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학/논어집주 2020. 2. 12. 12:34

11. 子曰 父在觀其志요 父沒觀其行이나 三年無改於父之道라야 可謂孝矣니라

공자가 말했다. "아버지가 생존해 있을 때에는 그 뜻을 보고 아버지가 죽었을 때는 그 행동을 보아야 하나 3년 동안 아버지의 도에 고침이 없어야 효라고 이를 만하다."

父在子不得自專이나 而志則可知요 父沒然後其行可見이라 故로 觀此足以知其人之善惡이라 然이나 又必能三年無改於父之道라야 乃見其孝니 不然이면 則所行雖善이나 亦不得爲孝矣니라 
아버지가 생존해 있을 때엔 자식이 스스로 제멋대로 할 수 없으나 뜻은 알 수 있고, 아버지가 죽은 이후에 그 행동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이것을 보면 그 사람의 선악을 알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또한 반드시 3년 동안 아버지의 도에 고침이 없어야 이에 그 효를 볼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행동하는 것이 비록 선하더라도 또한 효라고 할 수 없다. 
專 : 專橫

○尹氏曰 如其道면 雖終身無改라도 可也어니와 如其非道면 何待三年이리오 然則三年無改者는 孝子之心에 有所不忍故也니라 
윤씨가 말했다. "그 도와 같다면 비록 종신토록 고침이 없어도 좋지만 그 비도와 같다면 어찌 3년을 기다려야만 하는가. 그렇다면 3년 동안 고침이 없다는 것은 효자의 마음에 차마 하지 못하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游氏曰 三年無改는 亦謂在所當改而可以未改者耳니라

유씨가 말했다. "3년 동안 고침이 없다는 것은 또한 마땅히 고칠 것이 있지만 아직 고치지 않아도 좋다고 말한 것일 뿐이다."
posted by 취상
:
한문학/논어집주 2020. 2. 6. 16:09

10-1. 子禽問於子貢曰 夫子至於是邦也하사 必聞其政하시나니 求之與아 抑與之與아

자금이 자공에게 물었다. "부자께서 어떤 나라에 이르시면 반드시 그 정사를 들으시니 구해서입니까 아니면 주어서입니까?"

 이요 이며  이요     라하니   
자금은 성이 陳이고 이름은 亢이며, 자공은 성이 木이고 이름은 賜다. 모두 공자의 제자이다. 혹자가 말하기를 항은 자공의 제자라 하는데, 누가 옳은지 알지 못하겠다. '抑'은 반어사이다.

10-2. 子貢曰 夫子溫良恭儉讓以得之시니 夫子之求之也는 其諸異乎人之求之與인저

자공이 말했다. "부자께서는 온화하시고, 어지시고, 공손하시고, 검소하시고, 겸손하시어 그것을 얻으시니, 부자의 구하는 것은 아마도 다른 사람의 구하는 것과는 다를 것이다."

                    하여    이나 이나 이면   니라 
'溫'은 화하고 후한 것이다. '良'은 평평하고 곧은 것이다. '恭'은 씩씩하고 공경스러운 것이다. '儉'은 절제하는 것이다. '讓'은 겸손한 것이다. 다섯 가지는 부자의 성한 덕의 광휘가 다른 사람들에게 접하는 것이다. '諸'는 어조사이다. '人'은 타인이다. 부자가 일찍이 그것을 구하지 않았으나 단지 그 덕스러운 용모가 이와 같았을 뿐이다. 그러므로 당시의 군주가 공경하고 믿어서 스스로 그 정사로써 나아와서 물었을 뿐이며, 다른 사람이 반드시 그것을 구한 다음에 얻는 것과는 같지 않다. 성인이 지나가면 교화되고 마음속에 보존하면 신묘해지는 묘함을 쉽게 엿보아 측정할 수가 없다. 그러나 곧 이것을 가지고 관찰한다면 그 덕이 성함과 예가 공손해서 외면에서 원하지 않았음을 또한 볼 수 있을 것이다. 배우는 사람은 마땅히 마음을 침착하게 하고 힘써 배워야 할 것이다. 
易 : 평탄할 이

 이면  이면    이로되  하면 使어든  
사씨가 말했다. "배우는 사람이 성인의 위엄과 거동의 사이에서 관찰한다면 또한 덕을 나아가게 할 수 있다. 자공의 경우는 또한 성인을 잘 관찰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고 또한 덕행을 잘 말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성인과 떨어진 거리가 천오백년인데 이 다섯 가지로써 그 형용을 상상하여 본다면 아직도 능히 사람으로 하여금 흥분하여 일어나게 하는데, 하물며 직접 가르침을 받은 사람이겠는가."
炙 : 스승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음

 하사 이로되      니라
장경부가 말했다. "부자께서 어떤 나라에 이르시면 반드시 그 정사를 들으셨는데 능히 나라를 맡겨서 정사를 맡긴 사람은 있지 않았다. 대개 성인의 거동과 모습을 보고 그에게 고하기를 즐거워한 사람은 떳떳함을 잡고 덕을 좋아하는 어진 마음을 가졌으나 사사로운 욕망이 해친 것이다. 이 까닭으로 끝내 등용할 수 없었던 것이다."

posted by 취상
:
한문학/논어집주 2020. 2. 6. 15:35

9. 曾子曰 愼終追遠이면 民德이 歸厚矣리라

증자가 말했다. "상례를 신중히 하고 오랜 조상을 추모하면 백성의 덕이 후한 데로 돌아갈 것이다."

