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학/논어집주 2020. 2. 14. 14:15

15-1. 子貢曰 貧而無諂하며 富而無驕면 何如하니잇고 子曰 可也나 未若貧而樂하며 富而好禮者也니라

자공이 말했다. "가난하면서도 아첨하지 않으며, 부유하면서도 교만하지 않는다면 어떻겠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가능하다. 그러나 가난하면서도 즐거워하며 부유하면서도 예를 좋아하는 사람보다는 못하다."

     하여   이라      하여 이요 하고 하여 리라  하니 하여    하시니 이요 시니라
'諂'는 비굴함이고, '驕'는 자랑하며 마음대로 하는 것이다. 평범한 사람은 가난하고 부유한 사이에 빠져서 스스로 지키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반드시 두 가지의 병폐가 있는 것이다. 아첨함이 없고 교만함이 없으면 스스로 지킬 줄 아는 것이지만 가난함과 부유함의 바깥으로 초월할 수 없다. 무릇 '가능하다.'라고 말한 것은 겨우 가능해서 미진한 바가 있다는 말이다. 즐거워한다면 마음이 넓어지고 몸이 펴져서 그 가난함을 잊을 것이고, 예를 좋아한다면 선에 처함을 편안하게 생각하고 이치에 따름을 즐거워하여 역시 그 부유함을 스스로 알지 못할 것이다. 자공은 재물을 증식시켰으니 아마도 먼저 가난하고 뒤에 부유해져서 일찍이 스스로 지키는 것에 힘을 쓴 사람일 것이다. 그러므로 이로써 물음에 부자가 이와 같이 대답한 것이니 대개 그 이미 할 수 있는 것을 허여하고, 그 이르지 못한 것을 힘쓰라는 것이다.
僅 : 겨우 근 胖 : 펴질 반

15-2. 子貢曰 詩云 如切如磋하며 如琢如磨라하니 其斯之謂與인저

자공이 말했다. "《시경》에 이르기를, '자른 듯, 간 듯, 쪼아낸 듯, 갈아낸 듯'이라고 하니, 아마 이것을 말한 것입니까?"

 이라  하고  하니   러니 하고 하여 이나   하니라
시는 《시경·위풍》의 〈기욱〉편이다. 뼈와 뿔을 다루는 사람은 이미 잘라냈는데도 다시 갈고, 옥과 돌을 다루는 사람은 이미 쪼아냈는데도 다시 갈아내니 다스림이 이미 정밀한데 더욱 그 정밀함을 구함을 말한 것이다. 자공이 스스로 아첨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음을 지극하다고 여겼는데, 부자의 말을 듣고 또 의리가 무궁하여 비록 얻음이 있더라도 급하게 스스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므로 이 시를 인용하여 밝힌 것이다.
淇 : 물이름 기 奧 : 벼랑 욱

15-3. 子曰 賜也는 始可與言詩已矣로다 告諸往而知來者온여

공자가 말했다. "사하고는 비로소 《시경》을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에게 지나간 것을 알려주자 앞으로 올 것을 아는구나."

往者는 其所已言者요 來者는 其所未言者라 
지나간 것은 이미 말한 것이고 앞으로 올 것은 아직 말하지 않은 것이다.

○愚按 此章問答은 其淺深高下 固不待辯說而明矣라 然이나 不切則磋無所施요 不琢則磨無所措라 故로 學者雖不可安於小成而不求造道之極致나 亦不可騖於虛遠而不察切己之實病也니라
내가 살펴보건대, 이 장의 문담은 그 얕고 깊음과 높고 낮음이 진실로 변설을 기다리지 않아도 밝다. 그러나 잘라놓지 않으면 갊을 베풀 곳이 없고, 쪼아놓지 않으면 갈아냄을 둘 곳이 없다. 그러므로 배우는 사람은 작은 성취에 안주하여 도에 나아가는 극치를 구하지 않으면 안 되지만, 역시 허무하고 먼 곳으로 달려가 자기에게 간절한 실제의 병통을 살피지 않으면 안 된다. 
造 : 나아갈 조 騖 : 달릴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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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학/논어집주 2020. 2. 14. 13:44

14. 子曰 君子食無求飽하며 居無求安하며 敏於事而愼於言하고 就有道而正焉이면 可謂好學也已니라

공자가 말했다. "군자는 먹을 때에 배부르기를 구하지 않으며, 거할 때에 편안하기를 구하지 않으며 일을 민첩하게 하고 말을 삼가며, 도가 있는 사람에게 나아가서 바로잡음을 받는다면 배움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다."

不求安飽者는 志有在而不暇及也라 敏於事者는 勉其所不足이요 謹於言者는 不敢盡其所有餘也라 然이나 猶不敢自是하고 而必就有道之人하여 以正其是非면 則可謂好學矣라 凡言道者는 皆謂事物當然之理니 人之所共由者也라
편안하고 배부르기를 구하지 않는 것은 뜻이 다른 곳에 있어서 미칠 겨를이 없는 것이다. 일을 민첩하게 하는 것은 그 부족한 것에 힘쓰는 것이고 말을 삼가는 것은 그 남음이 있는 것을 감히 다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감히 스스로를 옳다고 여기지 않고 반드시 도가 있는 사람에게 나아가서 그 옳고 그름을 바로잡는다면 배움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다. 무릇 도라고 말한 것은 모두 사물의 당연한 이치를 말하는 것이니 사람들이 함께 말미암아야 할 것이다.

