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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2.25 :: 위정01. 정사를 함에 덕으로써 하는 것
- 2020.02.14 :: 논어집주서설
- 2020.02.14 :: 학이16. 내가 남을 알지 못함을 근심하라
- 2020.02.14 :: 학이15. 자공과는 시를 말할 수 있겠구나
- 2020.02.14 :: 학이14. 배움을 좋아한다는 것
- 2020.02.12 :: 학이13. 높일 만한 사람
- 2020.02.12 :: 학이12. 예의 쓰임 중 귀한 것
2(18). 子曰:「詩三百,一言以蔽之,曰『思無邪』。」
공자가 말했다. "《시경》 300편을 한마디로 덮을 수 있으니, 이를테면 생각에 간사함이 없는 것이다."
詩三百十一篇,言三百者,擧大數也。蔽,猶蓋也。「思無邪」,魯頌駉篇之辭。
《시경》은 311편인데 300편이라고 말한 것은 큰 수를 든 것이다. '蔽'는 '蓋(덮다)'와 같다. '思無邪'는 《노송》 〈경〉 편의 말이다.
駉 : 말건장할 경
凡詩之言,善者可以感發人之善心,惡者可以懲創人之逸志,其用歸於使人得其情性之正而已。然其言微婉,且或各因一事而發,求其直指全體,則未有若此之明且盡者。故夫子言詩三百篇,而惟此一言足以盡蓋其義,其示人之意亦深切矣。
무릇 시의 말이 선하다는 것은 사람의 착한 마음을 감동시켜서 발할 수 있는 것이고, 나쁘다는 것은 사람의 안일한 뜻을 징계하는 것이니 그 쓰임이 사람으로 하여금 그 성정의 바름을 얻는 데 귀결될 뿐이다. 그러나 그 말이 미묘하고 완곡하며 또 혹 각각 한 가지 일을 따라 발하여 그 전체를 직접 가리킨 것을 찾는다면 이와 같이 명확하고 또 뜻을 다한 것이 있지 않다. 그러므로 부자가 '《시경》 300편에 오직 이 한 마디 말이 충분히 그 뜻을 다 덮을 수 있다.'라고 말한 것이니 그 사람에게 보인 뜻이 역시 깊고 간절하다.
創 : 징계할 창
程子曰:「『思無邪』者,誠也。」
정자가 말했다. "생각에 간사함이 없는 것은, 진실함이다."
范氏曰:「學者必務知要,知要則能守約,守約則足以盡博矣。經禮三百,曲禮三千,亦可以一言以蔽之,曰『毋不敬』。」
범씨가 말했다. "배우는 사람은 반드시 요점을 아는 데 힘써야 한다. 요점을 알면 간략함을 지킬 수 있고, 간략함을 지키면 충분히 해박함을 다할 수 있을 것이다. 경례 300가지와 곡례 3000가지 역시 한 마디로 덮을 수 있으니, 이를테면 불경하지 말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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凡二十四章。
모두 24장이다.
1(17). 子曰:「爲政以德,譬如北辰,居其所而衆星共之。」
공자가 말했다. "정사를 함에 덕으로써 하는 것은 비유하자면 북극성과 같아서, 그 자리에 있는데 많은 별들이 그것을 향하는 것과 같다."
辰 : 별 신
政之爲言正也,所以正人之不正也。德之爲言得也,得於心而不失也。北辰,北極,天之樞也。居其所,不動也。共,向也,言衆星四面旋繞而歸向之也。
'政'이라고 말한 것은 바로잡는 것이니 사람의 바르지 못한 것을 바로잡는 것이다. '德'이라고 말한 것은 얻는 것이니 마음에서 얻고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다. '北辰'은 북극성이니 하늘의 지도리이다. 그 자리에 거하면서 움직이지 않는다. '共'은 향하는 것이니 많은 별들이 사면으로 둘러싸서 그것을 향함을 말한다.
繞 : 두를 요
爲政以德,則無爲而天下歸之,其象如此。
정사를 함에 덕으로써 하면 하지 않아도 천하가 그에게 돌아오니, 그 형상이 이와 같다.
程子曰:「爲政以德,然後無爲。」
정자가 말했다. "정사를 함에 덕으로써 한 이후에야 하지 않을 수 있다."
范氏曰:「爲政以德,則不動而化、不言而信、無爲而成。所守者至簡而能御煩,所處者至靜而能制動,所務者至寡而能服衆。」
범씨가 말했다. "정사를 함에 덕으로써 하면 움직이지 않아도 교화되고, 말하지 않아도 믿고, 하지 않아도 이루어진다. 지키는 것이 지극히 간결한데도 번잡함을 제어할 수 있고, 처하는 곳이 지극히 고요한데도 움직임을 제어할 수 있으며, 힘쓰는 것이 지극히 적은데도 많은 사람을 복종시킬 수 있다.
