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그리스어 문법 2020. 2. 26. 18:05

희랍어(내지 헬라어, 내지 고대 그리스어)에는 두 개의 수(호메릭 그리스어에는 쌍수가 있긴 하다), 세 성이 있고 다섯 격이 있다. 수에는 단수와 복수가 있고, 성은 남성, 여성, 중성이 있고, 격에는 주격, 속격, 여격, 대격, 호격이 있다.

희랍어의 관사들은 성과 수, 격에 따라 곡용한다. 이 관사들은 격을 나타내므로, 관사만 보아도 문장성분의 격을 알아챌 수 있다. 다음은 희랍어의 관사 체계이다.

단수 남성 여성 중성
주격 τό
속격 τοῦ τῆς τοῦ
여격 τῷ τῇ τῷ
대격 τόν τήν τό
호격

 

복수 남성 여성 중성
주격 οἱ αἱ τά
속격 τῶν τῶν τῶν
여격 τοῖς ταῖς τοῖς
대격 τούς τάς τά
탈격

관사가 해당하는 명사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경우, 그 관사는 대명사처럼 해석한다.

Ὁ δὲ λέγει αὐτοῖς (마 17:20)
But he says to them. 

홀로 쓰인 관사는 앞의 명사를 받아 관계대명사처럼 쓰이기도 한다.

ὁ ναὸς τοῦ Θεοῦ ὁ ἐν τῷ οὐρανῷ(계 11:19)
The temple of God which is in hea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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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학/맹자집주 2020. 2. 26. 14:11

2(9)-1. 齊宣王問曰:「文王之囿方七十里,有諸?」孟子對曰:「於傳有之。」

제 선왕이 물었다. "문왕의 동산이 사방 70리라고 하니, 그런 일이 있습니까?"

맹자가 대답했다. "옛 책에 있습니다."

囿 : 동산 유

囿者蕃育鳥獸之所古者四時之田皆於農隙以講武事然不欲馳騖於稼穡場圃之中故度閒曠之地以爲囿然文王七十里之囿其亦三分天下有其二之後也與謂古書
'囿'는 새와 짐승을 번식시키고 기르는 곳이다. 옛날에 사계절의 사냥은 모두 농한기에 하여 무예를 강습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농토와 채소밭 가운데로는 달리고자 하지 않았으므로 한가롭고 빈 땅을 헤아려 동산으로 만든 것이다. 그러나 문왕의 70리 동산은 아마도 또한 천하의 3분의 2를 소유한 이후였을 것이다. '傳'은 고서를 말한다.
騖 : 달릴 무
稼穡 : 곡식을 기르는 곳
場圃 : 채소를 기르는 곳


2(9)-2. 曰:「若是其大乎?」曰:「民猶以爲小也。」曰:「寡人之囿方四十里,民猶以爲大,何也?」曰:「文王之囿方七十里,芻蕘者往焉,雉兔者往焉,與民同之。民以爲小,不亦宜乎?
"이와 같이 컸습니까?"

"백성들이 오히려 작게 여겼습니다."

"과인의 동산은 사방 40리인데도 백성들이 오히려 크다고 여기는데, 어째서입니까?"

"문왕의 동산은 사방 70리였지만 꼴 베고 나무하는 사람들이 그곳으로 갔으며, 꿩 잡고 토끼 잡는 사람들이 그곳으로 갔으니, 백성들과 같이 소유하였습니다. 백성들이 작게 여기는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蕘 : 땔나무 요

草也薪也
'芻'는 풀이다. '蕘'는 땔감이다.