○尹氏曰 君子之學이 能是四者면 可謂篤志力行者矣라 然이나 不取正於有道면 未免有差라 如楊墨이 學仁義而差者也나 其流至於無父無君하니 謂之好學可乎아
윤씨가 말했다. "군자의 배움이 능히 이 네 가지를 할 수 있으면 뜻에 독실하고 행동에 힘쓰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도가 있는 사람에게서 바로잡음을 취하지 않는다면 차이가 생기는 것을 면하지 못한다. 가령 양주와 묵적은 인과 의를 배웠지만 차이가 있어 그 흐름이 아버지가 없고 군주가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으니 배움을 좋아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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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학/맹자집주 2020. 2. 12. 14:45

5-1. 梁惠王曰 晉國天下莫强焉은 叟之所知也라 及寡人之身하야 東敗於齊長子死焉하고 西喪地於秦七百里하고 南辱於楚하니 寡人恥之하여 願比死者하여 一洒之하노니 如之何則可니잇고

양 혜왕이 말했다. "진(晉)나라가 천하에 막강함은 어르신께서도 아시는 바입니다. 과인의 몸에 이르러 동쪽으로는 제(齊)나라에 패하여 장자가 죽었고 서쪽으로는 진(秦)나라에 땅을 칠백 리나 잃었고 남쪽으로는 초(楚)나라에게 모욕을 받았으니 과인이 그것을 부끄러워하여 죽은 사람들을 위하여 한 번 설욕하기를 원하니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比 : 위할 비 洒 : 설욕할 세

魏는 本晉大夫魏斯가 與韓氏趙氏로 共分晉地하여 號曰 三晉이라 故로 惠王이 猶自謂晉國이라 惠王三十年에 齊擊魏破其軍하고 虜太子申하며 十七年에 秦取魏少梁하고 後에 魏又數獻地於秦하며 又與楚將昭陽戰敗하여 亡其七邑하니라 比는 猶爲也니 言欲爲死者하여 雪其恥也라
위(魏)나라는 본래 진(晉)나라의 대부 위사가 한씨, 조씨와 함께 진(晉)나라의 땅을 나누고서 부르기를 '삼진'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혜왕이 아직도 스스로 말하기를 진(晉)나라라고 말한 것이다. 혜왕 30년에 제(齊)나라가 위(魏)나라를 쳐서 그 군대를 격파하고, 태자 신을 포로로 잡았으며, 17년에 진(秦)나라가 위(魏)나라의 소량 땅을 취하였고 뒤에 위(魏)나라가 또 자주 진(秦)나라에 땅을 헌납하였으며, 또 초(楚)나라 장수 소양과의 싸움에서 패하여 그 일곱 읍을 잃었다. '比'는 '爲(위하다)'와 같으니 죽은 사람을 위하여 그 치욕을 설욕하고자 함을 말한 것이다.

5-2. 孟子對曰 地方百里而可以王이니이다

맹자가 대답하였다. "땅이 방백리만 되어도 왕 노릇 할 수 있습니다.

百里는 小國也라 然이나 能行仁政이면 則天下之民이 歸之矣라
백리는 작은 국가이다. 그러나 능히 어진 정치를 행할 수 있으면 천하의 백성들이 귀순해 올 것이다.

5-3. 王如施仁政於民하사 省刑罰하시며 薄稅斂하사 深耕易耨하고 壯者以暇日로 修其孝悌忠信하여 入以事其父兄하고 出以事其長上하게하시면 可使制梃하여 以撻秦楚之堅甲利兵矣리이다

왕께서 만일 백성들에게 어진 정치를 베푸셔서 형벌을 줄이시며 세금을 적게 거두셔서 <백성들로 하여금> 깊게 밭을 갈고 김을 잘 맬 수 있게 하고 장성한 사람들이 여가를 활용하여 그 효제와 충신을 닦게 하시어 들어가서는 그 아버지와 형을 섬기고 나와서는 그 어른과 윗사람을 섬기게 하시면 몽둥이를 만들도록 하여 진나라와 초나라의 견고한 갑옷과 날카로운 병장기를 때리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耨 : 김맬 누 撻 : 때릴 달

省刑罰薄稅斂此二者는 仁政之大目也라 易는 治也요 耨는 耘也라 盡己之謂忠이요 以實之謂信이라 君行仁政이면 則民得盡力於農畝하고 而又有暇日以修禮義라 是以로 尊君親上하여 而樂於效死也라
형벌을 줄이는 것과 세금을 적게 거두는 것, 이 두 가지는 어진 정치의 큰 조목이다. '易'는 다스리는 것이고, '耨'는 김매는 것이다. 자기 마음을 다하는 것을 충이라고 하고, 성실함을 신이라고 한다. 군주가 어진 정치를 행하면 백성들이 농사일에 힘을 다할 수 있고, 또한 여가를 활용하여 예의를 닦을 수 있다. 이로써 군주를 높이고 윗사람을 가까이 해서 기꺼이 목숨을 바칠 수 있는 것이다.
耘 : 김맬 운

5-4. 彼奪其民時하여 使不得耕耨하여 以養其父母하면 父母凍餓하며 兄弟妻子離散하리니

저들이 그 백성의 때를 빼앗아 밭을 갈고 김을 매지 못하게 하여 그 부모를 봉양하지 못하게 하면 부모는 추위에 떨고 굶주리며 형제와 처자들은 흩어질 것입니다.

