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학'에 해당되는 글 114건
- 2020.02.12 :: 양혜왕장구상04. 사람을 정치로써 죽이는 것
- 2020.02.12 :: 학이13. 높일 만한 사람
- 2020.02.12 :: 학이12. 예의 쓰임 중 귀한 것
- 2020.02.12 :: 학이11. 효는 무엇인가(1)
- 2020.02.06 :: 양혜왕장구상03. 오십보백보
- 2020.02.06 :: 학이10. 공자가 정사를 듣는 방법
- 2020.02.06 :: 학이09. 백성의 덕이 후한 데로 돌아가게 하려면
- 2020.02.06 :: 학이08. 군자가 중후하지 않으면
4-1. 梁惠王曰 寡人願安承敎하노이다
양 혜왕이 말했다. "과인이 마음을 편하게 하여 가르침을 받들기를 원합니다."
承上章하여 言願安意以受敎라
윗 장을 이어서 마음을 편안하게 하여 가르침을 받기를 원한다고 말한 것이다.
4-2. 孟子對曰 殺人以梃與刃이 有以異乎잇가 曰 無以異也니이다
맹자가 대답했다. "사람을 몽둥이와 칼날로써 죽이는 것이 다름이 있습니까?"
"다름이 없습니다."
梃 : 몽둥이 정
梃은 杖也라
'梃'은 몽둥이이다.
4-3. 以刃與政이 有以異乎잇가 曰 無以異也니이다
"<사람을> 칼날과 정치로써 <죽이는 것이> 다름이 있습니까?"
"다름이 없습니다."
孟子又問에 而王答也라
맹자가 또 물어봄에 왕이 답한 것이다.
4-4. 曰 庖有肥肉하며 廐有肥馬하고 民有飢色하고 野有餓莩면 此率獸而食人也니이다
"푸줏간에는 살진 고기가 있고 마굿간에는 살진 말이 있는데 백성들은 굶는 기색이 있고 들에는 굶어 죽은 시체들이 있으면 이는 짐승을 몰아서 사람을 먹게 한 것입니다.
厚斂於民하여 以養禽獸하여 而使民飢以死면 則無異於驅獸以食人矣라
백성들에게 많이 거뒤서 금수를 길러 백성들로 하여금 굶어서 죽게 하면 짐승을 몰아서 사람을 먹게 한 것과 다름이 없다.
4-5. 獸相食도 且人惡之하나니 爲民父母라 行政不免於率獸而食人이면 惡在其爲民父母也리잇고
짐승끼리 서로 잡아먹는 것도 사람들이 싫어하는데 백성들의 부모가 되어서 정사를 행함에 짐승을 몰아서 사람을 먹게 함을 면하게 하지 못한다면 그 백성들의 부모가 됨이 어디에 있습니까?
君者는 民之父母也라 惡在는 猶言何在也라
군주는 백성들의 부모이다. '惡在'는 '何在(어디에 있는가)'라고 말함과 같다.
4-6. 仲尼曰 始作俑者其無後乎인저하시니 爲其象人而用之也니 如之何其使斯民飢而死也리잇고
중니께서 말하기를 '처음으로 나무 인형을 만든 사람은 아마도 후손이 없을 것이다!'라고 하셨으니, 그것이 사람을 본따서 <장례에> 사용하였기 때문입니다. 어찌하여 이 백성들로 하여금 굶주려서 죽게 하십니까?"
俑 : 목우(木偶) 용
俑은 從葬木偶人也라 古之葬者 束草爲人하여 以爲從衛하고 謂之芻靈하니 略似人形而已러니 中古에 易之以俑하니 則有面目機發하여 而太似人矣라 故로 孔子惡其不仁하사 而言其必無後也라 孟子言 此作俑者는 但用象人以葬이로되 孔子猶惡之하시니 況實使民飢而死乎아
俑은 장사할 때에 껴묻는 나무인형이다. 옛날의 장사지내는 사람들은 풀을 묶어서 사람 모양을 만들어서 <상여를> 따라 호위하게 하고 그것을 일러 '추령'이라고 하였으니 사람의 형상과 대략 비슷할 뿐이었다. 중고에 용으로 바꾸니 얼굴과 눈, 움직임이 있어서 매우 사람과 비슷하였다. 그러므로 공자가 그것의 어질지 못함을 미워하여 말하기를, '아마도 후손이 없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맹자가 말하기를, '이 용을 만든 사람은 단지 사람을 본따서 장례에 사용하였을 뿐인데 공자꼐서 오히려 그것을 미워하시니 하물며 실제로 백성들로 하여금 굶어서 죽게 한단 말입니까?"라고 한 것이다.
