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학/맹자집주 2020. 2. 28. 13:49

5(12)-1. 齊宣王問曰:「人皆謂我毀明堂。毀諸?已乎?」

제 선왕이 물었다. "사람들이 모두 나에게 명당을 헐어버리라고 합니다. 헐어야 합니까, 말아야 합니까?"

趙氏曰:「明堂太山明堂周天子東巡守朝諸侯之處漢時遺址尚在人欲毀之者蓋以天子不復巡守諸侯又不當居之也。」
조씨가 말했다. "명당은 태산의 명당이다. 주나라 천자가 동쪽으로 순수할 때 제후들에게 조회받던 거처인데, 한나라 때까지 유지가 남아 있었다. 사람들이 그것을 부수려고 한 것은 천자가 다시 순수하지 않고, 제후들 또한 거처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王問當毀之乎
且止乎
왕께서 '마땅히 그것을 부수어야 합니까? 말아야 합니까?'라고 물은 것이다.

5(12)-2. 孟子對曰:「夫明堂者王者之堂也王欲行王政則勿毀之矣。」

맹자가 대답했다. "명당은 왕 노릇 하는 사람의 집입니다. 왕께서 왕도정치를 행하고자 하신다면 헐지 마십시오."

明堂,王者所居,以出政令之所也。
'明堂'은 왕 노릇 하는 사람이 거주하는 곳이며 정령을 내는 곳이다.

能行王政,則亦可以王矣。何必毀哉?
왕도정치를 행할 수 있다면 또한 왕 노릇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째서 굳이 부수어야 하는가?

5(12)-3. 王曰:「王政可得聞與?」對曰:「昔者文王之治岐也,耕者九一,仕者世祿,關市譏而不征,澤梁無禁,罪人不孥。老而無妻曰鰥。老而無夫曰寡。老而無子曰獨。幼而無父曰孤。此四者,天下之窮民而無告者。文王發政施仁,必先斯四者。詩云:『哿矣富人,哀此煢獨。』」

왕이 말했다. "왕도정치를 얻어 들을 수 있겠습니까?"

<맹자가> 대답했다. "옛날에 문왕이 기주를 다스릴 때, 경작하는 사람들에게 세금을 9분의 1만 받으며, 벼슬하는 사람들에게는 대대로 녹을 주었으며, 관문과 시장에서 기찰하기만 하고 세금을 거두지 않았으며, 저수지와 여울을 금하지 않으며, 사람을 정죄하되 처자식에게까지는 미치지 않았습니다. 늙었는데 아내가 없는 것을 홀아비라고 하고, 늙었는데 남편이 없는 것을 과부라고 합니다. 늙었는데 자식이 없는 것을 독거노인이라고 하고, 어린데 아버지가 없는 것을 고아라고 합니다. 이 네 부류는 천하의 곤궁한 백성이며 말할 곳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문왕은 정사를 펴고 인정을 베풀되 반드시 이 네 부류에게 먼저 하셨습니다. 《시경》에 이르기를, '부유한 사람은 괜찮지만, 이 외로운 사람이 가엾다.'라고 하였습니다." 

孥 : 처자식 노 鰥 : 홀아비 환 哿 : 가할 가(可) 煢 : 외로울 경

岐,周之舊國也。九一者,井田之制也。方一里爲一井,其田九百畝。中畫井字,界爲九區。一區之中,爲田百畝。中百畝爲公田,外八百畝爲私田。八家各受私田百畝,而同養公田,是九分而稅其一也。世祿者,先王之世,仕者之子孫皆教之,教之而成材則官之。如不足用,亦使之不失其祿。蓋其先世嘗有功德於民,故報之如此,忠厚之至也。關,謂道路之關。市,謂都邑之市。譏,察也。征,稅也。關市之吏,察異服異言之人,而不征商賈之稅也。澤,謂瀦水。梁,謂魚梁。與民同利,不設禁也。孥,妻子也。惡惡止其身,不及妻子也。
'岐'는 주나라의 옛 국도이다. '九一'은 정전제이다. 사방 1리를 1정이라고 하는데 그 밭은 9백 묘이다. 중간에 井자를 그어서 경계가 아홉 구역이 된다. 한 구역의 안에 밭이 백 묘가 된다. 중간의 백 묘는 공전이 되고 바깥의 8백 묘는 사전이 된다. 여덟 집이 각각 사전 백 묘를 받고 같이 공전을 가꾸는데, 이것은 9분의 1을 세금으로 내는 것이다. '世祿'은 선왕의 때에 벼슬하던 사람들의 자손을 모두 가르쳐서, 가르쳐서 인재가 되면 관리로 삼는다. 만일 쓰기에 부족하더라도 또한 그로 하여금 그 녹을 잃지 않게 한다. 그 선왕의 때에 일찍이 백성들에게 공덕이 있었으므로 보답하는 것이 이와 같으니 충후함이 지극한 것이다. '關'은 도로의 관문을 말한다. '市'는 도읍의 시장을 말한다. '譏'는 살핌이다. '征'은 세금이다. 관문과 시장의 관리가 다른 옷 입고 다른 말 하는 사람들을 살피기만 할 뿐 상고의 세금을 거두지 않은 것이다. '澤'는 물을 모아 둔 웅덩이를 말한다. '梁'은 물고기를 잡는 여울이다. 백성과 이익을 같이 하니 금제를 두지 않은 것이다. '孥'는 처자식이다. 악을 미워함이 그 자신에서 그치고 처자식에게 미치지 않는 것이다.
瀦 : 웅덩이 저

