輔氏曰:子思之門人無顯名於後者,而孟子真得子思之傳,則疑親受業於子思者為是,而《集註》兩存其說,蓋自古聖賢固有聞而知之者,不必待耳傳靣命而後得也。又以《中庸》一書觀之,所以傳授心法,開示藴奥如此其至,則當時門弟子豈無見而知之者?孟子從而受之,愈益光明,亦宜有之也。”
〇西山真氏曰:“七篇之書,其出乎《中庸》者非一。其曰四端云者,則未發之中,中節之和也。蓋仁義禮知,性也,所謂大本也。惻隱、羞惡、辭讓、是非,情也,所謂逹道也。其曰禹、稷、顔回同道,孔子仕止久速者,則君子而時中也。其曰鄉原亂德者,則小人而無忌憚也。其曰子莫執中者,時中之反也。其曰曽子、北宮黝之勇者,南北方之強也。其曰仁之實事親,義之實從兄,禮之實節文斯二者,則仁者人也,親親為大,義者宜也,尊賢為大,親親之殺,尊賢之等,禮所生也。其曰堯舜性之,湯武反之,則自誠明之謂性,自明誠之謂教也。其曰天下國家之本在身,則為天下國家有九經也。至於誠者天之道,思誠者人之道一章之義,悉本於《中庸》,尤足以見淵源之所自。
道旣通,
도에 이미 통달하였을 때에
趙氏曰:孟子通五經,尤長於《詩》、《書》。
조씨가 말했다. "맹자는 오경에 통달하고 특히 《시경》과 《서경》에 뛰어났다."
程子曰:孟子曰,可以仕則仕,可以止則止,可以久則久,可以速則速,孔子,聖之時者也,故知《易》者,莫如孟子。 又曰:王者之迹,熄而《詩》亡,《詩》亡然後,《春秋》作。又曰:《春秋》無義戰。又曰:《春秋》,天子之事,故知《春秋》者,莫如孟子。
정자가 말했다. "맹자가 말했다. '출사할 만하면 출사하고, 그만둘 만하면 그만 두고 오래 있을 만하면 오래 있고, 속히 떠날 만하면 속히 떠난 사람은 공자이니 성인의 때에 맞는 것이다.' 그러므로 《역경》을 안 사람은 맹자만한 사람이 없다. <맹자가> 또 말했다. '왕 된 사람의 발자취가 없어지니 《시경》 또한 없어졌다. 《시경》이 없어진 후에 《춘추》가 지어졌다' <맹자가> 또 말했다. '《춘추》에는 의로운 전쟁이 없다.' <맹자가> 또 말했다. '《춘추》는 천자의 일이다.' 그러므로 《춘추》의 일을 안 사람은 맹자만한 사람이 없다."
尹氏曰:以此而言,則趙氏謂孟子長於《詩》、《書》而已,豈知孟子者哉?
윤씨가 말했다. "이것으로써 말한다면 조씨는 맹자가 《시경》과 《서경》에 뛰어났다고 말했을 뿐이다. 어찌 맹자를 안 사람이겠는가."
游事齊宣王,宣王不能用。適梁,梁惠王不果所言,則見以爲迂遠而闊於事情。
제(齊) 선왕(宣王)에게 유세하였으니 선왕(宣王)이 등용하지 못하였고 양(梁)나라로 가자 양(梁) 혜왕(惠王)도 말한 바를 실행하지 못했으니 우원하여 현실 사정과 거리가 멀다고 여겨졌다.
按史記,梁惠王之三十五年乙酉,孟子始至梁,其後二十三年當齊湣王之十年丁未,齊人 伐燕,而孟子在齊,故古史謂孟子先事齊宣王,後乃見梁惠王、襄王、齊湣王。獨孟子以伐燕爲宣王時事,與《史記》、《荀子》等書皆不合,而《通鑑》以伐燕之歲,爲宣王十九年,則是孟子先游梁而後至齊見宣王矣。然《考異》亦無他據,又未知孰是也。
《사기》를 살펴보면, 양(梁) 혜왕(惠王) 35년 을유에 맹자가 양(梁)나라에 처음 이르렀고, 그 후 23년인 제(齊) 민왕(湣王) 10년 정미에 제(齊)나라가 연(燕)나라를 정벌했는데, 맹자가 제(齊)나라에 있었다. 그러므로 옛날 역사에는 맹자가 먼저 제(齊) 선왕(宣王)을 섬기고 후에 양(梁) 혜왕(惠王), 양왕(襄王), 제(齊) 민왕(湣王)을 만났다. 유독 《맹자》에만 연(燕)나라를 정벌한 것이 선왕(宣王) 때의 일이라고 한 것은 《사기》, 《순자》 등의 책과 모두 부합하지 않고, 《자치통감》에 연(燕)나라를 정벌한 때가 선왕(宣王) 19년이라고 하니 곧 이는 맹자가 먼저 양(梁)나라에 유세한 후에 제(齊)나라에 이르러 선왕(宣王)을 만난 것이다. 그러나 《고이》에도 또한 다른 근거가 없으니 또 어느 것이 옳은지 알 수 없다.
新安陳氏曰:謹按《通鑑綱目》,周顯王三十三年乙酉,孟軻至魏。慎靚王二年壬寅,魏君罃卒,孟軻去魏適齊。五年乙巳,燕君噲以國讓其相子之。赧王元年丁未,齊伐燕,取之。分注但云齊王,其下即書孟軻去齊。赧王二年戊申,即齊閔王地。元年,閔即湣字。伐燕一事,《史記》以為齊湣王十年丁未,蓋以顯王四十六年戊戌為齊閔王元年。《通鑑》以為宣王十九年丁未,蓋以顯王三十七年己丑為宣王元年。《史記》、《通鑑》之不同蓋如此。證以《通鑑綱目》,丁未,宣王卒,閔王立,戊申方改元,則丁未乃宣王末年,閔王繼位之年,蓋未能的知伐燕之為先君事與嗣君事也。以淖齒事證之,閔王為是。孟子謂為宣王,恐傳冩之訛耳。無所折衷,姑以《綱目》為據云。
當是之時,秦用商鞅,楚、魏用吳起,齊用孫子、田忌,天下方務於合從(縱)連衡(橫),
이 때를 당하여 진(秦)나라는 상앙(商鞅)을 등용하고, 초(楚)나라와 위(魏)나라는 오기(吳起)를 등용하고, 제(齊)나라는 손자(孫子)와 전기(田忌)를 등용하여 천하가 막 합종책과 연횡책에 힘써서
〇新安陳氏曰:“蘇秦主合從之說,欲合六國為一以抗秦。張儀主連衡之說,則離六國之交以事秦。六國,謂楚、燕、齊、韓、趙、魏也。”
以攻伐爲賢,而孟軻乃述唐虞三代之德,是以所如者不合,退而與萬章之徒序《詩》、《書》,述仲尼之意,作《孟子》七篇。
공격과 정벌을 훌륭한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 맹가는 이에 당(唐)나라와 우(虞)나라 삼대의 덕을 기술했는데, 이 때문에 가는 곳마다 <뜻이> 합하지 아니하여 물러나 만장(萬章)의 문도들과 함께 《시경》, 《서경》을 서술하고 중니의 뜻을 서술하여 《맹자》 일곱 편을 지었다.
