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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24.10.26 :: 오언 001. 送裵二虯作尉永嘉(東韻)
  3. 2024.10.26 :: 양혜왕장구상01. 맹자가 양 혜왕을 만나다
  4. 2024.10.25 :: 맹자집주서설 2
한문학/두율분운 2024. 10. 26. 22:56

對雪

눈을 대하며

 

戰哭多新鬼,愁吟獨老翁。

싸워서 우니 새 귀신이 많고, 근심하여 읊는 이는 홀로 늙은 할아비로다.

亂雲低薄暮,急雪舞廻風。

어지러운 구름은 잠깐 저녁에 낮고, 빠른 눈은 회오리바람에 춤추는구나

瓢棄樽無淥,爐存火似紅。

박을 버리니 술잔에 거른 술이 없고, 화로가 있으니 불이 붉은 듯하도다.

數州消息斷,愁坐正書空。

몇몇 고을의 소식이 그치니, 시름하여 앉아서 바로 허공에 쓰노라.

 

《杜詩詳注》에, 이 시는 지덕 원년 10월(756)에 지어졌다고 한다.

淥은 어떤 본에는 綠으로 되어 있다.

書空: 《杜詩詳注》에, 《世說新語》를 인용하여, 은호가 버려져서 종일토록 허공에 글을 쓰는데,  '咄咄怪事(쯧쯧, 괴상한 일이로다.)'라는 네 글자였었다고 하였다(殷浩坐廢,終日書空,作咄咄怪事四字。).

 

《杜詩詳注》권4, 《分類杜工部詩諺解》 권12,《全唐詩》 권224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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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언 001. 送裵二虯作尉永嘉(東韻)  (0) 2024.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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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학/두율분운 2024. 10. 26. 22:33

<한국어>

送裵二虯作尉永嘉

永嘉 縣尉가 된 裵二虯를 전송하다

 

孤嶼亭何處,天涯水氣中。

孤嶼亭은 어디에 있는가, 하늘 가 물 기운 가운데 있도다.

故人官就此,絶境興誰同。

옛 사람이 벼슬이 이에 나아가니, 먼 땅에 흥취가 누구와 같겠는가.

隱吏逢梅福,遊山憶謝公。

숨은 관리는 梅福을 만나고, 산을 노니는 이 謝公을 생각하노라.

扁舟吾已僦,把釣待秋風。

작은 배 내가 이미 빌렸으니, 낚시를 잡고 가을 바람을 기다리노라.

 

《杜詩詳注》에 의하면, 이 시는 天寶 11년(752)에 지어졌다고 한다.

孤嶼亭: 《杜詩詳注》에 《寰宇記》를 인용하여, 孤嶼는 溫州 남쪽 4리 永嘉의 강 가운데에 있으며, 섬에는 두 봉우리가 있다고 하였다(孤嶼,在溫州南四里永嘉江中,嶼有二峰。).

興은 어떤 본에는 與로 되어 있다.

梅福: 《杜詩詳注》에 《漢書》를 인용하여, 梅福은 九江 사람으로 南昌尉에 임명되었으며, 王莽이 정권을 전횡하였을 때, 하루아침에 처자를 버리고 떠나, 회계산에 숨었는데, 지금에는 신선이 되었다고 전해진다고 하였다(梅福,九江人,補南昌尉,王莽專政,一朝棄妻子去,隱於會稽,至今傳以為仙。). 

謝公:《杜詩詳注》에 《宋書》를 인용하여, 謝靈運은 나가서 영가 태수가 되었는데, 군에 이름난 산과 물이 있으므로 마음대로 노닐었다고 하였다(謝靈運出為永嘉太守,郡有名山川,肆意遨遊。). 

 

<일본어>

裵二虯(はいじきゅう)が永嘉(えいか)に尉(い)を作るを送る

 

孤嶼亭(こしょてい)は何れの處(ところ)か、 天涯水気の中。

故人の官此に就く、 絶境の興誰か同じくせむ。

隠る吏(り)梅福(ばいふく)に逢い、 山に遊ぶは謝公(しゃこう)を憶(おも)ふ。

扁舟(へんしゅう)吾既に僦(やど) 、 釣を把(と)りて 秋風を待たむ。

 

<한자음 대조>

孤嶼亭何處,天涯水氣中。

고 서 정 하 처 천 애 수 기 중

gu1 yu3 ting2 he2 chu4 tian1 ya2 shui3 qi4 zhong1

コ ショ テイ カ ショ テン カイ スイ キ チュウ

평 측 평 평 측 평 평 측 측 평

 

故人官就此,絶境興誰同。

고 인 관 취 차 절 경 흥 수 동

gu4 ren2 guan1 jiu4 ci3 jue2 jing4 xing4 shei2 tong2

コ ジン カン シュウ シ セツ ケイ キョウ スイ トウ

측 평 평 측 측 측 측 측 평 평

 

隱吏逢梅福,遊山憶謝公。

yin3 li4 feng2 mei2 fu2 you2 shan1 yi4 xie4 gong1

イン リ ホウ バイ フク ユウ サン オク シャ コウ

측 측 평 평 측 평 평 측 측 평

 

扁舟吾已僦,把釣待秋風。

pian1 zhou1 wu2 yi3 jiu4 ba3 diao4 dai4 qiu1 feng1

ヘン シュウ ゴ イ シュウ ハ チョウ タイ シュウ ハン

평 평 평 측 측 측 측 측 평 평

 

《杜詩詳注권3, 《分類杜工部詩諺解》 권23, 《全唐詩》 권224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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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언 002. 對雪(東韻)  (0) 2024.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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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학/맹자집주 2024. 10. 26. 00:27
凡七章。
모두 일곱 장이다.

1-1. 孟子見梁惠王,

맹자가 양 혜왕을 만나뵈었는데,

梁惠王,魏侯罃也,都大梁,
양 혜왕은 위나라 후작 앵이니 도읍을 대량에 하고,
罃 : 물독 앵

趙氏曰:按魏初都安邑,在漢河東郡安邑縣。至惠王徙大梁,在漢陳留郡浚儀縣。

僭稱王,諡曰惠。《史記》惠王三十五年, 
왕을 참칭하고, 시호를 혜라고 하였다. 《사기》에 혜왕 35년에

新安倪氏曰:按《綱目》,周顯王三十三年乙酉,為惠王三十五年。

卑禮厚幣,以招賢者,而孟軻至梁。

예를 낮추고 폐백을 후하게 하여 현자들을 초빙하니 맹가가 양나라에 이르었다고 하였다.

