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본>
여기서 저본으로 한 텍스트는 ctext에 올라온 텍스트를 기반으로 하며, 사부총간본, 宛委別藏本 『공총자주(孔叢子注)』, 사고전서 문연각본을 참고하여 교정하였다.
<해제>
송함(宋咸)의 주에, 이 책의 차례는 '공자(孔丘), 자사(孔伋), 자상(孔白), 자고(孔穿), 자순(孔謙)의 말을 선후로 편차한 것이다. 가언(嘉言)이라고 편을 이름한 것은, 부자가 응답한 것의 좋은 말을 취한 것이다. (是書之第,以孔子、子思、子上、子高、子順之言爲之先後。以嘉言名篇者,取夫子應答之善言爾。)'라고 하였다. 이 편은 공자의 일화를 중심으로 엮여 있다.
1장
夫子適周,見萇弘,言終,退。萇弘語劉文公,曰:「吾觀孔仲尼有聖人之表。河目而隆顙,黃帝之形貌也。脩肱而龜背,長九尺有六寸,成湯之容體也。然言稱先王,躬履廉讓,洽聞強記,博物不窮,抑亦聖人之興者乎?」劉子曰:「方今周室衰微而諸侯力爭,孔丘布衣,聖將安施?」萇弘曰:「堯舜文武之道,或弛而墜,禮樂崩喪,其亦正其統紀而已矣。」既而夫子聞之,曰:「吾豈敢哉!亦好禮樂者也。」
부자(공자)가 주나라에 갔다가 장홍을 만났는데, 말을 마치고 물러났다. 장홍이 유문공에게 말했다. "나는 공중니에게서 성인의 용모를 보았습니다. 반듯한 눈에 솟은 이마는 황제의 얼굴입니다. 긴 팔에 거북 등처럼 등골이 높아 길이가 아홉 척하고도 여섯 촌인 것은 성탕의 몸입니다. 말마다 선왕을 일컫고, 몸으로는 겸양을 실천하고 많이 듣고 잘 기억하며, 사물을 널리 알아 궁한 것이 없으니, 또한 성인이 일어난 것이 아니겠습니까?" 유자가 말했다. "지금 주나라 왕실이 쇠하고 제후들이 힘써 다투는데, 공구는 벼슬이 없으니 성인을 장차 어디에 쓰겠습니까?" 장홍이 말했다. "요임금과 순임금, 문왕과 무왕의 도가 혹 느슨하여져서 떨어지고, 예악이 무너지더라도, 그는 통기(統紀)를 바르게 할 수 있습니다." 곧 부자가 듣고 말했다. "내가 어찌 감히 그렇게 하겠는가! 나는 예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2장
陳惠公大城,因起凌陽之臺,未終而坐法死者數十人。又執三監吏,將殺之1)。夫子適陳,聞之,見陳侯,與俱登臺而觀焉。夫子曰:「美哉,斯臺!自古聖王之為城臺,未有不戮一人而能致功若此者也。」陳侯默而退,遽竊赦所執吏。既而見夫子,問曰:「昔周作靈臺,亦戮人乎?」答曰:「文王之興,附者六州2)。六州之眾,各以子道來,故區區之臺,未及期日而已成矣3)。何戮之有乎?夫以少少之眾,能立大大之功,唯君爾。」
진혜공이 크게 성을 쌓으려고 능양의 대를 일으켰는데, 공사가 끝나기도 전에 법에 걸려 죽은 사람이 수십 명이었다. 또 세 감리(대를 일으키는 것을 감독하는 관리)를 잡아서 장차 죽이려고 하였다. 부자가 진나라를 지나가면서 그 일을 듣고, 진후를 알현하였는데, 함께 대에 올라가 관람하였다. 부자가 말했다. "이 대가 아름답군요! 자고로 성왕이 성과 대를 지을 때에는 한 사람도 죽이지 않고도 이와 같이 공을 이룬 사람이 있지 않았습니다." 진후가 묵묵히 물러나서, 갑자기 잡은 관리를 몰래 사면하였다. 곧 부자를 알현하고, 물었다. "옛날에 주나라가 영대를 지을 때에도 사람을 죽였습니까?" 답하였다. "문왕이 흥기할 때에 귀부한 것이 여섯 주입니다. 여섯 주의 사람들이 각자 자식된 도리로 왔으므로 보잘것없는 대가 기일에 이르지도 않았는데 이미 이루어진 것입니다. 죽일 필요가 뭐 있었겠습니까? 작고 작은 사람들로 크고 큰 공을 세울 수 있는 사람은 임금 뿐입니다."