2(9)-3. 臣始至於境,問國之大禁,然後敢入。臣聞郊關之內有囿方四十里,殺其麋鹿者如殺人之罪。則是方四十里,爲阱於國中。民以爲大,不亦宜乎?」

제가 처음 국경에 이르렀을 때, 나라에서 크게 금하는 것을 물어본 다음에야 감히 들어왔습니다. 제가 듣기로 교외와 관문 안에 동산이 사방 40리인데, 그 사슴들을 죽이는 것을 사람을 죽인 죄와 같이 한다고 합니다. 이는 사방 40리로써 나라 안에 함정을 설치한 것입니다. 백성들이 크다고 여기는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禮:入國而問禁。國外百里爲郊,郊外有關。阱,坎地以陷獸者,言陷民於死也。
예에, 나라에 들어가면 금하는 것을 묻는다고 한다. 국도 밖 100리를 '郊'라고 하는데, '郊'의 밖에는 '關'이 있다. '阱'은 땅을 파서 짐승을 빠뜨리는 것이니, 백성을 죽음에 빠뜨림을 말한 것이다.
坎 : 구덩이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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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학/논어집주 2020. 2. 26. 13:34

6(22). 孟武伯問孝子曰:「父母唯其疾之憂。」

맹무백이 효를 물었다. 공자가 말했다. "부모는 오직 그 <자식이> 아플까 걱정한다."

武伯,懿子之子,名彘。
무백은 의자의 아들이며, 이름은 彘이다.

言父母愛子之心,無所不至,惟恐其有疾病,常以爲憂也。人子體此,而以父母之心爲心,則凡所以守其身者,自不容於不謹矣,豈不可以爲孝乎?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지극하지 않은 바가 없어서 오직 그가 질병이 있을까 걱정하여 항상 근심함을 말한 것이다. 자식이 이것을 체득하여 부모의 마음으로써 마음을 삼으면 무릇 그 몸을 지키는 것이 삼가지 않음을 스스로 용납하지 않을 것이니, 어찌 효가 될 수 없겠는가.

舊說,人子能使父母不以其陷於不義爲憂,而獨以其疾爲憂,乃可謂孝。亦通。
옛 설에, 자식이 능히 부모로 하여금 그가 불의에 빠짐을 근심하지 않게 하고, 오직 그가 아픔을 걱정하게 할 수 있어야 효라고 할 수 있다고 하니, 또한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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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학/논어집주 2020. 2. 26. 13:28

5(21)-1. 孟懿子問孝子曰:「無違。」

맹의자가 효를 물었다. 공자가 말했다. "어김이 없는 것이다."

孟懿子魯大夫仲孫氏名何忌無違謂不背於理
맹의자는, 노나라 대부 중손씨이며, 이름은 何忌이다. '無違'는 이치에 배반하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5(21)-2. 樊遲御子告之曰:「孟孫問孝於我我對曰無違』。」

번지가 수레를 몰고, 공자는 그에게 말했다. "맹손이 나에게 효를 묻길래, 내가 '어김이 없는 것이다.'라고 대답하였다."

樊遲,孔子弟子,名須。御,爲孔子御車也。孟孫,卽仲孫也。
번지는 공자의 제자이며 이름은 須이다. '御'는 공자를 위하여 수레를 모는 것이다. '孟孫'은 곧 중손씨이다.

夫子以懿子未達而不能問,恐其失指,而以從親之令爲孝,故語樊遲以發之。
부자는 맹의자가 통달하지 못하여 더 이상 물을 수 없었으니, 그 요지를 잃어버려서 어버이의 명령을 따르기만 하는 것을 효라고 여길까 걱정하였다. 그러므로 번지에게 말하여 밝힌 것이다.

5(21)-3. 樊遲曰:「何謂也?」子曰:「事之以禮葬之以禮祭之以禮。」

번지가 말했다.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공자가 말했다. "살아 계실 때에는 예로써 섬기는 것이고, 돌아가셨을 때에는 예로써 장사지내고, 예로써 제사지내는 것이다."

生事葬祭,事親之始終具矣。
살아 계실 때 섬기고 장사지내고 제사지냄은 어버이를 섬김에 처음과 끝이 갖추어진 것이다.

