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학/맹자집주 2020. 2. 14. 15:46

7-9. 王說曰 詩云 他人有心을 予忖度之라하니 夫子之謂也로소이다 夫我乃行之하고 反而求之하되 不得吾心이러니 夫子言之하시니 於我心有戚戚焉하여이다 此心之所以合於王者는 何也잇고

왕이 기뻐하며 말했다. "《시경》에 이르기를, '타인의 마음가짐을 내가 헤아린다.'라고 하였으니, 부자를 말한 것입니다. 내가 마침 행하고 돌이켜 구하였지만 내 마음에 얻어지지 않았는데 부자께서 말씀하시니 내 마음에 뭉클함이 있습니다. 이 마음이 왕 노릇 하기에 합당한 까닭은 무엇입니까?"
戚 : 가슴뭉클할 척

詩는 小雅巧言之篇이라 戚戚은 心動貌라 王因孟子之言하여 而前日之心이 復萌하여 乃知此心不從外得이라 然이나 猶未知所以反其本而推之也라
시는 《시경·소아》의 〈교언〉 편이다. '戚'은 마음이 감동한 모양이다. 왕은 맹자의 말로 인하여 전일의 마음이 다시 싹터서 이에 이 마음이 밖에서 얻어지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오히려 그 근본을 돌이켜 미루어 볼 줄은 알지 못했다.

7-10. 曰 有復於王者曰 吾力足以擧百鈞이로되 而不足以擧一羽하며 明足以察秋毫之末이로되 而不見輿薪이라하면 則王許之乎잇가 曰 否라 今恩足以及禽獸로되 而功不至於百姓者는 獨何與잇고 然則一羽之不擧는 爲不用力焉이며 輿薪之不見은 爲不用明焉이며 百姓之不見保는 爲不用恩焉이니 故로 王之不王은 不爲也언정 非不能也니이다
"왕에게 아뢰는 사람이 있어 말하기를, '내 힘이 백 균(삼천 근)을 들기에 충분하지만 한 개의 깃털을 들기에는 부족하며, 시력이 추호의 끝을 살피기에 충분하지만 수레에 실린 땔나무를 보지 못한다.'라고 하면 왕께서는 그것을 인정하시겠습니까?"
"불가합니다."
"지금 은혜가 충분히 금수에게 미치는데 공이 백성들에게 이르지 않음은 유독 어째서입니까? 그런즉 하나의 깃털을 들지 못함은 힘을 쓰지 않아서이고, 수레에 실린 땔나무를 보지 못함은 시력을 쓰지 않아서이며, 백성들이 보호받지 못함은 은혜를 쓰지 않아서입니다. 그러므로 왕께서 왕 노릇 하지 못함은 것은 하지 않는 것이지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復 : 아뢸 복 鈞 : 서른근 균

復은 白也라 鈞은 三十斤이니 百鈞은 至重難擧也라 羽는 鳥羽니 一羽는 至輕易擧也라 秋毫之末은 毛至秋而末銳하니 小而難見也요 輿薪은 以車載薪이니 大而易見也라 許는 猶可也라
'復'은 아룀이다. '鈞'은 서른 근이니 '鈞'은 지극히 무거워 들기에 어렵다. '羽'는 새의 깃털이니 '羽'는 지극히 가벼워 들기에 쉽다. '末'은 털이 가을에 이르러 끝이 가늘어진 것이니 작아서 보기에 어렵다. '輿薪'은 수레에 실린 땔나무이니 커서 보기에 쉽다. '許'는 '可(가하다)'와 같다.

今恩以下는 又孟子之言也라 蓋天地之性에 人爲貴라 故로 人之與人은 又爲同類而相親이라 是以로 惻隱之發은 則於民切而於物緩하고 推廣仁術은 則仁民易而愛物難이어늘 今王此心이 能及物矣면 則其保民而王은 非不能也요 但自不肯爲耳니라
'恩' 이하는 다시 맹자의 말이다. 대개 천지의 성 중에 사람이 귀하다. 그러므로 사람과 사람은 또 동류가 되어 서로 친하다. 이 때문에 측은지심의 발함은 백성에게는 간절하고 물건에게는 느슨하며, 인을 행하는 방법을 미루어 넓힘은 백성을 사랑함이 쉽고 물건을 아낌이 어렵다. 지금 왕은 이 마음이 능히 물건에까지 미쳤으니 그 백성을 보호하고 왕 노릇 하는 것은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고 단지 스스로 기꺼이 하려고 하지 않는 것일 뿐이다.

7-11. 曰 不爲者與不能者之形이 何以異잇고 曰 挾太山하여 以超北海를 語人曰 我不能이라하면 是誠不能也어니와 爲長者折枝를 語人曰 我不能이라하면 是不爲也언정 非不能也니 故로 王之不王은 非挾太山以超北海之類也라 王之不王은 是折枝之類也니이다
"하지 않는 것과 하지 못하는 것의 모양이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태산을 끼고 북해를 넘는 것을 사람이 말하기를, '내가 할 수 없다.'라고 하면 이것은 진실로 할 수 없는 것이지만, 어른을 위하여 가지를 꺾는 것을 사람이 말하기를, '내가 할 수 없다.'라고 하면 이것은 하지 않는 것이지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왕께서 왕 노릇 하지 못함은 태산을 끼고 북해를 넘는 종류가 아닙니다. 왕께서 왕 노릇 하지 못함은 바로 가지를 꺾는 종류입니다.