※현토하는 것이 너무 번잡해서 이제부터는 표점으로만 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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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記世家曰 孔子는 名丘요 字仲尼니 其先은 宋人이라 父는 叔梁紇이요 母는 顏氏니 以魯襄公二十二年庚戌之歲十一月庚子에 生孔子於魯昌平鄉陬邑하니 爲兒嬉戲에 常陳俎豆하고 設禮容이러시니 及長爲委吏하사는 料量平하고
《사기 세가》에 이르기를, 공자의 이름은 丘이고 자는 仲尼이니 그 선조는 송(宋)나라 사람이다. 아버지는 숙량흘이고 어머니는 안씨이니 노(魯)나라 양공 22년 경술년 11월 경자일에 노(魯)나라 창평향 추(鄹)읍에서 공자를 낳았다. 어려서 놀 때에는 항상 조두를 진열하고 예의 바른 용모를 갖추었다. 자라서는 위리가 되어 급료의 분량을 공평하게 하였다.
紇 : 묶을 흘 陬 : 땅 이름 추 嬉 : 놀 희 俎 : 도마 조 豆 : 제기 두
委吏 : 곡식의 출납을 관장하는 관리
委吏는 本作季氏史로되 索隱云一本에 作委吏라하여 與孟子合하니 今從之하노라
위리는 원래 계씨사로 되어 있었는데 《사기색은》에 이르기를, 어떤 책에는 위리라고 되어 있다고 하여 《맹자》와 부합하니 지금은 이것을 따른다.
爲司職吏하사는 畜蕃息하시니라
사직리가 되어서는 가축이 번식하였다.
息 : 번식할 식
職은 見周禮牛人이라 讀爲樴이니 義與杙同하니 蓋繫養犧牲之所라 此官은 卽孟子所謂乘田이라
'職'은 《주례》 〈우인〉을 보면 '樴'으로 읽으니 의미가 '杙'과 같다. 아마도 희생을 매어 놓고 기르는 장소일 것이다. 이 관직은 곧 《맹자》에서 '승전'이라고 말한 것이다.
樴 : 말뚝 직 杙 : 말뚝 익
適周하사 問禮於老子하시고 旣反而弟子益進이러라
주(周)나라에 가서 노자에게 예를 묻고 돌아오니 제자들이 더욱 나아왔다.
昭公二十五年甲申은 孔子年三十五라 而昭公奔齊魯亂하니 於是에 適齊하여 爲高昭子家臣하사 以通乎景公하시다
소공 25년 갑신은 공자의 나이 35세이니, 소공이 제(齊)나라로 도망가서 노(魯)나라가 혼란하였다. 이에 제(齊)나라로 가서 고소자의 가신이 되어 경공과 통하였다.
有聞韶問政二事라
소악을 듣고, 정사를 물은 두 가지 일이 있다.
公欲封以尼谿之田한대 晏嬰이 不可라하니 公惑之어늘
공이 이곡의 밭으로 봉하고자 하였으나 안영이 불가하다고 하니 공이 미혹되었다.
有季孟吾老之語라
'季孟'과 '吾老'의 말이 있다.
孔子遂行하사 反乎魯하시니라 定公元年壬辰은 孔子年四十三이라 而季氏強僭하고 其臣陽虎作亂專政이라 故로 孔子不仕하시고 而退修詩書禮樂하시니 弟子彌衆이러라
공자가 드디어 떠나 노(魯)나라로 돌아왔다. 정공 원년 임진은 공자의 나이 43세였는데, 계씨가 강해서 참람하고, 그 가신 양호가 난을 일으켜 정사를 전횡하였다. 그러므로 공자가 벼슬하지 않고, 물러나 《시경》, 《서경》, 《예기》, 《악경》을 닦으니 제자가 더욱 많아졌다.
九年庚子는 孔子年五十一이라 公山不狃以費畔季氏하고 召孔子어늘 欲往而卒不行하시니라
9년 경자는 공자의 나이 51세이다. 공산불뉴가 비읍(費邑)을 가지고서 계씨를 배반하고 공자를 불렀는데, 가고자 하였으나 끝내는 가지 않았다.
畔 : 배반할 반
有答子路東周語라
자로에게 동주로 답한 말이 있다.