禮,卽理之節文也。人之事親,自始至終,一於禮而不苟,其尊親也至矣。
예는 곧 이치의 절문이다. 사람이 어버이를 섬김에 처음부터 끝까지 예에 한결같고 구차하지 않으면 그것은 어버이를 높임이 지극한 것이다.
節文 : 예절에 관한 규정

是時三家僭禮,故夫子以是警之,然語意渾然,又若不專爲三家發者,所以爲聖人之言也。
이 때에 삼가가 예를 참람하였으므로 부자가 이로써 경계한 것이다. 그러나 말의 뜻이 혼연하여 또한 오로지 삼가를 위하여 말하지 않은 듯하니, 성인의 말이 되는 것이다.

胡氏曰:「人之欲孝其親,心雖無窮,而分則有限。得爲而不爲,與不得爲而爲之,均於不孝。所謂以禮者,爲其所得爲者而已矣。」
호씨가 말했다. "사람이 그 어버이에게 효도하고자 함에 마음은 비록 무궁하지만 분수에는 한계가 있다. 할 수 있는데 하지 않는 것과 할 수 없는데 하는 것은 똑같이 불효이다. 이른바 예로써 한다는 것은 그 할 수 있는 것을 할 뿐인 것이다."

※삼환(三桓) : 노 환공의 아들들의 후손들이다. 노 환공에게는 네 아들이 있었는데, 동(同), 경보(慶父), 아(牙), 우(友)였다. 이 중 동은 적장자로 환공을 이어 장공으로 즉위한고, 경보, 아, 우는 경이 된다. 이 경보, 아, 우의 후손이 각각 계손(季孫), 숙손(叔孫), 맹손(孟孫)이다. 따라서 여기 나오는 맹의자는 공자 우의 후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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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학/논어집주 2020. 2. 26. 13:06

4(20)-1. 子曰:「吾十有五而志于學

공자가 말했다. "나는 15세에 배움에 뜻을 두었고,

古者十五而入大學。心之所之謂之志。此所謂學,卽大學之道也。
옛날에는 15세가 되면 대학에 들어갔다. 마음이 가는 바를 '志'라고 한다. 이 곳에서 말한 '學'은 곧 대학의 도이다.

志乎此,則念念在此而爲之不厭矣。
뜻을 여기에 두면 항상 마음속으로 생각함이 여기에 있어서 그것을 하기를 싫어하지 않을 것이다.

4(20)-2. 三十而立

30세에 자립하였으며,

有以自立,則守之固而無所事志矣。
자립함이 있으면 그것을 견고히 지켜서 뜻을 일삼음이 없을 것이다.

4(20)-3. 四十而不惑

40세에 미혹되지 않았고,

於事物之所當然皆無所疑則知之明而無所事守矣
사물의 당연한 것에 모두 의심함이 없으면 밝히 알아서 지킴을 일삼음이 없을 것이다.

4(20)-4. 五十而知天命

50세에 천명을 알았으며, 

天命卽天道之流行而賦於物者乃事物所以當然之故也知此則知極其精而不惑又不足言矣
천명은 곧 천도가 흘러가 사물에게 부여한 것이니, 사물의 당연한 것의 이유이다. 이를 알면 앎이 그 정밀함을 지극히 하여 미혹되지 않음을 또한 말하지 않아도 충분할 것이다.

4(20)-5. 六十而耳順

60세에 귀가 순해졌고,

聲入心通,無所違逆,知之之至,不思而得也。
소리가 들어오면 마음으로 통달해서, 어긋나거나 거스르는 것이 없으니, 앎이 지극해서 생각하지 않아도 아는 것이다.

4(20)-6. 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

70세에는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를 따라도 법도를 넘지 않았다."