趙氏曰:凡二百六十一章,三萬四千六百八十五字。
조씨가 말했다. "모두 261장에 34,685자이다."
韓子曰:孟軻之書,非軻自著,軻旣沒,其徒萬章、公孫丑相與記軻所言焉耳。
한자가 말했다. "맹가의 책은 맹가가 스스로 저술한 것이 아니고 맹자가 이미 죽은 후에 그 문도 만장(萬章)과 공손추(公孫丑)가 함께 맹가가 말한 것을 기록한 것일 뿐이다."
愚按:二說不同,《史記》近是。
내가 생각하건대 두 설이 같지 않은데, 《사기》가 옳을 것이다.
韓子名愈,字退之,諡文公,唐鄧州人。
〇問:序說謂《史記》近是,而《集註》於滕文公篇首章云門人不能盡記其辭,又第四章云記者之誤如何?朱子曰:前說是,後兩處失之。熟讀七篇,觀其筆勢,如鎔鑄而成,非綴緝可就也。《論語》便是記録綴緝所為,非一筆文字矣。
〇新安陳氏曰:愚聞或疑《易·繫辭》有子曰字,以為非孔子作。朱子曰:安知非後人所加,如周子自著《通書》,五峯刋之,每章加周子曰字。今讀《孟子》亦當㑹此意。
韓子曰:堯以是傳之舜,舜以是傳之禹,禹以是傳之湯,湯以是傳之文、武、周公,文、武、周公傳之孔子,孔子傳之孟軻,軻之死,不得其傳焉。荀與揚也,擇焉而不精,語焉而不詳。
한자(한유)가 말했다. "요(堯)는 순(舜)에게 이것을 전하고, 순(舜)은 우(禹)에게 이것을 전하고, 우(禹)는 이것을 탕(湯)에게 전하고 탕(湯)은 이것을 문왕(文王), 무왕(武王), 주공(周公)에게 전하고 문왕(文王), 무왕(武王), 주공(周公)은 공자에게 전하고 공자는 맹가에게 전했다. 맹가가 죽음에 그 전한 것을 얻을 수 없으니, 순자(荀子)와 양자(揚子)는 그것에 대해 선택했지만 정밀하지 못하였고, 그것에 대해 말했지만 상세하지 못했다."
焉 : 於之
程子曰:韓子此語,非是蹈襲前人,又非鑿空撰得出,必有所見。若無所見,不知言所傳者何事。
정자가 말했다. "한자의 이 말은 옛 사람의 말을 답습한 것이 아니고, 또한 빈 말을 뚫어서 지어 낸 것이 아니니, 반드시 본 것이 있었을 것이다. 만약 본 것이 없었다면 전한 바라고 말한 것이 무슨 일인지 알지 못한다."
荀子,名况,戰國時趙人。揚子,名雄,漢蜀郡人。
〇朱子曰:此非深知所傳者何事,則未易言也。堯舜之所以為堯舜,以其盡此心之體而已。禹、湯、文、武、周公、孔子傳之以至於孟子,其間相望有或數百年者,非得口傳耳授宻相付屬也,特此心之體隱乎百姓日用之間,賢者識其大,不賢者識其小,而體其全且盡者,則為得其傳耳。
〇又曰:孟氏,醇乎醇者也。荀與揚大醇而小疵。
또 말했다. "맹씨는 순수하고 순수한 사람이며, 순자(荀子)와 양자(揚子)는 크게 순수하기는 하지만 작은 허물이 있다."
程子曰:韓子論孟子甚善,非見得孟子意,亦道不到。其論荀、揚則非也。荀子極偏駁,只一句性惡,大本已失。揚子雖少過,然亦不識性,更說甚道?
정자가 말했다. "한자가 맹자를 논한 것은 매우 좋다. 맹자의 뜻을 얻지 못했다면 또한 말이 이렇지 않았을 것이다. 순자와 양자를 논한 것은 잘못되었다. 순자는 지극히 치우쳐서 잡스러우니 단지 본성이 악하다는 한 구절에 큰 뜻을 이미 잃어버렸다. 양자는 비록 허물이 적으나 또한 본성을 알지 못했으니 다시 무슨 도를 말하겠는가."
甚 : 무엇 삼
《荀子·性惡篇》:人之性惡,其善者偽也。今人之性,生而有好利焉,有疾惡去聲焉,有耳目之欲好聲色焉。然則從人之性,順人之情,必出於争奪,合於犯分亂理而歸於暴。故必將有師法之化,禮義之道,音導,然後出於辭譲,合於文理,而歸於治。然則人之性惡明矣,其善者偽也。
〇《揚子·脩身篇》:人之性也善惡混,脩其善則為善人,脩其惡則為惡人。氣也者,所適善惡之馬也歟。
〇朱子曰:韓子謂荀、揚大醇小疵,非是。由田駢、慎到、申不害、韓非之徒觀之,則荀、揚為大醇耳。
〇程子說荀、揚等語,是就分金秤上說下來。
〇又曰:孔子之道大而能博,門弟子不能徧觀而盡識也,故學焉而皆得其性之所近。其後離㪚分處諸侯之國,又各以其所能授弟子,源逺而末益分。惟孟軻師子思,而子思之學出於曽子。自孔子没,獨孟軻氏之傳得其宗,故求觀聖人之道者,必自《孟子》始。
또 말했다. "공자의 도는 크고 능히 넓으니, 문하의 제자들이 두루 보고 다 알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그것에 대해서 배울 때에 모두 그 성질에 가까운 것을 얻었다. 그 후에 흩어져 나뉘어 제후의 나라에 거처하면서 또한 각각 그 능한 바로써 제자에게 전수해 주니, 근원이 멀어지고 끝이 더욱 나뉘었다. 오직 맹가는 자사를 사사하였는데, 자사의 학문은 증자에게서 나왔다. 공자가 죽은 후로부터 유독 맹가씨의 전함이 그 정통성을 얻었다. 그러므로 성인의 도를 관찰하기를 구하는 사람은 반드시 《맹자》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程子曰:“孔子言參也魯,然顔子没後,終得聖人之道者,曽子也。觀其啓手足時之言,可以見矣。所傳者子思、孟子,皆其學也。”
정자가 말했다. "공자는 參이 노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안자가 죽은 후에 끝내 성인의 도를 얻은 사람은 증자이다. 그 수족을 연 때의 말을 보면 볼 수 있을 것이니 전한 것은 자사와 맹자가 모두 그 학문이었다."