定公이 以孔子爲中都宰하니 一年에 四方則之라 遂爲司空하시고 又爲大司寇하시다 十年辛丑에 相定公하사 會齊侯于夾谷하시니 齊人歸魯侵地하다 十二年癸卯에 使仲由爲季氏宰하여 墮三都하고 收其甲兵이러니 孟氏不肯墮成이어늘 圍之不克하다
정공이 공자를 중도재로 삼으니 1년만에 사방이 다스려졌다. 드디어 사공으로 삼고 또 대사구로 삼았다. 10년 신축에 정공을 도와 제후(齊侯)와 협곡에서 회맹하니 제(齊)나라가 노(魯)나라에게서 빼앗은 땅을 돌려주었다. 12년 계묘에 중유로 하여금 계씨의 가재(家宰)가 되게 하여 세 도읍을 허물고 그 갑옷과 병기를 거두려 했다. 맹씨가 기꺼이 성(成) 땅을 허물지 않았으므로 포위하였으나 이기지 못하였다.
墮 : 허물 휴
十四年乙巳는 孔子年五十六이라 攝行相事하사 誅少正卯하시고 與聞國政하시니 三月에 魯國大治라 齊人이 歸女樂以沮之하니 季桓子受之하고 郊又不致膰俎於大夫한대 孔子行하시니라
14년 을사는 공자의 나이 56세였다. 재상의 일을 대신 행하여 소정묘를 주살하고 국정에 참여하여 들으니, 3개월만에 노(魯)나라가 크게 다스려졌다. 제(齊)나라가 여자 악공을 보내어 저지하니 계환자가 그것을 받고 또 교제에 제사지낸 제육(祭肉)이 대부들에게 이르지 않자 공자가 떠났다.
膰 : 제육(祭肉) 번
魯世家에 以此以上이 皆爲十二年事라
《노세가》에 이 이상이 모두 12년의 일이라고 되어 있다.
適衛하사 主於子路妻兄顏濁鄒家하시다
위(衛)나라로 가서 자로의 처형인 안탁추의 집에 우거하였다.
孟子에 作顏讎由라
《맹자》에는 안수유로 되어 있다.
適陳하실새 過匡하시니 匡人以爲陽虎而拘之하다
진(陳)나라로 가서 광(匡) 땅을 지나니 광 땅 사람이 양호라고 여겨 구류하였다.
有顏淵後及文王旣沒之語라
안연이 뒤에 이르렀고, 문왕이 이미 죽었다는 말이 있다.
旣解에 還衛하사 主蘧伯玉家하사 見南子하시다
풀려나서 위(衛)나라에 돌아가 거백옥의 집에 우거하면서 남자(南子)를 만나보았다.
有矢子路及未見好德之語라
자로가 실망하였고, 덕을 좋아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는 말이 있다.
去適宋하신대 司馬桓魋欲殺之어늘
떠나서 송(宋)나라에 갔는데 사마 환퇴가 그를 죽이고자 하였다.
魋 : 상투 퇴
有天生德語及微服過宋事라
하늘이 덕을 낳았다는 말과 미복으로 송나라를 지나간 일이 있다.
又去適陳하사 主司城貞子家하시고 居三歲而反于衛하시니 靈公이 不能用하다
또 떠나서 진(陳)나라에 가서 사성 정자의 집에 우거하여 3년 동안 거한 다음에 위(衛)나라로 돌아오니 영공이 능히 쓰지 못했다.
有三年有成之語라
3년이면 이루어짐이 있다는 말이 있다.
晉趙氏家臣佛肸이 以中牟畔하여 召孔子어늘 孔子欲往이라가 亦不果하시다
진(晉)나라 조씨의 가신 필힐이 중모 땅을 가지고서 배반하여 공자를 불렀는데, 공자는 가고자 하였으나 역시 실행하지 않았다.
佛 : 클 필 肸 : 클 힐 牟 : 보리 모 畔 : 배반할 반
有答子路堅白語及荷蕢過門事라
자로에게 堅白으로 답한 말과 삼태기를 멘 사람이 문을 지나간 일이 있다.
蕢 : 삼태기 궤
將西見趙簡子라가 至河而反하사 又主蘧伯玉家러시니 靈公이 問陳이어늘 不對而行하사 復如陳하시다
장차 서쪽으로 가서 조간자를 만나보려고 하였으나 황하에 이르자 돌아가 또 거백옥의 집에 우거했다. 영공이 진법(陳法)을 물었는데 대답하지 않고 떠나서 다시 진(陳)나라로 갔다.
據論語하면 則絕糧當在此時라
《논어》에 근거하면 식량이 떨어진 일이 마땅히 이 때에 있었을 것이다.
