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에 해당되는 글 118건
- 2023.06.16 :: 2. 논서(論書) 편 2
<저본>
여기서 저본으로 한 텍스트는 ctext에 올라온 텍스트를 기반으로 하며, 사부총간본, 宛委別藏本 『공총자주(孔叢子注)』, 사고전서 문연각본을 참고하여 교정하였다.
<해제>
「논서(論書)」 편은 『서경(書經)』의 여러 구절들에 대해서 공자와 여러 사람들이 묻고 답한 것을 기록한 것이다.
1장
子張問曰:「聖人受命,必受諸天,而《書》云『受終于文祖1)』,何也?」孔子曰:「受命於天者,湯武是也,受命於人者、舜禹是也。夫不讀《詩》、《書》、《易》、《春秋》,則不知聖人之心,又無以別堯舜之禪、湯武之伐也。」
자장이 물었다. "성인이 명을 받을 때에 반드시 하늘로부터 받았는데, 『서경』에 이르기를, '문조로부터 제위를 물려받았다.'라고 하니 어째서입니까?" 공자가 말했다. "하늘로부터 명을 받은 사람은 탕왕과 무왕이 이 사람이며, 다른 사람으로부터 명을 받은 사람은 순임금과 우임금이 이 사람이다. 무릇 『시경』, 『서경』, 『역경』, 『춘추』를 읽지 않으면 성인의 마음을 알지 못하고, 또 요임금과 순임금의 선양과 탕왕과 무왕의 정벌을 구별할 수 없다."
1)受終于文祖: 『서경』 「순전(舜典)」에 나오는 말이다. 文祖에 대해서는 설이 많다. 후한의 경학자 마융(馬融)은 이를 하늘로 여겼고, 공안국(孔安國)은 이를 요임금의 문덕(文德)이 있는 조묘(祖廟), 송의 경학자 왕염(王炎은 요임금에게 천하를 준 사람, 채침(蔡沈)은 요의 시조의 사당인데 어떤 사람을 가리킨 것인지 알지 못하겠다고 하였다.
2장
子張問曰:「禮,丈夫三十而室。昔者1),舜三十徵庸2),而《書》云:『有鰥在下曰虞舜3)』,何謂也?曩者4),師聞諸夫子曰:『聖人在上,君子在位,則內無怨女,外無曠夫。』堯為天子而有鰥在下,何也?」孔子曰:「夫男子二十而冠,冠而後娶,古今通義也。舜父頑母嚚,莫能圖室家之端焉5)。故逮三十而謂之鰥也。《詩》云:『娶妻如之何?必告父母。6)』父母在,則宜圖婚。若已歿,則己之娶,必告其廟。今舜之鰥,乃父母之頑嚚也,雖堯為天子,其如舜何?」
자장이 물었다. "예에 장부는 서른이 되어서야 장가간다고 합니다. 옛날에 순은 서른이 되어서야 등용되었다 하고, 『서경』에 이르기를, '홀아비가 낮은 지위에 있으니 이름을 우순(虞舜)이라 합니다.'라고 하였으니 무엇을 이른 것입니까? 접때에 제가 선생님께 듣기로는 '성인께서 윗자리에 계시고 군자가 자리에 있으면, 안으로는 결혼하지 못한 여자가 없으며 밖으로는 결혼하지 못한 남자가 없다,'라고 하셨는데, 요임금께서 천자가 되셔서 홀아비가 낮은 지위에 있었으니 어째서입니까? 공자가 말했다. "무릇 남자는 스무 살에 관례를 행하고, 관례를 행한 이후에 장가를 드는데, 고금의 통의(通義)이다. 순의 아버지는 완악하고 어머니는 어리석어서, 장가들기를 계획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그러므로 서른에 이르러서 홀아비라고 불린 것이다. 『시경』에 이르기를, '아내 취하기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반드시 부모에게 고해야 하리.'라고 하였으니, 부모가 계시면, 마땅히 (부모와) 혼인을 계획하는 것이다. 만약 이미 돌아가셨으면, 자기가 장가들 때는 반드시 사당에 고한다. 지금 순의 홀아비 됨은 곧 부모의 완악함과 어리석음 때문이니, 비록 요임금께서 천자가 되셨어도 순을 어찌할 수 있으셨겠는가?"
1) 문연각본 『공총자(孔叢子)』와 宛委別藏本 『공총자주(孔叢子注)』에는 昔 뒤에 者가 있다. 문연각본을 따른다.