問:大是就渾淪處說,博是就該貫處說否?
朱子曰:韓子亦未必有此意,但如此看亦自好。
問學焉而皆得其性之所近。曰:政事者就政事上學得,文學者就文學上學得,德行言語者就德行言語上學得。
〇慶源輔氏曰:韓子但言孔門諸子惟曽子之學獨傳,而有子思、孟軻,然不言其所以獨傳之故,故程子又從而發明之,以為曽子只縁資質魯鈍,故用功於内者深篤確實。觀其啓手足之言,所謂一息尚存,此志不容少懈者,此聖道之所以終傳而有子思、孟子之學也。
〇又曰:揚子雲曰:古者楊墨塞路,孟子辭而闢之,廓如也。夫楊墨行,正道廢,孟子雖賢聖,不得位,空言無施,雖切何補?然賴其言,而今之學者尚知宗孔氏,崇仁義,貴王賤霸而已。其大經大法皆亡滅而不救,壞爛而不收,所謂存十一於千百,安在其能廓如也?然向無孟氏,則皆服左祍而言侏離矣。
또 말했다. "양자운이 말했다. '옛날에 양주(楊朱)와 묵적(墨翟)이 길을 막았는데 맹자가 말하고 물리쳐서 넓혀 놓았다.' 무릇 양주(楊朱)와 묵적(墨翟)이 행해지면 정도가 폐해지니 맹자가 비록 현성이었지만 지위를 얻지 못해서 빈 말로 시행할 수 없었을 것이니 비록 간절한들 무슨 보탬이 있었겠는가. 그러나 그 말을 힘입어서 지금 배우는 사람들이 아직도 공씨를 높이고 인의를 숭상하며 왕도를 귀하게 여기고 패도를 천하게 여겨야 함을 알고 있지만 그 큰 원리와 큰 법칙은 모두 망실되어 구하지 못하고 파괴되어 거두지 못하여 이른바 천과 백에서 십과 일이 남았다고 하니 그 능히 넓혔다는 것이 어디에 있는가. 그러나 지난번에 맹씨가 없었더라면 모두 옷깃을 왼쪽으로 하는 옷과 오랑캐의 말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張存中曰:《後漢·南蠻傳》云:衣裳班闌,語言侏離。侏離,蠻夷語言不分朗之聲也。
左衽 : 옷깃을 왼쪽으로 여미는 오랑캐의 복식
侏離 : 통하지 않는 오랑캐의 말
故愈嘗推尊孟氏,以為功不在禹下者,為此也。
그러므로 나는 일찍이 맹씨를 추존하여 공로가 우(禹)보다 아래에 있지 않다고 여긴 것은 이 때문이다.
新安陳氏曰:自夫楊墨行,至安在其能廓如也,皆是難辭。揚中之抑,只着向無孟氏二句幹轉,而斷之以孟氏功不在禹下,盡之矣。孟子闢楊、墨功不在禹治洪水下者,洪水溺人之身,異端䧟溺人心,心溺之禍甚於身溺故也。
或問於程子曰:孟子還可謂聖人否?程子曰:未敢便道他是聖人,然學已到至處。
혹자가 정자에게 물었다. "맹자도 또한 성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정자가 말했다. "곧 그 사람이 성인이라고 감히 말할 수는 없지만 배움이 이미 성인의 경지에 이르렀다."
愚按:至字,恐當作聖字。
내가 생각하건대 '至' 자는 아마도 마땅히 '聖' 자가 되어야 할 것 같다.
朱子曰:若以孟子比孔子時說得髙,然孟子道性善,言必稱堯舜,又見孟子說得實。
〇慶源輔氏曰:未敢便道他是聖人,以其行處言,學已到聖處,以其知處言也。孟子論大而化之之謂聖,聖而不可知之之謂神,與夫聖智巧力之譬,精宻切當,非想像臆度之所能及,是其學已到聖處也。然其英氣未化,有露圭角處,故未敢便道他是聖人,此其權度審矣。
〇程子又曰:孟子有功於聖門,不可勝言。仲尼只說一箇仁字,孟子開口便說仁義。仲尼只說一箇志,孟子便說許多飬氣出來。只此二字,其功甚多。
정자가 또 말했다. "맹자가 성인의 도에 공로가 있는 것을 모두 다 말할 수 없다. 중니는 단지 仁 한 가지만 말했지만 맹자는 입을 열면 곧 仁과 義를 말했으며, 중니는 단지 志 한 가지만을 말했지만 맹자는 곧 허다하게 養氣를 말했으니 단지 이 두 글자의 공이 심히 많다."
〇又曰:“《孟子》有大功於世,以其言性善也。”
또 말했다. "맹자가 세상에 공로가 큰 것은 본성이 선하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〇又曰:《孟子》性善養氣之論,皆前聖所未發。
또 말했다. "맹자의 性善과 養氣의 이론은 모두 이전의 성인들이 개발하지 못한 것이다."
慶源輔氏曰:言性善,使資質美者聞之,必求復其本然而充其善。資質不美者聞之,亦知所自警而不流於惡。言養氣,使氣質剛柔不齊者勇猛奮發於道義,而無㢲懦怯弱之弊。皆發夫子所未發,其功多蓋在此,此所以有大功於世也。
〇又曰:學者全要識時,若不識時,不足以言學。顔子陋巷自樂,以有孔子在焉。若孟子之時,世既無人,安可不以道自任?