   이라  하여   어늘 하고  어늘       니라
'終'은 상례에 그 예를 다하는 것이고, '遠'은 제사에 그 정성을 다하는 것이다. '백성의 덕이 후한 데로 돌아간다.'는 아래 백성이 교화되어 그 덕이 또한 후한 데로 돌아가는 것을 말함이다. 대개 마치는 것은 사람이 소홀이 여기기 쉬운 것이나 능히 삼갈 수 있고, 먼 조상은 사람이 잊기 쉬운 것이나 능히 추모할 수 있으면 후한 덕이다. 그러므로 이로써 스스로 한다면 자기의 덕이 후해지는 것이고, 아래 백성이 교화되면 그들의 덕이 또한 후한 데로 돌아간다.

posted by 취상
:
한문학/논어집주 2020. 2. 6. 15:28

8-1. 子曰 君子不重則不威요 學則不固니라

공자가 말했다. "군자가 중후하지 않으면 위엄도 없고 배우면 견고하지 못하다.

 이요  이요      이면 하여  
'重'은 중후함이고 '威'는 위엄이며 '固'는 견고함이다. 외면에 가벼운 사람은 반드시 내면도 견고할 수 없다. 그러므로 중후하지 않으면 위엄이 없어 배운 것이 또한 견고하지 못한 것이다.

8-2. 主忠信하며 

충과 신을 주장하며

이면 하여 하고 이라  이니라 
사람이 충성스럽고 미덥지 않으면 일이 모두 바탕이 없어 악을 행하기가 쉽고 선을 행하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배우는 사람은 반드시 이것으로써 주장을 삼는 것이다.

 이니 이요 하여   이면 
정자가 말했다. "사람의 도는 오직 충과 신에 있으니 성실하지 않으면 사물이 없다. 또한 나가고 들어옴에 때가 없어 그 향하는 바 알지 못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이니 만약 충과 신이 없다면 어찌 다시 사물이 있을 수 있겠는가."

8-3. 無友不如己者하며

자기와 같지 않은 사람을 벗하지 말며

 이니   이니  이니라
'無'는 '毋'와 통하니 금지하는 말이다. '友'는 인을 돕는 것이니 자기와 같지 않으면 이익이 없고 손해만 있다.

8-4. 過則勿憚改니라

잘못이 있으면 고치기를 꺼리지 말아야 한다."

    이면 이라   니라 
'勿' 또한 금지하는 말이다. '憚'은 두려워하여 어려워하는 것이다. 스스로 다스려 용감하지 않으면 악이 날로 자란다. 그러므로 잘못이 있으면 마땅히 빨리 고쳐야 하고 두려워하고 어려워하여 구차히 편안하게 있으면 안 된다.

   이면 니라 
정자가 말했다. "학문의 도는 다른 것이 없다. 그것이 선하지 않음을 알았다면 빨리 고쳐서 선을 따르는 것일 뿐이다."

  니라
정자가 말했다. "군자가 스스로 닦는 도는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한다."

  하고   하고  이나  하여    하시니라
유씨가 말했다. "군자의 도는 위엄과 중후함으로써 바탕을 삼고, 배워서 완성한다. 배움의 도는 반드시 충과 신으로써 주장을 삼고 자기보다 나은 사람으로써 돕는 것이다. 그러나 혹시 잘못을 고치는 데 인색하면 끝내 도에 들어갈 수 없어 반드시 현자가 선한 도로써 일러 주는 것을 즐기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잘못이 있으면 고치기를 꺼리지 말아야 한다'로 끝맺은 것이다."
posted by 취상
:
한문학/논어집주 2020. 2. 5. 15:19

7. 子夏曰 賢賢하되 易色하며 事父母하되 能竭其力하며 事君하되 能致其身하며 與朋友交하되 言而有信이면 雖曰未學이라도 吾必謂之學矣라호리라

자하가 말했다. "현자를 높이되 여색을 좋아하는 마음과 바꾸어서 하며, 부모를 섬기되 능히 그 힘을 다해서 하며, 임금을 섬기되 능히 그 몸을 바치며, 벗과 사귀되 말함에 성실함이 있다면 비록 배우지 않았다고 말하더라도 나는 반드시 그를 배웠다고 말하겠다."

