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학/논어집주
2020. 2. 14. 14:15
15-1. 子貢曰 貧而無諂하며 富而無驕면 何如하니잇고 子曰 可也나 未若貧而樂하며 富而好禮者也니라
자공이 말했다. "가난하면서도 아첨하지 않으며, 부유하면서도 교만하지 않는다면 어떻겠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가능하다. 그러나 가난하면서도 즐거워하며 부유하면서도 예를 좋아하는 사람보다는 못하다."
諂은 卑屈也요 驕는 矜肆也라 常人은 溺於貧富之中하여 而不知所以自守라 故로 必有二者之病이라 無諂無驕면 則知自守矣나 而未能超乎貧富之外也라 凡曰可者는 僅可而有所未盡之辭也라 樂則心廣體胖하여 而忘其貧이요 好禮則安處善하고 樂循理하여 亦不自知其富矣리라 子貢이 貨殖하니 蓋先貧後富하여 而嘗用力於自守者라 故로 以此爲問에 而夫子答之如此하시니 蓋許其所已能이요 而勉其所未至也시니라
'諂'는 비굴함이고, '驕'는 자랑하며 마음대로 하는 것이다. 평범한 사람은 가난하고 부유한 사이에 빠져서 스스로 지키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반드시 두 가지의 병폐가 있는 것이다. 아첨함이 없고 교만함이 없으면 스스로 지킬 줄 아는 것이지만 가난함과 부유함의 바깥으로 초월할 수 없다. 무릇 '가능하다.'라고 말한 것은 겨우 가능해서 미진한 바가 있다는 말이다. 즐거워한다면 마음이 넓어지고 몸이 펴져서 그 가난함을 잊을 것이고, 예를 좋아한다면 선에 처함을 편안하게 생각하고 이치에 따름을 즐거워하여 역시 그 부유함을 스스로 알지 못할 것이다. 자공은 재물을 증식시켰으니 아마도 먼저 가난하고 뒤에 부유해져서 일찍이 스스로 지키는 것에 힘을 쓴 사람일 것이다. 그러므로 이로써 물음에 부자가 이와 같이 대답한 것이니 대개 그 이미 할 수 있는 것을 허여하고, 그 이르지 못한 것을 힘쓰라는 것이다.
僅 : 겨우 근 胖 : 펴질 반
15-2. 子貢曰 詩云 如切如磋하며 如琢如磨라하니 其斯之謂與인저
자공이 말했다. "《시경》에 이르기를, '자른 듯, 간 듯, 쪼아낸 듯, 갈아낸 듯'이라고 하니, 아마 이것을 말한 것입니까?"
詩는 衛風淇奧之篇이라 言治骨角者는 旣切之而復磋之하고 治玉石者는 旣琢之而復磨之하니 治之已精而益求其精也라 子貢이 自以無諂無驕爲至矣러니 聞夫子之言하고 又知義理之無窮하여 雖有得焉이나 而未可遽自足也라 故로 引是詩以明之하니라
시는 《시경·위풍》의 〈기욱〉편이다. 뼈와 뿔을 다루는 사람은 이미 잘라냈는데도 다시 갈고, 옥과 돌을 다루는 사람은 이미 쪼아냈는데도 다시 갈아내니 다스림이 이미 정밀한데 더욱 그 정밀함을 구함을 말한 것이다. 자공이 스스로 아첨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음을 지극하다고 여겼는데, 부자의 말을 듣고 또 의리가 무궁하여 비록 얻음이 있더라도 급하게 스스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므로 이 시를 인용하여 밝힌 것이다.
淇 : 물이름 기 奧 : 벼랑 욱
15-3. 子曰 賜也는 始可與言詩已矣로다 告諸往而知來者온여
공자가 말했다. "사하고는 비로소 《시경》을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에게 지나간 것을 알려주자 앞으로 올 것을 아는구나."
往者는 其所已言者요 來者는 其所未言者라
지나간 것은 이미 말한 것이고 앞으로 올 것은 아직 말하지 않은 것이다.
○愚按 此章問答은 其淺深高下 固不待辯說而明矣라 然이나 不切則磋無所施요 不琢則磨無所措라 故로 學者雖不可安於小成而不求造道之極致나 亦不可騖於虛遠而不察切己之實病也니라
내가 살펴보건대, 이 장의 문담은 그 얕고 깊음과 높고 낮음이 진실로 변설을 기다리지 않아도 밝다. 그러나 잘라놓지 않으면 갊을 베풀 곳이 없고, 쪼아놓지 않으면 갈아냄을 둘 곳이 없다. 그러므로 배우는 사람은 작은 성취에 안주하여 도에 나아가는 극치를 구하지 않으면 안 되지만, 역시 허무하고 먼 곳으로 달려가 자기에게 간절한 실제의 병통을 살피지 않으면 안 된다.
造 : 나아갈 조 騖 : 달릴 무
'한문학 > 논어집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논어집주서설 (0) | 2020.02.14 |
---|---|
학이16. 내가 남을 알지 못함을 근심하라 (0) | 2020.02.14 |
학이14. 배움을 좋아한다는 것 (0) | 2020.02.14 |
학이13. 높일 만한 사람 (0) | 2020.02.12 |
학이12. 예의 쓰임 중 귀한 것 (0) | 2020.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