從,隨也。矩,法度之器,所以爲方者也。隨其心之所欲,而自不過於法度,安而行之,不勉而中也。
'從'은 따름이다. '矩'는 법도의 기물이니, 모난 것을 만드는 도구이다. 그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를 따라도 스스로 법도에 어긋나지 않으니 안심하고 행하여 힘쓰지 않아도 알맞는 것이다.

程子曰:「孔子生而知之也,言亦由學而至,所以勉進後人也。立,能自立於斯道也。不惑,則無所疑矣。知天命,窮理盡性也。耳順,所聞皆通也。從心所欲,不踰矩,則不勉而中矣。」
정자가 말했다. "공자는 태어나면서부터 안 사람인데, 말하기를 '역시 배움으로 말미암아 이르렀다.'라고 한 것은 뒷사람을 권면하여 나아가게 한 것이다. '立'은 능히 스스로 이 도에 서는 것이다. '不惑'은 의심하는 것이 없는 것이다. '知天命'은 리를 궁구하여 성을 다하는 것이다. '耳順'은 들은 바에 모두 통달하는 것이다. '從心所欲不踰矩'는 힘쓰지 않아도 알맞는 것이다."

又曰:「孔子自言其進德之序如此者,聖人未必然,但爲學者立法,使之盈科而後進,成章而後達耳。」
또 말했다. "공자가 스스로 그 덕에 나아가는 순서가 이와 같다고 말한 것은 성인이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고, 단지 배우는 사람을 위하여 법을 세워서 그들로 하여금 구덩이를 채운 후에 나아가고 문장을 이룬 후에 통달하게 한 것일 뿐이다."

胡氏曰:「聖人之教亦多術,然其要使人不失其本心而已。欲得此心者,惟志乎聖人所示之學,循其序而進焉。至於一疵不存、萬理明盡之後,則其日用之間,本心瑩然,隨所意欲,莫非至理。蓋心卽體,欲卽用,體卽道,用卽義,聲爲律而身爲度矣。」
호씨가 말했다. "성인의 가르침은 또한 방법이 많지만, 그 요지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 본심을 잃지 않게 할 따름이다. 이 마음을 얻고자 하는 사람은, 오직 성인이 제시한 배움에 뜻을 두어서 그 차례를 따라 나아가야 한다. 한 가지 흠도 존재하지 않고, 모든 리를 밝히 다한 다음에 이르면 그 일상생활을 하는 중에 본심이 밝아져 뜻이 하고자 하는 바를 따라도 지극한 이치가 아닌 것이 없다. 대개 마음은 곧 몸이고, 하고자 함은 곧 쓰임이고, 몸은 곧 도이고, 쓰임은 곧 의이니, 소리를 내면 음률이 되고 몸을 움직이면 법도가 되는 것이다." 

又曰:「聖人言此,一以示學者當優游𣹢泳,不可躐等而進;二以示學者當日就月將,不可半途而廢也。」
또 말했다. "성인이 이와 같이 말한 것은, 첫째, 배우는 사람들에게 마땅히 오랫동안 푹 빠져야 하고 등급을 뛰어넘어 나아가면 안 됨을 보인 것이다. 둘째, 배우는 사람들에게 마땅히 일취월장해야 하고 중도에 폐해서는 안 됨을 보인 것이다." 
優游 : 오랫동안 하는 것
𣹢泳 : 푹 빠져서 하는 것
躐 : 뛰어넘을 렵


愚謂聖人生知安行,固無積累之漸,然其心未嘗自謂已至此也。是其日用之間,必有獨覺其進而人不及知者。故因其近似以自名,欲學者以是爲則而自勉,非心實自聖而姑爲是退託也。後凡言謙辭之屬,意皆放此。
내가 생각컨대, 성인은 태어나면서부터 알고 안심하고 행하여 진실로 점점 쌓아가는 것이 없지만 그 마음에 일찍이 스스로 이미 이에 이르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는 그 일상생활을 하는 중에 반드시 홀로 그 나아감을 깨달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알 수 없음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 가깝고 비슷한 말로 인하여 스스로 이름을 붙여서, 배우는 사람들이 이것으로써 법칙을 삼아서 스스로 힘쓰게 하고자 한 것이고, 마음속으로는 실로 스스로 성인이라고 여겨서 우선 이것으로 물러나 말한 것은 아니다. 후에 모두 겸사로 말한 등속은 뜻이 모두 이것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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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학/맹자집주 2020. 2. 25. 13:32
凡十六章
모두 16장이다.