또 말했다. "배우는 사람은 반드시 온전하게 때를 알아야 하니, 만약 때를 알지 못하면 학문을 말하기에 부족하다.
〇又曰:《孟子》有些英氣,才有英氣,便有圭角,英氣甚害事。
또 말했다. "맹자는 영기가 조금 있었는데, 조금이라도 영기가 있으면 곧 규각이 있으니 영기는 일에 아주 해롭다.
新安陳氏曰:英氣甚害事,蓋責賢者備之辭。
如顔子便渾厚不同。顔子去聖人只毫髪間。孟子大賢,亞聖之次也。
그러나 안자는 곧 혼후하여 같지 이와 않으니 안자는 성인과의 거리가 다만 터럭 하나 차이이고, 맹자는 큰 현인이나 아성의 다음이다."
圭角 : 圭의 모서리처럼 말이나 행동이 모가 나서 남들과 잘 융합하지 못하는 것.
渾厚 : 화기 있고 인정이 두터운 것.
或曰:英氣見於甚處?曰:但以孔子之言比之便可見。且如氷與水精非不光,比之玉,自是有温潤含蓄氣象,無許多光耀也。
혹자가 말했다. "영기는 어느 곳에서 볼 수 있습니까?" 대답했다. "다만 공자의 말로써 비교하면 곧 알 수 있다. 또한 마치 얼음과 수정이 빛나지 않는 것은 아닌데 옥에 비교하면 자연히 이것은 따뜻하고 윤택하고 머금고 쌓인 기상이 있고 허다한 광휘가 없는 것과 같다."
覺軒蔡氏曰:聞之程子又曰,仲尼,元氣也。顔子,春生也。孟子,并秋殺盡見。仲尼,無所不包。顔子示不違如愚之學於後世,有自然之和氣,不言而化者也。孟子則露其材,蓋亦時然而已。仲尼,天地也。顔子,和風慶雲。孟子,泰山巖巖之氣象也。觀其言皆可見之矣。仲尼無迹,顔子㣲有迹,孟子其迹著。孔子儘是明快人,顔子儘豈弟,孟子儘雄辨。
〇慶源輔氏曰:英氣是剛明秀發之氣,此自是好底氣質,若消化未盡,猶有圭角,則有時而發。學要變化氣質,須渾然純是義理,如張子所謂‘徳勝於氣,性命於徳,方始是成就處。
又曰:言,心聲也,德之符也。有德者必有言,若就言上看得分明,則其德無餘藴矣。玉有温潤含蓄氣象,所以為寳。人有温潤含蓄氣象,所以為聖也。其理一也。
楊氏曰:《孟子》一書,只是要正人心,敎人存心養性,收其放心。至論仁、義、禮、智,則以惻隠、羞惡、辭讓、是非之心為之端。論邪說之害,則曰生於其心,害於其政。論事君,則曰:格君心之非,一正君而國定。千變萬化,只說從心上來。人能正心,則事無足為者矣。《大學》之脩身、齊家、治國、平天下,其本只是正心、誠意而已。心得其正,然後知性之善。故孟子遇人便道性善。
양씨가 말했다. "《맹자》 한 책은 단지 사람의 마음을 바로잡고자 했으니 사람들로 하여금 마음을 보존하고 본성을 길러서 그 방심을 거두는 것이다. 인의예지를 논함에 이르러서는 곧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으로써 단서를 삼고, 사악한 설의 해를 논함에 있어서는 곧 말하기를 '마음속에서 생겨서 그 정사에 해를 끼친다'고 하였고, 임금을 섬김을 논함에 있어서는 곧 말하기를 '임금의 마음의 잘못됨을 바로잡아야 한다. 한 번 군주를 바로잡으면 나라가 안정될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많은 변화를 단지 심상으로부터 말했다. 사람이 능히 마음을 바로잡을 수 있으면 일은 가히 할 것이 없다. 《대학》의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는 그 근본이 단지 마음을 바르게 하고 뜻에 성실히 하는 것 뿐이니 마음이 그 바름을 얻은 후에야 본성이 선함을 안다. 그러므로 맹자가 사람을 만날 때에는 곧 본성이 선하다고 말했다.
朱子曰:心得其正,然後知性之善,語若有病。蓋知性之善,然後能正其心,心得其正,然後有以真知性之為善而不疑耳。
〇慶源輔氏曰:人能正心,則事無足為者,其語亦失之大快。觀《大學》正心之後,於脩身齊家治國平天下更有工夫在。
歐陽永叔,
그런데 구양영숙(歐陽永叔)은
名脩,廬陵人。
却言,聖人之教人,性非所先,可謂誤矣。人性上不可添一物,堯舜所以為萬世法,亦是率性而已。所謂率性,循天理是也。外邊用計用數,假饒立得功業,只是人欲之私,與聖賢作處,天地懸隔。
도리어 말하기를 '성인이 사람을 가르침에 본성은 먼저 한 것이 아니다.'라고 했으니 잘못되었다고 할 만하다. 사람의 본성 위에는 하나도 더할 수가 없으니 요순이 만세의 법이 된 이유도 역시 본성을 따랐기 때문이다. 이른바 본성을 따른다는 것은 천리를 따르는 것이니 이것이다. 이외에 계책을 쓰고 술수를 쓰면 가령 공업을 세우고 얻는다 하더라도 이것은 단지 인욕의 사사로움이니 성현이 하는 것과는 하늘과 땅 만큼의 현격한 차이가 있다."
假饒 : 假使
慶源輔氏曰:此數句,判斷二帝三王及漢唐以後為治之道所以不同,明白詳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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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3)-1. 魯平公將出。嬖人臧倉者請曰:「他日君出,則必命有司所之。今乘輿已駕矣,有司未知所之。敢請。」公曰:「將見孟子。」曰:「何哉?君所爲輕身以先於匹夫者,以爲賢乎?禮義由賢者出。而孟子之後喪踰前喪。君無見焉!」公曰:「諾。」
노 평공이 장차 외출하려고 하였다. 총애 받는 사람인 장창이라는 사람이 청했다. “다른 날에는 임금께서 외출하시게 되면 반드시 유사에게 가는 곳을 명령하셨습니다. 지금 승여에 이미 말을 매었으나 유사가 아직 가는 곳을 알지 못합니다. 감히 청합니다.” 공이 말했다. “장차 맹자를 보려고 한다.” “어째서입니까? 임금께서 몸을 가볍게 하고서 필부에게 먼저 가는 것은 어질다고 여겨서입니까? 예의는 현자에게서 나옵니다. 그런데 맹자의 뒤 초상은 앞 초상보다 더하였습니다. 임금께서는 만나지 마십시오.” 공이 말했다. “그래야겠다.”
