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학/논어집주 2020. 2. 25. 11:48
凡二十四章。
모두 24장이다.

1(17). 子曰:「爲政以德,譬如北辰,居其所而衆星共之。」

공자가 말했다. "정사를 함에 덕으로써 하는 것은 비유하자면 북극성과 같아서, 그 자리에 있는데 많은 별들이 그것을 향하는 것과 같다."

辰 : 별 신

政之爲言正也,所以正人之不正也。德之爲言得也,得於心而不失也。北辰,北極,天之樞也。居其所,不動也。共,向也,言衆星四面旋繞而歸向之也。
'政'이라고 말한 것은 바로잡는 것이니 사람의 바르지 못한 것을 바로잡는 것이다. '德'이라고 말한 것은 얻는 것이니 마음에서 얻고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다. '北辰'은 북극성이니 하늘의 지도리이다. 그 자리에 거하면서 움직이지 않는다. '共'은 향하는 것이니 많은 별들이 사면으로 둘러싸서 그것을 향함을 말한다.
繞 : 두를 요


爲政以德,則無爲而天下歸之,其象如此。
정사를 함에 덕으로써 하면 하지 않아도 천하가 그에게 돌아오니, 그 형상이 이와 같다.

程子曰:「爲政以德,然後無爲。」
정자가 말했다. "정사를 함에 덕으로써 한 이후에야 하지 않을 수 있다."

范氏曰:「爲政以德,則不動而化、不言而信、無爲而成。所守者至簡而能御煩,所處者至靜而能制動,所務者至寡而能服衆。」
범씨가 말했다. "정사를 함에 덕으로써 하면 움직이지 않아도 교화되고, 말하지 않아도 믿고, 하지 않아도 이루어진다. 지키는 것이 지극히 간결한데도 번잡함을 제어할 수 있고, 처하는 곳이 지극히 고요한데도 움직임을 제어할 수 있으며, 힘쓰는 것이 지극히 적은데도 많은 사람을 복종시킬 수 있다.

 

※현토하는 것이 너무 번잡해서 이제부터는 표점으로만 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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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학/맹자집주 2020. 2. 14. 16:11

7-19.  로니 志하여 我하소서 이나 호리이다  者는 이어니와 이면 이니 이면      位하여 리오

왕이 말했다. "나는 어두워서 여기에 나아갈 수 없으니, 원컨대 부자께서 내 뜻을 도와 나를 밝히시고 가르치십시오. 내가 비록 불민하나 청컨대 한번 시험해 보겠습니다."

"항산이 없어도 항심이 있는 것은 오직 선비만이 능합니다. 백성의 경우에는 항산이 없으면 따라서 항심이 없으니 진실로 항심이 없으면 방자하고 편벽되며 간사하고 사치스러운 일을 하지 않음이 없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죄에 빠뜨린 이후에 따라서 형벌을 주신다면 이것은 백성들을 그물질하는 것입니다. 어찌 어진 사람이 재위하면서 백성들을 그물질하는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問하   이라도 이어니와   이니 
'恒'은 떳떳함이고 '産'은 생업이니, '産'은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는 일이고, '心'은 인간이 떳떳이 가지고 있는 선한 마음이다. 선비는 일찍이 학문을 하여 의리를 안다. 그러므로 비록 항산이 없어도 항심이 있지만, 백성은 그렇게 할 수 없다. '罔'은 '罔(그물)'과 같으니 그 보이지 않는 것을 속여서 취하는 것이다.

7-20. 是故로 明君制民之産호되 必使仰足以事父母하며 俯足以畜妻子하여 樂歲終身飽하고 凶年免於死亡하나니 然後驅而之善이라 故로 民之從之也輕하니이다

이 때문에 명군은 백성들의 생업을 제정하되 반드시 위로는 부모를 섬기기에 충분하도록 하고, 아래로는 처자를 기르기에 충분하도록 하여 풍년이 들면 종신토록 배부르고, 흉년이 들면 사망을 면하게 합니다. 그런 뒤에야 몰아서 선으로 가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백성들이 따르기가 쉽습니다.

   
'輕'은 '易(쉬움)'과 같다. 이는 백성들이 떳떳한 생업이 있어야 떳떳한 마음이 있다고 말한 것이다.

7-21. 호되 母하 子하여 苦하고 亡하나니 이어니 리오

지금 백성들의 생업을 제정하되 위로는 부모를 섬기기에 부족하도록 하고, 아래로는 처자를 기르기에 부족하도록 하여 풍년이 들어도 종신토록 괴롭고, 흉년이 들면 사망을 면하게 못합니다. 이에 단지 사망에서 구해내기에도 넉넉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어느 겨를에 예의를 다스리겠습니까?

   
'贍'은 족함이다. 이는 이른바 떳떳한 생업이 없어서 떳떳한 마음이 없는 것이다.

7-22. 之시면 니잇고

왕께서 이것을 행하고자 하신다면 어찌 그 근본을 돌이켜 보지 아니하십니까?

  使  文하니라
'盍'은 어찌 아니함이다. 백성들로 하여금 떳떳한 생업이 있게 하는 것은 또한 정사를 베풀고 어진 정치를 시행하는 근본이니 해설이 아래 문장에 보인다.

7-23. 宅에 이면        敎하여  리니 肉하며 이요 니이다

다섯 묘의 집에 뽕나무를 심으면 오십 세 된 사람이 비단옷을 입을 수 있으며, 닭과 돼지와 개와 큰 돼지를 기름에 그 때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하면 칠십 세 된 사람이 고기를 먹을 수 있습니다. 백 묘의 밭에 그 때를 빼앗지 않으면 여덟 식구의 집이 굶주리지 않을 것이며, 학교의 가르침을 삼가서 그들에게 효와 제의 의로움으로써 거듭한다면 반백의 사람이 도로에서 이고 지지 않을 것입니다. 늙은 사람이 비단옷을 입고 고기를 먹으며 서민이 굶주리지 않고 추워하지 않은 후에 왕 노릇 하지 못한 사람은 있지 않습니다."

  
이는 백성의 생업을 제정하는 법을 말한 것이다. 

    이요   君하 시니라 
조씨가 말했다. "여덟 식구의 집은 상농부에 버금간다. 이는 왕도정치의 근본이고 떳떳하게 살아가는 방법이다. 그러므로 맹자가 제(齊)나라와 양(梁)나라의 군주를 위하여 각각 설명한 것이다."

  心하  이나 이라도    으로 之하시니라 
양씨가 말했다. "천하를 다스리는 사람은 이 마음을 들어서 저쪽에 더할 뿐이다. 그러나 비록 어진 마음과 어진 소문이 있더라도 백성들이 그 혜택을 입지 못하는 것은 선왕의 제도를 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백성의 생업을 제정하는 것으로써 말한 것이다."

   功하   心하  이로되 私하 이라 告하 로되 深하 悟하 로다
이 장은 인군이 마땅히 패도의 공을 내치고 왕도를 행해야 하며, 왕도의 요점은 그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을 미루어서 차마 하지 못하는 정치를 행하는 것에 불과할 뿐임을 말한 것이다. 제나라 왕은 이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공과 이익의 사사로움에 빼앗겨서 넓히고 보충하여 어진 정치를 행할 수 없었다. 비록 맹자가 반복하여 깨우치고 말한 것이 이와 같이 정밀하고 간절한데 가리워짐이 진실로 이미 심하여 끝내 깨달을 수 없었으니 탄식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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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학/맹자집주 2020. 2. 14. 16:00

7-14. 抑王興甲兵하며 危士臣하여 構怨於諸侯然後에 快於心與잇가
"왕께서는 갑병을 일으키시어 군사와 신하를 위태롭게 하고 제후들에게 원한을 맺은 후에야 마음이 흔쾌하시겠습니까?"