機發 : 움직임
○李氏曰 爲人君者 固未嘗有率獸食人之心이라 然이나 徇一己之欲하여 而不恤其民이면 則其流必至於此라 故로 以爲民父母告之하시니 夫父母之於子에 爲之就利避害하여 未嘗頃刻而忘于懷하나니 何至視之不如犬馬乎아
이씨가 말했다. "인군이 된 사람들에게는 진실로 일찍이 짐승을 몰아 사람을 먹게 하려는 마음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자신 한 사람의 욕심만을 따라서 그 백성들을 구휼하지 않는다면 그 흐름이 반드시 이에 이를 것이다. 그러므로 '백성들의 부모가 되었다'라고 말한 것이니 무릇 부모가 자식에 대해서는 그를 위하여 이익을 취하고 해를 피하게 하여 일찍이 경각이라도 마음속에서 잊지 않으니, 어찌 자식을 개나 말보다도 못하게 보는 데에 이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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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有子曰 信近於義면 言可復也며 恭近於禮면 遠恥辱也며 因不失其親이면 亦可宗也니라
유자가 말했다. "약속이 의에 가까우면 말을 실천할 수 있고, 공손함이 예에 가까우면 치욕을 멀리할 수 있으며, 주인을 삼을 때에 그 가까운 사람을 잃지 않으면 또한 높여 주인으로 삼을 수 있다."
信은 約信也라 義者는 事之宜也라 復은 踐言也라 恭은 致敬也요 禮는 節文也라 因은 猶依也요 宗은 猶主也라 言約信而合其宜면 則言必可踐矣요 致恭而中其節이면 則能遠恥辱矣요 所依者不失其可親之人이면 則亦可以宗而主之矣라 此는 言人之言行交際를 皆當謹之於始而慮其所終이니 不然이면 則因仍苟且之間에 將有不勝其自失之悔者矣니라
'信'은 약속이다. '義'는 일의 마땅함이다. '復'은 말을 실천하는 것이다. '恭'은 공경함을 지극히 하는 것이다. '禮'는 등급을 나누고 문식(文飾)하는 것이다. '因'은 '依(의지함)'과 같다. '宗'은 '主(주인)'과 같다. 말로 약속을 하면서 그 마땅함에 맞게 한다면 말을 반드시 실천할 수 있을 것이고, 공손함을 지극히 하여 그 예절에 맞게 한다면 능히 치욕을 멀리 할 수 있을 것이며, 의지한 바 되는 사람이 그 친할 만한 사람을 잃지 않았으면 또한 그를 높여서 주인으로 삼을 수 있다. 이것은 사람의 언행과 교제를 모두 처음부터 마땅히 삼가서 그 마칠 바를 생각해야 하며, 그렇지 않다면 그대로 답습하고 구차히 하는 사이에 장차 그 스스로 잃었다는 후회를 감당하지 못함이 있게 된다고 말한 것이다.
因仍 : 그대로 답습하다 勝 : 감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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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有子曰 禮之用和爲貴하니 先王之道 斯爲美라 小大由之니라
유자가 말했다. "예의 쓰임 중에서 화가 귀하니, 선왕의 도는 이것으로 아름다움을 삼았다. 크고 작은 것이 이것으로부터 말미암는다.
禮者는 天理之節文이요 人事之儀則也라 和者는 從容不迫之意라 蓋禮之爲體雖嚴이나 然이나 皆出於自然之理라 故로 其爲用이 必從容而不迫이라야 乃爲可貴니 先王之道 此其所以爲美하여 而小事大事無不由之也니라
'禮'는 천리의 등급과 문식(文飾)이고, 인사의 의례와 준칙이다. '和'는 조용하여 급박하게 하지않는다는 뜻이다. 대개 예의 체 됨은 비록 엄하나 모두 자연의 이치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그 쓰임이 반드시 조용하고 급박하지 않아야 이에 귀할 만한 것이 된다. 선왕의 도는 이것으로 그 아름다움을 삼아서 작은 일과 큰 일이 그것에 말미암지 않음이 없다.
12-2. 有所不行니 知和而和요 不以禮節之면 亦不可行也니라
행하지 않아야 할 것이 있으니 화를 알아서 화를 이루고 예로써 절제하지 않는다면 또한 행할 수 없다."
承上文而言 如此而復有所不行者하니 以其徒知和之爲貴하여 而一於和하고 不復以禮節之면 則亦非復禮之本然矣니 所以流蕩忘反하여 而亦不可行也니라
윗 문장을 받아서 말하기를, '이와 같은데도 다시 행하지 않아야 할 것이 있으니 다만 화가 귀하다는 것만을 알아서 화에만 한결같이 하고 다시 예로써 절제하지 않는다면 또한 다시 예의 본연이 아닌 것이며, 이 때문에 방탕하게 흘러가고 돌아옴을 잊어서 또한 행할 수 없다.'고 한 것이다.