乘輿,君車也。駕,駕馬也。孟子前喪父,後喪母。踰,過也,言其厚母薄父也。諾,應辭也。
乘輿는 군주의 수레이다. 駕는 말에 멍에를 매는 것이다. 맹자는 먼저 아버지를 잃고 뒤에 어머니를 잃었다. 踰는 지나침이니, 어머니에게 후하게 하고 아버지에게 박하게 함을 말함이다. 諾은 응낙하는 말이다.
16(23)-2. 樂正子入見,曰:「君奚爲不見孟軻也?」曰:「或告寡人曰,『孟子之後喪踰前喪』,是以不往見也。」曰:「何哉君所謂踰者?前以士,後以大夫;前以三鼎,而後以五鼎與?」曰:「否。謂棺槨衣衾之美也。」曰:「非所謂踰也,貧富不同也。」
악정자가 들어와 알현하고 말했다. “임금께서는 무슨 이유로 맹가를 보지 아니하셨습니까?” “누군가가 과인에게 맹자의 뒤 초상이 앞 초상보다 더하였다고 말하기에, 이 때문에 보러 가지 않았다.” “임금께서 이른바 더했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앞에는 사의 예로 하고, 뒤에는 대부의 예로 해서입니까? 앞에는 정 세 개를 쓰고 뒤에는 정 다섯 개를 써서입니까?” “아니다. 관곽과 의금의 아름다움을 말한 것이다.” “이른바 더했다는 것이 아니라 빈부의 정도가 같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樂正子,孟子弟子也,仕於魯。三鼎,士祭禮。五鼎,大夫祭禮。
악정자는 맹자의 제자이니, 노나라에서 벼슬하였다. 三鼎은 사가 제사하는 예이다. 五鼎은 대부가 제사하는 예이다.
16(23)-3. 樂正子見孟子,曰:「克告於君,君爲來見也。嬖人有臧倉者沮君,君是以不果來也。」曰:「行或使之,止或尼之。行止,非人所能也。吾之不遇魯侯,天也。臧氏之子焉能使予不遇哉?」
악정자가 맹자를 알현하고 말했다. “제가 임금께 고하니 임금께서 와서 보려고 하셨습니다. 총애 받는 사람 중에 장창이라는 사람이 임금을 저지하였으니, 임금께서 이 때문에 결국 오지 않으신 것입니다.” “가는 것은 누가 시켜서이며 멈추는 것은 누가 막아서이다. 가고 멈추는 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내가 노후를 만나지 못한 것은 천명이다. 장씨의 아들이 어찌 나로 하여금 만나지 못하게 할 수 있었겠는가.”
尼 : 막을 닐
克,樂正子名。沮尼,皆止之之意也。
克은 악정자의 이름이다. 沮와 尼은 모두 멈춘다는 뜻이다.
言人之行,必有人使之者。其止,必有人尼之者。然其所以行所以止,則固有天命,而非此人所能使,亦非此人所能尼也。然則我之不遇,豈臧倉之所能爲哉?
‘사람이 가는 것에는 반드시 시키는 사람이 있으며 그가 멈춤에는 반드시 막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그가 가게 되는 이유와 멈추게 되는 이유는 진실로 천명에 있는 것이니 이 사람이 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또 이 사람이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내가 만나지 못한 것이 어찌 장창이 할 수 있는 것이었겠는가?’라고 말한 것이다.
此章言聖賢之出處,關時運之盛衰。乃天命之所爲,非人力之可及。
이 장은 성현이 나아가고 머무르는 것이 시운의 성쇠와 관련되니 곧 천명이 하는 것이고 사람의 힘이 미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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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2)-1. 滕文公問曰:「滕,小國也。竭力以事大國,則不得免焉。如之何則可?」孟子對曰:「昔者大王居邠,狄人侵之。事之以皮幣,不得免焉;事之以犬馬,不得免焉;事之以珠玉,不得免焉。乃屬其耆老而告之曰:『狄人之所欲者,吾土地也。吾聞之也:君子不以其所以養人者害人。二三子何患乎無君?我將去之。』去邠,踰梁山,邑于岐山之下居焉。邠人曰:『仁人也,不可失也。』從之者如歸市。
등 문공이 물었다. “등나라는 작은 나라입니다. 힘을 다해서 큰 나라를 섬겨도 화를 면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맹자가 대답하였다. “옛날에 태왕이 빈 땅에 거주하실 때에 적인이 침입하였습니다. 모피와 비단으로 그들을 섬겨도 화를 면하지 못하였고, 개와 말로 그들을 섬겨도 화를 면하지 못했으며, 구슬과 옥으로 그들을 섬겨도 화를 면하지 못했습니다. 이에 그 장로들을 모으고 말씀하기를, ‘적인이 원하는 것은 우리들의 토지이다. 내가 들으니 군자는 그 사람을 기르는 것을 가지고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고 하니 그대들은 어찌 임금이 없음을 근심하겠는가. 내가 장차 이곳을 떠나겠다.’라고 하시고 빈 땅을 떠나 양산을 넘어 기산의 아래에 도읍하고서 거주하셨는데, 빈 땅 사람이 말하기를, ‘인한 사람이다. 잃어버릴 수 없다.’라고 하고, 그를 따르는 사람이 마치 시장에 돌아가는 것 같았습니다.
皮,謂虎、豹、麋、鹿之皮也。幣,帛也。屬,會集也。土地本生物以養人,今爭地而殺人,是以其所以養人者害人也。邑,作邑也。歸市,人衆而爭先也。
皮는 호랑이와 표범, 사슴의 가죽을 말한다. 幣는 비단이다. 屬은 모으는 것이다. 토지는 본래 물건을 생산하여 사람을 기르는 것인데, 지금 땅을 다투아 사람을 죽인다면 이것은 사람을 기르는 것을 가지고 사람을 해치는 것이다. 邑은 도읍을 만드는 것이다. 歸市는 사람이 많아서 앞을 다투는 것이다.