問:孟子不見諸侯,其見惠王,何也?朱子曰:不見諸侯,不先往見也。見惠王,答其禮也。先王之禮,未仕不得見諸侯。時士鮮自重,而孟子猶守此禮,故所居之國,未仕必君先就見,然後往見。異國君不得越竟,必以禮先焉,然後往答其禮耳。《史記》得其事之實矣。

 

1-2. 王曰:叟不遠千里而來,亦將有以利吾國乎?

왕이 말했다. "어르신께서 천 리를 멀다고 하지 않으시고 오시니 또한 장차 내 나라를 이롭게 함이 있겠습니까?"

叟,長老之稱。王所謂利,蓋富國彊兵之類。
'叟'는 장로의 호칭이다. 왕이 말한 바 利는 대개 부국강병의 종류이다. 

西山真氏曰:當時王道不明,人心䧟溺,惟知有利而已。故惠王利國之問,發於見賢之初。

 

1-3. 孟子對曰:王何必曰利?亦有仁義而已矣。

맹자가 대답하였다. "왕께서는 하필 이로움을 말씀하십니까, 또한 인과 의만이 있을 뿐입니다.

仁者,心之德,愛之理。義者,心之制,事之宜也。  
仁은 마음의 덕이고 사랑의 원리이며 義는 마음의 제도이고 일의 마땅함이다. 이 두 구절은 곧 한 장의 취지이다. 아래 문장에 상세하게 말했으니 뒤에도 이를 모방한 것이 많다.

朱子曰:仁言心之徳,見得可包四者。義者心之制,只是說義。

〇心之德是混淪說愛之理,方說到親切處。心之制是說義之體,程子所謂處物為義是也。事之宜是就千條萬緒各有所宜處說。揚雄言義以宜之,韓愈言行而宜之之謂義。若只以義為宜,則義有在外意思。須如程子所言,則處物者在心而非外也。事之宜雖若在外,然所以制其宜則在心也。

〇心之制如利斧,事來劈將去,可底從這一邊去,不可底從那一邊去。

〇仁兼義言者,是言體。專言者,是兼體用而言。

〇仁對義為體用,仁又自有仁之體用,義又自有義之體用。

〇所謂事之宜,方是指那事物當然之理,未說到處置合宜處也。

〇問:人所以為性者五,獨舉仁義何也?曰:天地所以生物,不過隂陽五行,而五行實一隂陽也。人性雖有五,然曰仁義,則大端已舉矣。以隂陽五行言,則木火皆陽,金水皆隂,而土無不在。以性言,則禮者仁之餘,智者義之歸,而信亦無不在也。

又曰:禮者仁之著,智者義之藏。

又曰:仁存諸心,性之所以為體也。義制夫事,性之所以為用也。然以性言之則皆體也,以情言之則皆用也。以隂陽言之,則義體而仁用也。以存心制事言之,則仁體而義用也。錯綜交羅,惟其所當,而各有條理焉。

〇疊山謝氏曰:夫子罕言仁,不過於随事發見處言。孟子仁人心一語,直說仁之本體,此朱子於論註先言愛,而孟註先言心,直得孔孟之要㫖。

〇諸葛氏曰:語之為仁,猶曰行仁,以仁之用言,故集註先言愛之理。孟子此章以仁之體言,故《集註》先言心之德。

〇雲峯胡氏曰:心之德是體,愛之理是用,心之制是體,事之宜是用。《孟子》所言仁義,是包體用而言。《論語》所謂為仁,是以仁之用言。

此二句乃一章之大指,下文乃詳言之,後多放此。
이 두 구절은 곧 한 장의 취지이다. 아래 문장에 상세하게 말했으니 뒤에도 이를 모방한 것이 많다.

 

1-4. 王曰:何以利吾國?大夫曰:何以利吾家?士庶人曰:何以利吾身?上下交征利而國危矣。萬乗之國,弑其君者,必千乗之家。千乗之國,弑其君者,必百乗之家。萬取千焉,千取百焉,不為不多矣。苟為後義而先利,不奪不饜。

왕께서 말씀하시기를, '무엇으로 내 나라를 이롭게 할까'라고 하시면, 대부는 말하기를 '무엇으로 내 집을 이롭게 할까' 하며, 사와 서인은 말하기를, '무엇으로 내 몸을 이롭게 할까' 하여 위아래가 서로 이익을 취한다면 나라가 위태롭게 됩니다. 만승의 국가에서 그 군주를 시해하는 사람은 반드시 천승의 집이고 천승의 국가에서 그 군주를 시해하는 사람은 반드시 백승의 집입니다. 만에서 천을 취하며 천에서 백을 취함이 많지 않음이 아니지만 진실로 의로움을 뒤에 하고 이로움을 먼저 하면 빼앗지 않고는 만족할 수 없습니다.

饜 : 만족할 염

此는 言 求利之害하여 以明上文何必曰利之意也라 征은 取也니 上取乎下하고 下取乎上이라 故로 曰交征이라 國危는 謂將有弑奪之禍라 乘은 車數也라 萬乘之國者는 天子畿內地方千里에 出車萬乘이요 千乘之家者는 天子之公卿采地方百里에 出車千乘也라 千乘之國은 諸侯之國이요 百乘之家는 諸侯之大夫也라 
이는 이익을 구하는 해로움을 말해서 윗 문장에 '하필 이로움을 말씀하십니까'의 뜻을 밝힌 것이다. '征'은 취하는 것이니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서 취하고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서 취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서로 취한다고 한 것이다. '國危'는 장차 시해하고 빼앗는 재앙이 있을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乘'은 수레의 수이다. 만승의 국가는 천자의 경기 안에 땅이 방천리여서 만 승의 수레를 내보내고, 천승의 집은 천자의 공과 경으로 채지가 방천리여서 천 승의 수레를 내보낸다. 백승의 집은 제후의 대부이다.