先王養民之政:導其妻子,使之養其老而恤其幼。不幸而有鰥寡孤獨之人,無父母妻子之養,則尤宜憐恤,故必以爲先也。
선왕의 백성들을 기르는 정치는 그 처자식을 이끌어 그로 하여금 그 노인을 봉양하고 그 어린아이를 구휼하는 것이다. 불행히도 홀아비, 과부, 고아, 독거노인과 같은 사람들이 있어 부모처자의 봉양이 없으면 더욱 마땅히 불쌍히 여겨 구휼해야 하였으므로 반드시 먼저로 여긴 것이다. 

詩小雅正月之篇。哿,可也。煢,困悴貌。
시는 〈소아·정월〉편이다. '哿'는 가함이다. '煢'은 곤고하고 초췌한 모양이다.

5(12)-4. 王曰:「善哉言乎!」曰:「王如善之,則何爲不行?」王曰:「寡人有疾,寡人好貨。」對曰:「昔者公劉好貨,《詩》云:『乃積乃倉,乃裹餱糧,于橐于囊,思戢用光。弓矢斯張,干戈戚揚,爰方啟行。』故居者有積倉,行者有裹糧也,然後可以爰方啟行。王如好貨,與百姓同之,於王何有?」

왕이 말했다. "좋습니다, 그 말씀이여!"

<맹자가> 말했다. "왕꼐서 만약 좋게 여기신다면, 어찌하여 행하지 않으십니까?" 

왕이 말했다. "과인에게 병통이 있으니, 과인은 재물을 좋아합니다."

<맹자가> 대답했다. "옛날에 공유가 재물을 좋아하였습니다. 《시경》에 이르기를, '노적에 쌓고, 창고에 쌓아 마른 양식을 싸기를 전대에 넣고 주머니에 넣고서 백성을 편안히 하여 국가를 빛낼 것을 생각하였다. 활과 화살을 준비하여 방패, 창, 도끼들로 바야흐로 길을 떠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거주하는 사람은 노적과 창고가 있으며, 떠나는 사람은 싼 양식이 있은 이후에야 바야흐로 길을 떠날 수 있는 것입니다. 왕께서 만약 재물을 좋아하신다면 백성과 같이하신다면 왕 노릇 하심에 무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裹 : 쌀 과 橐 : 전대 탁 戢 : 모을 집

王自以爲好貨,故取民無制,而不能行此王政。公劉,后稷之曾孫也。詩大雅公劉之篇。積,露積也。餱,乾糧也。無底曰橐,有底曰囊皆所以盛餱糧也。戢,安集也。言思安集其民人,以光大其國家也。戚,斧也。揚,鉞也。爰,於也。啟行,言往遷於豳也。何有,言不難也。
왕이 재물을 좋아하므로 백성들에게 취함에 제한이 없어서 이 왕도정치를 행할 수 없다고 스스로 여긴 것이다. 公劉는 후직의 증손이다. 시는 〈대아·공유〉편이다. '積'은 노적(곡식더미)이다. '餱'는 말린 식량이다. 밑이 없으면 '橐'이라 하고 밑이 있으면 '囊'이라 하니 모두 마른 양식을 담는 것이다. '戢'은 편안히 모음이다. 그 백성을 편안히 모이게 하여 그 국가를 빛내고 크게 할 것을 생각함을 말한다. '戚'은 날이 아래로 굽은 도끼이다. '揚'은 날이 위로 솟은 도끼이다. '爰'은 於이다. '啟行'은 빈국(豳國)으로 옮겨 가는 것이다. '何有'는 어렵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豳 : 나라 이름 빈

孟子言公劉之民富足如此,是公劉好貨,而能推己之心以及民也。今王好貨,亦能如此,則其於王天下也,何難之有?
맹자는 '공유의 백성의 부유하고 풍족함이 이와 같았으니, 이것이 공유가 재물을 좋아하되 능히 자기의 마음을 미루어 백성들에게 미쳤기 때문입니다. 지금 왕께서 재물을 좋아하는 것이 또한 이와 같을 수 있다면 천하에 왕 노릇 함에 무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라고 말한 것이다. 