15(22)-2. 或曰:『世守也,非身之所能爲也。效死勿去。』
혹자는 말하기를, ‘대대로 지키는 것이어서 자기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목숨을 바치고 떠나지 말라.’라고 합니다.
又言或謂土地乃先人所受而世守之者,非己所能專。但當致死守之,不可舍去。此國君死社稷之常法。傳所謂國滅君死之,正也,正謂此也。
또 “혹자는 ‘토지는 곧 선인이 받아 대대로 지키는 것이어서 자기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다만 마땅히 목숨을 바쳐 지킬 것이며, 버리고 떠나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라고 말한 것이다. 이는 국군이 사직을 위해 죽는 떳떳한 법이니 옛 책에 이른바 ‘나라가 멸망하면 군주가 죽는 것이 올바르다.’라는 것은 바로 이것을 말한다.
15(22)-3. 君請擇於斯二者。」
군주께서는 이 두 가지 중에서 선택하십시오.”
能如大王則避之,不能則謹守常法。蓋遷國以圖存者,權也;守正而俟死者,義也。審己量力,擇而處之可也。
능히 태왕과 같이 할 수 있으면 피하고, 할 수 없다면 떳떳한 법을 삼가 지켜야 한다. 대개 나라를 옮겨 생존을 도모하는 것은 권도이고, 올바름을 지켜 죽기를 기다리는 것은 의이다. 자기를 살피고 힘을 헤아려서 선택하여 처하는 것이 옳다.
權道 : 그때그때의 형편을 따라 일을 처리하는 방도. 임기응변.
楊氏曰:「孟子之於文公,始告之以效死而已,禮之正也。至其甚恐,則以大王之事告之,非得已也。然無大王之德而去,則民或不從而遂至於亡,則又不若效死之爲愈。故又請擇於斯二者。」
양씨가 말했다. “맹자가 문공에게 처음에는 목숨을 바칠 뿐임을 말했으니 예의 올바름이다. 그 심히 두려워함에 이르러서는 태왕의 일로 말했으니 부득이해서였다. 그러나 태왕의 덕이 없으면서 따라간다면 백성이 혹시 따르지 않아서 마침내 멸망에 이르게 되면 또한 목숨을 바침이 나은 것만 못하다. 그러므로 또 이 두 가지 중에서 선택하라고 청한 것이다.”
又曰:「孟子所論,自世俗觀之,則可謂無謀矣。然理之可爲者,不過如此。舍此則必爲儀秦之爲矣。凡事求可,功求成。取必於智謀之末而不循天理之正者,非聖賢之道也。」
또 말했다. “맹자가 논한 것을 세속의 관점에서 보면 무모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치로 할 수 있는 것은 이와 같음에 불과하다. 이것을 버린다면 반드시 장의와 소진의 행위를 할 것이다. 무릇 일은 가능함을 구하고 공은 이룸을 구한다. 지혜와 모략의 지엽에서 기필함을 취하고 천리의 올바름을 따르지 않음은 성현의 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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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1)-1. 滕文公問曰:「齊人將築薛,吾甚恐。如之何則可?」
등 문공이 물었다. “제나라 사람이 장차 설 땅에 성을 쌓으려고 하니 제가 매우 두렵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薛,國名,近滕。齊取其地而城之,故文公以其偪己而恐也。
薛은 나라 이름이니 등나라와 가까웠다. 제나라가 그 땅을 취해서 성을 쌓았으므로 문공이 자기를 핍박한다고 여겨서 두려워한 것이다.
14(21)-2. 孟子對曰:「昔者大王居邠,狄人侵之,去之岐山之下居焉。非擇而取之,不得已也。
맹자가 대답하였다. “옛날에 태왕이 빈 땅에 거주하실 때에 적인이 침입하자, 떠나시고 기산의 아래로 가서 거주하셨습니다. 이곳을 가려서 취한 것이 아니라 부득이해서였습니다.
邠,地名。
邠은 땅 이름이다.
言大王非以岐下爲善,擇取而居之也。詳見下章。
태왕이 기산 아래를 좋게 여겨 선택하여 취해서 거주한 것이 아님을 말한 것이다. 아래 장에 자세히 보인다.
14(21)-3. 苟爲善,後世子孫必有王者矣。君子創業垂統,爲可繼也。若夫成功,則天也。君如彼何哉?彊爲善而已矣。」
만일 선을 행한다면, 후세 자손들 중에 반드시 왕 노릇 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군자는 기업을 창건하고 전통을 드리워서 계속할 수 있도록 합니다. 성공으로 말한다면 천운이니 군주께서 저들을 어찌하겠습니까. 선을 행하기를 힘쓸 뿐입니다.”
創,造。統,緒也。
創은 창조이다. 統은 실마리이다.
言能爲善,則如大王雖失其地,而其後世遂有天下,乃天理也。然君子造基業於前,而垂統緒於後,但能不失其正,令後世可繼續而行耳。若夫成功,則豈可必乎?彼齊也,君之力旣無如之何,則但彊於爲善,使其可繼而俟命於天耳。
‘능히 선을 행한다면 태왕과 같이 비록 그 땅을 잃더라도 그 후세에 마침내 천하를 소유하였으니 곧 천리이다. 그러나 군자는 앞에서 기업을 만들고 나중에 전통을 드리우되 다만 그 올바름을 잃지 않아 후세로 하여금 계속하여 행할 수 있도록 할 뿐이다. 성공으로 말한다면 어찌 기필할 수 있겠는가. 저 제나라를 군주의 힘이 이미 어떻게 할 수 없다면 다만 선을 행하기를 힘써서 그것으로 하여금 계속할 수 있게 하고 하늘에 명을 기다릴 뿐이다.’라고 말한 것이다.
此章言人君但當竭力於其所當爲,不可徼幸於其所難必。
이 장은 인군은 다만 당연히 해야 할 것에 응당 힘을 다할 것이고 기필하기 어려운 것에 요행을 바라서는 안 됨을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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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0)-1. 滕文公問曰:「滕,小國也,間於齊楚。事齊乎?事楚乎?」
등 문공이 물었다. “등나라는 작은 나라이고, 제나라와 초나라 사이에 있습니다. 제나라를 섬겨야 합니까, 초나라를 섬겨야 합니까?”