《前漢·刑法志》:殷周以兵定天下矣。天下既定,戢藏干戈,教以文德,而猶立司馬之官,設六軍之衆。【司馬掌邦政,軍旅屬焉。萬二千五百人為軍,王則六軍也。】因井田而制軍賦,地方一里為井,井十為通,通十為成,成方十里。成十為終,終十為同,同方百里。同十為封,封十為畿,畿方千里。有稅有賦,稅以足食,賦以足兵。四井為邑,四邑為丘。丘,十六井也,有戎馬一疋,牛三頭。四丘為甸,甸,六十四井也,有戎馬四疋,兵車一乗,牛十二頭,甲士三人,【在車上者。】卒七十二人,干戈備具,是謂乗馬之法。【一井八家,一甸六十四井,計田五百七十六頃,五百一十二家出士卒七十五人,則殷周之制,不及七家給一兵也。又兵車一乗,有牛馬共十六,計三十二家又出一馬或牛也。】一同百里,提封萬井。【提,舉也,舉四封之内也。】除山川沈斥、城池邑居園囿術路三千六百井。【沈斥,水田舄鹵也。沈,謂淵深冰之下也。斥,鹹鹵之地。術,大道也。】定出賦六千四百井,戎馬四百疋,兵車百乗,此卿大夫采地之大者也。【采,官也。因官食地,故曰采地。】是謂百乗之家。一封三百一十六里,提封十萬井,定出賦六萬四千井,戎馬四千疋,兵車千乗,此諸侯之大者也,是謂千乗之國。天子畿方千里,提封百萬井,定出賦六十四萬井,戎馬四萬疋,兵車萬乗,故稱萬乗之主。戎馬車徒,干戈素具。

弑,下殺上也。饜,足也。言臣之於君,毎十分扶問反,下同。而取其一分,
'弑'는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죽이는 것이다. '饜'은 만족하는 것이다. 신하가 군주에 대하여 매번 십분의 1을 취하였으니,

新安陳氏曰:以制地定法,言天子萬乗,諸侯取十之一,得千乘。諸侯千乗,大夫取十之一,得百乗。

亦已多矣。若又以義為後而以利為先,則不弑其君而盡奪之,其心未肯以為足也。、
또한 이미 많은데 만약 또 의로움를 나중에 하고 이로움을 먼저 하면 그 군주를 시해하고 전부 빼앗지 않고는 그 마음에 즐겨서 만족하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慶源輔氏曰:《集註》發明不奪不饜,最說得人心求利之意出。蓋尚義則循理而有制,徇利則橫流而無節,故不弑逆而盡奪之,其心猶有所不足也。

〇新安陳氏曰:此章始末兼言仁義,中單言義者,蓋仁有温然慈愛之意,義有截然斷制之意,取其斷制以勝私去利,則義之用為尤切。兼言仁義,該體用之全也;單言義,取功用之切也。下文仁施於親,義施於君,此對君言之,故單言義亦通。

 

1-5. 未有仁而遺其親者也,未有義而後其君者也。

인하면서 그 부모를 버리는 사람은 없고 의로우면서 그 군주를 뒤로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此言仁義未嘗不利,以明上文亦有仁義而已之意也。遺,猶棄也。後,不急也。言仁者必愛其親,義者必急其君,故人君躬行仁義而無求利之心,則其下化之,自親戴於已也。
이것은 인과 의가 일찍이 이로운 것이 아님을 말하여 윗 문장의 '또한 인과 의만이 있을 뿐입니다'의 뜻을 밝힌 것이다. '遺'는 '棄(버리다)'와 같고, '後'는 급하게 여기지 않음이다. 어진 사람은 반드시 그 부모를 사랑하고 의로운 사람은 반드시 그 군주를 급하게 여김을 말한것이다. 그러므로 인군이 몸소 인과 의를 행하고 이익을 구하는 마음이 없으면 그 아랫사람이 교화되어서 스스로 자신을(군주를) 친애하고 떠받듦을 말한 것이다.

朱子曰:仁者,人也。其發則專主於愛,而愛莫切於愛親,故人仁則必不遺其親矣。義者,宜也。其發則事皆得其宜,而所宜者莫大於尊君,故人義則必不後其君矣。

〇慶源輔氏曰:仁義,人心之固有。人君躬行仁義以感之,而無求利之心以誘之,則人心之固有者亦皆興起,而自然尊君親上,有不待外求而勉強為之也。

〇雲峯胡氏曰:人性有五,仁義為先。人倫有五,君親為先。所以孟子揭此於七篇之首。然此二句本文仁義二字指下之人而言。《集註》必自人君躬行上說来者,蓋上文先言王而後言大夫士庶,惟上之人求利而後下皆求利,故《集註》於此揭人君躬行仁義而無求利之心,故其下化之而自有仁義之利也。

〇新安倪氏曰:孟子謂何必曰利,亦有仁義而已矣,是以利對仁義而分言之。《集註》於此節云仁義未嘗不利,是以仁義合利而貫言之,若與孟子上文有不同者,何哉?蓋有仁義中之利,有仁義外之利。外仁義以求利,孟子之所戒,此章之大㫖也。行仁義而得利,《集註》之所發明,亦孟子此節之本意也。不遺其親,即是親親之仁。不後其君,即是尊君之義,豈非仁義中自然之利乎?

 

1-6. 王亦曰仁義而已矣,何必曰利?

왕께서는 또한 인과 의를 말씀하셔야 할 뿐인데 하필 이로움을 말씀하십니까?"