形은 狀也라 挾은 以腋持物也라 超는 躍而過也라 爲長者折枝는 以長者之命으로 折草木之枝니 言不難也라
''은 형상이다. '挾'은 겨드랑이에 물건을 끼는 것이다. '超'는 뛰어서 지나가는 것이다. '枝'는 장자의 명으로 초목의 가지를 꺾는 것이니 어렵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是心固有하여 不待外求니 擴而充之는 在我而已니 何難之有리오
이 마음은 고유하여 밖에서 구해지기를 기대할 필요가 없으니 넓혀서 보충하는 것은 나에게 달려있을 뿐이다. 어찌 어려움이 있겠는가.  

7-12. 老吾老하여 以及人之老하며 幼吾幼하여 以及人之幼하면 天下可運於掌이니 詩云 刑于寡妻하여 至于兄弟하여 以御于家邦이라하니 言擧斯心加諸彼而已니 故로 推恩이면 足以保四海요 不推恩이면 無以保妻子니 古之人이 所以大過人者는 無他焉이라 善推其所爲而已矣니 今恩足以及禽獸로되 而功不至於百姓者는 獨何與니잇고
내 노인을 노인으로 섬겨서 남의 노인에게까지 미치고, 내 어린아이를 어린아이로 길러서 남의 어린아이에게까지 미친다면 천하를 손바닥에 놓고 움직일 수 있습니다. 《시경》에 이르기를, '과덕한 이의 아내에게 모범이 되어서 형제에 이르고, 집안과 나라를 다스린다.'라고 하였으니 이 마음을 들어서 저쪽에 더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은혜를 미루며 사해를 보전하기에 충분하고 은혜를 미루지 않으면 처자를 보호할 수 없습니다. 옛날 사람이 그냥 사람보다 크게 뛰어난 까닭은 다른 것이 없습니다. 그 하는 것을 미루기를 잘 했을 뿐입니다. 지금 은혜가 충분히 금수에게까지 미치나 공이 백성들에게 이르지 않음은 유독 어째서입니까?

老는 以老事之也니 吾老는 謂我之父兄이요 人之老는 謂人之父兄이라 幼는 以幼畜之也니 吾幼는 謂我之子弟요 人之幼는 謂人之子弟라 運於掌은 言易也라 詩는 大雅思齊之篇이라 刑은 法也라 寡妻는 寡德之妻니 謙辭也라 御는 治也라 不能推恩이면 則衆叛親離라 故로 無以保妻子라
'老'는 노인을 섬기는 방법으로써 섬기는 것이니 '老'는 나의 부형을 말하고, '老'는 남의 부형을 말한다. '幼'는 어린아이를 기르는 방법으로써 기르는 것이니 '幼'는 나의 자제를 말하고, '幼'는 남의 자제를 말한다. '掌'는 쉽다고 말한 것이다. 시는 대아의 사제 편이다. '刑'은 본받음이다. '妻'는 과덕한 이의 아내니 겸사이다. '御'는 다스림이다. 은혜를 능히 미루지 못하면 민중이 배반하고 가까운 사람들이 흩어진다. 그러므로 처자를 보존할 수 없다.

蓋骨肉之親은 本同一氣하니 又非但若人之同類而已라 故로 古人이 必由親親推之然後에 及於仁民하고 又推其餘然後에 及於愛物하니 皆由近以及遠하고 自易以及難이어늘 今王反之하니 則必有故矣라 故로 復推本而再問之하시니라
대개 골육의 친척은 본래 한 기운을 같이하였으니 또한 단지 사람의 동류와 같을 뿐만이 아니다. 그러므로 옛 사람이 가까운 사람을 가까이함으로 말미암아 미루어 본 다음에 백성을 사랑함에 미치고 또한 그 나머지로 미루어 본 이후에 물건을 아낌에 미치니 모두 가까운 것으로 말미암아 먼 것에 미치고 쉬운 것으로부터 어려운 것에 미치는 것이다. 지금 왕이 거꾸로 하니 반드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다시 근본을 미루어 재차 질문한 것이다.

7-13. 權然後知輕重하며 度然後知長短이니 物皆然이어니와 心爲甚하니 王請度之하소서
저울로 재어 본 다음에야 가볍고 무거움을 알며 자로 재어 본 다음에야 길고 짧음을 압니다. 물체가 모두 그렇지만 마음이 더욱 심하니, 청컨대 왕께서는 헤아리십시오."

權은 稱錘也요 度는 丈尺也라 度之는 謂稱量之也라 言 物之輕重長短은 人所難齊라 必以權度度之而後可見이니 若心之應物은 則其輕重長短之難齊하여 而不可不度以本然之權度가 又有甚於物者라
'權'은 저울과 저울추이고, '度'는 길과 자이다. '之'는 저울질하고 헤아림을 말한다. 물건의 경중과 장단은 사람이 가지런하게 하기 어려운 것이니, 반드시 저울과 자로써 저울질하고 헤아린 이후에 볼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마음이 사물에 응하는 경우에는 그 경중과 장단을 가지런하게 하기 어려우니 본연의 저울과 자로써 저울질하고 헤아릴 수 없음이 또한 물건보다 심함이 있다.

今王이 恩及禽獸而功不至於百姓하니 是는 其愛物之心이 重且長하고 而仁民之心이 輕且短하여 失其當然之序而不自知也라 故로 上文에 旣發其端하시고 而於此에 請王度之也하시니라
지금 왕은 은혜가 금수에까지 미치는데 공이 백성들에게 이르지 않는다. 이는 그 물건을 아끼는 마음이 무겁고 길지만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볍고 짧아서 그 당연한 순서를 잃어버리고도 스스로 알지 못했다. 그러므로 윗 문장에 이미 그 단서를 드러내고 이에 왕이 헤아리기를 청한 것이다.
posted by 취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