滕,國名。
滕은 나라 이름이다.
13(20)-2. 孟子對曰:「是謀非吾所能及也。無已,則有一焉:鑿斯池也,築斯城也,與民守之,效死而民弗去,則是可爲也。」
맹자가 대답하였다. “이 계책은 제가 능히 미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기어이 말하라고 하신다면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이 연못(해자)을 파고, 이 성을 쌓고, 백성들과 더불어 지켜서 목숨을 바치고 백성들이 떠나가지 않는다면 이것은 해볼 만합니다.”
無已見前篇。一,謂一說也。效,猶致也。
無已는 앞 편에 보인다. 一은 한 가지 방법을 말한다. 效는 致(바치다)와 같다.
國君死社稷,故致死以守國。至於民亦爲之死守而不去,則非有以深得其心者不能也。
국군은 사직을 위해 죽어야 하므로 목숨을 바쳐 나라를 지키는 것이다. 백성들이 또한 국군을 위해서 죽음으로 지키고 떠나지 않음에 이르는 것은 그 마음을 깊이 얻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불가능하다.
此章言有國者當守義而愛民,不可僥倖而苟免。
이 장은 국가를 소유한 사람은 마땅히 의를 지켜 백성을 사랑해야 하고 요행을 바라 구차하게 면하려고 해서는 안 됨을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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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1. 鄒與魯鬨。穆公問曰:「吾有司死者三十三人,而民莫之死也。誅之,則不可勝誅;不誅,則疾視其長上之死而不救,如之何則可也?」
추나라와 노나라가 전쟁하였다. 목공이 물었다. “나의 유사 중 죽은 사람이 서른 세 명이지만 백성들 중에서 죽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들을 처벌하자면 이루 다 처벌할 수 없고, 처벌하지 않는다면 그 장상들의 죽음을 질시하여 구하지 않을 것이니,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鬨 : 싸울 홍
鬨,鬪聲也。穆公,鄒君也。不可勝誅,言人衆不可盡誅也。長上,謂有司也。民怨其上,故疾視其死而不救也。
鬨은 싸우는 소리이다. 穆公은 추나라 군주이다. 不可勝誅는 사람이 많아 다 처벌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長上은 유사를 말한다. 백성이 그 윗사람을 원망하므로 그가 죽음을 질시하여 구하지 않는 것이다.
12(19)-2. 孟子對曰:「凶年饑歲,君之民老弱轉乎溝壑,壯者散而之四方者,幾千人矣;而君之倉廩實,府庫充,有司莫以告,是上慢而殘下也。曾子曰:『戒之戒之!出乎爾者,反乎爾者也。』夫民今而後得反之也。君無尤焉。
맹자가 대답하였다. “흉년과 기근이 든 해에 군주의 백성들 중 노약자들은 구학에 뒹굴고, 장성한 사람은 흩어져서 사방으로 간 사람이 수천 명입니다. 그러나 군주의 창름은 가득 차 있으며, 부고는 충만하였는데도 유사들 중 이것을 아뢴 사람이 없으니 이는 윗사람이 태만해서 아랫사람에게 잔혹하게 대한 것입니다. 증자께서 말하기를, ‘경계할지어다, 경계할지어다. 너에게서 나온 것이 너에게로 돌아간다.’라고 하셨습니다. 저 백성들이 지금에야 되갚을 수 있었던 것이니 군주께서는 허물하지 마십시오.
轉,飢餓輾轉而死也。充,滿也。上,謂君及有司也。尤,過也。
轉은 굶주려 전전하다가 죽는 것이다. 充은 가득 참이다. 上은 군주 및 유사들을 말한다. 尤는 허물이다.
12(19)-3. 君行仁政,斯民親其上、死其長矣。」
군주께서 인한 정사를 행하시면 이 백성들이 그 윗사람을 사랑해서 그 어른을 위해 죽을 것입니다.”
君不仁而求富,是以有司知重斂而不知恤民。故君行仁政,則有司皆愛其民,而民亦愛之矣。
군주가 인하지 않아 부유하기를 구하니, 이 때문에 유사들이 무겁게 거둘 줄만 알지 백성을 구휼할 줄을 알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임금이 인한 정사를 행한다면 유사들이 모두 그 백성들을 사랑하고 백성들 또한 그들을 사랑할 것이다.
范氏曰:「書曰:『民惟邦本,本固邦寧。』有倉廩府庫,所以爲民也。豐年則斂之,凶年則散之,恤其飢寒,救其疾苦。是以民親愛其上,有危難則赴救之,如子弟之衛父兄,手足之捍頭目也。穆公不能反己,猶欲歸罪於民,豈不誤哉?」
범씨가 말했다. “『서경』에 이르기를, ‘백성은 나라의 뿌리이니 뿌리가 견고해야 나라가 편안해진다.’라고 하였다. 창름과 부고가 있는 것은 백성을 위해서이다. 풍년이 들면 거두고 흉년이 들면 흩어서 그 굶주림과 추위를 구휼하고 그 병들고 고생하는 사람들을 구제한다. 이 때문에 백성들이 그 윗사람을 친애해서 위난이 있으면 나아가 구하기를 마치 자제들이 부형을 지키는 것 같이 하고 손과 발이 머리와 눈을 막는 것 같이 할 것이다. 목공이 자기에게 돌이키지 못하고 오히려 백성에게 죄를 돌리고자 하였으니 어찌 잘못된 것이 아니겠는가.”
捍 : 막을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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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8)-1. 齊人伐燕,取之。諸侯將謀救燕。宣王曰:「諸侯多謀伐寡人者,何以待之?」孟子對曰:「臣聞七十里爲政於天下者,湯是也。未聞以千里畏人者也。
제나라 사람이 연나라를 정벌하여 취하였다. 제후들이 장차 모의하여 연나라를 구원하려고 하였다. 선왕이 말했다. “제후들 중 과인을 정벌하려고 도모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어떻게 이들을 대해야 합니까?” 맹자가 대답하였다. “제가 듣기로 70리를 가지고 천하에 정사를 한 사람은 탕왕이 바로 이 사람입니다. 천 리를 가지고 다른 사람을 두려워한 사람을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千里畏人,指齊王也。
천 리를 가지고 다른 사람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제나라 왕을 가리킨 것이다.