5(12)-5. 王曰:「寡人有疾,寡人好色。」對曰:「昔者大王好色,愛厥妃。詩云:『古公亶父,來朝走馬,率西水滸,至于岐下。爰及姜女,聿來胥宇。』當是時也,內無怨女,外無曠夫。王如好色,與百姓同之,於王何有?」

왕이 말했다. "과인에게 병통이 있으니, 과인은 여색을 좋아합니다."

聿 : 드디어 율 胥 : 볼 서

<맹자가> 대답하였다. "옛날에 태왕이 여색을 좋아하여 그 비를 사랑했습니다. 《시경》에 이르기를, '고공단보가 아침에 말을 달려 와서 서쪽 물가를 따라 기산 아래에 이르러 강녀와 함께 드디어 와서 집터를 보았다.'라고 하니 이 때를 당하여 안에는 원망하는 여자(과부)가 없고, 밖에는 비어 있는 남자(홀아비)가 없었으니 왕께서 만약 여색을 좋아하신다면 백성과 같이 하신다면 왕 노릇 하심에 무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王又言此者,好色則心志蠱惑,用度奢侈,而不能行王政也。
왕이 또 이것을 말한 것은 여색을 좋아하면 심지가 미혹되고 용도가 사치해져서 왕도정치를 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蠱 : 뱃속벌레 고

大王,公劉九世孫。詩大雅之篇也。古公,大王之本號,後乃追尊爲大王也。亶父,大王名也。來朝走馬,避狄人之難也。率,循也。滸,水涯也。岐下,岐山之下也。姜女,大王之妃也。胥,相也。宇,居也。曠,空也。無怨曠者,是大王好色,而能推己之心以及民也。
태왕은 공유의 9대손이다. 시는 〈대아·면〉 편이다. 고공은 태왕의 본래 칭호인데, 후에 추존되어 태왕이 되었다. 단보는, 태왕의 이름이다. 아침에 말을 달려 온 것은 적인의 난을 피한 것이다. '率'은 따름이다. '滸'는 물가이다. '岐下'는 기산의 아래이다. '姜女'는 태왕의 비이다. '胥'는 봄이다. '宇'는 집터이다. '曠'은 빔이다. '無怨曠'은 태왕이 여색을 좋아하되 능히 자기의 마음을 미루어서 백성들에게 미친 것이다.

楊氏曰:「孟子與人君言,皆所以擴充其善心而格其非心,不止就事論事。若使爲人臣者,論事每如此,豈不能堯舜其君乎?」
양씨가 말했다. "맹자가 인군과 말함에 모두 그 선한 마음을 확충하여 그 아닌 마음을 바로잡았고, 일에 나아가 일을 논함을 그치지 않았다. 만약 신하된 사람이 일을 논하기를 매번 이와 같이 한다면 어찌 그 군주를 요순으로 만들지 못하겠는가?"

愚謂此篇自首章至此,大意皆同。蓋鐘鼓、苑囿、遊觀之樂,與夫好勇、好貨、好色之心,皆天理之所有,而人情之所不能無者。然天理人欲,同行異情。循理而公於天下者,聖賢之所以盡其性也;縱欲而私於一己者,衆人之所以滅其天也。二者之間,不能以髮,而其是非得失之歸,相去遠矣。故孟子因時君之問,而剖析於幾微之際,皆所以遏人欲而存天理。其法似疏而實密,其事似易而實難。學者以身體之,則有以識其非曲學阿世之言,而知所以克己復禮之端矣。
내가 상각컨대 이 편은 첫 장으로부터 여기에 이르기까지 대의가 모두 같다. 대개 鐘鼓, 苑囿, 遊觀의 즐거움과 好勇, 好貨, 好色의 마음은 모두 천리에 있는 것이고 인정에 없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천리와 인욕은 행동은 같지만 성정은 다르다. 천리를 따라서 천하에 공정하게 하는 것은 성현이 그 성정을 다한 것이고, 마음대로 욕심을 부려 자기 한 몸에 사사롭게 하는 것은 대중이 그 천리를 없애는 것이다. 두 가지의 차이는 터럭만큼도 되지 못하지만 그 시비와 득실의 결론은 서로 떨어짐이 멀다. 그러므로 맹자가 당시 군주의 물음으로 인하여 기미의 틈에서 분석하였으니 모두 인욕을 막고 천리를 보전하는 것이었다. 그 법이 성긴 듯하나 실제로는 정밀하고, 그 일이 쉬운 듯하나 실제로는 어렵다. 배우는 사람이 몸으로써 체득하면 그것이 곡학아세하는 말이 아님을 알 것이고, 극기복례의 단서임을 알 것이다. 
posted by 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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