季桓子卒에 遺言謂康子호되 必召孔子라하더니 其臣止之한대 康子乃召冉求하다
계환자가 죽을 때에 계강자에게 유언으로 말하기를, '반드시 공자를 불러라'라고 하였는데 그 가신들이 저지하므로 계강자가 이에 염구를 불렀다.
史記에 以論語歸與之歎으로 爲在此時라하고 又以孟子所記歎辭로 爲主司城貞子時語라하니 疑不然이라 蓋語孟所記 本皆此一時語어늘 而所記有異同耳라
《사기》에는 《논어》의 돌아가야겠다는 탄식이 이 때에 있었다고 하고, 또 《맹자》에 기록된 바 탄식하는 말은 사성 정자의 집에 우거하였을 때의 말이라고 하니 아닐 것 같다. 아마도 《논어》와 《맹자》에 기록된 것은 본래 모두 이 한 때의 말인데 기록된 것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孔子如蔡及葉하시니라
공자가 채(蔡)나라로 가서 섭(葉) 땅에 이르렀다.
有葉公問答子路不對와 沮溺耦耕과 荷蓧丈人等事라
섭공과 문답한 일, 자로가 대답하지 않은 일, 장저(長沮)와 걸익(桀溺)이 함께 밭을 간 일, 지팡이에 삼태기를 꿰어 맨 사람의 일 등이 있다.
耦 : 나란히 갈 우(偶) 蓧 : 삼태기 조
史記云 於是에 楚昭王이 使人聘孔子하여 孔子將往拜禮어늘 而陳蔡大夫發徒圍之라 故로 孔子絕糧於陳蔡之間이라 有慍見及告子貢一貫之語라
《사기》에 이르기를, 이에 초(楚) 소왕이 사람을 시켜 공자를 부르게 하여 공자가 장차 배례하러 왔는데, 진(陳)나라와 채(蔡)나라의 대부들이 무리를 징발하여 그를 포위하였다. 그러므로 공자가 진(陳)나라와 채(蔡)나라 사이에서 식량이 떨어졌다. 노여워하며 본 일과 자공에게 한 가지로 궤뚫는다고 이른 말이 있다.
按是時陳蔡臣服於楚하니 若楚王來聘孔子면 陳蔡大夫安敢圍之리오 且據論語컨대 絕糧이 當在去衛如陳之時라
내가 살펴보건대 이 때에 진(陳)나라와 채(蔡)나라는 초(楚)나라에 신하로 복종하였는데, 만약 초왕이 와서 공자를 초빙하였다면 진(陳)나라와 채(蔡)나라의 대부들이 어찌 감히 그를 포위하였겠는가. 또 《논어》에 근거하면, 식량이 떨어진 일이 마땅히 위(衛)나라를 떠나서 진(陳)나라로 가던 때에 있었을 것이다.
楚昭王이 將以書社地로 封孔子러니 令尹子西不可라하니 乃止하니라
초 소왕이 장차 서사 땅으로 공자를 봉하려고 하니 영윤 자서가 불가하다고 하여 중지하였다.
史記云 書社地七百里라하니 恐無此理라 時則有接輿之歌라
《사기》에 이르기를 서사 땅은 칠백 리라고 하니 이러한 이치가 없을 것 같다. 이때에 접여가 노래한 일이 있었다.
又反乎衛하시니 時에 靈公已卒하고 衛君輒이 欲得孔子爲政하며
또 위(衛)나라에 돌아왔는데 당시에 영공은 이미 죽었고, 위나라 군주 첩이 공자를 얻어 정사를 하고자 하였다.
有魯衛兄弟及答子貢夷齊, 子路正名之語라
노(魯)나라와 위(衛)나라는 형제라는 말, 자공에게 백이와 숙제로 답한 말, 자로에게 정명으로 답한 말이 있다.
而冉求爲季氏將하여 與齊戰有功한대 康子乃召孔子어늘 而孔子歸魯하시니 實哀公之十一年丁巳而孔子年六十八矣라
염구가 계씨의 장수가 되어 제(齊)나라와의 전투에서 공을 세웠다. 계강자가 이에 공자를 불러서 공자가 노(魯)나라로 돌아오니 실로 애공 11년 정사이고 공자의 나이 68세였다.
有對哀公及康子語라
애공과 계강자에게 대답한 말이 있다.
然이나 魯終不能用孔子하고 孔子亦不求仕하사 乃敘書傳禮記하시며
그러나 노(魯)나라는 끝내 공자를 등용하지 못했고 공자 또한 벼슬하기를 구하지 않아, 《서전》과 《예기》를 서술하였다.