11(18)-2. 書曰:『湯一征,自葛始。天下信之。東面而征,西夷怨;南面而征,北狄怨。曰,奚爲後我?民望之,若大旱之望雲霓也。歸市者不止,耕者不變。誅其君而弔其民,若時雨降,民大悅。』書曰:『徯我后,后來其蘇。』
『서경』에 이르기를, ‘탕왕이 첫 번째 정벌을 갈나라로부터 시작하셨다. 천하가 그것을 믿었다. 동쪽으로 향하여 정벌하면 서이가 원망하고, 남쪽으로 향하여 정벌하면 북적이 원망하여 말하기를, 「어찌 우리를 나중으로 하는가?」라 하였다. 백성들이 그것을 바라기를 마치 큰 가뭄에 구름과 무지개를 바라는 것 같이 하였다. 시장으로 돌아가는 사람이 그치지 않고, 밭가는 사람이 움직이지 않자, 그 군주를 주살하고 그 백성을 위문하기를 마치 때에 맞추어 비가 내리는 것 같이 하니, 백성이 크게 기뻐하였다.’라고 하였습니다. 『서경』에 이르기를, ‘우리 임금을 기다리니, 임금이 오시면 소생하리라.’라고 하였습니다.
兩引書,皆商書仲虺之誥文也。與今書文亦小異。一征,初征也。天下信之,信其志在救民,不爲暴也。奚爲後我,言湯何爲不先來征我之國也。霓,虹也,雲合則雨,虹見則止。變,動也。徯,待也。后,君也。蘇,復生也。
두 번 『서경』을 인용한 것은 모두 『상서』 「중훼지고」의 글이다. 지금 『서경』의 글과는 또한 조금 다르다. 一征은 첫 번째 정벌이다. 天下信之는 그 뜻이 백성을 구하는 데 있고 포학한 일을 하지 않을 것을 믿은 것이다. 奚爲後我는 탕이 어찌하여 먼저 와서 우리의 나라를 정벌하지 않느냐고 말한 것이다. 霓는 무지개이니, 구름이 모이면 비가 내리고 무지개가 보이면 그친다. 變은 움직임이다. 徯는 기다림이다. 后는 임금이다. 蘇는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他國之民,皆以湯爲我君,而待其來,使己得蘇息也。此言湯之所以七十里而爲政於天下也。
다른 나라의 백성이 모두 탕을 우리의 임금으로 여겨서 그가 와서 자기들로 하여금 소생할 수 있게 하기를 기다린 것이다. 이는 탕이 70리를 가지고 천하에 정사를 한 까닭을 말한 것이다.
11(18)-3. 今燕虐其民,王往而征之,民以爲將拯己於水火之中也,簞食壺漿,以迎王師。若殺其父兄,係累其子弟,毁其宗廟,遷其重器,如之何其可也?天下固畏齊之彊也,今又倍地而不行仁政,是動天下之兵也。
지금 연나라가 그 백성들을 학대하니, 왕께서 가서 정벌하시니, 백성들이 장차 자기들을 물과 불 가운데에서 건져 낼 것이라고 여겨 대바구니에 밥을 담고 항아리에 장을 담아서 왕의 군대를 맞이하였습니다. 만약 그 부형을 죽이고 그 자제들을 구속하며 그 종묘를 깨부수고 그 중요한 기물들을 옮겨 온다면 어떻게 그것이 가능하겠습니까? 천하가 진실로 제나라의 강함을 두려워하는데, 지금 또 땅을 배로 하고 인한 정사를 행하지 않는다면 이는 천하의 병사를 움직이게 하는 것입니다.
拯,救也。係累,縶縛也。重器,寶器也。畏,忌也。倍地,并燕而增一倍之地也。
拯은 구원함이다. 係累는 묶는 것이다. 重器는 귀중한 그릇이다. 畏는 꺼리는 것이다. 倍地는 연나라를 병합하여 한 배의 땅을 더하는 것이다.
齊之取燕,若能如湯之征葛,則燕人悅之,而齊可爲政於天下矣。今乃不行仁政而肆爲殘虐,則無以慰燕民之望,而服諸侯之心,是以不免乎以千里而畏人也。
제나라가 연나라를 취하기를 만약 탕이 갈나라를 정벌하는 것 같이 할 수 있었더라면 연나라 사람들이 기뻐하여 제나라가 천하에 정사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 인한 정사를 하지 않고 함부로 잔학한 일을 하였으니 그렇다면 연나라 백성들의 소망을 위안하고 제후들의 마음을 복종시킬 수 없으니 이 때문에 천 리를 가지고도 다른 사람을 두려워함을 면하지 못하는 것이다.
11(18)-4. 王速出令,反其旄倪,止其重器,謀於燕衆,置君而後去之,則猶可及止也。」
왕께서 속히 명령을 내려서 그 노인과 어린이를 돌려보내고 그 중요한 기물을 옮겨 오는 것을 중지하고 연나라 민중들과 모의하여 군주를 세운 뒤에 떠난다면 오히려 미리 전쟁을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反,還也。旄,老人也,倪,小兒也,謂所虜略之老小也。猶,尚也。及止,及其未發而止之也。
反은 돌려보내는 것이다. 旄는 노인이고 倪는 어린이이니, 노략질한 노인과 어린이를 이른다. 猶는 오히려이다. 及止는 전쟁이 아직 시작하지 않은 때에 그것(전쟁)을 중지하는 것이다.
范氏曰「孟子事齊梁之君,論道德則必稱堯舜,論征伐則必稱湯武。蓋治民不法堯舜,則是爲暴;行師不法湯武,則是爲亂。豈可謂吾君不能,而舍所學以徇之哉?」
범씨가 말했다. “맹자가 제나라와 양나라의 군주를 섬길 때에 도덕을 논하면 반드시 요와 순을 칭하고, 정벌을 논하면 반드시 탕과 무왕을 칭했다. 대개 백성을 다스림에 요와 순을 본받지 않으면 이것은 포악함이 되고, 군사를 출동시킴에 탕과 무왕을 본받지 않는다면 이것은 난이 된다. 어찌 우리 군주가 불가능하다고 여겨 배운 바를 버리고 그것(군주의 욕망)을 따를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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