彼는 謂敵國也라
'彼'는 적국을 말한다.

5-5. 彼陷溺其民이어든 王往而征之하시면 夫誰與王敵이리잇고

저들이 그 백성을 함정에 빠뜨리고 도탄에 빠뜨리거든 왕께서 가서 그들을 정벌하시면 누가 왕과 대적하겠습니까?

陷은 陷於阱이요 溺은 溺於水니 暴虐之意라 征은 正也라 以彼暴虐其民으로 而率吾尊君親上之民하여 往正其罪하면 彼民이 方怨其上하여 而樂歸於我하리니 則誰與我爲敵哉리오
'陷'은 함정에 빠뜨리는 것이고, '溺'은 물에 빠뜨리는 것이니 포학하다는 뜻이다. '征'은 바르게 하는 것이다. 저들이 그 백성을 포학하게 다루므로 군주를 높이고 윗사람을 가까이 여기는 나의 백성들을 이끌고 가서 그 죄를 바르게 하면 저 백성들이 마침 그 윗사람을 원망하고 있어서 우리에게 귀순하기를 기꺼워할 것이니 누가 우리와 대적하겠는가.
阱 : 함정 정 

5-6. 故曰 仁者無敵이라하니 王請勿疑하소서

그러므로 말하기를 어진 사람에게는 적이 없다고 하니 왕께서는 의심하지 마십시오."

仁者無敵은 蓋古語也라 百里可王은 以此而已니 恐王疑其迂闊이라 故로 勉使勿疑也라
'敵'은 아마도 옛 말일 것이다. <땅이> 백 리여도 왕 노릇 할 수 있다는 것은 이 때문일 뿐이니, 왕이 그것을 우활하다고 여겨 의심할까 걱정했기 때문에 의심하지 말라고 권면한 것이다.

○孔氏曰 惠王之志는 在於報怨하고 孟子之論은 在於救民하니 所謂惟天吏則可以伐之니 蓋孟子之本意시니라
공씨가 말했다. "혜왕의 뜻은 원수를 갚는 데에 있고 맹자의 이론은 백성을 구휼함에 있으니 이른바 오직 하늘의 관리가 되어야 그것을 벌할 수 있다는 것이니, 대개 맹자의 본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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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학/맹자집주 2020. 2. 12. 13:59

4-1. 梁惠王曰 寡人願安承敎하노이다

양 혜왕이 말했다. "과인이 마음을 편하게 하여 가르침을 받들기를 원합니다."

承上章하여 言願安意以受敎라
윗 장을 이어서 마음을 편안하게 하여 가르침을 받기를 원한다고 말한 것이다.

4-2. 孟子對曰 殺人以梃與刃이 有以異乎잇가 曰 無以異也니이다

맹자가 대답했다. "사람을 몽둥이와 칼날로써 죽이는 것이 다름이 있습니까?"

"다름이 없습니다."

梃 : 몽둥이 정

梃은 杖也라
'梃'은 몽둥이이다. 

4-3. 以刃與政이 有以異乎잇가 曰 無以異也니이다

"<사람을> 칼날과 정치로써 <죽이는 것이> 다름이 있습니까?"

"다름이 없습니다."

孟子又問에 而王答也라
맹자가 또 물어봄에 왕이 답한 것이다.

4-4. 曰 庖有肥肉하며 廐有肥馬하고 民有飢色하고 野有餓莩면 此率獸而食人也니이다

"푸줏간에는 살진 고기가 있고 마굿간에는 살진 말이 있는데 백성들은 굶는 기색이 있고 들에는 굶어 죽은 시체들이 있으면 이는 짐승을 몰아서 사람을 먹게 한 것입니다.

厚斂於民하여 以養禽獸하여 而使民飢以死면 則無異於驅獸以食人矣라
백성들에게 많이 거뒤서 금수를 길러 백성들로 하여금 굶어서 죽게 하면 짐승을 몰아서 사람을 먹게 한 것과 다름이 없다.

4-5. 獸相食도 且人惡之하나니 爲民父母라 行政不免於率獸而食人이면 惡在其爲民父母也리잇고

짐승끼리 서로 잡아먹는 것도 사람들이 싫어하는데 백성들의 부모가 되어서 정사를 행함에 짐승을 몰아서 사람을 먹게 함을 면하게 하지 못한다면 그 백성들의 부모가 됨이 어디에 있습니까?

君者는 民之父母也라 惡在는 猶言何在也라
군주는 백성들의 부모이다. '惡在'는 '何在(어디에 있는가)'라고 말함과 같다.