1(8)-1. 莊暴見孟子:「暴見於王王語暴以好樂暴未有以對也。」:「好樂何如?」孟子曰:「王之好樂甚則齊國其庶幾乎!」

장포가 맹자를 만나뵙고 말했다. "제가 왕을 알현하였는데 왕께서 제게 음악을 좋아하냐고 물으셔서 제가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음악을 좋아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맹자가 말했다. "왕께서 음악을 좋아하심이 심하면 아마도 제(齊)나라는 거의 다스려질 것이다."

莊暴齊臣也庶幾近辭也言近於治
장포는 제나라 신하이다. '庶幾'는 가깝다는 말이니 다스려짐에 가깝다고 말한 것이다.

1(8)-2. 他日見於王曰:「王嘗語莊子以好樂有諸?」王變乎色:「寡人非能好先王之樂也直好世俗之樂耳。」

다른 날에 (맹자가) 왕을 뵈었다. "왕께서 일찍이 장포에게 음악을 좋아하냐고 물으셨다는데, 그런 일이 있습니까?"

왕이 얼굴빛을 바꾸고 말했다. "과인은 선왕의 음악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세속의 음악을 좋아할 뿐입니다." 

變色者慚其好之不正也
'變色'은 그 좋아함이 바르지 못함을 부끄러워하는 것이다.

1(8)-3. :「王之好樂甚則齊其庶幾乎今之樂猶古之樂也。」

"왕께서 음악을 좋아하심이 심하면, 아마도 제나라는 거의 다스려질 것입니다. 지금의 음악이 옛날의 음악과 같습니다." 

今樂世俗之樂古樂先王之樂
'今樂'은 세속의 음악이다. '古樂'은 선왕의 음악이다.

1(8)-4. :「可得聞與?」:「獨樂樂與人樂樂孰樂?」:「不若與人。」:「與少樂樂與衆樂樂孰樂?」:「不若與衆。」

"얻어 들을 수 있겠습니까?"

"홀로 음악을 즐기는 것과 남과 함께 음악을 즐기는 것 중 어느 것이 즐겁습니까?"

"남과 함께하는 것만 못합니다."

"적은 사람과 음악을 즐기는 것과 많은 사람과 음악을 즐기는 것 중 어느 것이 즐겁습니까?"

"많은 사람과 함께하는 것만 못합니다."

獨樂不若與人與少樂不若與衆亦人之常情也
홀로 즐기는 것이 남과 함께하는 것만 못하며, 적은 사람과 즐기는 것이 많은 사람과 함께하는 것만 못함은 또한 인지상정이다.

1(8)-5. 「臣請爲王言樂:

"제가 청컨대 왕을 위해 음악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此以下皆孟子之言也
이 아래는 모두 맹자의 말이다.

1(8)-6. 今王鼓樂於此百姓聞王鐘鼓之聲管籥之音擧疾首蹙頞而相告曰:『吾王之好鼓樂夫何使我至於此極也父子不相見兄弟妻子離散。』今王田獵於此百姓聞王車馬之音見羽旄之美擧疾首蹙頞而相告曰:『吾王之好田獵夫何使我至於此極也父子不相見兄弟妻子離散。』此無他不與民同樂也