2) 舜三十徵庸: 『서경』 「순전(舜典)」에 '순은 태어나고 서른이 되어서야 부름을 받아 등용되었고, 삼십년 동안 신하의 자리에 있었다.(舜生三十徵庸,三十在位。)'라고 하였다. 채침은 位를 제위로 보았다.
3) 有鰥在下曰虞舜: 『서경』 「요전(舜典)」에 보인다. 요임금이 늙어서 양위할 사람을 찾을 때, 여러 사람들이 요임금에게 순을 추천하였는데, 그 때 한 말이다.
4) 문연각본 『공총자(孔叢子)』와 宛委別藏本 『공총자주(孔叢子注)』에는 曩 뒤에 者가 없다. 사부총간본을 따른다.
5) 문연각본 『공총자(孔叢子)』와 宛委別藏本 『공총자주(孔叢子注)』에는 能이 克으로 되어 있다. 사부총간본을 따른다.
6) '娶妻如之何?必告父母。': 『시경(詩經)』 「제풍(齊風) 남산(南山)」편에 나오는 말이다.
3장
子夏問《書》大義。子曰:「吾於《帝典》見堯舜之聖焉;於《大禹》、《皋陶謨》、《益稷》見禹、稷、皋陶之忠勤功勳焉;於《洛誥》見周公之德焉。故《帝典》可以觀美,《大禹謨》、《禹貢》可以觀事,《皋陶謨》、《益稷》可以觀政,《洪範》可以觀度,《秦誓》可以觀義1),《五誥》2)可以觀仁,《甫刑》3)可以觀誡。通斯七者4),則《書》之大義舉矣。」
자하가 『서경』의 대의를 물었다. 공자가 말했다. "나는 「제전(요전과 순전)」에서 요임금과 순임금의 성스러움을 보았다. 「대우모」, 「고요모」, 「익직」에서는 우임금과 익직, 고요의 충성스러움과 부지런함, 공훈을 보았다. 「낙고」에서는 주공의 덕을 보았다. 그러므로 「제전」에서는 아름다움을 볼 수 있고, 「대우모」, 「우공」에서는 일을 볼 수 있고, 「고요모」, 「익직」에서는 정사를 볼 수 있고, 「홍범」에서는 법도를 볼 수 있고, 「진서」에서는 의를 볼 수 있고, 「오고」에서는 인을 볼 수 있고, 「여형」에서는 경계를 볼 수 있다. 이 일곱 가지를 통하여 『서경』의 대의를 들 수 있을 것이다.
1) 문연각본 『공총자(孔叢子)』와 宛委別藏本 『공총자주(孔叢子注)』에는 議가 義로 되어 있는데, 문연각본을 따른다.
2) 五誥: 『서경』 중 다섯 개의 誥 문체의 문장. 즉, 「대고(大誥)」, 「강고(康誥)」, 「주고(酒誥)」, 「소고(召誥)」, 「낙고(洛誥)」를 가리킨다.
3) 甫刑: 『서경』의 「여형(呂刑)」을 가리킨다. 여후(呂侯)의 형서(刑書)라는 의미에서 여형(呂刑)이라고 불렀으나 여후의 자손이 보(甫)의 제후가 되었으므로 보형(甫刑)이라고도 한다.
4) 사부총간본 『공총자』에는 七이 亡으로 되어 있다. 亡으로 보면 문리가 통하지 않으므로, 七로 되어 있는 문연각본을 따른다.
4장
孔子曰:「《書》之於事也,遠而不闊,近而不迫;志盡而不怨,辭順而不諂。吾於《高宗肜日》見德有報之疾也。苟由其道,致其仁,則遠方歸志而致其敬焉。吾於《洪範》見君子之不忍言人之惡而質人之美也。發乎中而見乎外以成文者,其唯《洪範》乎?」
공자가 말했다. "『서경』이 일에 대해서 멀지만 우활하지 않고, 가깝지만 박절하지 않다. 뜻이 다하지만 원망하지 않고, 말이 순하지만 아첨하지 않는다. 나는 「고종융일(高宗肜日)」에서 덕이 보답받는 것의 빠름을 보았다. 진실로 그 도로 말미암고 인을 다한다면, 먼 곳이 뜻을 귀의하여 공경을 다할 것이다. 나는 「홍범(洪範)」에서 군자가 차마 다른 사람의 악함을 말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아름다움을 이루어 주는 것을 보았다. 마음 속에서 나와서 밖으로 드러나 문장을 이룬 것은 「홍범」뿐일 것이다.