有杞宋, 損益, 從周等語라
杞宋, 損益, 從周 등의 말이 있다.
刪詩正樂하시며
《시경》을 산삭하고 《악경》을 바로잡았다.
有語大師及樂正之語라
태사에게 말한 말과 음악이 바르게 되었다는 말이 있다.
序易彖繫象說卦文言하시니라
《주역》 〈단전〉, 〈계사전〉, 〈상전〉, 〈설괘전〉, 〈문언전〉을 지었다.
序 : 서술할 서
有假我數年之語라
나에게 수 년을 빌려달라는 말이 있다.
弟子蓋三千焉에 身通六藝者七十二人이러라
제자들이 거의 삼천 명이었는데 몸소 육예에 통달한 사람이 72명이었다.
弟子顏回最賢이나 蚤死하고 後惟曾參得傳孔子之道라
제자 중 안회가 가장 현명했으나 일찍 죽었고, 후에 오직 증삼이 공자의 도를 전할 수 있었다.
蚤 : 일찍 조
十四年庚申에 魯西狩獲麟하니
14년 경신에 노(魯)나라에서 서쪽으로 사냥을 갔다가 기린을 잡았다.
有莫我知之歎이라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는 탄식이 있었다.
孔子作春秋하시니라
공자가 《춘추》를 지었다.
有知我罪我等語라 論語에 請討陳恒事도 亦在是年이라
'知我罪我' 등의 말이 있었다. 《논어》에 진항을 토벌하자고 청한 일도 역시 이 해에 있었다.
明年辛酉에 子路死於衛하고 十六年壬戌四月己丑에 孔子卒하시니 年七十三이라 葬魯城北泗上하다 弟子皆服心喪三年而去로되 惟子貢은 廬於冢上하여 凡六年이러라 孔子生鯉하시니 字伯魚라 先卒하고 伯魚生伋하니 字子思니 作中庸하시니라
다음해 신유에 자로가 위(衛)나라에서 죽고 16년 임술 4월 기축에 공자가 죽으니 나이가 73세였다. 노(魯)나라 도성 북쪽 사수(泗水) 가에 안장하였다. 제자들은 모두 심상(心喪) 3년을 지내고 떠났지만 오직 자공만은 무덤 근처에 오두막을 짓고서 모두 6년을 지넀다. 공자는 공리를 낳았으니 자는 백어인데, 먼저 죽었다. 백어는 공급을 낳으니 자가 자사이며, 《중용》을 지었다.
心喪 : 상복은 입지 않되 마음으로 근신하는 일
子思學於曾子하고 而孟子受業子思之門人하니라
자사는 증자에게서 배웠고, 맹자는 자사의 문인에게서 업을 받았다.
何氏曰 魯論語는 二十篇이요 齊論語는 別有問王知道하여 凡二十二篇이요 其二十篇中章句도 頗多於魯論이라 古論은 出孔氏壁中하니 分堯曰下章子張問하여 以爲一篇하여 有兩子張하니 凡二十一篇이요 篇次不與齊魯論同하니라
하씨가 말했다. "《노논어》는 20편이고, 《제논어》는 별도로 〈문왕〉과 〈지도〉가 있어 모두 22편이고, 그 20편 안의 장구도 《노논어》와 파다하게 다르다. 《고논어》는 공씨의 벽 안에서 나왔는데, 〈요왈〉 아래 장에 〈자장문〉을 나누어 한 편을 만들어 두 개의 〈자장〉이 있으니 모두 21편이고, 편의 차례도 《제논어》나 《노논어》와 같지 않다."
程子曰 論語之書는 成於有子曾子之門人이라 故로 其書獨二子以子稱하니라
정자가 말했다. "《논어》 책은 유자와 증자의 문인에게서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그 책에서는 유독 두 사람을 자라고 칭했다."
程子曰 讀論語에 有讀了全然無事者하며 有讀了後에 其中得一兩句喜者하며 有讀了後에 知好之者하며 有讀了後에 直有不知手之舞之足之蹈之者니라
정자가 말했다. "《논어》를 읽음에 다 읽고 나서도 전혀 아무 일도 없는 사람이 있고, 다 읽은 후에 그 마음 속에 한두 구절을 얻고 기뻐하는 사람도 있으며, 다 읽은 후에 깨달아서 좋아하는 사람도 있으며 다 읽은 후에 곧 부지중에 손으로 춤추고 발로 뛰는 사람도 있다."