重言之,以結上文兩節之意。
거듭 말하여 윗 문장 두 절의 뜻을 맺은 것이다.
〇此章言仁義根於人心之固有,天理之公也。利心生於物我之相形,人欲之私也。
이 장은 인의가 사람 마음의 고유한 것에서 근원하였으니 천리의 공변됨이고, 이롭게 여기는 마음은 물건과 내가 서로 나타남에서 생겼으니 인욕의 사사로움이다. 천리를 따르면 이익을 구하지 않아도 스스로 불리하지 않게 되고, 인욕을 따르면  이익을 구하나 얻지 못하고 해로움이 이미 따름을 말했으니 이른바 터럭만큼의 차이가 천 리만큼이나 어긋난다는 것이다. 이는 《맹자》라는 책에서 단서를 만들고 시작을 의탁한 깊은 뜻이니, 배우는 사람이 마땅히 정밀하게 살피고 밝게 분별해야 할 바이다.
繆 : 그릇될 류

慶源輔氏曰:利心人本無之,只縁有已有物,彼此相形,便生出較短量長、争多競少之意,遂欲巳長人短,人少己多,偏詖反側,惟已是徇,故曰人欲之私也。

循天理,則不求利而自無不利。徇人欲,則求利未得而害已隨之。
천리를 따르면 이익을 구하지 않아도 스스로 불리하지 않게 되고, 인욕을 따르면  이익을 구하나 얻지 못하고 해로움이 이미 따름을 말했으니 

慶源輔氏曰:循天理者,無所為而為,故不求利。然成已成物,各得其宜,故自無不利。徇人欲者,有所為而為,故雖求利而未必得,然妨人害物,招尤取禍,故害常随之。

所謂毫釐之差,千里之繆。此《孟子》之書所以造端託始之深意,學者所宜精察而明辨也。
이른바 터럭만큼의 차이가 천 리만큼이나 어긋난다는 것이다. 이는 《맹자》라는 책에서 단서를 만들고 시작을 의탁한 깊은 뜻이니, 배우는 사람이 마땅히 정밀하게 살피고 밝게 분별해야 할 바이다.
繆 : 그릇될 류

覺軒蔡氏曰:學者細玩而已矣與‘何必’之辭,見孟子語意嚴厲,斬釘截鐡,斷斷然只說仁義,更不向利上去。若董子正其誼不謀其利,明其道不計其功,意亦得其傳者歟。

〇雲峯胡氏曰:子朱子深有取於三山黄登之言,曰,天下一切人都把害對利,事事上只見得利害,不問義理。須知利字乃對義字,明得義利,便自無乖爭之事。集註所謂循天理則不求利而自無不利,是以利字與義字對,而利不出乎義之外。徇人欲則求利未得而害已随之,是以利字與害字對,而害已藏於利之中。

○太史公曰 
태사공이 말했다

新安陳氏曰:司馬談為太史令,子遷尊其父,故謂之公。遷繼其職,仍稱太史公。西漢龍門人。

余讀《孟子》書,至梁惠王問何以利吾國,未嘗不廢書而嘆也。曰:嗟乎!利誠亂之始也。夫子罕言利,常防其源也。故曰:放於利而行,多怨。自天子以至於庶人,好利之弊何以異哉!
. "내가 《맹자》 책을 읽다가 양 혜왕이 무엇으로 내 나라를 이롭게 할까 묻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일찍이 책을 덮고 탄식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아, 이로움은 진실로 어지러움의 시작이니 부자(夫子)가 이로움을 드물게 말한 것은 항상 그 근원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이익에 따라서 행동하면 원망이 많다'고 하였으니 천자로부터 서인에 이르기까지 이익을 좋아하는 폐단이 어찌 다르겠는가."

問:太史公之嘆,其果知《孟子》之學耶?朱子曰:未必知也。以其言之偶得其要,是以謹而著之耳。

程子曰:“君子未嘗不欲利,但專以利為心則有害。惟仁義則不求利,而未嘗不利也。”
정자가 말했다. "군자가 일찍이 이롭고자 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단지 오로지 이로움으로써 마음을 삼으면 해가 있다. 오직 인과 의를 따르면 이로움을 구하지 않아도 일찍이 불리하지 않다. 

慶源輔氏曰:利者,民生所不可無者也。故乾之四徳曰利,《書》之三事曰利。此所謂君子未嘗不欲利,但專欲求利,則不顧義理,專欲利己而必害於人。惟能循仁義而行,則體順有常,而自無不利。

當是之時,天下之人惟利是求,而不復知有仁義。故《孟子》言仁義而不言利,所以㧞本塞先,則反源而救其弊,此聖賢之心也。
이 때를 당하여 천하의 사람들이 오직 이익을 구하고 다시 인과 의가 있는 줄 알지 못했다. 그러므로 맹자가 인과 의를 말하고 이로움을 말하지 않은 것은 발본색원하여 그 폐단에서 구하려고 하는 까닭이니 이는 성현의 마음이다."

龜山楊氏曰:君子以義為利,不以利為利,使其民不後其君親,則國治矣,利孰大焉?故曰亦有仁義而已,何必曰利。

〇朱子曰:凡事不可先有箇利心,才說着利,必害於義。聖人做處只向義邊做,然義未嘗不利,但不可先說道利,不可先有求利之心。蓋縁本耒道理只有一箇仁義,更無别物事。義是事事要合宜,以利心為仁義,即非仁義之正,不待有不利,然後仁義阻也。

〇雲峯胡氏曰:孟子之得於子思者曰‘仁義所以利之也。及告梁王,則言仁義而不言利。蓋子思所言者,利物之利,梁王所問者利己之利也。程子以為㧞本塞源者,所以救當時流弊之極。朱子以為造端託始者,所以謹夫學者心術之初。

〇新安陳氏曰:《孟子》一書,以遏人欲、存天理為主,何必曰利?遏人欲也,亦有仁義存天理也。自此以後,鮮有不可以此六字該貫章㫖者。

〇東陽許氏曰:君子利己之心不可有,利物之心不可無。孟子不言利,是專攻人利己之心。絶利己之心,然後可行利物之事。然利物乃所以利己也。至於不遺親後君,則已亦無不利矣,但不可假仁義以求利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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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학/맹자집주 2024. 10. 25. 23:50

史記列傳》曰:孟軻,

《사기열전》에 이르기를, '맹자는 

趙氏曰:孟子,魯公族孟孫之後。《漢書云,字子車,一說,字子輿。
조씨가 말했다. "맹자는 노(魯)나라 공족 맹손의 후예이다." 《한서》의 주석에 이르기를 자는 子車라 하고, 일설에 자는 子輿라고 한다.

騶人也,

騶(추)나라 사람이니

騶,亦作鄒,本邾國也。
'騶'는 '鄒'라고도 쓰니 본래 주(邾)나라이다.

受業子思之門人。

자사의 문인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다.

子思,孔子之孫,名伋。《索隱》에 云,王劭以人爲衍字,而趙氏注及《孔叢子等書,亦皆云,孟子親受業於子思,未知是否。
자사는 공자의 손자이니 이름은 伋이다. 《사기색은》에 이르기를, 왕초(王劭)는 '人'이 연문이라고 했고, 조씨의 주석과 《공총자》 등의 책에 또한 모두 이르기를 맹자가 친히 자사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다고 했으니 옳은지 알 수 없다.