  이요 이라 이면        이니    이면 인댄  이라도 라하니라 
자하는 공자의 제자이니 성은 卜이고 이름은 商이다. 현인을 높이되 그 여색을 좋아하는 마음과 바꾸어서 하면 선을 좋아하고 성실함이 있는 것이다. '致'는 '委(맡기다)'와 같으니 그 몸을 맡기고 바치는 것은 그 몸을 소유하지 않음을 말하는 것이다. 네 가지는 모두 인륜의 큰 것이다. 그것을 행함에 반드시 그 성실함을 다해야 하니, 배움은 이와 같음을 구할 뿐이다. 그러므로 자하는 이와 같음에 능한 사람이 있으면 진실로 생질(타고난 자질)이 아름답지 않더라도 반드시 그 학문에 힘씀이 지극할 것이니 비록 혹자가 <그를> 일찍이 배우지 않았다고 여기더라도 나는 반드시 그를 이미 배웠다고 말하겠다. 

       리오 이로되  하니     하니라
유씨가 말했다. "삼대의 학문이 모두 인륜을 밝히는 것이었으니 이 네 가지에 능하면 인륜에 두텁다. 배워서 도를 삼는 것이 어찌 이보다 더한 것이 있겠는가. 자하는 문학으로 이름이 났는데 그 말이 이와 같으니 옛날 사람이 배웠다고 말한 바를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학이 한 편은 대저 모두 근본에 힘씀에 있다."

   이나  하여  이니  니라
오씨가 말했다. "자하의 말은 그 뜻이 좋다. 그러나 어기(語氣) 사이에 억제하고 찬양함이 너무 지나쳐서 그 흐름의 폐단이 혹시 배움을 폐하려는 데 이를지도 모른다. 반드시 윗 장 부자의 말과 같이 한 이후에야 폐단이 없을 것이다."

posted by 취상
:
한문학/논어집주 2020. 2. 5. 15:00

6. 子曰 弟子入則孝하고 出則弟하며 謹而信하며 汎愛衆하되 而親仁이니 行有餘力이어든 則以學文이니라

공자가 말했다. "제자는 들어와서는 효도하고, 나가서는 공손하며, <행동을> 삼가고 <말을> 미덥게 하며 널리 사람들을 사랑하되 인한 사람을 친하게 대해야 하니 행하고도 여력이 있다면 글을 배워야 한다."

       이라      이라    이라 
'謹'은 행동에 일정함이 있는 것이고, '信'은 말에 성실함이 있는 것이다. '汎'은 넓음이고, '衆'은 많은 사람을 말한다. '親'은 가까이 하는 것이고, '仁'은 인한 사람을 말한다. '力'은 '日(여가)'라는 말과 같다. '以'는 이용함이다. '文'은 《시경》과 《서경》, 육예의 文이다.

  이니  니라
정자가 말했다. "제자의 직분은 힘에 남음이 있으면 글을 배우는 것이니 그 직분을 닦지 않고 글을 먼저 하는 것은 자기를 위한 학문이 아니다."

     하여  리라
윤씨가 말했다. "덕행은 근본이고 문예는 끝이다. 그 본말을 궁구하여 선후를 알면 덕에 들어갈 수 있다."

 이면 이요 이면 니라
홍씨가 말했다. "여력이 있지 않은데도 글을 배우면 글이 그 질박함을 없애게 되고, 여력이 있는데도 글을 배우지 않으면 질박함에 치우쳐 촌스럽게 된다."
質 : 질박함(순수함) 勝 : 치우치다 野 : 촌스럽다.

 이면 하고 하여   니라
내가 생각하건대, 힘써 행하고도 글을 배우지 않으면 성현이 만든 법을 고려하지 못하고 일의 이,치가 당연함을 알지 못해서 행하는 것이 혹 사사로운 뜻에서 나올 것이니, 단지 촌스러움에 잘못될 뿐만이 아닐 것이다. 

posted by 취상
:
한문학/논어집주 2020. 2. 2. 19:40

5. 子曰 道千乘之國호되 敬事而信하며 節用而愛人하며 使民以時니라

공자가 말했다. "천승의 나라를 다스리되 일을 공경하고 미덥게 처리하며, 씀씀이를 절약하고 사람들을 사랑하며, 백성을 때에 맞게 부려야 한다.

   이니         하니  
道는 다스림이다. 乘은 제후의 나라이니 그 땅이 병거 천 승을 내보낼 수 있다. 敬은 一을 주장하여 <다른 곳으로> 감이 없는 것을 말하니 일을 공경하고 미덥게 처리한다는 것은 그 일을 공경하게 처리하여 백성에게 미덥게 하는 것이다. 時는 농사하는 틈의 때(농한기)를 말한다. 나라를 다스리는 개요가 이 다섯 가지에 있음을 말한 것이니 또한 근본에 힘쓰는 뜻이다. 