程子曰 今人은 不會讀書로다 如讀論語에 未讀時도 是此等人이요 讀了後에도 又只是此等人이면 便是不曾讀이니라
정자가 말했다. "지금 사람들은 독서할 줄을 알지 못한다. 만약 《논어》을 읽을 때에 읽지 않았을 때에도 이와 같은 사람이고, 읽은 후에도 또 단지 이와 같은 사람이면 곧 이것은 읽지 않은 것이다."
會 : 알 회
程子曰 頤自十七八로 讀論語하니 當時已曉文義러니 讀之愈久에 但覺意味深長이로라
정자가 말했다. "나(程頤)는 17, 18세부터 《논어》를 읽었는데 당시에도 이미 글 뜻에 밝았는데 읽기를 더욱 오래 하니 다만 의미가 깊고 길어지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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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子曰 不患人之不己知요 患不知人也니라
공자가 말했다. "남이 나를 알아주지 못함을 근심하지 말고 남을 알지 못함을 근심해야 한다."
尹氏曰 君子는 求在我者라 故로 不患人之不己知요 不知人이면 則是非邪正을 或不能辨이라 故로 以爲患也니라
윤씨가 말했다. "군자는 자신에게 있는 것을 구한다. 그러므로 남이 나를 알아주지 못함을 근심하지 않는다. 남을 알지 못하면 옳고 그름과 사특하고 올바름을 혹 분별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근심으로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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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 子貢曰 貧而無諂하며 富而無驕면 何如하니잇고 子曰 可也나 未若貧而樂하며 富而好禮者也니라
자공이 말했다. "가난하면서도 아첨하지 않으며, 부유하면서도 교만하지 않는다면 어떻겠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가능하다. 그러나 가난하면서도 즐거워하며 부유하면서도 예를 좋아하는 사람보다는 못하다."
諂은 卑屈也요 驕는 矜肆也라 常人은 溺於貧富之中하여 而不知所以自守라 故로 必有二者之病이라 無諂無驕면 則知自守矣나 而未能超乎貧富之外也라 凡曰可者는 僅可而有所未盡之辭也라 樂則心廣體胖하여 而忘其貧이요 好禮則安處善하고 樂循理하여 亦不自知其富矣리라 子貢이 貨殖하니 蓋先貧後富하여 而嘗用力於自守者라 故로 以此爲問에 而夫子答之如此하시니 蓋許其所已能이요 而勉其所未至也시니라
'諂'는 비굴함이고, '驕'는 자랑하며 마음대로 하는 것이다. 평범한 사람은 가난하고 부유한 사이에 빠져서 스스로 지키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반드시 두 가지의 병폐가 있는 것이다. 아첨함이 없고 교만함이 없으면 스스로 지킬 줄 아는 것이지만 가난함과 부유함의 바깥으로 초월할 수 없다. 무릇 '가능하다.'라고 말한 것은 겨우 가능해서 미진한 바가 있다는 말이다. 즐거워한다면 마음이 넓어지고 몸이 펴져서 그 가난함을 잊을 것이고, 예를 좋아한다면 선에 처함을 편안하게 생각하고 이치에 따름을 즐거워하여 역시 그 부유함을 스스로 알지 못할 것이다. 자공은 재물을 증식시켰으니 아마도 먼저 가난하고 뒤에 부유해져서 일찍이 스스로 지키는 것에 힘을 쓴 사람일 것이다. 그러므로 이로써 물음에 부자가 이와 같이 대답한 것이니 대개 그 이미 할 수 있는 것을 허여하고, 그 이르지 못한 것을 힘쓰라는 것이다.
僅 : 겨우 근 胖 : 펴질 반
15-2. 子貢曰 詩云 如切如磋하며 如琢如磨라하니 其斯之謂與인저
자공이 말했다. "《시경》에 이르기를, '자른 듯, 간 듯, 쪼아낸 듯, 갈아낸 듯'이라고 하니, 아마 이것을 말한 것입니까?"
詩는 衛風淇奧之篇이라 言治骨角者는 旣切之而復磋之하고 治玉石者는 旣琢之而復磨之하니 治之已精而益求其精也라 子貢이 自以無諂無驕爲至矣러니 聞夫子之言하고 又知義理之無窮하여 雖有得焉이나 而未可遽自足也라 故로 引是詩以明之하니라
시는 《시경·위풍》의 〈기욱〉편이다. 뼈와 뿔을 다루는 사람은 이미 잘라냈는데도 다시 갈고, 옥과 돌을 다루는 사람은 이미 쪼아냈는데도 다시 갈아내니 다스림이 이미 정밀한데 더욱 그 정밀함을 구함을 말한 것이다. 자공이 스스로 아첨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음을 지극하다고 여겼는데, 부자의 말을 듣고 또 의리가 무궁하여 비록 얻음이 있더라도 급하게 스스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므로 이 시를 인용하여 밝힌 것이다.