慶源輔氏曰:子思之門人無顯名於後者,而孟子真得子思之傳,則疑親受業於子思者為是,而《集註》兩存其說,蓋自古聖賢固有聞而知之者,不必待耳傳靣命而後得也。又以中庸一書觀之,所以傳授心法,開示藴奥如此其至,則當時門弟子豈無見而知之者?孟子從而受之,愈益光明,亦宜有之也。”

〇西山真氏曰:“七篇之書,其出乎中庸者非一。其曰四端云者,則未發之中,中節之和也。蓋仁義禮知,性也,所謂大本也。惻隱、羞惡、辭讓、是非,情也,所謂逹道也。其曰禹、稷、顔回同道,孔子仕止久速者,則君子而時中也。其曰鄉原亂德者,則小人而無忌憚也。其曰子莫執中者,時中之反也。其曰曽子、北宮黝之勇者,南北方之強也。其曰仁之實事親,義之實從兄,禮之實節文斯二者,則仁者人也,親親為大義者宜也,尊賢為大親親之殺,尊賢之等,禮所生也。其曰堯舜性之,湯武反之,則自誠明之謂性,自明誠之謂教也。其曰天下國家之本在身,則為天下國家有九經也。至於誠者天之道,思誠者人之道一章之義,悉本於中庸,尤足以見淵源之所自。

 

道旣通,

도에 이미 통달하였을 때에 

趙氏曰:孟子通五經,尤長於《》、《》。
조씨가 말했다. "맹자는 오경에 통달하고 특히 《시경》과 《서경》에 뛰어났다."

程子曰:孟子曰,可以仕則仕,可以止則止,可以久則久,可以速則速,孔子,聖之時者也,故知《易》者,莫如孟子。 又曰:王者之迹,熄而《詩》亡,《詩》亡然後,《春秋》作。又曰:《春秋》無義戰。又曰:《春秋》,天子之事,故知《春秋》者,莫如孟子。
정자가 말했다. "맹자가 말했다. '출사할 만하면 출사하고, 그만둘 만하면 그만 두고 오래 있을 만하면 오래 있고, 속히 떠날 만하면 속히 떠난 사람은 공자이니 성인의 때에 맞는 것이다.' 그러므로 《역경》을 안 사람은 맹자만한 사람이 없다. <맹자가> 또 말했다. '왕 된 사람의 발자취가 없어지니 《시경》 또한 없어졌다. 《시경》이 없어진 후에 《춘추》가 지어졌다' <맹자가> 또 말했다. '《춘추》에는 의로운 전쟁이 없다.' <맹자가> 또 말했다. '《춘추》는 천자의 일이다.' 그러므로 《춘추》의 일을 안 사람은 맹자만한 사람이 없다."

尹氏曰:以此而言,則趙氏謂孟子長於》、《而已,豈知孟子者哉?
윤씨가 말했다. "이것으로써 말한다면 조씨는 맹자가 《시경》과 《서경》에 뛰어났다고 말했을 뿐이다. 어찌 맹자를 안 사람이겠는가."

游事齊宣王,宣王不能用。適梁,梁惠王不果所言,則見以爲迂遠而闊於事情。

제(齊) 선왕(宣王)에게 유세하였으니 선왕(宣王)이 등용하지 못하였고 양(梁)나라로 가자 양(梁) 혜왕(惠王)도 말한 바를 실행하지 못했으니 우원하여 현실 사정과 거리가 멀다고 여겨졌다.

按史記,梁惠王之三十五年乙酉,孟子始至梁,其後二十三年當齊湣王之十年丁未,齊人 伐燕,而孟子在齊,故古史謂孟子先事齊宣王,後乃見梁惠王、襄王、齊湣王。獨孟子以伐燕爲宣王時事,與《史記》、《荀子》等書皆不合,而《通》以伐燕之歲,爲宣王十九年,則是孟子先游梁而後至齊見宣王矣。然《考異》亦無他據,又未知孰是也。
《사기》를 살펴보면, 양(梁) 혜왕(惠王) 35년 을유에 맹자가 양(梁)나라에 처음 이르렀고, 그 후 23년인 제(齊) 민왕(湣王) 10년 정미에 제(齊)나라가 연(燕)나라를 정벌했는데, 맹자가 제(齊)나라에 있었다. 그러므로 옛날 역사에는 맹자가 먼저 제(齊) 선왕(宣王)을 섬기고 후에 양(梁) 혜왕(惠王), 양왕(襄王), 제(齊) 민왕(湣王)을 만났다. 유독 《맹자》에만 연(燕)나라를 정벌한 것이 선왕(宣王) 때의 일이라고 한 것은 《사기》, 《순자》 등의 책과 모두 부합하지 않고, 《자치통감》에 연(燕)나라를 정벌한 때가 선왕(宣王) 19년이라고 하니 곧 이는 맹자가 먼저 양(梁)나라에 유세한 후에 제(齊)나라에 이르러 선왕(宣王)을 만난 것이다. 그러나 《고이》에도 또한 다른 근거가 없으니 또 어느 것이 옳은지 알 수 없다.

新安陳氏曰:謹按《通鑑綱目》,周顯王三十三年乙酉,孟軻至魏。慎靚王二年壬寅,魏君罃卒,孟軻去魏適齊。五年乙巳,燕君噲以國讓其相子之。赧王元年丁未,齊伐燕,取之。分注但云齊王,其下即書孟軻去齊。赧王二年戊申,即齊閔王地。元年,閔即湣字。伐燕一事,史記以為齊湣王十年丁未,蓋以顯王四十六年戊戌為齊閔王元年。通鑑以為宣王十九年丁未,蓋以顯王三十七年己丑為宣王元年。史記通鑑之不同蓋如此。證以通鑑綱目,丁未,宣王卒,閔王立,戊申方改元,則丁未乃宣王末年,閔王繼位之年,蓋未能的知伐燕之為先君事與嗣君事也。以淖齒事證之,閔王為是。孟子謂為宣王,恐傳冩之訛耳。無所折衷,姑以《綱目》為據云。