抑은 發語辭라 士는 戰士也라 構는 結也라
'抑'은 발어사이다. '士'는 전사이다. '構'는 맺음이다.

孟子以王愛民之心이 所以輕且短者는 必其以是三者爲快也라 然이나 三事는 實非人心之所快니 有甚於殺觳觫之牛者라 故로 指以問王하여 欲其以此而度之也하시니라
맹자는 왕의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볍고 또 짧은 이유가 반드시 이 세 가지를 흔쾌하게 여기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세 가지는 실질적으로 사람의 마음에 흔쾌하게 여길 바가 아니니 두려움에 떠는 소를 죽이는 것보다 심함이 있다. 그러므로 왕에게 지적하여 물어서 이것으로써 헤아리게 하고자 한 것이다.

7-15. 王曰 否라 吾何快於是리오 將以求吾所大欲也로이다
왕이 말했다. "아닙니다. 내가 어찌 이것을 흔쾌히 여기겠습니까? 장차 내가 크게 하고자 하는 바를 구하려고 해서입니다."

不快於此者는 心之正也요 而必爲此者는 欲誘之也니 欲之所誘者 獨在於是라 是以로 其心이 尙明於他而獨暗於此하니 此其愛民之心이 所以輕短而功不至於百姓也니라
이것을 흔쾌히 여기지 않음은 마음의 올바름이고 반드시 이것을 하려고 함은 욕심이 꾀어내는 것이다. 욕심이 꾀어내는 것이 유독 여기에 있었기 때문에 그 마음이 오히려 다른 것에 밝고 유독 여기에 어두우니, 이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볍고 짧으며 공이 백성들에게 이르지 못하는 이유이다.

7-16. 曰 王之所大欲을 可得聞與잇가 王笑而不言하신대 曰 爲肥甘不足於口與며 輕煖不足於體與잇가 抑爲采色不足視於目與며 聲音不足聽於耳與며 便嬖不足使令於前與잇가 王之諸臣이 皆足以供之하나니 而王豈爲是哉시리잇고 曰 否라 吾不爲是也로이다 曰 然則王之所大欲可知已니 欲辟土地하며 朝秦楚하여 莅中國而撫四夷也로소이다 以若所爲로 求若所欲이면 猶緣木而求魚也니이다
"왕께서 크게 하고자 하시는 바를 얻어 들을 수 있겠습니까?"
왕이 웃기만 하고 말하지 않았다.
"살지고 단 음식이 입에 부족하고, 가볍고 따뜻한 옷이 몸에 부족해서입니까? 아니면 채색이 눈으로 보기에 부족하고, 소리가 귀로 듣기에 부족하고, 친숙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앞에서 사령함에 부족해서입니까? 왕의 여러 신하들이 모두 이것을 충분히 공급하니 왕꼐서 어찌 이것 때문이시겠습니까?"
"아닙니다. 나는 이것 때문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왕께서 크게 하고자 하시는 바를 알 수 있겠습니다. 토지를 개척하며 진(秦)나라와 초(楚)나라를 입조하게 하며 중원에 임하여 사방 오랑캐를 어루만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소행으로 이와 같은 소욕을 구한다면 나무에 올라가 물고기를 구하는 것과 같습니다."
嬖 : 사랑할 폐 莅 : 임할 리

便嬖는 近習嬖幸之人也라 已는 語助辭라 辟은 開廣也라 朝는 致其來朝也라 秦楚는 皆大國이라 莅는 臨也라 若은 如此也라 所爲는 指興兵結怨之事라 緣木求魚는 言必不可得이라
'便嬖'는 가까이 두어서 익숙하고 사랑하는 사람이다. '已'는 발어사이다. '辟'은 열어서 넓힘이다. '朝'는 그들이 와서 조회하게 함이다. 진(秦)나라와 초(楚)나라는 모두 큰 나라이다. '莅'는 임함이다. '若'은 이와 같음이다. '爲'는 병사를 일으켜서 원한을 맺는 일을 가리킨다. '魚'는 반드시 얻을 수 없음을 말함이다.
幸 : 임금의 사랑을 받다.

7-17. 王曰 若是其甚與잇가 曰 殆有甚焉하니 緣木求魚는 雖不得魚나 無後災어니와 以若所爲로 求若所欲이면 盡心力而爲之라도 後必有災하리이다 曰 可得聞與잇가 曰 鄒人與楚人戰則王以爲孰勝이니잇고 曰 楚人勝하리이다 曰 然則小固不可以敵大며 寡固不可以敵衆이며 弱固不可以敵强이니 海內之地方千里者九에 齊集有其一하니 以一服八이 何以異於鄒敵楚哉리잇고 亦反其本矣니이다
왕이 말했다. "이와 같이 심합니까?"
"이보다도 심함이 있으니 나무에 올라가 물고기를 구하는 것은 비록 물고기를 얻지 못하여도 뒤에 재앙이 없지만, 이와 같은 소행으로 이와 같은 소욕을 구한다면 마음과 힘을 다해 하더라도 뒤에 반드시 재앙이 있습니다."
"얻어 들을 수 있겠습니까?"
"추(鄒)나라가 초(楚)나라와 전쟁한다면 왕께서는 누가 이길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초(楚)나라가 이길 것입니다."
"그런즉 작은 것은 진실로 큰 것을 대적할 수 없으며, 적은 것은 진실로 많은 것을 대적할 수 없으며, 약한 것은 진실로 강한 것을 대적할 수 없습니다. 해내에 땅이 사방 천 리인 것이 아홉인데, 제(齊)나라가 <땅을> 모으면 그 하나를 가지고 있으니, 하나로써 여덟을 복종시키는 것이 추(鄒)나라가 초(楚)나라를 대적하는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역시 그 근본을 돌이켜 보아야 합니다.

殆蓋는 皆發語辭라 鄒는 小國이요 이라 이니 文하니라
'殆'와 '蓋'는 모두 발어사이다. '鄒'는 작은 나라이고, '楚'는 대국이다. '一'은 제나라 땅을 모아 합하면 사방 천 리이니 천하의 9분의 1을 소유함을 말함이다. '八'은 반드시 이길 수 없음이니 이른바 뒤에 있는 재앙이다. '本'은 해설이 아래 문장에 보인다.

7-18. 今王發政施仁하사 使天下仕者皆欲立於王之朝하며 耕者皆欲耕於王之野하며 商賈皆欲藏於王之市하며 行旅皆欲出於王之途하시면 天下之欲疾其君者 皆欲赴愬於王하리니 其如是면 孰能禦之리잇고
지금 왕께서 정사를 펴서 어진 정치를 시행하여 천하에 벼슬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모두 왕의 조정에 서고 싶게 하고, 밭 가는 사람들로 하여금 모두 왕의 들에서 밭을 갈고 싶게 하고, 장사치들로 하여금 모두 왕의 시장에 물건을 저장하고 싶게 하고, 행려객들로 하여금 모두 왕의 길로 나아가고 싶게 한다면 천하에 그 군주를 미워하는 사람이 장차 모두 왕께 나아와 하소연하고자 할 것입니다. 이와 같다면 누가 능히 막을 수 있겠습니까?"