肜: 제사 이름 융 質: 이룰 질
5장
子張問曰:「堯舜之世,一人不刑而天下治,何則?以教誠而愛深也。龍子1)以為一夫2)而被以五刑,敢問何謂?」孔子曰:「不然。五刑,所以佐教也。龍子未可謂能為《書》也。」
자장이 물었다. "요순의 치세에, 한 사람도 형벌을 받지 않았는데 천하가 다스려졌다고 하니, 어째서입니까? 성(誠)을 가르치고 사랑이 깊었기 때문입니다. 용자는 일부(一夫)가 되어 오형을 받았으니, 감히 여쭙니다, 무엇을 말한 것입니까?" 공자가 말했다. "그렇지 않다. 오형은 교화를 보좌하는 것이다. 용자는 『서경』을 배웠다고 할 수 없다."
1) 龍子는 『맹자(孟子)』에 나오는 龍子이며, 옛 현자라는 것만 알 수 있다.
2) 사부총간본 『공총자(孔叢子)』에는 一夫가 教一로, 문연각본 『공총자(孔叢子)』와 宛委別藏本 『공총자주(孔叢子注)』에는 教一이 一夫로 되어 있다. 『상서대전(尙書大傳)』 「보형(甫刑)」에도 一夫로 되어 있으므로, 一夫를 따른다. 『상서대전』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子張曰:“堯舜之王,一人不刑而天下治,何則?教誠而愛深也。今一夫而被此五刑,子龍子曰:‘未可爲能爲《書》。’”孔子曰:“不然也,五刑有此教。”
자장이 말했다. "요순이 왕 노릇 하실 때에, 한 사람도 형벌을 받지 않았는데 천하가 다스려졌다고 하니 어째서인가? 성(誠)을 가르치고 사랑이 깊었기 때문이다. 지금 일부(一夫)가 오형을 받았는데, 자룡자가 말하기를, '『서경』을 배웠다고 할 수 없다.'라고 하였다." 공자가 말했다. "그렇지 않다. 오형에는 이 가르침이 있다."
6장
子夏讀《書》既畢,而見於夫子。夫子謂曰:「子何為於《書》?」子夏對曰:「《書》之論事也,昭昭然若日月之代明,離離然若星辰之錯行;上有堯舜之德1),下有三王之義。凡商之所受《書》於夫子者,志之於心,弗敢忘也2)。雖退而窮,居河濟之間、深山之中,作壤室3),編蓬戶,常於此彈琴瑟以歌先王之道,則可以發憤慷喟,忘己貧賤。故有人亦樂之,無人亦樂之;上見堯舜之德,下見三王之義;忽不知憂患與死也。」夫子愀然變容,曰:「嘻!子殆可與言《書》矣。雖然,其亦表之而已,未覩其裏也。夫闚其門而不入其室,惡覩其宗廟之奧、百官之美乎?」
자하가 『서경』을 다 읽고 부자를 뵈었다. 부자가 말했다. "너는 『서경』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자하가 대답하였다. "『서경』에서 일을 논한 것은 밝아서 마치 해와 달이 밝음을 대신하는 것 같으며, 이리저리 다녀서 마치 성신이 교차하여 다니는 것과 같습니다. 위로는 요순의 덕이 있고 아래로는 삼왕의 의가 있습니다. 제가 선생님께 『서경』을 전수받은 것은 마음에 기억해 두고 감히 잊지 않았습니다. 비록 물러나 빈궁하게 살고 황하와 제수의 사이와 깊은 산 속에 거처하면서 토방을 짓고 봉호를 엮어 항상 이곳에서 금과 슬을 타면서 선왕의 도를 노래하였으니, 곧 발분하여 탄식하면서 제 빈천함을 잊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있어도 즐겁고, 사람이 없어도 즐겁습니다. 위로는 요순의 덕을 보고, 아래로는 삼왕의 덕을 보아 홀연히 우환과 죽음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부자가 정색하고 얼굴빛을 바꾸면서 말했다. "아아! 너하고는 아마 더불어 『서경』을 말할 수 있을 듯하다. 비록 그렇지만, 그 또한 겉일 뿐이니, 아직 그 속을 보지는 못했다. 그 문을 보았지만 그 집에 들어가지는 못한 것이니 어디서 종묘의 깊숙함과 백관의 아름다움을 보겠는가?"