4-6. 仲尼曰 始作俑者其無後乎인저하시니 爲其象人而用之也니 如之何其使斯民飢而死也리잇고

중니께서 말하기를 '처음으로 나무 인형을 만든 사람은 아마도 후손이 없을 것이다!'라고 하셨으니, 그것이 사람을 본따서 <장례에> 사용하였기 때문입니다. 어찌하여 이 백성들로 하여금 굶주려서 죽게 하십니까?"

俑 : 목우(木偶) 용

俑은 從葬木偶人也라 古之葬者 束草爲人하여 以爲從衛하고 謂之芻靈하니 略似人形而已러니 中古에 易之以俑하니 則有面目機發하여 而太似人矣라 故로 孔子惡其不仁하사 而言其必無後也라 孟子言 此作俑者는 但用象人以葬이로되 孔子猶惡之하시니 況實使民飢而死乎아 
俑은 장사할 때에 껴묻는 나무인형이다. 옛날의 장사지내는 사람들은 풀을 묶어서 사람 모양을 만들어서 <상여를> 따라 호위하게 하고 그것을 일러 '추령'이라고 하였으니 사람의 형상과 대략 비슷할 뿐이었다. 중고에 용으로 바꾸니 얼굴과 눈, 움직임이 있어서 매우 사람과 비슷하였다. 그러므로 공자가 그것의 어질지 못함을 미워하여 말하기를, '아마도 후손이 없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맹자가 말하기를, '이 용을 만든 사람은 단지 사람을 본따서 장례에 사용하였을 뿐인데 공자꼐서 오히려 그것을 미워하시니 하물며 실제로 백성들로 하여금 굶어서 죽게 한단 말입니까?"라고 한 것이다.
機發 : 움직임


○李氏曰 爲人君者 固未嘗有率獸食人之心이라 然이나 徇一己之欲하여 而不恤其民이면 則其流必至於此라 故로 以爲民父母告之하시니 夫父母之於子에 爲之就利避害하여 未嘗頃刻而忘于懷하나니 何至視之不如犬馬乎아
이씨가 말했다. "인군이 된 사람들에게는 진실로 일찍이 짐승을 몰아 사람을 먹게 하려는 마음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자신 한 사람의 욕심만을 따라서 그 백성들을 구휼하지 않는다면 그 흐름이 반드시 이에 이를 것이다. 그러므로 '백성들의 부모가 되었다'라고 말한 것이니 무릇 부모가 자식에 대해서는 그를 위하여 이익을 취하고 해를 피하게 하여 일찍이 경각이라도 마음속에서 잊지 않으니, 어찌 자식을 개나 말보다도 못하게 보는 데에 이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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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학/논어집주 2020. 2. 12. 13:19

13. 有子曰 信近於義면 言可復也며 恭近於禮면 遠恥辱也며 因不失其親이면 亦可宗也니라

유자가 말했다. "약속이 의에 가까우면 말을 실천할 수 있고, 공손함이 예에 가까우면 치욕을 멀리할 수 있으며, 주인을 삼을 때에 그 가까운 사람을 잃지 않으면 또한 높여 주인으로 삼을 수 있다."

                이면  이면    이니 이면  니라
'信'은 약속이다. '義'는 일의 마땅함이다. '復'은 말을 실천하는 것이다. '恭'은 공경함을 지극히 하는 것이다. '禮'는 등급을 나누고 문식(文飾)하는 것이다. '因'은 '依(의지함)'과 같다. '宗'은 '主(주인)'과 같다. 말로 약속을 하면서 그 마땅함에 맞게 한다면 말을 반드시 실천할 수 있을 것이고, 공손함을 지극히 하여 그 예절에 맞게 한다면 능히 치욕을 멀리 할 수 있을 것이며, 의지한 바 되는 사람이 그 친할 만한 사람을 잃지 않았으면 또한 그를 높여서 주인으로 삼을 수 있다. 이것은 사람의 언행과 교제를 모두 처음부터 마땅히 삼가서 그 마칠 바를 생각해야 하며, 그렇지 않다면 그대로 답습하고 구차히 하는 사이에 장차 그 스스로 잃었다는 후회를 감당하지 못함이 있게 된다고 말한 것이다.
仍 : 그대로 답습하다 勝 : 감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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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학/논어집주 2020. 2. 12. 12:36

12-1. 有子曰 禮之用和爲貴하니 先王之道 斯爲美라 小大由之니라

유자가 말했다. "예의 쓰임 중에서 화가 귀하니, 선왕의 도는 이것으로 아름다움을 삼았다. 크고 작은 것이 이것으로부터 말미암는다.

禮者는 天理之節文이요 人事之儀則也라 和者는 從容不迫之意라 蓋禮之爲體雖嚴이나 然이나 皆出於自然之理라 故로 其爲用이 必從容而不迫이라야 乃爲可貴니 先王之道 此其所以爲美하여 而小事大事無不由之也니라
'禮'는 천리의 등급과 문식(文飾)이고, 인사의 의례와 준칙이다. '和'는 조용하여 급박하게 하지않는다는 뜻이다. 대개 예의 체 됨은 비록 엄하나 모두 자연의 이치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그 쓰임이 반드시 조용하고 급박하지 않아야 이에 귀할 만한 것이 된다. 선왕의 도는 이것으로 그 아름다움을 삼아서 작은 일과 큰 일이 그것에 말미암지 않음이 없다.