行貨曰 商이요 居貨曰 賈라
다니면서 파는 것을 '商'이라고 하고, 한 곳에 거하면서 파는 것을 '賈'라고 한다.

發政施仁은 所以王天下之本也라 近者悅하고 遠者來하면 則大小彊弱은 非所論矣라 蓋力求所欲이면 則所欲者를 反不可得이요 能反其本이면 則所欲者不求而至니 與首章意同하니라
정사를 펴고 어진 정치를 시행하는 것은 천하에 왕 노릇하는 근본이다. 가까이 있는 사람이 기뻐하고 멀리 있는 사람이 오면 대소와 강약은 논할 바가 아니다. 대개 소욕을 힘써 구하면 소욕을 도리어 얻지 못할 것이고, 그 근본을 돌이켜 볼 수 있다면 소욕이 구하지 않아도 이르니 첫 장과 뜻이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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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학/맹자집주 2020. 2. 14. 15:46

7-9. 王說曰 詩云 他人有心을 予忖度之라하니 夫子之謂也로소이다 夫我乃行之하고 反而求之하되 不得吾心이러니 夫子言之하시니 於我心有戚戚焉하여이다 此心之所以合於王者는 何也잇고

왕이 기뻐하며 말했다. "《시경》에 이르기를, '타인의 마음가짐을 내가 헤아린다.'라고 하였으니, 부자를 말한 것입니다. 내가 마침 행하고 돌이켜 구하였지만 내 마음에 얻어지지 않았는데 부자께서 말씀하시니 내 마음에 뭉클함이 있습니다. 이 마음이 왕 노릇 하기에 합당한 까닭은 무엇입니까?"
戚 : 가슴뭉클할 척

詩는 小雅巧言之篇이라 戚戚은 心動貌라 王因孟子之言하여 而前日之心이 復萌하여 乃知此心不從外得이라 然이나 猶未知所以反其本而推之也라
시는 《시경·소아》의 〈교언〉 편이다. '戚'은 마음이 감동한 모양이다. 왕은 맹자의 말로 인하여 전일의 마음이 다시 싹터서 이에 이 마음이 밖에서 얻어지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오히려 그 근본을 돌이켜 미루어 볼 줄은 알지 못했다.

7-10. 曰 有復於王者曰 吾力足以擧百鈞이로되 而不足以擧一羽하며 明足以察秋毫之末이로되 而不見輿薪이라하면 則王許之乎잇가 曰 否라 今恩足以及禽獸로되 而功不至於百姓者는 獨何與잇고 然則一羽之不擧는 爲不用力焉이며 輿薪之不見은 爲不用明焉이며 百姓之不見保는 爲不用恩焉이니 故로 王之不王은 不爲也언정 非不能也니이다
"왕에게 아뢰는 사람이 있어 말하기를, '내 힘이 백 균(삼천 근)을 들기에 충분하지만 한 개의 깃털을 들기에는 부족하며, 시력이 추호의 끝을 살피기에 충분하지만 수레에 실린 땔나무를 보지 못한다.'라고 하면 왕께서는 그것을 인정하시겠습니까?"
"불가합니다."
"지금 은혜가 충분히 금수에게 미치는데 공이 백성들에게 이르지 않음은 유독 어째서입니까? 그런즉 하나의 깃털을 들지 못함은 힘을 쓰지 않아서이고, 수레에 실린 땔나무를 보지 못함은 시력을 쓰지 않아서이며, 백성들이 보호받지 못함은 은혜를 쓰지 않아서입니다. 그러므로 왕께서 왕 노릇 하지 못함은 것은 하지 않는 것이지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復 : 아뢸 복 鈞 : 서른근 균

復은 白也라 鈞은 三十斤이니 百鈞은 至重難擧也라 羽는 鳥羽니 一羽는 至輕易擧也라 秋毫之末은 毛至秋而末銳하니 小而難見也요 輿薪은 以車載薪이니 大而易見也라 許는 猶可也라
'復'은 아룀이다. '鈞'은 서른 근이니 '鈞'은 지극히 무거워 들기에 어렵다. '羽'는 새의 깃털이니 '羽'는 지극히 가벼워 들기에 쉽다. '末'은 털이 가을에 이르러 끝이 가늘어진 것이니 작아서 보기에 어렵다. '輿薪'은 수레에 실린 땔나무이니 커서 보기에 쉽다. '許'는 '可(가하다)'와 같다.

今恩以下는 又孟子之言也라 蓋天地之性에 人爲貴라 故로 人之與人은 又爲同類而相親이라 是以로 惻隱之發은 則於民切而於物緩하고 推廣仁術은 則仁民易而愛物難이어늘 今王此心이 能及物矣면 則其保民而王은 非不能也요 但自不肯爲耳니라
'恩' 이하는 다시 맹자의 말이다. 대개 천지의 성 중에 사람이 귀하다. 그러므로 사람과 사람은 또 동류가 되어 서로 친하다. 이 때문에 측은지심의 발함은 백성에게는 간절하고 물건에게는 느슨하며, 인을 행하는 방법을 미루어 넓힘은 백성을 사랑함이 쉽고 물건을 아낌이 어렵다. 지금 왕은 이 마음이 능히 물건에까지 미쳤으니 그 백성을 보호하고 왕 노릇 하는 것은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고 단지 스스로 기꺼이 하려고 하지 않는 것일 뿐이다.

7-11. 曰 不爲者與不能者之形이 何以異잇고 曰 挾太山하여 以超北海를 語人曰 我不能이라하면 是誠不能也어니와 爲長者折枝를 語人曰 我不能이라하면 是不爲也언정 非不能也니 故로 王之不王은 非挾太山以超北海之類也라 王之不王은 是折枝之類也니이다
"하지 않는 것과 하지 못하는 것의 모양이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태산을 끼고 북해를 넘는 것을 사람이 말하기를, '내가 할 수 없다.'라고 하면 이것은 진실로 할 수 없는 것이지만, 어른을 위하여 가지를 꺾는 것을 사람이 말하기를, '내가 할 수 없다.'라고 하면 이것은 하지 않는 것이지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왕께서 왕 노릇 하지 못함은 태산을 끼고 북해를 넘는 종류가 아닙니다. 왕께서 왕 노릇 하지 못함은 바로 가지를 꺾는 종류입니다.

形은 狀也라 挾은 以腋持物也라 超는 躍而過也라 爲長者折枝는 以長者之命으로 折草木之枝니 言不難也라
''은 형상이다. '挾'은 겨드랑이에 물건을 끼는 것이다. '超'는 뛰어서 지나가는 것이다. '枝'는 장자의 명으로 초목의 가지를 꺾는 것이니 어렵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是心固有하여 不待外求니 擴而充之는 在我而已니 何難之有리오
이 마음은 고유하여 밖에서 구해지기를 기대할 필요가 없으니 넓혀서 보충하는 것은 나에게 달려있을 뿐이다. 어찌 어려움이 있겠는가.  