闚: 엿볼 규
1) 문연각본 『공총자(孔叢子)』와 宛委別藏本 『공총자주(孔叢子注)』에는 德이 道로 되어 있는데, 사부총간본을 따른다.
2) 문연각본 『공총자(孔叢子)』와 宛委別藏本 『공총자주(孔叢子注)』에는 也가 없는데, 사부총간본을 따른다.
3) 宛委別藏本 『공총자주(孔叢子注)』에는 壞室로 되어 있는데, 문연각본과 사부총간본을 따른다.
7장
宰我問:「《書》云:『納于大麓,烈風、雷雨弗迷』1),何謂也?」孔子曰:「此言人事之應乎天也。堯既得舜,歷試諸難,已而納之於尊顯之官,使大錄萬機之政。是故陰陽清和,五星來備2),烈風、雷雨各以其應3),不有迷錯愆伏,明舜之行合於天也。」
재아가 물었다. "『서경』에 이르기를, '대록(大麓)의 자리에 앉히시니 맹렬한 바람 그리고 우레와 비가 혼란하지 않았다.'라고 하였으니, 무엇을 이른 것입니까?" 공자가 말했다. "이것은 인간의 일이 하늘에 응함을 말한 것이다. 요임금이 이미 순을 얻어 모든 어려운 일을 일일이 시험해보고 나서 존귀한 관직에 앉혀 모든 중요한 정사를 총괄하게 하셨다. 이 때문에 음양이 깨끗하게 조화되고 오성이 와서 갖추어지며, 매서운 바람과 뇌우가 각각 응하고 혼란되거나 조화를 잃지 않았으니, 순의 행실이 하늘에 합함을 밝힌 것이다."
迷錯: 혼란한 것 愆伏: 절기가 조화를 잃은 것
1) 『서경』 「순전(舜典)」에 보인다. 채침은 麓을 골짜기로 해석했고, 순임금이 비바람에 미혹되지 않았다고 해석했으나, 『상서정의』의 해석을 따라 大麓을 모든 일을 총괄하는 벼슬 이름으로 풀이하였다.
2) 문연각본에는 來備가 不悖로 되어 있다.
3) 문연각본과 宛委別藏本 『공총자주(孔叢子注)』에는 雷가 없다.
8장
宰我曰:「敢問。『禋于六宗』1),何謂也?」孔子曰2):「所宗者六,皆潔祀之也。埋少牢於太昭,所以祭時也;祖迎於坎壇,所以祭寒暑也;主於郊宮,所以祭日也;夜明,所以祭月也;幽禜,所以祭星也;雩禜,所以祭水旱也。『禋于六宗』,此之謂也。」
재아가 물었다. "감히 묻습니다. '육종(六宗)에 인(禋) 제사를 지냈다.'는 말은 무엇을 이른 것입니까?" 공자가 말했다. "높이는 것이 여섯이니, 모두 정결하게 제사지내는 것이다. 소뢰(少牢)를 태소단(泰昭壇)에 묻는 것은 사시(四時)에 제사지내는 것이고, 감단(坎壇)에 조영(祖迎)하는 것은 추위와 더위에 제사지내는 것이고, 교궁(郊宮)에서 주관하는 것은 해를 제사지내는 것이고, 야명(夜明)은 달에 제사지내는 것이다. 유영(幽禜)은 별에 제사지내는 것이고, 우영(雩禜)은 수재(水災)와 한재(旱災)에 제사지내는 것이다. '육종(六宗)에 인(禋) 제사를 지냈다.'라는 것은 이것을 말한 것이다."
禋: 제사 이름 인 禜: 제사 이름 영 祖迎: 전송하고 맞이하는 것
1) 『서경』 「순전(舜典)」에 보인다.
2) 공자의 말은 『예기』 「제법(祭法)」에 비슷하게 보인다.