1) 江蘇古籍出版社에서 나온 宛委別藏本 『공총자주(孔叢子注)』와 문연각본 『공총자(孔叢子)』에는 '將殺之' 세 자가 없고, 사부총간본에는 있다. 우선 남겨 둔다.
1) 附者六州: 상나라 말에 문왕이 천하의 삼분의 이를 차지하는 형국이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송함(宋咸)의 『공총자주(孔叢子注)』에 따르면 이 여섯 주는 옹주(雍州), 양주(梁州), 형주(荊州), 예주(豫州), 서주(徐州), 양주(揚州)이다. 나머지 기주(冀州), 청주(青州), 연주(兗州)는 주왕에게 속했다고 한다.
2) 『시경(詩經)』 「영대(靈臺)」 편에, '영대를 짓기 시작하매, 헤아리고 측량하였다. 서민이 와서 공사하여, 하루도 안 되어 이루었네. 빨리 하지 말라고 하였으나, 서민이 자식의 도리로써 왔도다.(經始靈臺,經之營之。庶民攻之,不日成之。經始勿亟,庶民子來。)'라고 하였다.
3장
子張曰:「女子必漸乎二十而後嫁1),何也?」孔子曰:「十五許嫁而後從夫,是陽動而陰應,男唱而女隨之義也。以為紡績2)、組紃、織紝者,女子之所有事也,黼黻、文章之美,婦人之所有大功也。必十五以往,漸乎二十,然後可以通乎此事。通乎此事,然後乃能上以孝於舅姑,下以事夫養子也。」
자장이 말했다. "여자가 반드시 스무 살까지 자란 이후에 시집가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공자가 말했다. "열다섯에는 시집 가는 것을 허락받은 뒤에 남편을 따르니, 이는 양이 움직여 음이 응한 것이고, 남자가 부르면 여자가 따르는 의리이다. 실을 만들고 끈을 짜며 옷감을 만드는 것은 여자의 일이며, 보불(치마에 놓은 도끼와 亞자 모양의 자수)과 문장의 아름다움은 부인의 큰 공이다. 반드시 열다섯에 가지만, 스무 살까지 자란 이후에 이 일에 통달할 수 있다. 이 일에 통달한 다음에, 위로는 시부모에게 효도할 수 있고 아래로는 지아비를 섬기고 자식을 기를 수 있다."
紃: 끈 순 紝: 길쌈 임 黼: 수 보 黻: 수 불
이 장은 『공자가어(孔子家語)』 26편 「본명해(本命解)」에 노애공과 공자의 대화로 수록되어 있다.
1) 『예기(禮記)』 「내칙(內則)」에 '여자는 열다섯에 변례를 하고, 스물에 시집간다.((女子)十有五年,而笄二十而嫁。)'고 하였다.
2) 문연각본 『공총자(孔叢子)』와 宛委別藏本 『공총자주(孔叢子注)』에는 紡績이 繢(수놓을 궤)로 되어 있다. 우선 사부총간본을 따른다.