7-12. 老吾老하여 以及人之老하며 幼吾幼하여 以及人之幼하면 天下可運於掌이니 詩云 刑于寡妻하여 至于兄弟하여 以御于家邦이라하니 言擧斯心加諸彼而已니 故로 推恩이면 足以保四海요 不推恩이면 無以保妻子니 古之人이 所以大過人者는 無他焉이라 善推其所爲而已矣니 今恩足以及禽獸로되 而功不至於百姓者는 獨何與니잇고
내 노인을 노인으로 섬겨서 남의 노인에게까지 미치고, 내 어린아이를 어린아이로 길러서 남의 어린아이에게까지 미친다면 천하를 손바닥에 놓고 움직일 수 있습니다. 《시경》에 이르기를, '과덕한 이의 아내에게 모범이 되어서 형제에 이르고, 집안과 나라를 다스린다.'라고 하였으니 이 마음을 들어서 저쪽에 더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은혜를 미루며 사해를 보전하기에 충분하고 은혜를 미루지 않으면 처자를 보호할 수 없습니다. 옛날 사람이 그냥 사람보다 크게 뛰어난 까닭은 다른 것이 없습니다. 그 하는 것을 미루기를 잘 했을 뿐입니다. 지금 은혜가 충분히 금수에게까지 미치나 공이 백성들에게 이르지 않음은 유독 어째서입니까?

老는 以老事之也니 吾老는 謂我之父兄이요 人之老는 謂人之父兄이라 幼는 以幼畜之也니 吾幼는 謂我之子弟요 人之幼는 謂人之子弟라 運於掌은 言易也라 詩는 大雅思齊之篇이라 刑은 法也라 寡妻는 寡德之妻니 謙辭也라 御는 治也라 不能推恩이면 則衆叛親離라 故로 無以保妻子라
'老'는 노인을 섬기는 방법으로써 섬기는 것이니 '老'는 나의 부형을 말하고, '老'는 남의 부형을 말한다. '幼'는 어린아이를 기르는 방법으로써 기르는 것이니 '幼'는 나의 자제를 말하고, '幼'는 남의 자제를 말한다. '掌'는 쉽다고 말한 것이다. 시는 대아의 사제 편이다. '刑'은 본받음이다. '妻'는 과덕한 이의 아내니 겸사이다. '御'는 다스림이다. 은혜를 능히 미루지 못하면 민중이 배반하고 가까운 사람들이 흩어진다. 그러므로 처자를 보존할 수 없다.

蓋骨肉之親은 本同一氣하니 又非但若人之同類而已라 故로 古人이 必由親親推之然後에 及於仁民하고 又推其餘然後에 及於愛物하니 皆由近以及遠하고 自易以及難이어늘 今王反之하니 則必有故矣라 故로 復推本而再問之하시니라
대개 골육의 친척은 본래 한 기운을 같이하였으니 또한 단지 사람의 동류와 같을 뿐만이 아니다. 그러므로 옛 사람이 가까운 사람을 가까이함으로 말미암아 미루어 본 다음에 백성을 사랑함에 미치고 또한 그 나머지로 미루어 본 이후에 물건을 아낌에 미치니 모두 가까운 것으로 말미암아 먼 것에 미치고 쉬운 것으로부터 어려운 것에 미치는 것이다. 지금 왕이 거꾸로 하니 반드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다시 근본을 미루어 재차 질문한 것이다.

7-13. 權然後知輕重하며 度然後知長短이니 物皆然이어니와 心爲甚하니 王請度之하소서
저울로 재어 본 다음에야 가볍고 무거움을 알며 자로 재어 본 다음에야 길고 짧음을 압니다. 물체가 모두 그렇지만 마음이 더욱 심하니, 청컨대 왕께서는 헤아리십시오."

權은 稱錘也요 度는 丈尺也라 度之는 謂稱量之也라 言 物之輕重長短은 人所難齊라 必以權度度之而後可見이니 若心之應物은 則其輕重長短之難齊하여 而不可不度以本然之權度가 又有甚於物者라
'權'은 저울과 저울추이고, '度'는 길과 자이다. '之'는 저울질하고 헤아림을 말한다. 물건의 경중과 장단은 사람이 가지런하게 하기 어려운 것이니, 반드시 저울과 자로써 저울질하고 헤아린 이후에 볼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마음이 사물에 응하는 경우에는 그 경중과 장단을 가지런하게 하기 어려우니 본연의 저울과 자로써 저울질하고 헤아릴 수 없음이 또한 물건보다 심함이 있다.

今王이 恩及禽獸而功不至於百姓하니 是는 其愛物之心이 重且長하고 而仁民之心이 輕且短하여 失其當然之序而不自知也라 故로 上文에 旣發其端하시고 而於此에 請王度之也하시니라
지금 왕은 은혜가 금수에까지 미치는데 공이 백성들에게 이르지 않는다. 이는 그 물건을 아끼는 마음이 무겁고 길지만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볍고 짧아서 그 당연한 순서를 잃어버리고도 스스로 알지 못했다. 그러므로 윗 문장에 이미 그 단서를 드러내고 이에 왕이 헤아리기를 청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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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학/맹자집주 2020. 2. 14. 15:33

7-1. 齊宣王이 問曰 齊桓晉文之事를 可得聞乎잇가

제 선왕이 물었다. "제 환공과 진 문공의 일을 얻어 들을 수 있겠습니까?"

  이니   
제 선왕은 성이 氏이고 이름은 벽강이니 제후인데도 주제넘게 왕을 칭했다. 제 환공, 진 문공은 모두 제후들 중에 패자였다.

7-2. 孟子對曰 仲尼之徒無道桓文之事者라 是以로 後世無傳焉하니 臣未之聞也로니 無以則王乎인저

맹자가 대답하였다. "중니의 제자들 중에서 환공과 문공의 일을 말한 사람이 없습니다. 이 때문에 후세에 전하는 것이 없으니 저도 아직 듣지 못했습니다. (대신) 멈추지 않고 왕도정치를 말하겠습니다."

  
'道'는 말하는 것이다.

    라하니  
동자가 말했다. "중니의 문도에 오척동자라도 다섯 백(춘추오패)을 칭하기를 부끄러워하였으니 힘과 속임수를 먼저 하고 인과 의를 뒤로 하였기 때문이다"라고 하였으니 또한 이 뜻이다.

 이니    
'以'는 '已(멈추다)'와 통용하니 '已'는 반드시 말하고자 하여 멈추지 않는 것이다. '王'은 천하에 왕 노릇하는 도를 말한다.

7-3. 曰 德何如면 則可以王矣리잇고 曰 保民而王이면 莫之能禦也리이다

"덕이 어떠해야 왕 노릇 할 수 있습니까?"

"백성을 보호하고 왕 노릇 하면 그것을 능히 막을 수 없습니다."

 
'保'는 아끼고 보호하는 것이다.

7-4. 曰 若寡人者도 可以保民乎哉잇가 曰 可하니이다 曰 何由知吾可也잇고 曰 臣聞之胡齕하니 曰 王坐於堂上이어시늘 有牽牛而過堂下者러니 王見之曰 牛何之오 對曰 將以釁鍾이니이다 王曰 舍之하라 吾不忍其觳觫若無罪而就死地하노라 對曰 然則廢釁鍾與잇가 曰 何可廢也리오 以羊易之라하니 不識케이다 有諸잇가

"과인과 같은 사람도 백성을 보호할 수 있습니까?"

"가능합니다."

"어떤 이유에서 내가 가능한 것을 아십니까?"