9장
《書》曰:「茲予大享于先王,爾祖其從與享之。」1)季桓子問曰:「此何謂也?」孔子曰:「古之王者,臣有大功,死則必祀之於廟,所以殊有績、勸忠勤也。盤庚舉其事,以厲其世臣,故稱焉。」桓子曰:「天子之臣有大功者,則既然矣。諸侯之臣有大功者,可以如之乎?」孔子曰:「勞能定國,功加於民,大臣死難,雖食之公廟,可也。」桓子曰:「其位次如何?」孔子曰:「天子諸侯之臣,生則有列於朝,死則有位於廟。其序一也。」
『서경』에 이르기를, "지금 내가 선왕들께 크게 제사를 지낼 적에 너희들의 선조도 따라서 함께 배향하겠다."라고 하였다. 계환자가 물었다. "무엇을 이른 것입니까?" 공자가 말했다. "옛날에 왕노릇 하던 사람은, 신하가 큰 공이 있는데 죽으면 반드시 종묘에서 제사지냈는데, 공적이 있음을 뛰어나게 여긴 것이고 충성스럽고 부지런하기를 권면한 것이다. 반경이 그 일을 거행하여 세신(世臣)을 힘쓰게 하였으므로 일컬은 것이다." 환자가 말했다. "천자의 신하 중 큰 공이 있는 경우는 이미 알았습니다. 제후의 신하 중 큰 공이 있는 경우는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노고가 나라를 안정시킬 수 있고 공이 백성에게 더해지며 대신이 환란 가운데 죽으면, 비록 공묘(公廟)에서 제삿밥을 먹더라도 옳다." 환자가 말했다. "그 위치의 차례는 어떠합니까?" 공자가 말했다. "천자와 제후의 신하는 살아 있으면 조정에 반열이 있고, 죽어서는 종묘에 신위가 있다. 그 차례는 같다."
1) 『서경』 「반경상(盤庚上)」 편에 보인다. 『상서정의』의 해석을 따랐다.
10장
《書》曰:「維高宗報上甲微。」1)定公問曰:「此何謂也?」孔子對曰:「此謂親盡廟毀,有功而不及祖,有德而不及宗。故於每歲之大嘗而報祭焉2),所以昭其功德也。」公曰:「先君僖公,功德前行,可以與於報乎?」孔子曰:「丘聞,昔虞、夏、商、周以帝王行此禮者,則有矣。自此以下,未之知也。」
『서경』에 이르기를, "고종(高宗)이 상갑미(上甲微)에게 보제(報祭)를 지냈다."라고 하였다. 정공이 물었다. "무엇을 이른 말입니까?" 공자가 대답하였다. "이것은 친족이 다하여 사당이 허물어졌을 경우 중에서, 공이 있는데 조(祖)에 미치지 못하고, 덕이 있는데 종(宗)에 미치지 않을 경우입니다. 그러므로 매 해의 대상제(大嘗祭)에 보제(報祭)를 지내니, 공덕을 밝히는 것입니다." 공이 말했다. "선군 희공(僖公)께서는 공덕이 앞줄에 있으니, 함께 보제를 지낼 수 있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제가 듣기에, 옛날 우, 하, 상, 주 시대에 제왕이면서 이 예를 행한 사람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 이하는 알지 못합니다."
1) 통행본 『서경』에는 보이지 않는다. 다만, 『국어(國語)』 「노어 상(魯語 上)」에 "上甲微는 契을 잘 따른 사람이니 상나라 사람이 보답하는 제사를 지낸다.(上甲微,能帥契者也,商人報焉。)"라는 말이 보인다. 宛委別藏本 『공총자주(孔叢子注)』에는 "상갑미는 설의 팔세손이니, 탕의 선조이다. 고종 때에 이미 사당이 허물어졌다. 報는 제사를 말하니 덕에 보답하는 것이다.(上甲微,契後八世,湯之先也。於高宗時,已爲毁廟。報,謂祭也,以報其德。)"라고 하였다.
2) 大嘗은 주나라의 제사 제도 중 하나이다.
11장
定公問曰:「《周書》所謂『庸庸,祗祗,威威,顯民』1),何謂也?」孔子對曰:「不失其道,明之於民之謂也。夫能用可用,則正治矣;敬可敬,則尚賢矣;畏可畏,則服刑恤矣。君審此三者以示民,而國不興,未之有也。」
정공이 물었다. "『주서』에 이른바, '써야 할 사람을 쓰시며, 공경해야 할 사람을 공경하시며, 위엄을 보여야 할 사람에게 위엄을 보이시어, 백성들에게 드러내보이셨다.'라고 한 것은 무엇을 말한 것입니까?" 공자가 대답하였다. "그 도를 잃지 않고, 백성들에게 그것을 밝히는 것을 말합니다. 무릇 쓸 만한 사람을 쓸 수 있으면 정치가 바루어질 것이고, 공경해야 할 사람을 공경하면 현자를 숭상하게 될 것이고, 두렵게 할 만한 사람을 두렵게 하면 형벌[刑恤]에 복종하게 될 것입니다. 임금이 이 세 가지를 잘 살펴서 백성들에게 보이는데 나라가 부흥하지 않은 적은 있지 않았습니다."