淇 : 물이름 기 奧 : 벼랑 욱
15-3. 子曰 賜也는 始可與言詩已矣로다 告諸往而知來者온여
공자가 말했다. "사하고는 비로소 《시경》을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에게 지나간 것을 알려주자 앞으로 올 것을 아는구나."
往者는 其所已言者요 來者는 其所未言者라
지나간 것은 이미 말한 것이고 앞으로 올 것은 아직 말하지 않은 것이다.
○愚按 此章問答은 其淺深高下 固不待辯說而明矣라 然이나 不切則磋無所施요 不琢則磨無所措라 故로 學者雖不可安於小成而不求造道之極致나 亦不可騖於虛遠而不察切己之實病也니라
내가 살펴보건대, 이 장의 문담은 그 얕고 깊음과 높고 낮음이 진실로 변설을 기다리지 않아도 밝다. 그러나 잘라놓지 않으면 갊을 베풀 곳이 없고, 쪼아놓지 않으면 갈아냄을 둘 곳이 없다. 그러므로 배우는 사람은 작은 성취에 안주하여 도에 나아가는 극치를 구하지 않으면 안 되지만, 역시 허무하고 먼 곳으로 달려가 자기에게 간절한 실제의 병통을 살피지 않으면 안 된다.
造 : 나아갈 조 騖 : 달릴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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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子曰 君子食無求飽하며 居無求安하며 敏於事而愼於言하고 就有道而正焉이면 可謂好學也已니라
공자가 말했다. "군자는 먹을 때에 배부르기를 구하지 않으며, 거할 때에 편안하기를 구하지 않으며 일을 민첩하게 하고 말을 삼가며, 도가 있는 사람에게 나아가서 바로잡음을 받는다면 배움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다."
不求安飽者는 志有在而不暇及也라 敏於事者는 勉其所不足이요 謹於言者는 不敢盡其所有餘也라 然이나 猶不敢自是하고 而必就有道之人하여 以正其是非면 則可謂好學矣라 凡言道者는 皆謂事物當然之理니 人之所共由者也라
편안하고 배부르기를 구하지 않는 것은 뜻이 다른 곳에 있어서 미칠 겨를이 없는 것이다. 일을 민첩하게 하는 것은 그 부족한 것에 힘쓰는 것이고 말을 삼가는 것은 그 남음이 있는 것을 감히 다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감히 스스로를 옳다고 여기지 않고 반드시 도가 있는 사람에게 나아가서 그 옳고 그름을 바로잡는다면 배움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다. 무릇 도라고 말한 것은 모두 사물의 당연한 이치를 말하는 것이니 사람들이 함께 말미암아야 할 것이다.
○尹氏曰 君子之學이 能是四者면 可謂篤志力行者矣라 然이나 不取正於有道면 未免有差라 如楊墨이 學仁義而差者也나 其流至於無父無君하니 謂之好學可乎아
윤씨가 말했다. "군자의 배움이 능히 이 네 가지를 할 수 있으면 뜻에 독실하고 행동에 힘쓰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도가 있는 사람에게서 바로잡음을 취하지 않는다면 차이가 생기는 것을 면하지 못한다. 가령 양주와 묵적은 인과 의를 배웠지만 차이가 있어 그 흐름이 아버지가 없고 군주가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으니 배움을 좋아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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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有子曰 信近於義면 言可復也며 恭近於禮면 遠恥辱也며 因不失其親이면 亦可宗也니라
유자가 말했다. "약속이 의에 가까우면 말을 실천할 수 있고, 공손함이 예에 가까우면 치욕을 멀리할 수 있으며, 주인을 삼을 때에 그 가까운 사람을 잃지 않으면 또한 높여 주인으로 삼을 수 있다."