"제가 호흘에게 들었습니다. 왕께서 당 위에 앉아 계시다가 소를 끌고 당 아래로 지나가는 사람이 있었으니 왕이 그것을 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소가 어디로 가는가?' 대답하기를, '장차 흔종(釁鍾) 의식에 쓰려고 합니다.'라고 하니, 왕께서 말씀하시기를 '그것을 놓아 주어라. 내가 그것이 마치 죄가 없으면서도 사지에 나아가는 것처럼 두려워 떠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겠다.' 대답하기를, '그렇다면 흔종 의식을 폐지할까요?'라고 하니, 말씀하시기를 '어찌 폐지할 수 있겠는가. 양으로 바꿔라.'라고 하니 알지 못하겠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觳 : 두려울 곡 觫 : 두려울 속 釁 : 피 바를 흔

   이면 血하   
'齕'은 제(齊)나라 신하이다. '鍾'은 새로이 주조하여 종이 만들어지면 희생을 죽여 피를 취하여 그 틈에 칠하는 것이다. '觫'은 두려워하는 모양이다.
郄 : 틈 극(隙)

王하사되 아하시니라
맹자가 호흘의 말을 들은 것을 서술하여 왕에게 '이런 일이 과연 있었는지 알지 못하겠습니다.'라고 물은 것이다.

7-5. 曰 有之하니이다 曰 是心足以王矣리이다 百姓皆以王爲愛也어니와 臣固知王之不忍也하노이다

"있었습니다."

"이 마음이 왕 노릇 하기에 충분합니다. 백성들은 모두 왕을 인색하다고 여기지만 저는 진실로 왕께서 차마 하지 못하신 것을 알겠습니다."

     之하 시니라  
왕이 소가 두려워하는 것을 보고 차마 죽이지 못한 것은 곧 이른바 측은지심이 인의 단서라는 것이니 그것을 확대하여 보충하면 사해를 보호할 수 있다. 그러므로 맹자가 그것을 가리켜 말해서 왕이 이것을 살펴 알고 그것을 확대하고 보충하게 하고자 한 것이다. '愛'는 '吝(인색하다)'와 같다.

7-6. 王曰 然하다 誠有百姓者로다마는 齊國雖褊小吾何愛一牛리오 卽不忍其觳觫若無罪而就死地라 故로 以羊易之也하니이다

왕이 말했다. "그렇습니다. 진실로 백성들 중에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제나라가 비록 좁고 작다 하더라도 내가 어찌 소 한 마리를 아끼겠습니까. 곧 그것이 마치 죄가 없으면서도 사지에 나아가는 것처럼 두려워 떠는 것을 차마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양으로 바꾼 것입니다."

褊 : 좁을 편

  吝하  이나  
양으로 소와 바꾼 것은 그 자취가 아낀 것과 비슷하여 실제로 백성들이 비웃는 바와 같은 것이 있겠지만 내 마음은 이것과 같지 않다고 말한 것이다.

7-7. 曰 王無異於百姓之以王爲愛也하소서 以小易大어니 彼惡知之리잇고 王若隱其無罪而就死地면  則牛羊何擇焉이리잇고 王笑曰 是誠何心哉런고 我非愛其財而易之以羊也언마는 宜乎百姓之謂我愛也로다

"왕께서는 백성들이 왕을 인색하다고 여기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작은 것으로 큰 것을 바꾸었으니 저들이 어찌 그것을 알겠습니까. 왕께서 만약 그것이 죄가 없으면서도 사지에 나아가는 것을 측은히 여기셨다면 소와 양을 어찌 구별하셨겠습니까?"

왕이 웃으며 말했다. "이것이 진실로 어떤 마음이었는가! 내가 그 재물을 아껴서 그것을 양으로 바꾼 것이 아닌데, 백성들이 내가 인색하다고 말하는 것이 당연하겠구나!"

惡 : 어찌 오 隱 : 측은히여길 은

       어늘  
'異'는 괴이함이다. '隱'은 아프게 여김이다. '擇'는 '分(분별하다)'와 같다. 소와 양이 모두 죄가 없으면서도 죽는데 어느 것을 분별하여 양으로 소를 바꿨느냐고 말한 것이다. 

難하 이러시니 이라  
맹자가 고의로 이 질문을 설정해서 왕이 돌이켜 구해서 그 본심을 얻도록 하고자 하였으나 왕이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끝내 스스로 백성들의 말을 풀어낼 수 없었다. 

7-8. 曰 無傷也라 是乃仁術也니 見牛未見羊也일새니이다 君子之於禽獸也에 見其生不忍見其死하며 聞其聲不忍食其肉하나니 是以로 君子遠庖廚也니이다

"속상해하지 마십시오. 이것이 바로 인을 행하는 방법입니다. 소는 보았고 양은 아직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군자는 금수에 대하여 그 태어남을 보면 차마 그 죽음을 보지 못하고 그 소리를 들으면 차마 그 고기를 먹지 못하니 이 때문에 군자는 푸줏간을 멀리 하는 것입니다."

 이나    
'傷'은 비록 백성들의 말이 있지만 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이다. '術'은 방법의 정교함을 말한 것이다.

 이요     이나  이나 이요 이라    
대개 소를 죽이는 것은 이미 차마 하지 못한 것이고, 흔종은 또한 폐지할 수 없는 것이다. 이에 대처할 수 없으면 이 마음이 비록 발하였더라도 끝내 베풀어질 수 없다. 그러나 소를 보면 이 마음이 이미 발하여 막을 수 없고, 양을 아직 보지 않았으면 그 이치가 나타나지 않아서 방해할 것이 없다. 그러므로 양으로 소를 바꾸면 두 가지가 모두 온전하여지고 해가 없을 수 있으니 이것이 인을 행하는 방법이다.
遏 : 막을 알

     禮하  이니  니라
'聲'은 장차 죽을 때 내는 슬픈 울음소리를 말한다. 대개 사람은 금수에 대하여 똑같이 살지만 다른 종류이다. 그러므로 예로써 쓰고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이 보고 들음이 미치는 곳에 베풀어지니 그 반드시 푸줏간을 멀리 하는 까닭은 또한 미리 이 마음을 길러서 인을 행하는 방법을 넓히려고 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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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학/맹자집주 2020. 2. 14. 15:03

6-1. 王하시고

맹자가 양 양왕을 만나뵈었다.

  이라
양왕은 혜왕의 아들이니 이름은 이다.

6-2.  이요 이러니  定고하여늘  一이라호라

나와서 사람들에게 말했다. "바라보아도 인군 같지 않았고, 나아가도 두려워할 만한 것을 보지 못했다. 갑자기 물어보기를, '천하가 어디에 정해지겠습니까?'라고하니 내가 대답하기를, '한 곳에 정해질 것입니다.'라고 했다.

            爭하 고한대 시니라
'語'는 말하는 것이다. '인군 같지 않았고 두려워할 만한 것을 보지 못했다.'는 위의가 없음을 말한 것이다. '然'은 급한 모양이다. 대개 용모와 사기는 덕의 증거이니 그 밖에서 이와 같으면 그 안에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왕이 묻기를, '열국이 나뉘어 다투니 천하가 마땅히 어느 곳에 정해지겠습니까?'라고 하니 맹자가 '반드시 하나로 합쳐진 이후에야 정해질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6-3. 孰之오하여늘

'누가 능히 통일시키겠습니까?'라고 하시니


왕이 물은 것이다.