이곳에서 지금 왕께서 음악을 타시는데 백성들이 왕의 종과 북 소리, 관과 약 소리를 듣고 모두 머리를 아파하고 이마를 찌푸리며 서로 말하기를, '우리 왕께서 음악을 타시기 좋아하심이여, 어째서 우리들로 하여금 이 곤궁함에 이르게 하였는가? 부자가 서로 보지 못하고, 형제와 처자가 떨어지는구나.'라고 하며, 이곳에서 지금 왕께서 사냥하시는데 백성들이 왕의 수레와 말 소리를 듣고, 깃털로 장식한 깃발의 아름다움을 보고 모두 머리를 아파하고 이마를 찌푸리며 서로 말하기를, '우리 왕께서 사냥을 좋아하심이여, 어째서 우리들로 하여금 이 곤궁함에 이르게 하였는가? 부자가 서로 보지 못하고, 형제와 처자가 떨어지는구나.'라고 한다면, 이는 다른 것이 아니라 백성들과 같이 즐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籥 : 피리 약 蹙 : 찌푸릴 축 頞 : 이마 알 田 : 사냥할 전(畋) 旄 : 깃발 모

鐘鼓管籥皆樂器也皆也疾首頭痛也聚也額也人憂戚則蹙其額窮也羽旄旌屬不與民同樂謂獨樂其身而不恤其民使之窮困也
'鐘', '鼓', '管', '籥'은 모두 악기이다. '擧'는 모두이다. '疾首'는 두통이다. '蹙'은 모음이다. '頞'은 이마이다. 사람들이 걱정하고 근심하여 그 이마를 찌푸리는 것이다. '極'은 곤궁함이다. '羽旄'는 깃발의 등속이다. '不與民同樂'은 그 자신만 홀로 즐기고 그 백성을 구휼하지 않아 그들로 하여금 곤궁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旌 : 깃발 정

1(8)-7. 今王鼓樂於此百姓聞王鐘鼓之聲管籥之音擧欣欣然有喜色而相告曰:『吾王庶幾無疾病與何以能鼓樂也?』今王田獵於此百姓聞王車馬之音見羽旄之美擧欣欣然有喜色而相告曰吾王庶幾無疾病與何以能田獵也?』此無他與民同樂也

이곳에서 지금 왕께서 음악을 타시는데 백성들의 왕의 종과 북 소리, 관과 약 소리를 듣고 모두 기분이 좋아져 기뻐하는 기색을 띠고 서로 말하기를, '우리 왕께서 아마도 질병이 없으신가?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음악을 타실 수 있으시겠는가?'라고 하며, 이곳에서 지금 왕께서 사냥하시는데 백성들이 왕의 수레와 말 소리를 듣고, 깃털로 장식한 깃발의 아름다움을 보고 모두 기분이 좋아져 기뻐하는 기색을 띠고 서로 말하기를, '우리 왕께서 아마도 질병이 없으신가?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사냥하실 수 있으시겠는가?'라고 한다면, 이는 다른 것이 아니라 백성들과 같이 즐겼기 때문입니다.

欣 : 기쁠 흔

與民同樂者推好樂之心以行仁政使民各得其所也
'與民同樂'은 음악을 좋아하는 마음을 미루어 어진 정사를 행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각자 그 살 곳을 얻게 하는 것이다.

1(8)-8. 今王與百姓同樂則王矣。」

지금 왕께서 백성들과 같이 즐기신다면 왕 노릇 하실 수 있습니다."

好樂而能與百姓同之,則天下之民歸之矣,所謂齊其庶幾者如此。
음악을 좋아하여 능히 백성들과 같이 즐길 수 있으면 천하의 백성들이 돌아올 것이니, '아마도 제나라가 거의 다스려질 것이다.'라고 말한 것이 이와 같다.