4장
宰我使于齊而反,見夫子,曰:「梁丘據1)遇虺毒,三旬而後瘳。朝齊君,會大夫2),眾賓而慶焉。弟子與在賓列。大夫眾賓並復獻攻療之方。弟子謂之曰:『夫所以獻方,將為病也。今梁丘子已瘳矣,而諸夫子乃復獻方,方將安施?意欲梁丘大夫復有虺害當用之乎?』眾坐默然無辭。弟子此言何如?」夫子曰:「汝說非也。夫三折肱為良醫。梁丘子遇虺毒而獲瘳,諸有與之同疾者必問所以已之之方焉。眾人為此故,各言其方,欲售之以已人之疾也。凡言其方者,稱其良也。且以參據所以已之之方優劣耳。」
재아가 제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와서 부자를 뵙고 말하였다. "양구거가 독사의 독에 중독되었는데, 삼십 일 후에 나았습니다. 제나라 임금을 조회하고, 대부들과도 만나서 여러 빈객이 축하였습니다. 제자도 더불어 빈객의 대열에 있었습니다. 대부들과 여러 빈객이 다시 치료의 방법을 아뢰었습니다. 제자가 말했습니다. 「무릇 치료법을 아뢰는 것은 병이 나려고 할 때입니다. 지금 양구자는 이미 나았는데, 여러 선생님께서 다시 치료법을 아뢰시니, 장차 어디에 쓰겠습니까? 생각컨대 양구씨 대부께서 다시금 독사의 해가 있어서 그 때 쓰시기를 바라는 것입니까?」 무리가 앉아서 묵묵히 말이 없었습니다. 제자의 이 말이 어떠합니까?" 부자가 말했다. "너의 말이 그르다. 대저 팔이 세 번 부러져 보아야 좋은 의사가 된다. 양구자는 독사의 독에 중독되어 나음을 얻었으니, 여러 사람 중에 그와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반드시 나은 방법을 물은 것이다. 여러 사람이 이 때문에 각자 그 처방을 말한 것이니, 사람의 병을 낫게 하는 것을 팔려고 한 것이다. 무릇 그 처방을 말하는 사람은 그 좋은 것을 칭한다. 또한 나은 방법의 우열을 검증하는 것이다."
攻療: 치료하다 虺: 살무사 훼 已: 병 나을 이 參據: 검증하다
1) 梁丘據: 제나라 대부 자유(子猶)이다.
2) 문연각본 『공총자(孔叢子)』와 宛委別藏本 『공총자주(孔叢子注)』에는 會大夫 앞에 齊君이 더 붙어 있다. 우선 사부총간본을 따른다.
5장
夫子適齊,晏子就其館。既宴而私焉1),曰:「齊其危矣!譬若載無轄之車,以臨千仞之谷,其不顚覆亦難冀也。子,吾心也。子以齊為游息之館,當或可救。子幸不吾隱也。」夫子曰:「夫死病不可為醫。夫政令者,人君之銜轡,所以制下也。今齊君失之已久矣。子雖欲挾其輈而扶其輪,良弗及也。抑猶可以終齊君及子之身,過此以往,齊其田氏矣。」
부자가 제나라에 갔을 때, 안자가 그 집에 나아왔다. 연회를 마치고 사사로이 있을 때에 말했다. "제나라는 위태로울 것입니다. 비유하자면 비녀장이 없는 수레를 타고 천 길의 골짜기에 임하면, 그것이 전복되지 않는 것은 바라기 어렵습니다. 그대는 내 마음입니다. 그대가 제나라를 쉬는 곳으로 삼으셨으니, 혹시 구해 주실 수 없겠습니까. 그대는 바라건대 나에게 숨기지 마십시오." 부자가 말했다. "죽는 병은 고칠 수 없습니다. 대저 정사와 명령은 임금의 재갈과 고삐라, 아랫사람들을 제어하는 것입니다. 지금 제나라 임금은 그것을 잃어버린 지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그대가 비록 끌채를 끼고 그 바퀴를 붙들려고 하지만, 진실로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또 오히려 종신토록 제나라 군주와 자손의 몸을 섬길 수 있겠습니다마는, 여기서 더 나아가면 제나라는 전씨의 것이 될 것입니다."
1) 문연각본 『공총자(孔叢子)』와 宛委別藏本 『공총자주(孔叢子注)』에는 而가 其로 되어 있다.