6-4. 對曰 不嗜殺人者 能一之라호라

대답하기를, '사람 죽이기를 즐기지 않는 사람이 통일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라 하였다.

 
'嗜'는 달게 여기는 것이다.

6-5. 오하여늘

'누가 그에게 귀순하겠습니까?'라고 하시니

王復問也라 與는 猶歸也라
왕이 다시 물은 것이다. '與'는 '歸(귀순함)'과 같다.

6-6.   乎잇가 間에 라가 雲하여 雨면 興之矣하나니  之리오   者면  리니  下하리니 之리오호라

대답하기를, '천하에 귀순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왕께서는 벼싹을 아십니까? 7, 8월 사이에 가물면 벼싹이 말라 죽어가다가 하늘이 뭉게뭉게 구름을 만들어 좍좍 비를 내리면 벼싹이 싱싱하게 일어납니다. 그것이 이와 같다면 누가 능히 막을 수 있겠습니까? 지금 천하의 군주가 사람 죽이기를 즐기지 않는 사람이 있지 않으니 만약 사람 죽이기를 즐기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천하의 백성들이 모두 목을 늘이고 바라볼 것입니다. 진실로 이와 같다면, 백성들이 귀순하는 것은 물이 아래로 가는 것과 같을 것이니 비가 좍좍 내리는 것을 누가 능히 막을 수 있겠습니까?'라 하였다."

苗 : 벼싹 묘 沛 : 비 쏟아질 패 

               이라   이면 니라 
주력 7, 8월은 하력으로 5, 6월이다. '然'은 구름이 성한 모양이고, '然'은 비가 성한 모양이고, '然'은 일어나는 모양이다. '禦'는 금지함이다. '牧'은 백성을 기르는 군주를 말한다. '領'은 목이다. 아마도 삶을 좋아하고 죽음을 싫어하는 것은 사람 마음의 같은 바이다. 그러므로 군주가 사람 죽이기를 즐기지 않으면 천하가 기뻐하여 그에게 귀순하는 것이다.

   이나 이면       亂하     分하 國하  시리오
소씨가 말했다. "맹자의 말은 구차하게 크게 말하는 것 뿐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뜻을 깊이 근원하고 그 내용을 상세하게 연구하지 않으면 에둘러 말한다고 여기지 않을 사람이 있지 않을 것이다. 내가 보니 맹자 이래로 한 고조로부터 광무제, 당 태종과 우리 태조황제(송 태조)에 이르기까지 능히 천하를 통일한 사람이 네 군주인데, 모두 사람 죽이기를 즐기지 않음으로써 그것을 이루었다. 그 나머지는 사람 죽이기를 더욱 많이 하여 천하가 더욱 혼란해졌는데, 진(秦)나라와 진(晉)나라 및 수(隋)나라는 힘은 능히 통합할 수 있었으나 죽이기를 좋아함이 끝없었다. 그러므로 혹은 합쳤더라도 다시 나누어지고 혹은 마침내 나라가 망하였으니 맹자의 말이 어찌 우연일 뿐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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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학/논어집주 2020. 2. 14. 14:24

史記世家曰 孔子는 名丘요 字仲尼니 其先은 宋人이라 父는 叔梁紇이요 母는 顏氏니 以魯襄公二十二年庚戌之歲十一月庚子에 生孔子於魯昌平鄉陬邑하니 爲兒嬉戲에 常陳俎豆하고 設禮容이러시니 及長爲委吏하사는 料量平하고

《사기 세가》에 이르기를, 공자의 이름은 丘이고 자는 仲尼이니 그 선조는 송(宋)나라 사람이다. 아버지는 숙량흘이고 어머니는 안씨이니 노(魯)나라 양공 22년 경술년 11월 경자일에 노(魯)나라 창평향 추(鄹)읍에서 공자를 낳았다. 어려서 놀 때에는 항상 조두를 진열하고 예의 바른 용모를 갖추었다. 자라서는 위리가 되어 급료의 분량을 공평하게 하였다. 

紇 : 묶을 흘 陬 : 땅 이름 추 嬉 : 놀 희 俎 : 도마 조 豆 : 제기 두

委吏 : 곡식의 출납을 관장하는 관리

委吏는 本作季氏史로되 索隱云一本에 作委吏라하여 與孟子合하니 今從之하노라
위리는 원래 계씨사로 되어 있었는데 《사기색은》에 이르기를, 어떤 책에는 위리라고 되어 있다고 하여 《맹자》와 부합하니 지금은 이것을 따른다. 

爲司職吏하사는 畜蕃息하시니라

사직리가 되어서는 가축이 번식하였다.

息 : 번식할 식

職은 見周禮牛人이라 讀爲樴이니 義與杙同하니 蓋繫養犧牲之所라 此官은 卽孟子所謂乘田이라
'職'은 《주례》 〈우인〉을 보면 '樴'으로 읽으니 의미가 '杙'과 같다. 아마도 희생을 매어 놓고 기르는 장소일 것이다. 이 관직은 곧 《맹자》에서 '승전'이라고 말한 것이다.
樴 : 말뚝 직 杙 : 말뚝 익 

適周하사 問禮於老子하시고 旣反而弟子益進이러라

주(周)나라에 가서 노자에게 예를 묻고 돌아오니 제자들이 더욱 나아왔다.

昭公二十五年甲申은 孔子年三十五라 而昭公奔齊魯亂하니 於是에 適齊하여 爲高昭子家臣하사 以通乎景公하시다

소공 25년 갑신은 공자의 나이 35세이니, 소공이 제(齊)나라로 도망가서 노(魯)나라가 혼란하였다. 이에 제(齊)나라로 가서 고소자의 가신이 되어 경공과 통하였다.  

有聞韶問政二事라
소악을 듣고, 정사를 물은 두 가지 일이 있다. 

公欲封以尼谿之田한대 晏嬰이 不可라하니 公惑之어늘

공이 이곡의 밭으로 봉하고자 하였으나 안영이 불가하다고 하니 공이 미혹되었다.

有季孟吾老之語라
'季孟'과 '吾老'의 말이 있다.

孔子遂行하사 反乎魯하시니라 定公元年壬辰은 孔子年四十三이라 而季氏強僭하고 其臣陽虎作亂專政이라 故로 孔子不仕하시고 而退修詩書禮樂하시니 弟子彌衆이러라

공자가 드디어 떠나 노(魯)나라로 돌아왔다. 정공 원년 임진은 공자의 나이 43세였는데, 계씨가 강해서 참람하고, 그 가신 양호가 난을 일으켜 정사를 전횡하였다. 그러므로 공자가 벼슬하지 않고, 물러나 《시경》, 《서경》, 《예기》, 《악경》을 닦으니 제자가 더욱 많아졌다.

九年庚子는 孔子年五十一이라 公山不狃以費畔季氏하고 召孔子어늘 欲往而卒不行하시니라

9년 경자는 공자의 나이 51세이다. 공산불뉴가 비읍(費邑)을 가지고서 계씨를 배반하고 공자를 불렀는데, 가고자 하였으나 끝내는 가지 않았다. 

畔 : 배반할 반

有答子路東周語라
자로에게 동주로 답한 말이 있다.