12-2. 有所不行니 知和而和요 不以禮節之면 亦不可行也니라

행하지 않아야 할 것이 있으니 화를 알아서 화를 이루고 예로써 절제하지 않는다면 또한 행할 수 없다."

承上文而言 如此而復有所不行者하니 以其徒知和之爲貴하여 而一於和하고 不復以禮節之면 則亦非復禮之本然矣니 所以流蕩忘反하여 而亦不可行也니라
윗 문장을 받아서 말하기를, '이와 같은데도 다시 행하지 않아야 할 것이 있으니 다만 화가 귀하다는 것만을 알아서 화에만 한결같이 하고 다시 예로써 절제하지 않는다면 또한 다시 예의 본연이 아닌 것이며, 이 때문에 방탕하게 흘러가고 돌아옴을 잊어서 또한 행할 수 없다.'고 한 것이다.

○程子曰 禮勝則離라 故로 禮之用이 和爲貴하니 先王之道 以斯爲美하여 而小大由之요 樂勝則流라 故로 有所不行者하니 知和而和하고 不以禮節之면 亦不可行이니라
정자가 말했다. "예에 치우치면 지리해진다. 그러므로 예의 쓰임 중에서 화가 귀하니 선왕의 도는 이로써 아름다움을 삼아서 크고 작은 일이 그것으로 말미암는 것이다. 악에 치우치면 흘러간다. 그러므로 행하지 않아야 할 것이 있으니 화를 알아서 화를 이루고 예로써 절제하지 않는다면 또한 행할 수 없다."

范氏曰 凡禮之體는 主於敬이요 而其用則以和爲貴하니 敬者는 禮之所以立也요 和者는 樂之所由生也라 若有子면 可謂達禮樂之本矣로다
범씨가 말했다. "무릇 예의 체는 경을 주장하고 그 쓰임은 화를 귀하게 여긴다. 경은 예가 이루어지는 까닭이고 화는 악이 생기는 까닭이다. 유자의 경우에는 예와 악의 근본에 통달하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愚謂 嚴而泰和而節은 此理之自然이요 禮之全體也니 毫釐有差면 則失其中正하여 而各倚於一偏이니 其不可行이 均矣니라
내가 생각하건대 엄하면서도 편안하고, 화하면서 절제하는 것은 이 이치의 자연스러움이고 예의 전체이니 털끝만큼이라도 차이가 있으면 그 중정을 잃어버려서 각각 한쪽으로 치우칠 것이니 그 행할 수 없는 것이 똑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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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학/논어집주 2020. 2. 12. 12:34

11. 子曰 父在觀其志요 父沒觀其行이나 三年無改於父之道라야 可謂孝矣니라

공자가 말했다. "아버지가 생존해 있을 때에는 그 뜻을 보고 아버지가 죽었을 때는 그 행동을 보아야 하나 3년 동안 아버지의 도에 고침이 없어야 효라고 이를 만하다."

父在子不得自專이나 而志則可知요 父沒然後其行可見이라 故로 觀此足以知其人之善惡이라 然이나 又必能三年無改於父之道라야 乃見其孝니 不然이면 則所行雖善이나 亦不得爲孝矣니라 
아버지가 생존해 있을 때엔 자식이 스스로 제멋대로 할 수 없으나 뜻은 알 수 있고, 아버지가 죽은 이후에 그 행동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이것을 보면 그 사람의 선악을 알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또한 반드시 3년 동안 아버지의 도에 고침이 없어야 이에 그 효를 볼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행동하는 것이 비록 선하더라도 또한 효라고 할 수 없다. 
專 : 專橫

○尹氏曰 如其道면 雖終身無改라도 可也어니와 如其非道면 何待三年이리오 然則三年無改者는 孝子之心에 有所不忍故也니라 
윤씨가 말했다. "그 도와 같다면 비록 종신토록 고침이 없어도 좋지만 그 비도와 같다면 어찌 3년을 기다려야만 하는가. 그렇다면 3년 동안 고침이 없다는 것은 효자의 마음에 차마 하지 못하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游氏曰 三年無改는 亦謂在所當改而可以未改者耳니라

유씨가 말했다. "3년 동안 고침이 없다는 것은 또한 마땅히 고칠 것이 있지만 아직 고치지 않아도 좋다고 말한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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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학/맹자집주 2020. 2. 6. 17:54

3-1. 梁惠王曰 寡人之於國也에 盡心焉耳矣로니 河內凶則移其民於河東하고 移其粟於河內하며 河東凶亦然하노니 察隣國之政컨대 無如寡人之用心者로되 隣國之民不加少하고 寡人之民不加多는 何也잇고

양 혜왕이 말했다. "과인은 나라에 대해서 마음을 다하고 있을 뿐이니 하내에 흉년이 들거든 그 백성을 하동으로 옮기고, 그 곡식을 하내로 옮기며 하동에 흉년이 들어도 또한 그렇게 합니다. 이웃 나라의 정사를 살펴보건대 과인과 같이 마음을 쓰는 사람이 없는데 이웃 나라의 백성이 더 줄어들지 않고 과인의 백성이 더 늘어나지 않음은 어째서입니까?"