 

當是之時,秦用商鞅,楚、魏用吳起,齊用孫子、田忌,天下方務於合從(縱)連衡(橫),

이 때를 당하여 진(秦)나라는 상앙(商鞅)을 등용하고, 초(楚)나라와 위(魏)나라는 오기(吳起)를 등용하고, 제(齊)나라는 손자(孫子)와 전기(田忌)를 등용하여 천하가 막 합종책과 연횡책에 힘써서

〇新安陳氏曰:“蘇秦主合從之說,欲合六國為一以抗秦。張儀主連衡之說,則離六國之交以事秦。六國,謂楚、燕、齊、韓、趙、魏也。”

 

以攻伐爲賢,而孟軻乃述唐虞三代之德,是以所如者不合,退而與萬章之徒序》、《》,述仲尼之意,作《孟子》七篇。

공격과 정벌을 훌륭한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  맹가는 이에 당(唐)나라와 우(虞)나라 삼대의 덕을 기술했는데, 이 때문에 가는 곳마다 <뜻이> 합하지 아니하여 물러나 만장(萬章)의 문도들과 함께 《시경》, 《서경》을 서술하고 중니의 뜻을 서술하여 《맹자》 일곱 편을 지었다.  

趙氏曰:凡二百六十一章,三萬四千六百八十五字。
조씨가 말했다. "모두 261장에 34,685자이다."
韓子曰:孟軻之書,非軻自著,軻旣沒,其徒萬章、公孫丑相與記軻所言焉耳。
한자가 말했다. "맹가의 책은 맹가가 스스로 저술한 것이 아니고 맹자가 이미 죽은 후에 그 문도 만장(萬章)과 공손추(公孫丑)가 함께 맹가가 말한 것을 기록한 것일 뿐이다."
愚按:二說不同,《史記》近是。
내가 생각하건대 두 설이 같지 않은데, 《사기》가 옳을 것이다.

韓子名愈,字退之,諡文公,唐鄧州人。

〇問:序說謂《史記》近是,而《集註》於滕文公篇首章云門人不能盡記其辭,又第四章云記者之誤如何?朱子曰:前說是,後兩處失之。熟讀七篇,觀其筆勢,如鎔鑄而成,非綴緝可就也。《論語》便是記録綴緝所為,非一筆文字矣。

〇新安陳氏曰:愚聞或疑《易·繫辭》有子曰字,以為非孔子作。朱子曰:安知非後人所加,如周子自著《通書》,五峯刋之,每章加周子曰字。今讀《孟子》亦當㑹此意。

 

韓子曰:堯以是傳之舜,舜以是傳之禹,禹以是傳之湯,湯以是傳之文、武、周公,文、武、周公傳之孔子,孔子傳之孟軻,軻之死,不得其傳焉。荀與揚也,擇焉而不精,語焉而不詳。

한자(한유)가 말했다. "요(堯)는 순(舜)에게 이것을 전하고, 순(舜)은 우(禹)에게 이것을 전하고, 우(禹)는 이것을 탕(湯)에게 전하고 탕(湯)은 이것을 문왕(文王), 무왕(武王), 주공(周公)에게 전하고 문왕(文王), 무왕(武王), 주공(周公)은 공자에게 전하고 공자는 맹가에게 전했다. 맹가가 죽음에 그 전한 것을 얻을 수 없으니, 순자(荀子)와 양자(揚子)는 그것에 대해 선택했지만 정밀하지 못하였고, 그것에 대해 말했지만 상세하지 못했다."

焉 : 於之

程子曰:韓子此語,非是蹈襲前人,又非鑿空撰得出,必有所見。若無所見,不知言所傳者何事。
정자가 말했다. "한자의 이 말은 옛 사람의 말을 답습한 것이 아니고, 또한 빈 말을 뚫어서 지어 낸 것이 아니니, 반드시 본 것이 있었을 것이다. 만약 본 것이 없었다면 전한 바라고 말한 것이 무슨 일인지 알지 못한다."

荀子,名况,戰國時趙人。揚子,名雄,漢蜀郡人。

〇朱子曰:此非深知所傳者何事,則未易言也。堯舜之所以為堯舜,以其盡此心之體而已。禹、湯、文、武、周公、孔子傳之以至於孟子,其間相望有或數百年者,非得口傳耳授宻相付屬也,特此心之體隱乎百姓日用之間,賢者識其大,不賢者識其小,而體其全且盡者,則為得其傳耳。

 

〇又曰:孟氏,醇乎醇者也。荀與揚大醇而小疵。

또 말했다. "맹씨는 순수하고 순수한 사람이며, 순자(荀子)와 양자(揚子)는 크게 순수하기는 하지만 작은 허물이 있다."

程子曰:韓子論孟子甚善,非見得孟子意,亦道不到。其論荀、揚則非也。荀子極偏駁,只一句性惡,大本已失。揚子雖少過,然亦不識性,更說甚道?
정자가 말했다. "한자가 맹자를 논한 것은 매우 좋다. 맹자의 뜻을 얻지 못했다면 또한 말이 이렇지 않았을 것이다. 순자와 양자를 논한 것은 잘못되었다. 순자는 지극히 치우쳐서 잡스러우니 단지 본성이 악하다는 한 구절에 큰 뜻을 이미 잃어버렸다. 양자는 비록 허물이 적으나 또한 본성을 알지 못했으니 다시 무슨 도를 말하겠는가." 
甚 : 무엇 삼

《荀子·性惡篇》:人之性惡,其善者偽也。今人之性,生而有好利焉,有疾惡去聲焉,有耳目之欲好聲色焉。然則從人之性,順人之情,必出於争奪,合於犯分亂理而歸於暴。故必將有師法之化,禮義之道,音導,然後出於辭譲,合於文理,而歸於治。然則人之性惡明矣,其善者偽也。

〇《揚子·脩身篇》:人之性也善惡混,脩其善則為善人,脩其惡則為惡人。氣也者,所適善惡之馬也歟。

〇朱子曰:韓子謂荀、揚大醇小疵,非是。由田駢、慎到、申不害、韓非之徒觀之,則荀、揚為大醇耳。

〇程子說荀、揚等語,是就分金秤上說下來。

 