 이나 이나    이나 하니  이면    니라 
정자가 말했다. "이 말한 것이 지극히 얕지만 당시의 제후들이 과연 이를 능히 행할 수 있었으면 또한 그 나라를 다스리는 데 충분했을 것이다. 성인은 말이 비록 지극히 가깝지만 위아래로 모두 통하니 이 세 가지 말한 것을 만약 그 지극함에까지 미루어 본다면 요순의 정치도 또한 이에 불과하다. 만약 범인들이 말한다면 가까우면 천근할 뿐이다."

 이요     니라  하여 하고 이라하니   이라   이라 이나 使 하여 이나 리라 이나    이면 이나 이니라
양씨가 말했다. "윗사람이 공경하지 않으면 아랫사람이 태만하고 <윗사람이> 미덥지 않으면 <아랫사람이> 의심하니 아랫사람이 태만하고 의심하면 일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일을 공경하고 미덥게 처리한다는 것은 몸소 먼저 하는 것이다. 《역경》에 이르기를, '제도로써 절제하여 재물을 상하게 하지 않고 백성을 해치지 않는다'라고 하였으니 대개 씀씀이를 사치스럽게 하면 재물을 상하게 하고, 재물을 상하게 하면 반드시 백성을 해치는 데까지 이른다. 그러므로 백성을 사랑함은 반드시 씀씀이를 아끼는 것을 먼저 한다. 그러나 그들을 그 때에 맞게 부리지 않는다면, 본업(농업)에 힘쓰는 사람들이 스스로 다할 수 없게 되어 비록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나 사람들이 그 혜택을 입지 못한다. 그러나 이는 단지 <위정자가 마음에> 두어야 할 것이고 정치를 하는 데에는 이르지 않는다. 진실로 <위정자에게> 이 마음이 없다면 비록 정치가 있으나 행해지지 않을 것이다."

  니라
호씨가 말했다. "무릇 이 여러 가지는 또한 모두 공경함을 위주로 한다."

 하여 하니 니라
내가 생각하건대 다섯 가지가 반복하여 서로 원인이 되어 각자 차례가 있으니 읽는 사람은 마땅히 세세하게 미루어 보아야 한다.

 

posted by 취상
:
한문학/논어집주 2020. 2. 2. 19:14

4.  曾子曰 吾日三省吾身하노니 爲人謀而不忠乎아 與朋友交而不信乎아 傳不習乎아니라

증자가 말했다. "나는 매일 세 가지로 내 몸을 반성한다. 남을 위해 도모함에 충성스럽지 아니했는가, 벗과 사귐에 미덥지 못했는가, 전해받은 것을 익히지 않았는가이다."

  이요 輿 이요 이라      하사 하고 하여  하시니   니라 
증자는 공자의 제자이니 이름은 이고, 자는 輿이다. 자기 마음을 다하는 것을 忠이라고 하고, 성실히 하는 것을 信이라고 한다. 傳은 스승에게서 전수받은 것이고 習은 자기에게 익숙하게 함이다. 증자가 이 세 가지로써 매일 그 몸을 반성하여 <허물이> 있으면 고치고 <허물이> 없으면 더욱 힘써서 그 스스로 다스리는 것에 성실하고 간절함이 이와 같으니, 배움의 근본을 얻었다고 말할 수 있고 세 가지의 순서는 또한 충과 신으로써 전수받은 것을 익히는 근본을 삼아야 한다. 

 이라  하시니라
윤씨가 말했다. "증자는 지킴이 간략하였다. 그러므로 어떤 일을 할 때마다 반드시 자기에게서 구했다."
  이나 이어늘    하니       
사씨가 말했다. "여러 제자의 학문이 모두 성인에게서 나왔으나 그 후에 더욱 멀어져 더욱 그 참된 것을 잃었는데 유독 증자의 학문은 오로지 내면에 마음을 썼다. 그러므로 전해 준 것에 폐단이 없으니 자사, 맹자에게서 관찰하면 볼 수 있을 것이다. 애석하다, 그 아름다운 말과 선한 행실이 세상에 모두 전해지지 않았음이여! 그 다행히 남아 있어 없어지지 아니한 것에 배우는 사람은 마음을 다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泯 : 없어질 민

 

'한문학 > 논어집주'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학이06. 제자가 해야 할 일  (0) 2020.02.05
학이05. 제후 나라를 다스리는 법  (0) 2020.02.02
학이03. 교언영색  (0) 2020.02.02
학이02. 군자는 근본을 힘쓴다.  (0) 2020.02.02
학이01. 군자의 조건  (0) 2020.02.02
posted by 취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