寡人은 諸侯自稱이니 言寡德之人也라 河內, 河東은 皆魏地라 凶은 歲不熟也라 移民以就食하고 移粟以給其老稚之不能移者라
'寡人'은 제후의 자칭이니 적은 덕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하내와 하동은 모두 위나라의 땅이다. '凶'은 결실이 익지 않은 것이다. 백성을 옮겨서 나아가 먹게 하고, 곡식을 옮겨서 이동하지 못하는 늙은이들과 어린이들에게 배급한 것이다.
歲 : 결실

3-2. 孟子對曰 王好戰하시니 請以戰喩하리이다 塡然鼓之하여 兵刃旣接이어든 棄甲曳兵而走하되 或百步而後止하며 或五十步而後止하여 以五十步笑百步則何如하니잇고 曰 不可하니 直不百步耳언정 是亦走也니이다 曰 王如知此則無望民之多於隣國也하소서

맹자가 대답하여 말했다. "왕께서 전쟁을 좋아하시니 청컨대 전쟁으로 비유하겠습니다. 둥둥 북이 울려 병장기와 칼날이 이미 부딪혔는데 갑옷을 버리고 병기를 끌면서 달아나되 어떤 사람은 백 보를 간 뒤에 그치고 어떤 사람은 오십 보를 간 뒤에 그치고서 오십 보로써 백 보를 비웃는다면 어떻겠습니까?"

"불가합니다. 다만 백 보가 아닐 뿐이지 이 또한 도망간 것입니다."

"왕께서 만일 이것을 아신다면 백성이 이웃 나라보다 많아지기를 바라지 마십시오.

塡 : 북 소리 전

塡은 鼓音也니 兵은 以鼓進하고 以金退라 直은 猶但也라 言此하여 以譬鄰國不恤其民하고 惠王能行小惠나 然이나 皆不能行王道以養其民하니 不可以此而笑彼也라
'塡'은 북 소리이니 병사들은 북 소리에 진격하고 징 소리에 퇴각한다. '直'은 '但(다만)'과 같다. 이것을 말하여 이웃 나라가 그 백성을 구휼하지 않고 혜왕은 작은 은혜를 행할 수 있었으나 모두 능히 왕도를 행해서 그 백성을 부양할 수 없었으니 이것을 가지고 저것을 비웃을 수 없음을 비유한 것이다. 

楊氏曰 移民, 移粟은 荒政之所不廢也라 然이나 不能行先王之道하고 而徒以是爲盡心焉이면 則末矣니라
양씨가 말했다. "백성을 옮기고 곡식을 옮긴 것은 황폐할 때의 정사에 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선왕의 도를 행하지 못하고 다만 이것으로써 마음을 다했다고 한다면 끝(지엽)이다."

3-3. 不違農時면 穀不可勝食也며 數罟不入洿池면 魚鼈不可勝食也며 斧斤以時入山林이면 材木不可勝用也니 穀與魚鼈을 不可勝食하며 材木을 不可勝用이면 是는 使民養生喪死에 無憾也니 養生喪死에 無憾이 王道之始也니이다

농사철을 어기지 않게 하면 곡식을 다 먹을 수 없으며, 촘촘한 그물을 웅덩이와 연못에 넣지 않게 하면 물고기와 자라를 다 먹을 수 없으며, 큰 도끼와 작을 도끼를 때에 따라 산림에 들어가게 하면 재목을 다 쓸 수 없읍니다. 곡식과 물고기, 자라를 다 먹지 못하며 재목을 다 쓰지 못하면 이는 백성들도 하여금 살아 있는 사람을 봉양하고 죽은 사람을 장사지내는 데 유감이 없게 하는 것이니 살아 있는 사람을 봉양하고 죽은 사람을 장사지냄에 유감이 없게 하는 것이 왕도의 시작입니다.

數 : 촘촘할 삭 罟 : 그물 고 鼈 : 자라 별 洿 : 웅덩이 오 斧 : 도끼 부 憾 : 한할 감

農時는 謂春耕, 夏耘, 秋收之時니 凡有興作에 不違此時하고 至冬乃役之也라 不可勝食은 言多也라 數은 密也요 罟는 網也라 洿는 窊下之地니 水所聚也라 
'農時'는 봄에 밭을 갈고, 여름에 김매고, 가을에 추수하는 때를 이른다. 무릇 <일을> 일으킴에 이 때를 어기지 않고 겨울에 이르러서야 부역을 시킨다. '食'은 많음을 말한다. '數'은 빽빽함이고 '罟'는 그물이다. '洿'는 우묵하게 아래로 들어간 땅이니 물이 모이는 곳이다.
窊 : 우묵할 와 