范氏曰:「戰國之時,民窮財盡,人君獨以南面之樂自奉其身。孟子切於救民,故因齊王之好樂,開導其善心,深勸其與民同樂,而謂今樂猶古樂。其實今樂古樂,何可同也?但與民同樂之意,則無古今之異耳。若必欲以禮樂治天下,當如孔子之言,必用韶舞,必放鄭聲。蓋孔子之言,爲邦之正道;孟子之言,救時之急務,所以不同。」
범씨가 말했다. "전국시대에 백성들이 곤궁하고 재물이 다한 것은 인군이 홀로 남면의 즐거움으로써 스스로 그 자신을 받들어서이다. 맹자는 백성을 구원하는 데 간절하였기 때문에 제나라 왕이 음악을 좋아함으로 인하여 그 착한 마음을 열어 인도해서 백성들과 같이 즐김을 깊이 권하기를 지금의 음악이 옛날의 음악과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금의 음악과 옛날의 음악이 어찌 같을 수 있겠는가? 다만 백성들과 같이 즐기려는 뜻이 고금에 차이가 없는 것이다. 만약 반드시 천하를 예와 악으로 다스리고자 하였다면 마땅히 공자의 말과 같이 하여 반드시 '소무(韶舞)'를 쓰고, 반드시 정나라의 음악을 방출했어야 한다. 대개 공자의 말은 나라의 바른 도가 되고, 맹자의 말은 때의 급한 일을 구원하고자 한 것이라 이 때문에 같지 않은 것이다."

楊氏曰:「樂以和爲主,使人聞鐘鼓管弦之音而疾首蹙頞,則雖奏以咸、英、韶、濩,無補於治也。故孟子告齊王以此,姑正其本而已。」
양씨가 말했다. "음악은 화를 위주로 하니 사람들로 하여금 종, 북, 피리, 현악기의 소리를 듣고 머리를 아파하고 이마를 찌푸히게 한다면 비록 〈함(咸)〉, 〈영(英)〉, 〈소(韶)〉, 〈호(濩)〉를 연주한다고 하더라도 다스림에 보탬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맹자는 제나라 왕에게 이것을 말하여 우선 그 근본을 바르게 했을 뿐이다."

※황제(黃帝)의 음악인 운문(雲門), 제요(帝堯)의 음악인 함지(咸池), 제순(帝舜)의 음악인 소(韶), 우(禹)의 음악인 하(夏), 탕왕(湯王)의 음악인 호(濩), 무왕(武王)의 악인 무(武)를 가리켜 육악(六樂)이라고 한다.

※오영(五英)은 제곡(帝嚳)의 음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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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학/논어집주 2020. 2. 25. 12:32

3(19)-1. 子曰:「道之以政,齊之以刑,民免而無恥;

공자가 말했다. "정치로써 인도하고 형벌로써 가지런히 하면 백성들은 면하기만 하면 될 뿐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猶引導謂先之也謂法制禁令也所以一之也道之而不從者有刑以一之也免而無恥謂苟免刑罰而無所羞愧蓋雖不敢爲惡而爲惡之心未嘗亡也
'道'는 '引導(인도함)'과 같으니, 먼저 함을 말한다. '政'은 법제로 금지하는 명령을 말한다. '齊'는 한 가지로 하는 것이니, 인도해도 따르지 않는 사람을 형벌을 가해서 한 가지로 만드는 것이다. '免而無恥'는 구차히 형벌을 면하여 부끄러워하는 것이 없음을 말한 것이니, 비록 감히 악을 행하지는 못하지만 악을 행하는 마음이 일찍이 없는 것은 아니다.

3(19)-2. 道之以德,齊之以禮,有恥且格。」

덕으로써 인도하고 예로써 가지런히 하면 부끄러움도 있고 또 이르는 것도 있다."

禮,謂制度品節也。格,至也。
'禮'는 제도와 등급을 말한다. '格'은 이름이다.