定公이 以孔子爲中都宰하니 一年에 四方則之라 遂爲司空하시고 又爲大司寇하시다 十年辛丑에 相定公하사 會齊侯于夾谷하시니 齊人歸魯侵地하다 十二年癸卯에 使仲由爲季氏宰하여 墮三都하고 收其甲兵이러니 孟氏不肯墮成이어늘 圍之不克하다

정공이 공자를 중도재로 삼으니 1년만에 사방이 다스려졌다. 드디어 사공으로 삼고 또 대사구로 삼았다. 10년 신축에 정공을 도와 제후(齊侯)와 협곡에서 회맹하니 제(齊)나라가 노(魯)나라에게서 빼앗은 땅을 돌려주었다. 12년 계묘에 중유로 하여금 계씨의 가재(家宰)가 되게 하여 세 도읍을 허물고 그 갑옷과 병기를 거두려 했다. 맹씨가 기꺼이 성(成) 땅을 허물지 않았으므로 포위하였으나 이기지 못하였다.

墮 : 허물 휴

十四年乙巳는 孔子年五十六이라 攝行相事하사 誅少正卯하시고 與聞國政하시니 三月에 魯國大治라 齊人이 歸女樂以沮之하니 季桓子受之하고 郊又不致膰俎於大夫한대 孔子行하시니라

14년 을사는 공자의 나이 56세였다. 재상의 일을 대신 행하여 소정묘를 주살하고 국정에 참여하여 들으니, 3개월만에 노(魯)나라가 크게 다스려졌다. 제(齊)나라가 여자 악공을 보내어 저지하니 계환자가 그것을 받고 또 교제에 제사지낸 제육(祭肉)이 대부들에게 이르지 않자 공자가 떠났다.

膰 : 제육(祭肉) 번

魯世家에 以此以上이 皆爲十二年事라
《노세가》에 이 이상이 모두 12년의 일이라고 되어 있다.

適衛하사 主於子路妻兄顏濁鄒家하시다

위(衛)나라로 가서 자로의 처형인 안탁추의 집에 우거하였다.

孟子에 作顏讎由라
《맹자》에는 안수유로 되어 있다.

適陳하실새 過匡하시니 匡人以爲陽虎而拘之하다

진(陳)나라로 가서 광(匡) 땅을 지나니 광 땅 사람이 양호라고 여겨 구류하였다.

有顏淵後及文王旣沒之語라
안연이 뒤에 이르렀고, 문왕이 이미 죽었다는 말이 있다.

旣解에 還衛하사 主蘧伯玉家하사 見南子하시다

풀려나서 위(衛)나라에 돌아가 거백옥의 집에 우거하면서 남자(南子)를 만나보았다. 

有矢子路及未見好德之語라
자로가 실망하였고, 덕을 좋아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는 말이 있다.

去適宋하신대 司馬桓魋欲殺之어늘

떠나서 송(宋)나라에 갔는데 사마 환퇴가 그를 죽이고자 하였다.

魋 : 상투 퇴

有天生德語及微服過宋事라
하늘이 덕을 낳았다는 말과 미복으로 송나라를 지나간 일이 있다. 

又去適陳하사 主司城貞子家하시고 居三歲而反于衛하시니 靈公이 不能用하다

또 떠나서 진(陳)나라에 가서 사성 정자의 집에 우거하여 3년 동안 거한 다음에 위(衛)나라로 돌아오니 영공이 능히 쓰지 못했다.

有三年有成之語라
3년이면 이루어짐이 있다는 말이 있다.

晉趙氏家臣佛肸이 以中牟畔하여 召孔子어늘 孔子欲往이라가 亦不果하시다

진(晉)나라 조씨의 가신 필힐이 중모 땅을 가지고서 배반하여 공자를 불렀는데, 공자는 가고자 하였으나 역시 실행하지 않았다.

佛 : 클 필 肸 : 클 힐 牟 : 보리 모 畔 : 배반할 반

有答子路堅白語及荷蕢過門事라
자로에게 堅白으로 답한 말과 삼태기를 멘 사람이 문을 지나간 일이 있다. 
蕢 : 삼태기 궤

將西見趙簡子라가 至河而反하사 又主蘧伯玉家러시니 靈公이 問陳이어늘 不對而行하사 復如陳하시다

장차 서쪽으로 가서 조간자를 만나보려고 하였으나 황하에 이르자 돌아가 또 거백옥의 집에 우거했다. 영공이 진법(陳法)을 물었는데 대답하지 않고 떠나서 다시 진(陳)나라로 갔다.

據論語하면 則絕糧當在此時라
《논어》에 근거하면 식량이 떨어진 일이 마땅히 이 때에 있었을 것이다.

季桓子卒에 遺言謂康子호되 必召孔子라하더니 其臣止之한대 康子乃召冉求하다

계환자가 죽을 때에 계강자에게 유언으로 말하기를, '반드시 공자를 불러라'라고 하였는데 그 가신들이 저지하므로 계강자가 이에 염구를 불렀다.

史記에 以論語歸與之歎으로 爲在此時라하고 又以孟子所記歎辭로 爲主司城貞子時語라하니 疑不然이라 蓋語孟所記 本皆此一時語어늘 而所記有異同耳라
《사기》에는 《논어》의 돌아가야겠다는 탄식이 이 때에 있었다고 하고, 또 《맹자》에 기록된 바 탄식하는 말은 사성 정자의 집에 우거하였을 때의 말이라고 하니 아닐 것 같다. 아마도 《논어》와 《맹자》에 기록된 것은 본래 모두 이 한 때의 말인데 기록된 것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孔子如蔡及葉하시니라

공자가 채(蔡)나라로 가서 섭(葉) 땅에 이르렀다. 

有葉公問答子路不對와 沮溺耦耕과 荷蓧丈人等事라 
섭공과 문답한 일, 자로가 대답하지 않은 일, 장저(長沮)와 걸익(桀溺)이 함께 밭을 간 일, 지팡이에 삼태기를 꿰어 맨 사람의 일 등이 있다.
耦 : 나란히 갈 우(偶) 蓧 : 삼태기 조 

史記云 於是에 楚昭王이 使人聘孔子하여 孔子將往拜禮어늘 而陳蔡大夫發徒圍之라 故로 孔子絕糧於陳蔡之間이라 有慍見及告子貢一貫之語라 
《사기》에 이르기를, 이에 초(楚) 소왕이 사람을 시켜 공자를 부르게 하여 공자가 장차 배례하러 왔는데, 진(陳)나라와 채(蔡)나라의 대부들이 무리를 징발하여 그를 포위하였다. 그러므로 공자가 진(陳)나라와 채(蔡)나라 사이에서 식량이 떨어졌다. 노여워하며 본 일과 자공에게 한 가지로 궤뚫는다고 이른 말이 있다.

按是時陳蔡臣服於楚하니 若楚王來聘孔子면 陳蔡大夫安敢圍之리오 且據論語컨대 絕糧이 當在去衛如陳之時라
내가 살펴보건대 이 때에 진(陳)나라와 채(蔡)나라는 초(楚)나라에 신하로 복종하였는데, 만약 초왕이 와서 공자를 초빙하였다면 진(陳)나라와 채(蔡)나라의 대부들이 어찌 감히 그를 포위하였겠는가. 또 《논어》에 근거하면, 식량이 떨어진 일이 마땅히 위(衛)나라를 떠나서 진(陳)나라로 가던 때에 있었을 것이다.