〇又曰:孔子之道大而能博,門弟子不能徧觀而盡識也,故學焉而皆得其性之所近。其後離㪚分處諸侯之國,又各以其所能授弟子,源逺而末益分。惟孟軻師子思,而子思之學出於曽子。自孔子没,獨孟軻氏之傳得其宗,故求觀聖人之道者,必自《孟子》始。

또 말했다. "공자의 도는 크고 능히 넓으니, 문하의 제자들이 두루 보고 다 알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그것에 대해서 배울 때에 모두 그 성질에 가까운 것을 얻었다. 그 후에 흩어져 나뉘어 제후의 나라에 거처하면서 또한 각각 그 능한 바로써 제자에게 전수해 주니, 근원이 멀어지고 끝이 더욱 나뉘었다. 오직 맹가는 자사를 사사하였는데, 자사의 학문은 증자에게서 나왔다. 공자가 죽은 후로부터 유독 맹가씨의 전함이 그 정통성을 얻었다. 그러므로 성인의 도를 관찰하기를 구하는 사람은 반드시 《맹자》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程子曰:“孔子言參也魯,然顔子没後,終得聖人之道者,曽子也。觀其啓手足時之言,可以見矣。所傳者子思、孟子,皆其學也。”
정자가 말했다. "공자는 參이 노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안자가 죽은 후에 끝내 성인의 도를 얻은 사람은 증자이다. 그 수족을 연 때의 말을 보면 볼 수 있을 것이니 전한 것은 자사와 맹자가 모두 그 학문이었다."

問:大是就渾淪處說,博是就該貫處說否?

朱子曰:韓子亦未必有此意,但如此看亦自好。

問學焉而皆得其性之所近。曰:政事者就政事上學得,文學者就文學上學得,德行言語者就德行言語上學得。

〇慶源輔氏曰:韓子但言孔門諸子惟曽子之學獨傳,而有子思、孟軻,然不言其所以獨傳之故,故程子又從而發明之,以為曽子只縁資質魯鈍,故用功於内者深篤確實。觀其啓手足之言,所謂一息尚存,此志不容少懈者,此聖道之所以終傳而有子思、孟子之學也。

 

〇又曰:揚子雲曰:古者楊墨塞路,孟子辭而闢之,廓如也。夫楊墨行,正道廢,孟子雖賢聖,不得位,空言無施,雖切何補?然賴其言,而今之學者尚知宗孔氏,崇仁義,貴王賤霸而已。其大經大法皆亡滅而不救,壞爛而不收,所謂存十一於千百,安在其能廓如也?然向無孟氏,則皆服左祍而言侏離矣。

또 말했다. "양자운이 말했다. '옛날에 양주(楊朱)와 묵적(墨翟)이 길을 막았는데 맹자가 말하고 물리쳐서 넓혀 놓았다.' 무릇 양주(楊朱)와 묵적(墨翟)이 행해지면 정도가 폐해지니 맹자가 비록 현성이었지만 지위를 얻지 못해서 빈 말로 시행할 수 없었을 것이니 비록 간절한들 무슨 보탬이 있었겠는가. 그러나 그 말을 힘입어서 지금 배우는 사람들이 아직도 공씨를 높이고 인의를 숭상하며 왕도를 귀하게 여기고 패도를 천하게 여겨야 함을 알고 있지만 그 큰 원리와 큰 법칙은 모두 망실되어 구하지 못하고 파괴되어 거두지 못하여 이른바 천과 백에서 십과 일이 남았다고 하니 그 능히 넓혔다는 것이 어디에 있는가.  그러나 지난번에 맹씨가 없었더라면 모두 옷깃을 왼쪽으로 하는 옷과 오랑캐의 말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張存中曰:《後漢·南蠻傳》云:衣裳班闌,語言侏離。侏離,蠻夷語言不分朗之聲也。

左衽 : 옷깃을 왼쪽으로 여미는 오랑캐의 복식

侏離 : 통하지 않는 오랑캐의 말

 

故愈嘗推尊孟氏,以為功不在禹下者,為此也。

그러므로 나는 일찍이 맹씨를 추존하여 공로가 우(禹)보다 아래에 있지 않다고 여긴 것은 이 때문이다.

新安陳氏曰:自夫楊墨行,至安在其能廓如也,皆是難辭。揚中之抑,只着向無孟氏二句幹轉,而斷之以孟氏功不在禹下,盡之矣。孟子闢楊、墨功不在禹治洪水下者,洪水溺人之身,異端䧟溺人心,心溺之禍甚於身溺故也。

 

或問於程子曰:孟子還可謂聖人否?程子曰:未敢便道他是聖人,然學已到至處。

혹자가 정자에게 물었다. "맹자도 또한 성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정자가 말했다. "곧 그 사람이 성인이라고 감히 말할 수는 없지만 배움이 이미 성인의 경지에 이르렀다."

愚按:至字,恐當作聖字。
내가 생각하건대 '至' 자는 아마도 마땅히 '聖' 자가 되어야 할 것 같다.

朱子曰:若以孟子比孔子時說得髙,然孟子道性善,言必稱堯舜,又見孟子說得實。

〇慶源輔氏曰:未敢便道他是聖人,以其行處言,學已到聖處,以其知處言也。孟子論大而化之之謂聖,聖而不可知之之謂神,與夫聖智巧力之譬,精宻切當,非想像臆度之所能及,是其學已到聖處也。然其英氣未化,有露圭角處,故未敢便道他是聖人,此其權度審矣。

 

〇程子又曰:孟子有功於聖門,不可勝言。仲尼只說一箇仁字,孟子開口便說仁義。仲尼只說一箇志,孟子便說許多飬氣出來。只此二字,其功甚多。

정자가 또 말했다. "맹자가 성인의 도에 공로가 있는 것을 모두 다 말할 수 없다. 중니는 단지 仁 한 가지만 말했지만 맹자는 입을 열면 곧 仁과 義를 말했으며, 중니는 단지 志 한 가지만을 말했지만 맹자는 곧 허다하게 養氣를 말했으니 단지 이 두 글자의 공이 심히 많다."

 

〇又曰:“《孟子》有大功於世,以其言性善也。”

또 말했다. "맹자가 세상에 공로가 큰 것은 본성이 선하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〇又曰:《孟子》性善養氣之論,皆前聖所未發。

또 말했다. "맹자의 性善과 養氣의 이론은 모두 이전의 성인들이 개발하지 못한 것이다."