1) 『周書』 「康誥」에 보인다.
12장
子張問:「《書》云:『奠高山』1),何謂也?」孔子曰:「高山五嶽,定其差秩,祀所視焉。」子張曰:「其禮如何?」孔子曰:「牲幣之物,五嶽視三公,而名山視子男。」
자장이 물었다. "『서경』에 '높은 산을 정하셨다.'라고 한 것은 무엇을 말한 것입니까?" 공자가 말했다. "높은 산과 오악에 그 차례를 정하는 것은 제사에 견줄 바이다." 자장이 말했다. "그 예는 어떠합니까?" 공자가 말했다. "희생과 폐백에 있어서, 오악은 삼공에 견주고 명산은 자작이나 남작에 견준다."
子張曰:「仁者何樂於山?」2) 孔子曰:「夫山者,巋然高。」子張曰:「高則何樂爾?」孔子曰:「夫山,草木植焉,鳥獸蕃焉,財用出焉,直而無私焉,四方皆伐焉。直而無私,興吐風雲以通乎天地之間;陰陽和合,雨露之澤,萬物以成,百姓咸饗。此仁者之所以樂乎山也。」
자장이 말했다. "인한 사람은 어째서 산을 좋아합니까?" 공자가 말했다. "무릇 산이란 것은 우뚝 솟아 높기 때문이다." 자장이 말했다. "높은데 어째서 좋아합니까?" 공자가 말했다. "무릇 산이란, 초목이 그곳에서 자라고 조수가 그곳에서 번식하고 재용이 그곳에서 나오는데 곧고 사사로움이 없어 사방에서 거두어 간다. 곧고 사사로움이 없어서 바람과 구름을 내어 천지의 사이를 통하게 한다. 음양의 화합과 우로의 덕택으로 만물이 이루어지고 백성들이 모두 누린다. 이것이 인한 사람이 산을 좋아하는 까닭이다."
1) 『夏書』 「禹貢」에 나온다.
2) 『論語』 「雍也」에 '仁者樂山'으로 나온다. 樂은 '요'로 읽으며 '좋아하다'라고 새긴다.
13장
孟懿子問:「《書》曰:『欽四鄰』1),何謂也?」孔子曰:「王者前有疑,後有丞,左有輔,右有弼,謂之四近。言前後左右近臣當畏敬之,不可以非其人也。周文王胥附、奔輳、先後、禦侮,謂之四鄰2),以免乎牖里之害3)。」懿子曰:「夫子亦有四鄰乎?」孔子曰:「吾有四友焉。自吾得回也,問人加親,是非胥附乎?自吾得賜也,遠方之士日至,是非奔輳乎?自吾得師也,前有光,後有輝,是非先後乎?自吾得由也,惡言不至於門,是非禦侮乎?」
맹의자가 말했다. "『서경』에 이르기를, '사방 가까이에 있는 신하들은 그 직책을 경건히 닦는다.'라고 하니 무엇을 말한 것입니까?" 공자가 말했다. "왕 노릇 하는 사람은 앞에는 의(疑)가 있고 뒤에는 승(丞)이 있으며, 왼쪽에는 보(輔)가 있고, 오른쪽에는 필(弼)이 있으니 이를 일러 사근(四近, 네 명의 가까운 신하)라고 합니다. 전후좌우의 가까운 신하가 마땅히 경외하여야 하고 적합한 사람이 아닌 사람을 써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주 문왕의 서부(胥附), 분주(奔輳), 선후(先後), 어모(禦侮)를 사린(四鄰, 사방 가까이에 있는 신하)이라고 하니, 유리의 해를 면한 것입니다." 의자가 말했다. "부자에게도 사린이 있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저에게는 사우(四友, 네 명의 벗)이 있습니다. 제가 안회(顔回)를 얻은 뒤로부터는 문인이 더욱 친해졌으니 서부가 아닙니까? 제가 단목사(端木賜)를 얻은 뒤로부터는 먼 곳의 선비들이 날마다 이르렀으니, 분주가 아닙니까? 제가 전손사(顓孫師)를 얻은 뒤로부터는 앞에도 빛이 있고 뒤에도 빛이 있었으니, 선후가 아닙니까? 제가 중유(仲由)를 얻은 뒤로부터는 나쁜 말이 문에 이르지 않았으니 어모가 아닙니까?"
1) 『우서』 「익직」에 보인다.