言躬行以率之,則民固有所觀感而興起矣,而其淺深厚薄之不一者,又有禮以一之,則民恥於不善,而又有以至於善也。
'몸소 행하여 솔선하면 백성들이 진실로 보고 느껴 흥기하는 바가 있을 것이고, 그 깊이와 두께가 균일하지 못한 것을 또 예를 가하여 한 가지로 만든다면 백성들이 불선함을 부끄러워하여 또 선에 이름이 있을 것이다.'라고 말한 것이다.

一說,格,正也。書曰:「格其非心。」
일설에 '格'은 '正(바로잡음)'이라고 하니, 《서경》에 '그 그른 마음을 바로잡는다.'라고 하였다.

愚謂政者,爲治之具。刑者,輔治之法。德禮則所以出治之本,而德又禮之本也。此其相爲終始,雖不可以偏廢,然政刑能使民遠罪而已,德禮之效,則有以使民日遷善而不自知。故治民者不可徒恃其末,又當深探其本也。
내가 생각컨대 정사는 다스림을 행하는 도구이고, 형벌은 다스림을 보완하는 법이다. 덕과 예는 다스림의 근본이 나오는 곳이고, 덕은 또한 예의 근본이다. 이것은 서로 처음과 끝이 되니 비록 어느 한쪽이라도 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정사와 형벌은 백성들을 죄에서 멀어지게 할 수 있을 뿐이고, 덕과 예의 효과는 백성들로 하여금 날로 선으로 옮겨 스스로 알지 못하게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백성을 다스리는 사람은 한갓 그 끝을 믿어서는 안 되고, 또한 마땅히 그 근본을 깊이 탐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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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학/논어집주 2020. 2. 25. 12:05

2(18). 子曰:「詩三百,一言以蔽之,曰『思無邪』。」

공자가 말했다. "《시경》 300편을 한마디로 덮을 수 있으니, 이를테면 생각에 간사함이 없는 것이다."

詩三百十一篇,言三百者,擧大數也。蔽,猶蓋也。「思無邪」,魯頌駉篇之辭。
《시경》은 311편인데 300편이라고 말한 것은 큰 수를 든 것이다. '蔽'는 '蓋(덮다)'와 같다. '思無邪'는 《노송》 〈경〉 편의 말이다.
駉 : 말건장할 경

凡詩之言,善者可以感發人之善心,惡者可以懲創人之逸志,其用歸於使人得其情性之正而已。然其言微婉,且或各因一事而發,求其直指全體,則未有若此之明且盡者。故夫子言詩三百篇,而惟此一言足以盡蓋其義,其示人之意亦深切矣。
무릇 시의 말이 선하다는 것은 사람의 착한 마음을 감동시켜서 발할 수 있는 것이고, 나쁘다는 것은 사람의 안일한 뜻을 징계하는 것이니 그 쓰임이 사람으로 하여금 그 성정의 바름을 얻는 데 귀결될 뿐이다. 그러나 그 말이 미묘하고 완곡하며 또 혹 각각 한 가지 일을 따라 발하여 그 전체를 직접 가리킨 것을 찾는다면 이와 같이 명확하고 또 뜻을 다한 것이 있지 않다. 그러므로 부자가 '《시경》 300편에 오직 이 한 마디 말이 충분히 그 뜻을 다 덮을 수 있다.'라고 말한 것이니 그 사람에게 보인 뜻이 역시 깊고 간절하다.
創 : 징계할 창

程子曰:「『思無邪』者,誠也。」
정자가 말했다. "생각에 간사함이 없는 것은, 진실함이다."

范氏曰:「學者必務知要,知要則能守約,守約則足以盡博矣。經禮三百,曲禮三千,亦可以一言以蔽之,曰『毋不敬』。」
범씨가 말했다. "배우는 사람은 반드시 요점을 아는 데 힘써야 한다. 요점을 알면 간략함을 지킬 수 있고, 간략함을 지키면 충분히 해박함을 다할 수 있을 것이다. 경례 300가지와 곡례 3000가지 역시 한 마디로 덮을 수 있으니, 이를테면 불경하지 말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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