古者에 網罟를 必用四寸之目하여 魚不滿尺이면 市不得粥하고 人不得食이라 山林川澤을 與民共之호되 而有厲禁하여 草木零落然後에 斧斤入焉하니 此皆爲治之初에 法制未備하여 且因天地自然之利而撙節愛養之事也라 然이나 飮食宮室은 所以養生이요 祭祀棺槨은 所以送死니 皆民所急而不可無者어늘 今皆有以資之면 則人無所恨矣라 王道는 以得民心爲本이라 故로 以此爲王道之始하니라

옛날에 그물을 반드시 4촌의 눈을 쓰게 해서 물고기가 1자에 차지 않으면 시장에 팔 수 없었고 사람들이 먹을 수 없었다. 산림과 천택을 백성과 함께 공유하되 엄한 금지가 있어 초목이 떨어진 후에 부근이 들어가게 하였다. 이는 모두 다스리는 초기에 법제가 미비하여 또한 천지와 자연의 이로움으로 인해 절제하고 절약하고 아끼고 기르는 일이었다. 그러나 음식과 궁실은 산 사람을 봉양하는 것이고, 제사와 관곽은 죽은 자를 보내는 것이다. 모두 백성이 급하게 여기는 바여서 없을 수 없는 것이다. 지금 모두 그것을 이용할 수 있다면 사람이 한하는 바가 없다. 왕도는 백성의 마음을 얻는 것을 근본으로 여긴다. 그러므로 이것으로써 왕도의 시작이라고 하는 것이다.

粥 : 팔 육 厲 : 엄할 려 撙 : 절제할 준

3-4. 五畝之宅에 樹之以桑이면 五十者可以衣帛矣며 鷄豚狗彘之畜을 無失其時면 七十者可以食肉矣며 百畝之田을 勿奪其時면 數口之家可以無飢矣며 謹庠序之敎하여 申之以孝悌之義면 頒白者不負戴於道路矣리니 七十者衣帛食肉하며 黎民不飢不寒한데 然而不王者未之有也니이다

다섯 묘의 집에 뽕나무를 심으면 오십 세 된 사람이 비단옷을 입을 수 있으며 닭과 돼지와 개와 큰 돼지를 기름에 그 때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하면 칠십 세 된 사람이 고기를 먹을 수 있습니다. 백 묘의 밭에 그 때를 빼앗지 않으면 몇 식구의 집이 굶주리지 않을 것이며, 학교의 가르침을 삼가서 그들에게 효와 제의 의로움으로써 거듭한다면 반백의 사람이 도로에서 이고 지지 않을 것입니다. 칠십 세 된 사람이 비단옷을 입고 고기를 먹으며 서민이 굶주리지 않고 추워하지 않은 후에 왕 노릇 하지 못한 사람은 있지 않습니다.

彘 : 돼지 체 畜 : 기를 휵 庠 : 학교 상 申 : 거듭할 신 頒 : 머리가 반쯤 셀 반

畝之宅은 一夫所受니 二畝半은 在田하고 二畝半은 在邑이라 田中에 不得有木이니 恐妨五穀이라 故로 於墻下植桑하여 以供蠶事라 五十始衰非帛不煖하니 未五十者不得衣也라      飽하 十者 
다섯 묘 되는 집은 한 장정이 받는 것이니 두 묘 반은 밭에 있고 두 묘 반은 읍내에 있다. 밭 안에 나무가 있을 수 없게 했으니 오곡이 <자라는 데> 방해가 될까 걱정해서이다. 그러므로 담 아래에 뽕나무를 심어서 양잠하는 일에 공급하는 것이다. 오십 세가 되면 노쇠하기 시작하여 비단옷이 아니면 따뜻하지 않으니 오십 세가 되지 않은 사람은 <비단옷을> 입을 수 없는 것이다. '畜'은 기르는 것이다. '時'는 잉태하고 기르는 때를 이르니 마치 맹춘에 희생으로 암컷을 쓰지 말라는 종류와 같다. 칠십 세가 되면 고기가 아니고서는 배부르지 않으니 칠십 세가 되지 않은 사람은 <고기를> 먹을 수 없는 것이다. 
字 : 양육할 자


   正하 均하  
백 묘의 밭은 또한 한 장정이 받는 것이니 이에 이르면 경계가 바르게 되고 정지가 균등하여져서 밭을 받지 않은 집이 없게 된다.