2) 서부(胥附), 분주(奔輳), 선후(先後), 어모(禦侮)는 『시경』 「대아」 면(緜) 편에 나오는 소부(疏附), 분주(奔奏), 선후(先後), 어모(禦侮)이다. 주희의 『시경집전(詩經集傳)』에는 '아랫사람을 거느려 윗사람을 가까이하는 것을 소부라고 하고, 앞과 뒤에서 서로 인도하는 것을 선후라고 하고, 덕을 유시하고 명예를 선양하는 것을 분주라고 하고, 무신이 적의 기세를 꺾는 것을 어모라고 한다(率下親上曰疏附, 相道前後曰先後, 喩德宣譽曰奔奏, 武臣折衝曰禦侮).'라고 하였다.
3) 牖은 문연각본에는 羑로 되어 있는데, 문왕이 갇혔던 옥의 이름은 흔히 羑里로 알려져 있지만 牖里라고 하기도 한다.
14장
孔子見齊景公,梁丘據自外而至。公曰:「何遲?」對曰:「陳氏戮其小臣,臣有辭焉1),是故遲。」公笑而目孔子,曰:「《周書》所謂『明德慎罰』,陳子明德也;罰人而有辭,非不慎矣。」孔子答曰:「昔康叔封衛,統三監之地,命為孟侯2)。周公以成王之命作《康誥》焉,稱述文王之德,以成勑誡之文。其《書》曰:『惟乃丕顯考文王,克明德慎罰。』3)克明德者,能顯用有德,舉而任之也。慎罰者,并心而慮之,眾平然後行之,致刑錯也。此言其所任不失德,所罰不失罪,不謂己德之明也。」公曰:「寡人不有過言,則安得聞君子4)之教也?」
공자가 제 경공을 알현하였는데, 양구거가 밖에서 왔다. 공이 말했다. "왜 늦었는가?" 대답하였다. "진씨가 소신을 죽이려 하기에 신이 해명을 하느라 늦었습니다." 공이 웃으며 공자를 지목하며 말하였다. "『주서』에 이른바 '덕을 밝히고 형벌을 신중하게 하였다.'라고 하였는데, 진자(陳子)는 덕을 밝혔고, 사람을 벌주는데 해명이 있었으니 삼가지 않음이 아닌 것입니다." 공자가 답하였다. "옛날에 강숙이 위나라에 봉해져서 삼감의 땅을 다스릴 때에 명하여 맹후(孟侯)가 되었습니다. 주공이 성왕의 명으로 『강고』를 지어 문왕의 덕을 서술하여 경계하는 글을 지었습니다. 『서경』에 이르기를, '너의 매우 밝게 드러난 선고(先考) 문왕께서는 능히 덕을 밝히고 형벌을 신중하게 하셨다.'라고 하였습니다. 능히 덕을 밝혔다는 것은 능히 덕이 있는 사람을 드러내고 등용하여 들어서 임용했다는 것입니다. 형벌을 신중히 했다는 것은 마음을 아울러 생각하여 대중의 의견이 하나로 정해진 다음에 행하여 형벌을 다하는 것입니다. 이는 맡은 바에 덕을 잃지 않고 벌주는 바에 죄를 잃지 않음을 말함이지, 자기 덕이 밝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공이 말했다. "과인이 잘못된 말이 없었다면 어찌 군자의 가르침을 얻을 수 있었겠는가?"
1) 문연각본과 宛委別藏本 『공총자주(孔叢子注)』에는 焉이 爲로 되어 있다.
2) 『서경』 「강고(康誥)」에 강숙을 맹후로 봉한다는 내용이 있다.
3) 『주서』 「강고」에 보인다.
4) 문연각본과 宛委別藏本 『공총자주(孔叢子注)』에는 君子가 吾子로 되어 있다.