信은 約信也라 義者는 事之宜也라 復은 踐言也라 恭은 致敬也요 禮는 節文也라 因은 猶依也요 宗은 猶主也라 言約信而合其宜면 則言必可踐矣요 致恭而中其節이면 則能遠恥辱矣요 所依者不失其可親之人이면 則亦可以宗而主之矣라 此는 言人之言行交際를 皆當謹之於始而慮其所終이니 不然이면 則因仍苟且之間에 將有不勝其自失之悔者矣니라
'信'은 약속이다. '義'는 일의 마땅함이다. '復'은 말을 실천하는 것이다. '恭'은 공경함을 지극히 하는 것이다. '禮'는 등급을 나누고 문식(文飾)하는 것이다. '因'은 '依(의지함)'과 같다. '宗'은 '主(주인)'과 같다. 말로 약속을 하면서 그 마땅함에 맞게 한다면 말을 반드시 실천할 수 있을 것이고, 공손함을 지극히 하여 그 예절에 맞게 한다면 능히 치욕을 멀리 할 수 있을 것이며, 의지한 바 되는 사람이 그 친할 만한 사람을 잃지 않았으면 또한 그를 높여서 주인으로 삼을 수 있다. 이것은 사람의 언행과 교제를 모두 처음부터 마땅히 삼가서 그 마칠 바를 생각해야 하며, 그렇지 않다면 그대로 답습하고 구차히 하는 사이에 장차 그 스스로 잃었다는 후회를 감당하지 못함이 있게 된다고 말한 것이다.
因仍 : 그대로 답습하다 勝 : 감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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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有子曰 禮之用和爲貴하니 先王之道 斯爲美라 小大由之니라
유자가 말했다. "예의 쓰임 중에서 화가 귀하니, 선왕의 도는 이것으로 아름다움을 삼았다. 크고 작은 것이 이것으로부터 말미암는다.
禮者는 天理之節文이요 人事之儀則也라 和者는 從容不迫之意라 蓋禮之爲體雖嚴이나 然이나 皆出於自然之理라 故로 其爲用이 必從容而不迫이라야 乃爲可貴니 先王之道 此其所以爲美하여 而小事大事無不由之也니라
'禮'는 천리의 등급과 문식(文飾)이고, 인사의 의례와 준칙이다. '和'는 조용하여 급박하게 하지않는다는 뜻이다. 대개 예의 체 됨은 비록 엄하나 모두 자연의 이치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그 쓰임이 반드시 조용하고 급박하지 않아야 이에 귀할 만한 것이 된다. 선왕의 도는 이것으로 그 아름다움을 삼아서 작은 일과 큰 일이 그것에 말미암지 않음이 없다.
12-2. 有所不行니 知和而和요 不以禮節之면 亦不可行也니라
행하지 않아야 할 것이 있으니 화를 알아서 화를 이루고 예로써 절제하지 않는다면 또한 행할 수 없다."
承上文而言 如此而復有所不行者하니 以其徒知和之爲貴하여 而一於和하고 不復以禮節之면 則亦非復禮之本然矣니 所以流蕩忘反하여 而亦不可行也니라
윗 문장을 받아서 말하기를, '이와 같은데도 다시 행하지 않아야 할 것이 있으니 다만 화가 귀하다는 것만을 알아서 화에만 한결같이 하고 다시 예로써 절제하지 않는다면 또한 다시 예의 본연이 아닌 것이며, 이 때문에 방탕하게 흘러가고 돌아옴을 잊어서 또한 행할 수 없다.'고 한 것이다.
○程子曰 禮勝則離라 故로 禮之用이 和爲貴하니 先王之道 以斯爲美하여 而小大由之요 樂勝則流라 故로 有所不行者하니 知和而和하고 不以禮節之면 亦不可行이니라
정자가 말했다. "예에 치우치면 지리해진다. 그러므로 예의 쓰임 중에서 화가 귀하니 선왕의 도는 이로써 아름다움을 삼아서 크고 작은 일이 그것으로 말미암는 것이다. 악에 치우치면 흘러간다. 그러므로 행하지 않아야 할 것이 있으니 화를 알아서 화를 이루고 예로써 절제하지 않는다면 또한 행할 수 없다."
范氏曰 凡禮之體는 主於敬이요 而其用則以和爲貴하니 敬者는 禮之所以立也요 和者는 樂之所由生也라 若有子면 可謂達禮樂之本矣로다
범씨가 말했다. "무릇 예의 체는 경을 주장하고 그 쓰임은 화를 귀하게 여긴다. 경은 예가 이루어지는 까닭이고 화는 악이 생기는 까닭이다. 유자의 경우에는 예와 악의 근본에 통달하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愚謂 嚴而泰和而節은 此理之自然이요 禮之全體也니 毫釐有差면 則失其中正하여 而各倚於一偏이니 其不可行이 均矣니라
내가 생각하건대 엄하면서도 편안하고, 화하면서 절제하는 것은 이 이치의 자연스러움이고 예의 전체이니 털끝만큼이라도 차이가 있으면 그 중정을 잃어버려서 각각 한쪽으로 치우칠 것이니 그 행할 수 없는 것이 똑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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