庠序는 皆學名也라 申은 重也니 丁寧反覆之意라 善事父母爲孝요 善事兄長爲悌라 頒은 與班同하니 老人頭半白黑者也라 負는 任在背요 戴는 任在首라 夫民이 衣食不足이면 則不暇治禮義요 而飽煖無敎면 則又近於禽獸라 故로 旣富而敎以孝悌면 則人知愛親敬長而代其勞不使之負戴於道路矣라 衣帛食肉을 但言七十擧重以見輕也라 
'序'는 모두 학교의 이름이다. '申'은 거듭함이니 틀림없이 반복하는 뜻이다. 어버이를 잘 섬기는 것을 '孝'라고 하고, 형과 어른을 잘 섬기는 것을 '悌'라고 한다. '頒'은 '班(아롱지다)'과 같으니 노인의 머리가 반쯤 하얗고 검은 것이다. '負'는 짐이 등에 있는 것이고 '戴'는 짐이 머리에 있는 것이다. 무릇 백성은 옷과 음식이 부족하면 예의를 다스릴 겨를이 없고, 배부르고 따뜻하기만 하고 가르침이 없으면 또한 금수에 가깝다. 그러므로 이미 부유하게 하고 효와 제로써 가르치면 사람이 어버이를 사랑하고 어른을 공경할 줄 알아서 그 노력을 대신하여 그들로 하여금 도로에서 이고 지지 않게 할 것이다. 비단옷을 입고 고기를 먹는 것을 칠십 세만 말한 것은 중한 것을 들어서 가벼운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黎는 黑也라 黎民은 黑髮之人이니 猶秦言黔首也라 少壯之人은 雖不得衣帛食肉이나 然이나 亦不至於飢寒也라 此는 言 盡法制品節之詳하고 極財成輔相之道하여 以左右民이니 是는 王道之成也니라
'黎'는 검은 것이다. '民'은 검은 머리의 사람이니 진(秦) 나라 말 '首'와 같다. 젊고 건장한 사람들은 비록 비단옷을 입고 고기를 먹지 못하더라도 굶주림과 추위에는 이르지 않는다. 이는 법제와 등급의 상세함을 다하고 제재하고 이루어 서로 도와주는 도를 극진히 하여 백성을 도와줌을 말한 것이니, 이는 왕도의 완성이다.

3-5. 狗彘食人食而不知檢하며 塗有餓莩而不知發하고 人死則曰 非我也라 歲也라하나니 是何異於刺人而殺之曰 非我也라 兵也리오 王無罪歲하시면 斯天下之民至焉하리이다

개와 돼지가 사람의 음식을 먹어도 제재할 줄 알지 못하며, 길에 굶어죽은 시체가 있어도 구제할 줄 알지 못하며, 사람들이 죽는다면 말하기를, '내 탓이 아니다, 흉년 탓이다.'라고 하니, 이것이 사람을 찔러 죽이고 말하기를, '내 탓이 아니다, 병기 탓이다.'라고 하는 것과 어찌 다르겠습니까? 왕께서 해를 정죄하지 않으신다면 천하의 백성들이 <이 나라에> 이를 것입니다."

莩 : 굶어 죽은 시체 표 

檢은 制也라 莩는 餓死人也라 發은 發倉廩以賑貸也라 歲는 謂歲之豐凶也라 惠王不能制民之産하고 又使狗彘得以食人之食하니 則與先王制度品節之意로 異矣라 至於民飢而死로되 猶不知發하니 則其所移는 特民間之粟而已어늘 乃以民不加多로 歸罪於歲凶하니 是는 知刃之殺人이요 而不知操刃者之殺人也라 不罪歲면 則必能自反而益修其政하여 天下之民이 至焉하리니 則不但多於鄰國而已니라
'檢'은 제어함이다. '莩'는 굶어 죽은 사람이다. '發'은 창름을 열어서 구휼하고 꾸어 주는 것이다. '歲'는 해의 풍흉을 이른다. 혜왕이 백성들의 재산을 제정하지 못하고 또한 개와 돼지로 하여금 사람의 음식을 먹을 수 있게 하니 선왕이 제도를 만들고 등급을 나눈 뜻과 달랐다. 백성들이 굶어서 죽는 지경에 이르러도 오히려 창름을 열 줄 알지 못했으니 그 백성을 이동한 것은 다만 민간의 곡식일 뿐이었다. 그런데도 백성들이 더 늘어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죄를 흉년에 돌리니 이는 칼날이 사람을 죽인 것만을 알고 칼날을 잡은 사람이 사람을 죽인 것은 알지 못하는 것이다. 해를 정죄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능히 스스로 돌아보고 더욱 그 정사를 닦아 천하의 백성들이 이를 것이니 단지 이웃 나라보다 <백성이> 많아질 뿐만이 아닐 것이다.
廩 : 곳집 름 賑 : 구휼할 진


○程子曰 孟子之論王道 不過如此하시니 可謂實矣로다
정자가 말했다. "맹자가 왕도를 논한 것이 이와 같음에 지나지 않으니 진실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本하 時하여는 雄하 周하 極하       시리오 시니라
또 말했다. "공자의 때에 주(周)나라 왕실이 비록 미약하였으나 천하가 오히려 주나라를 높이는 것이 의가 됨을 알았다. 그러므로 춘추시대에는 주(周)나라를 높이는 것으로 근본을 삼았다. 맹자의 때에 이르러서는 일곱 나라가 쟁웅하여 천하가 다시 주(周)나라가 있음을 알지 못하고 산 백성의 도탄이 이미 지극하였으니, 이 때를 당하여 제후들이 능히 왕도를 행할 수 있었으면 왕 노릇 할 수 있었을 것이니, 맹자가 제(齊)나라와 양(梁)나라의 군주에게 권한 까닭이다. 대개 왕 노릇 하는 사람은 천하의 의로운 군주이니 성현은 또한 무슨 마음이었겠는가? 천명이 바뀌었는지 바뀌지 않았는지를 보았을 뿐이다."

 

posted by 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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