15장
《書》曰:「其在祖甲,不義惟王。」1)公西赤曰:「聞諸晏子,湯及太甲、祖乙、武丁,天下之大君。夫太甲為王,居喪行不義,同稱大君2),何也?」孔子曰:「君子之於人,計功以除過。太甲即位,不明居喪之禮,而干冢宰之政,伊尹放之于桐。憂思三年,追悔前愆,起而復位,謂之明王。以此觀之,雖四於三王,不亦可乎?」
『서경』에 이르기를, "祖甲에 있어서는 왕이 되어 의롭지 못하였다."라고 하였다. 공서적이 물었다. "안자(晏子)에게 들으니, 탕(상의 1대 임금, 太祖)과 태갑(상의 4대 임금, 太宗), 조을(상의 13대 임금), 무정(상의 22대 임금, 高宗)은 천하의 큰 임금이라 합니다. 태갑이 왕이 되어서는 상중에 거함에 불의를 행하였으나 똑같이 큰 임금으로 일컬어지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공자가 말했다. "군자가 사람에 대하여는 공은 헤아리고 잘못은 없애 주는 것이다. 태갑이 즉위하여 상중에 거하는 예에 밝지 못하여 총재의 정치에 간섭하였으니, 이윤이 그를 동궁(桐宮)에 추방하였다. 근심하기를 삼 년 동안 하여 전의 잘못을 뉘우쳐 일어나 다시 왕위에 오르니 그를 명왕(明王)이라고 하였다. 이로써 보건대, 비록 삼왕의 네 번째라 하여도 되지 않겠는가?"
1) 『주서』 「무일(無逸)」에 보인다.
2) 문연각본과 宛委別藏本 『공총자주(孔叢子注)』에는 大자가 없다.
16장
魯哀公問:「《書》稱夔曰:『於!予擊石拊石,百獸率舞,庶尹允諧』1),何謂也?」孔子對曰:「此言善政之化乎物也。古之帝王功成作樂,其功善者其樂和。樂和,則天地且猶2)應之,況百獸乎?夔為帝舜樂正,實能以樂盡治理之情。」公曰:「然則政之大本,莫尚夔乎?」孔子曰:「夫樂所以歌其成功,非政之本也。眾官之長,既咸熙熙3),然後樂乃和焉。」公曰:「吾聞夔一足,有異於人,信乎?」孔子曰:「昔重黎舉夔為進,又欲求人而佐焉。舜曰:『夫樂,天地之精也,唯聖人為能和六律,均五聲。和樂之本,以通八風。』夔能若此,一而足矣,故曰一足。非一足也。」4)公曰:「善。」
노 애공이 물었다. "『서경』에서 기(夔)가 말하기를, '아! 제가 경쇠를 치고 경쇠를 두드릴 적에 온갖 짐승이 서로 이끌고 춤을 추었고, 여러 관리의 장(長)이 진실로 화합하였습니다."라고 하였는데, 무엇을 말한 것입니까?" 공자가 대답하였다. "이는 선정(善政)이 사물을 교화함을 말한 것입니다. 옛날의 제왕은 공이 이루어지면 음악을 만드는데, 그 공이 선한 자는 그 음악이 조화롭습니다. 음악이 조화로우면 천지도 오히려 응하는데, 더구나 온갖 짐승이겠습니까? 기가 순임금의 악정(樂正)이 되어서, 진실로 능히 음악으로 치리하는 실정을 다하였습니다." 공이 말했다. "그렇다면 정사의 큰 근본은 기보다 나은 것이 없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대저 음악은 공을 이룬 것을 노래하는 것이니, 정사의 근본은 아닙니다. 여러 관리의 장이 모두 온화한 이후에 음악이 이에 조화롭게 됩니다." 공이 말했다. "제가 듣기로 기는 발이 하나여서 다른 사람과 다른 것이 있다고 하였는데 진짜입니까?" 공자가 말했다. "옛날에 중려(重黎)가 기를 천거하여 진현하였을 때에 사람을 더 구하여 보좌하게 하려고 하였습니다. 순이 말하기를, '대저 음악은 천지의 정화이니, 오직 성인만이 육률(六律)을 조화롭게 할 수 있고, 오성(五聲)을 조화시킬 수 있다. 음악을 조화시키는 것의 근본이니, 이로써 팔풍을 통하게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기가 능히 이와 같다면, 한 사람으로 족한 것이니, 그러므로 '一足'이라고 한 것입니다. 발이 하나인 것은 아닙니다." 공이 말했다. "좋습니다."
1) 「우서」 「익직(益稷)」에 보인다.
2) 문연각본과 宛委別藏本 『공총자주(孔叢子注)』에는 猶且로 되어 있다.
3) 사부총간에는 咸이 成으로 되어 있다.
4) 이 이야기와 비슷한 내용의 이야기가 『여씨춘추(呂氏春秋)』 「신행론(慎行論)」 찰전(察傳)에 보인다.
'한문학 > 공총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3. 기의(記義) 편 (0) | 2024.01.18 |
---|---|
1. 가언(嘉言) 편 (0) | 2023.02.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