6장
齊東郭亥1)欲攻田氏,執贄見夫子而訪焉。夫子曰:「子為義也,丘不足與計事。」揖子貢使答之。子貢謂之曰:「今子,士也,位卑而圖大。位卑則人不附也2),圖大則人憚之,殆非子之任也。盍姑已乎。夫以一縷之任繫千鈞之重,上懸之於無極之高,下垂之於不測之深。旁人皆哀其絕,而造之者不知其危,子之謂乎。馬方駭,鼓而驚之;繫方絕,重而塡3)之。馬奔車覆,六轡不禁;繫絕於高,墜入於深,其危必矣。」東郭亥色戰而跪,曰:「吾已矣。願子無言。」既而夫子告子貢,曰:「東郭亥欲為義者也。子亦告之以難易則可矣。奚至懼之哉。」
제나라 동곽해가 전씨를 공격하려고 하여, 예물을 잡고 부자를 알현하여 논의하였다. 부자가 말했다. "그대는 정의를 행하시오. 나는 더불어 일을 계획하기에 부족하오." (동곽해가) 자공에게 읍하고 나서 대답하게 하였다. 자공이 말했다. "지금 그대는 사라서 자리는 낮고 계획은 큽니다. 자리가 낮다면 사람들이 귀부하지 않고, 계획이 크다면 사람들이 꺼립니다. 아마도 그대의 소임이 아닐 듯합니다. 어찌 일단 그만두지 않으시는지요. 한 가닥 실오라기에 천 균의 짐을 묶어서 위로는 끝없이 높은 곳에 매달아 놓고 아래로 잴 수 없이 깊은 곳에 드리워 놓는다면, 곁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그것이 끊어질까 걱정하지만 그것을 하는 사람은 그것이 위태로운지 알지 못하니, 그대를 말하는 듯합니다. 말이 놀랐는데 북을 쳐서 경기를 일으키고, 매어둔 것이 끊어지려 하는데 무거운 것으로 누르는 것입니다. 말이 막 달리면 수레가 엎어지니 여섯 고삐로도 막을 수 없으며, 매어둔 것이 높은 곳에서 끊어지면 깊은 곳으로 떨어질 것이니 반드시 위태로울 것입니다." 동곽해가 두려워하는 얼굴빛을 하고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저는 그만두겠습니다. 그대가 말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윽고 부자가 자공에게 말했다. "동곽해는 의로운 것을 하고자 한 것이다. 그대는 어렵고 쉬운 것으로써 고해 주었으면 되었다. 어찌 두려워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하였느냐?"
1)東郭亥: 제나라의 공족인 東郭氏의 일족으로 보이나 자세한 것은 미상이다. 송함(宋咸)의 『공총자주(孔叢子注)』에 따르면 동곽고(東郭賈)의 일족으로 감지(闞止)의 편당이라 하였는데, 노애공 14년(기원전 481), 감지는 진성자(陳成子)와 정권을 다투다 진성자에게 살해당했고, 동곽고는 진성자에 의해 살해당할 뻔했으나 위(衛)로 출분하였다. 동곽해는 이 사건에 대해서 전씨(곧 진씨)에게 악감정을 품었고, 이에 복수할 계획을 세웠다. 전씨는 진성자(陳成子) 항(恒)을 가리키는 듯하다.
2) 문연각본 『공총자(孔叢子)』와 宛委別藏本 『공총자주(孔叢子注)』에는 位卑로 되어 있고, 사부총간본에는 그냥 卑로만 되어 있다. 문연각본을 따른다.
3)塡: 매승(枚乘)이 「상서간오왕(上書諫吳王)」에서는 이 장의 내용을 변형해서 인용했는데, 그곳에서는 塡을 鎭으로 썼다. 송함은 주석에서 '떨어진다(塡, 猶墜也.)'라는 뜻이라고 하였다.
7장
宰我問:「君子尚辭乎?」孔子曰:「君子以理為尚。博而不要,非所察也;繁辭富說,非所聽也。唯知者不失理。」
재아가 물었다. "군자는 말을 숭상합니까?" 공자가 말했다. "군자는 이치를 숭상한다. 넓지만 요약되지 않았으면 살필 바가 아니다. 말이 번다하고 설이 많으면 들을 바가 아니다. 오직 지혜로운 자는 이치를 잃지 않을 뿐이다."
孔子曰:「吾於予,取其言之近類也;於賜,取其言之切事也。近類則足以喩之,切事則足以懼之。1)」
공자가 말했다. "내가 여(재아)에 대해서는 그 말 중 조리 있는 것을 취하고, 사(자공)에 대해서는 그 말 중 일에 간절한 것을 취한다. 조리 있는 것에 가까우면 비유하기에 족하고, 일에 간절하면 두려워하기에 족하다."
1) 孔子曰이 겹쳐 나왔지만 孔子曰을 연문으로 보지 않고 6장과 7장의 전반부를 개괄하는 말로 보아 절을 나누었다. 송함은 喩를 비흥(比興)하는 말이라고 하였고, 懼를 강직한 간언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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