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학/논어집주 2020. 3. 23. 14:20

4(44)-1. 林放問禮之本。

임방이 예의 근본을 물었다.

林放,魯人。
임방은 노나라 사람이다.

見世之爲禮者,專事繁文,而疑其本之不在是也,故以爲問。
세상 중에서 예를 하는 사람이 오로지 번잡한 꾸밈만을 일삼는 것을 보고 그 근본이 이에 있지 않다고 의심하였으므로 물은 것이다.

4(44)-2. 子曰:「大哉問!

공자가 말했다. "크구나, 질문이여!

孔子以時方逐末,而放獨有志於本,故大其問。蓋得其本,則禮之全體無不在其中矣。
공자는 당시에 (사람들이) 지엽적인 것을 쫓았는데, 유독 임방만이 근본에 뜻을 둠이 있었으므로 그 질문을 크게 여긴 것이다. 대개 그 근본을 얻으면 예의 전체가 그 가운데에 있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4(44)-3. 禮,與其奢也,寧儉;喪,與其易也,寧戚。」

예는 사치스럽기보다는 차라리 검소해야 하고, 상은 잘 다스려지기보다는 차라리 슬퍼해야 한다.

與其A寧B : A하기보다는 차라리 B해야 한다

治也
'易'은 다스림이다.

孟子曰:「易其田疇。」在喪禮,則節文習熟,而無哀痛慘怛之實者也。戚則一於哀,而文不足耳。禮貴得中,奢易則過於文,儉戚則不及而質,二者皆未合禮。然凡物之理,必先有質而後有文,則質乃禮之本也。
맹자가 말했다. '그 밭두둑을 다스린다." 상례에 있어서는 규정은 익숙하나 애통해하고 슬퍼하는 실제가 없다. '戚'은 애통함에 한결같이 하고 꾸밈이 부족한 것이다. 예는 알맞음을 얻는 것을 귀하게 여기니 사치스럽고 다스려지면 꾸밈에 과하고, 검소하고 슬퍼하면 질박함에 미치지 못하니 두 가지가 모두 예에 맞지 않는다. 그런즉 무릇 사물의 이치는 질박함이 먼저 있고 나서 꾸밈이 있으니, 그렇다면 질박함은 바로 예의 근본이다.
怛 : 슬플 달

范氏曰:「夫祭與其敬不足而禮有餘也,不若禮不足而敬有餘也,喪與其哀不足而禮有餘也,不若禮不足而哀有餘也。禮失之奢,喪失之易,皆不能反本,而隨其末故也。禮奢而備,不若儉而不備之愈也;喪易而文,不若戚而不文之愈也。儉者物之質,戚者心之誠,故爲禮之本。」
범씨가 말했다. "무릇 제사는 공경함이 부족하여 예에 남음이 있기보다는 차라리 예가 부족하지만 공경함에 남음이 있는 것만 못하다. 상례는 애통함이 부족하여 예에 남음이 있기보다는 차라리 예가 부족하지만 애통함에 남음이 있는 것만 못하다. 예가 사치스러움에 잘못되는 것과 상이 다스려짐에 잘못되는 것은 모두가 능히 근본을 돌이킬 수 없어서 그 지엽에 빠지는 까닭이다. 예는 사치하여 갖추어짐이 검소하여 갖추어지지 않음의 나음만 못하고, 상은 다스려져 화려한 것이 슬퍼하며 화려하지 않음의 나음보다 못하다."

楊氏曰:「禮始諸飲食,故汙尊而抔飲,爲之簠、簋、籩、豆、罍、爵之飾,所以文之也,則其本儉而已。喪不可以徑情而直行,爲之衰麻哭踴之數,所以節之也,則其本戚而已。周衰,世方以文滅質,而林放獨能問禮之本,故夫子大之,而告之以此。」
양씨가 말했다. "예는 먹고 마시는 데에서 시작했다. 그러므로 웅덩이를 술잔으로 삼고 움켜쥐어 마셨는데 보, 궤, 변, 두, 뇌, 작의 꾸밈을 만든 것은 화려하게 하기 위해서였으니, 그 본질은 검소할 뿐이다. 상례는 감정을 바로 나타내어 그대로 행할 수 없으므로 상복, 마, 곡, 발구르기의 수를 만든 것은 절제하기 위해서였으니 그 근본은 슬퍼함일 뿐이다. 주나라가 쇠하자, 세상에서는 화려함으로써 질박함을 없앴는데 임방이 유독 능히 예의 본질을 물었으므로 부자가 그것을 크게 여겨 이로써 말한 것이다.
汙 : 웅덩이 우 抔 : 움켜쥘 부 簠 : 제기이름 보 簋 : 제기이름 궤 籩 : 제기이름 변 豆 : 제기이름 두 罍 : 술독 뢰 爵 : 술잔 작 踴 : 발구를 용
posted by 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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