楚昭王이 將以書社地로 封孔子러니 令尹子西不可라하니 乃止하니라 

초 소왕이 장차 서사 땅으로 공자를 봉하려고 하니 영윤 자서가 불가하다고 하여 중지하였다.

史記云 書社地七百里라하니 恐無此理라 時則有接輿之歌라
《사기》에 이르기를 서사 땅은 칠백 리라고 하니 이러한 이치가 없을 것 같다. 이때에 접여가 노래한 일이 있었다.

又反乎衛하시니 時에 靈公已卒하고 衛君輒이 欲得孔子爲政하며

또 위(衛)나라에 돌아왔는데 당시에 영공은 이미 죽었고, 위나라 군주 첩이 공자를 얻어 정사를 하고자 하였다. 

有魯衛兄弟及答子貢夷齊, 子路正名之語라
노(魯)나라와 위(衛)나라는 형제라는 말, 자공에게 백이와 숙제로 답한 말, 자로에게 정명으로 답한 말이 있다.

而冉求爲季氏將하여 與齊戰有功한대 康子乃召孔子어늘 而孔子歸魯하시니 實哀公之十一年丁巳而孔子年六十八矣라

염구가 계씨의 장수가 되어 제(齊)나라와의 전투에서 공을 세웠다. 계강자가 이에 공자를 불러서 공자가 노(魯)나라로 돌아오니 실로 애공 11년 정사이고 공자의 나이 68세였다.

有對哀公及康子語라
애공과 계강자에게 대답한 말이 있다.

然이나 魯終不能用孔子하고 孔子亦不求仕하사 乃敘書傳禮記하시며

그러나 노(魯)나라는 끝내 공자를 등용하지 못했고 공자 또한 벼슬하기를 구하지 않아, 《서전》과 《예기》를 서술하였다.

有杞宋, 損益, 從周等語라
杞宋, 損益, 從周 등의 말이 있다.

刪詩正樂하시며

《시경》을 산삭하고 《악경》을 바로잡았다.

有語大師及樂正之語라
태사에게 말한 말과 음악이 바르게 되었다는 말이 있다.

序易彖繫象說卦文言하시니라

《주역》 〈단전〉,  〈계사전〉, 〈상전〉,  〈설괘전〉,  〈문언전〉을 지었다.

序 : 서술할 서

有假我數年之語라
나에게 수 년을 빌려달라는 말이 있다.

弟子蓋三千焉에 身通六藝者七十二人이러라

제자들이 거의 삼천 명이었는데 몸소 육예에 통달한 사람이 72명이었다.

弟子顏回最賢이나 蚤死하고 後惟曾參得傳孔子之道라
제자 중 안회가 가장 현명했으나 일찍 죽었고, 후에 오직 증삼이 공자의 도를 전할 수 있었다.
蚤 : 일찍 조

十四年庚申에 魯西狩獲麟하니

14년 경신에 노(魯)나라에서 서쪽으로 사냥을 갔다가 기린을 잡았다.

有莫我知之歎이라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는 탄식이 있었다.

孔子作春秋하시니라

공자가 《춘추》를 지었다.

有知我罪我等語라 論語에 請討陳恒事도 亦在是年이라
'知我罪我' 등의 말이 있었다. 《논어》에 진항을 토벌하자고 청한 일도 역시 이 해에 있었다.

明年辛酉에 子路死於衛하고 十六年壬戌四月己丑에 孔子卒하시니 年七十三이라 葬魯城北泗上하다 弟子皆服心喪三年而去로되 惟子貢은 廬於冢上하여 凡六年이러라 孔子生鯉하시니 字伯魚라 先卒하고 伯魚生伋하니 字子思니 作中庸하시니라
다음해 신유에 자로가 위(衛)나라에서 죽고 16년 임술 4월 기축에 공자가 죽으니 나이가 73세였다. 노(魯)나라 도성 북쪽 사수(泗水) 가에 안장하였다. 제자들은 모두 심상(心喪) 3년을 지내고 떠났지만 오직 자공만은 무덤 근처에 오두막을 짓고서 모두 6년을 지넀다. 공자는 공리를 낳았으니 자는 백어인데, 먼저 죽었다. 백어는 공급을 낳으니 자가 자사이며, 《중용》을 지었다.

心喪 : 상복은 입지 않되 마음으로 근신하는 일

子思學於曾子하고 而孟子受業子思之門人하니라
자사는 증자에게서 배웠고, 맹자는 자사의 문인에게서 업을 받았다.

何氏曰 魯論語는 二十篇이요 齊論語는 別有問王知道하여 凡二十二篇이요 其二十篇中章句도 頗多於魯論이라 古論은 出孔氏壁中하니 分堯曰下章子張問하여 以爲一篇하여 有兩子張하니 凡二十一篇이요 篇次不與齊魯論同하니라

하씨가 말했다. "《노논어》는 20편이고, 《제논어》는 별도로 〈문왕〉과 〈지도〉가 있어 모두 22편이고,  그 20편 안의 장구도 《노논어》와 파다하게 다르다. 《고논어》는 공씨의 벽 안에서 나왔는데, 〈요왈〉 아래 장에 〈자장문〉을 나누어 한 편을 만들어 두 개의 〈자장〉이 있으니 모두 21편이고, 편의 차례도 《제논어》나 《노논어》와 같지 않다."

程子曰 論語之書는 成於有子曾子之門人이라 故로 其書獨二子以子稱하니라

정자가 말했다. "《논어》 책은 유자와 증자의 문인에게서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그 책에서는 유독 두 사람을 자라고 칭했다."

程子曰 讀論語에 有讀了全然無事者하며 有讀了後에 其中得一兩句喜者하며 有讀了後에 知好之者하며 有讀了後에 直有不知手之舞之足之蹈之者니라

정자가 말했다. "《논어》를 읽음에 다 읽고 나서도 전혀 아무 일도 없는 사람이 있고, 다 읽은 후에 그 마음 속에 한두 구절을 얻고 기뻐하는 사람도 있으며, 다 읽은 후에 깨달아서 좋아하는 사람도 있으며 다 읽은 후에 곧 부지중에 손으로 춤추고 발로 뛰는 사람도 있다."

程子曰 今人은 不會讀書로다 如讀論語에 未讀時도 是此等人이요 讀了後에도 又只是此等人이면 便是不曾讀이니라

정자가 말했다. "지금 사람들은 독서할 줄을 알지 못한다. 만약 《논어》을 읽을 때에 읽지 않았을 때에도 이와 같은 사람이고, 읽은 후에도 또 단지 이와 같은 사람이면 곧 이것은 읽지 않은 것이다."

會 : 알 회

程子曰 頤自十七八로 讀論語하니 當時已曉文義러니 讀之愈久에 但覺意味深長이로라

정자가 말했다. "나(程頤)는 17, 18세부터 《논어》를 읽었는데 당시에도 이미 글 뜻에 밝았는데 읽기를 더욱 오래 하니 다만 의미가 깊고 길어지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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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학/논어집주 2020. 2. 14. 14:23

16. 子 知요 니라

공자가 말했다. "남이 나를 알아주지 못함을 근심하지 말고 남을 알지 못함을 근심해야 한다."

     이면  이라  니라
윤씨가 말했다. "군자는 자신에게 있는 것을 구한다. 그러므로 남이 나를 알아주지 못함을 근심하지 않는다. 남을 알지 못하면 옳고 그름과 사특하고 올바름을 혹 분별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근심으로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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