慶源輔氏曰:言性善,使資質美者聞之,必求復其本然而充其善。資質不美者聞之,亦知所自警而不流於惡。言養氣,使氣質剛柔不齊者勇猛奮發於道義,而無㢲懦怯弱之弊。皆發夫子所未發,其功多蓋在此,此所以有大功於世也。

 

〇又曰:學者全要識時,若不識時,不足以言學。顔子陋巷自樂,以有孔子在焉。若孟子之時,世既無人,安可不以道自任?

또 말했다. "배우는 사람은 반드시 온전하게 때를 알아야 하니, 만약 때를 알지 못하면 학문을 말하기에 부족하다. 

 

〇又曰:《孟子》有些英氣,才有英氣,便有圭角,英氣甚害事。

또 말했다. "맹자는 영기가 조금 있었는데, 조금이라도 영기가 있으면 곧 규각이 있으니 영기는 일에 아주 해롭다. 

新安陳氏曰:英氣甚害事,蓋責賢者備之辭。

 

如顔子便渾厚不同。顔子去聖人只毫髪間。孟子大賢,亞聖之次也。

그러나 안자는 곧 혼후하여 같지 이와 않으니 안자는 성인과의 거리가 다만 터럭 하나 차이이고, 맹자는 큰 현인이나 아성의 다음이다." 

圭角 : 圭의 모서리처럼 말이나 행동이 모가 나서 남들과 잘 융합하지 못하는 것.

渾厚 : 화기 있고 인정이 두터운 것.

 

或曰:英氣見於甚處?曰:但以孔子之言比之便可見。且如氷與水精非不光,比之玉,自是有温潤含蓄氣象,無許多光耀也。

혹자가 말했다. "영기는 어느 곳에서 볼 수 있습니까?" 대답했다. "다만 공자의 말로써 비교하면 곧 알 수 있다. 또한 마치 얼음과 수정이 빛나지 않는 것은 아닌데 옥에 비교하면 자연히 이것은 따뜻하고 윤택하고 머금고 쌓인 기상이 있고 허다한 광휘가 없는 것과 같다."

覺軒蔡氏曰:聞之程子又曰,仲尼,元氣也。顔子,春生也。孟子,并秋殺盡見。仲尼,無所不包。顔子示不違如愚之學於後世,有自然之和氣,不言而化者也。孟子則露其材,蓋亦時然而已。仲尼,天地也。顔子,和風慶雲。孟子,泰山巖巖之氣象也。觀其言皆可見之矣。仲尼無迹,顔子㣲有迹,孟子其迹著。孔子儘是明快人,顔子儘豈弟,孟子儘雄辨。

〇慶源輔氏曰:英氣是剛明秀發之氣,此自是好底氣質,若消化未盡,猶有圭角,則有時而發。學要變化氣質,須渾然純是義理,如張子所謂‘徳勝於氣,性命於徳,方始是成就處。

又曰:言,心聲也,德之符也。有德者必有言,若就言上看得分明,則其德無餘藴矣。玉有温潤含蓄氣象,所以為寳。人有温潤含蓄氣象,所以為聖也。其理一也。

 

楊氏曰:《孟子》一書,只是要正人心,敎人存心養性,收其放心。至論仁、義、禮、智,則以惻隠、羞惡、辭讓、是非之心為之端。論邪說之害,則曰生於其心,害於其政。論事君,則曰:格君心之非,一正君而國定。千變萬化,只說從心上來。人能正心,則事無足為者矣。《大學》之脩身、齊家、治國、平天下,其本只是正心、誠意而已。心得其正,然後知性之善。故孟子遇人便道性善。

양씨가 말했다. "《맹자》 한 책은 단지 사람의 마음을 바로잡고자 했으니 사람들로 하여금 마음을 보존하고 본성을 길러서 그 방심을 거두는 것이다. 인의예지를 논함에 이르러서는 곧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으로써 단서를 삼고, 사악한 설의 해를 논함에 있어서는 곧 말하기를 '마음속에서 생겨서 그 정사에 해를 끼친다'고 하였고, 임금을 섬김을 논함에 있어서는 곧 말하기를 '임금의 마음의 잘못됨을 바로잡아야 한다. 한 번 군주를 바로잡으면 나라가 안정될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많은 변화를 단지 심상으로부터 말했다. 사람이 능히 마음을 바로잡을 수 있으면 일은 가히 할 것이 없다. 《대학》의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는 그 근본이 단지 마음을 바르게 하고 뜻에 성실히 하는 것 뿐이니 마음이 그 바름을 얻은 후에야 본성이 선함을 안다. 그러므로 맹자가 사람을 만날 때에는 곧 본성이 선하다고 말했다. 

朱子曰:心得其正,然後知性之善,語若有病。蓋知性之善,然後能正其心,心得其正,然後有以真知性之為善而不疑耳。

〇慶源輔氏曰:人能正心,則事無足為者,其語亦失之大快。觀《大學》正心之後,於脩身齊家治國平天下更有工夫在。

歐陽永叔,

그런데 구양영숙(歐陽永叔)은

名脩,廬陵人。

 

却言,聖人之教人,性非所先,可謂誤矣。人性上不可添一物,堯舜所以為萬世法,亦是率性而已。所謂率性,循天理是也。外邊用計用數,假饒立得功業,只是人欲之私,與聖賢作處,天地懸隔。

도리어 말하기를 '성인이 사람을 가르침에 본성은 먼저 한 것이 아니다.'라고 했으니 잘못되었다고 할 만하다. 사람의 본성 위에는 하나도 더할 수가 없으니 요순이 만세의 법이 된 이유도 역시 본성을 따랐기 때문이다. 이른바 본성을 따른다는 것은 천리를 따르는 것이니 이것이다. 이외에 계책을 쓰고 술수를 쓰면 가령 공업을 세우고 얻는다 하더라도 이것은 단지 인욕의 사사로움이니 성현이 하는 것과는 하늘과 땅 만큼의 현격한 차이가 있다."

假饒 : 假使

慶源輔氏曰:此數句,判斷二帝三王及漢唐以後為治之道所以不同,明白詳盡。

posted by 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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