○程子曰 禮勝則離라 故로 禮之用이 和爲貴하니 先王之道 以斯爲美하여 而小大由之요 樂勝則流라 故로 有所不行者하니 知和而和하고 不以禮節之면 亦不可行이니라
정자가 말했다. "예에 치우치면 지리해진다. 그러므로 예의 쓰임 중에서 화가 귀하니 선왕의 도는 이로써 아름다움을 삼아서 크고 작은 일이 그것으로 말미암는 것이다. 악에 치우치면 흘러간다. 그러므로 행하지 않아야 할 것이 있으니 화를 알아서 화를 이루고 예로써 절제하지 않는다면 또한 행할 수 없다."
范氏曰 凡禮之體는 主於敬이요 而其用則以和爲貴하니 敬者는 禮之所以立也요 和者는 樂之所由生也라 若有子면 可謂達禮樂之本矣로다
범씨가 말했다. "무릇 예의 체는 경을 주장하고 그 쓰임은 화를 귀하게 여긴다. 경은 예가 이루어지는 까닭이고 화는 악이 생기는 까닭이다. 유자의 경우에는 예와 악의 근본에 통달하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愚謂 嚴而泰和而節은 此理之自然이요 禮之全體也니 毫釐有差면 則失其中正하여 而各倚於一偏이니 其不可行이 均矣니라
내가 생각하건대 엄하면서도 편안하고, 화하면서 절제하는 것은 이 이치의 자연스러움이고 예의 전체이니 털끝만큼이라도 차이가 있으면 그 중정을 잃어버려서 각각 한쪽으로 치우칠 것이니 그 행할 수 없는 것이 똑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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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子曰 父在觀其志요 父沒觀其行이나 三年無改於父之道라야 可謂孝矣니라
공자가 말했다. "아버지가 생존해 있을 때에는 그 뜻을 보고 아버지가 죽었을 때는 그 행동을 보아야 하나 3년 동안 아버지의 도에 고침이 없어야 효라고 이를 만하다."
父在子不得自專이나 而志則可知요 父沒然後其行可見이라 故로 觀此足以知其人之善惡이라 然이나 又必能三年無改於父之道라야 乃見其孝니 不然이면 則所行雖善이나 亦不得爲孝矣니라
아버지가 생존해 있을 때엔 자식이 스스로 제멋대로 할 수 없으나 뜻은 알 수 있고, 아버지가 죽은 이후에 그 행동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이것을 보면 그 사람의 선악을 알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또한 반드시 3년 동안 아버지의 도에 고침이 없어야 이에 그 효를 볼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행동하는 것이 비록 선하더라도 또한 효라고 할 수 없다.
專 : 專橫
○尹氏曰 如其道면 雖終身無改라도 可也어니와 如其非道면 何待三年이리오 然則三年無改者는 孝子之心에 有所不忍故也니라
윤씨가 말했다. "그 도와 같다면 비록 종신토록 고침이 없어도 좋지만 그 비도와 같다면 어찌 3년을 기다려야만 하는가. 그렇다면 3년 동안 고침이 없다는 것은 효자의 마음에 차마 하지 못하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游氏曰 三年無改는 亦謂在所當改而可以未改者耳니라
유씨가 말했다. "3년 동안 고침이 없다는 것은 또한 마땅히 고칠 것이 있지만 아직 고치지 않아도 좋다고 말한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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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梁惠王曰 寡人之於國也에 盡心焉耳矣로니 河內凶則移其民於河東하고 移其粟於河內하며 河東凶亦然하노니 察隣國之政컨대 無如寡人之用心者로되 隣國之民不加少하고 寡人之民不加多는 何也잇고
양 혜왕이 말했다. "과인은 나라에 대해서 마음을 다하고 있을 뿐이니 하내에 흉년이 들거든 그 백성을 하동으로 옮기고, 그 곡식을 하내로 옮기며 하동에 흉년이 들어도 또한 그렇게 합니다. 이웃 나라의 정사를 살펴보건대 과인과 같이 마음을 쓰는 사람이 없는데 이웃 나라의 백성이 더 줄어들지 않고 과인의 백성이 더 늘어나지 않음은 어째서입니까?"
寡人은 諸侯自稱이니 言寡德之人也라 河內, 河東은 皆魏地라 凶은 歲不熟也라 移民以就食하고 移粟以給其老稚之不能移者라
'寡人'은 제후의 자칭이니 적은 덕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하내와 하동은 모두 위나라의 땅이다. '凶'은 결실이 익지 않은 것이다. 백성을 옮겨서 나아가 먹게 하고, 곡식을 옮겨서 이동하지 못하는 늙은이들과 어린이들에게 배급한 것이다.
歲 : 결실
3-2. 孟子對曰 王好戰하시니 請以戰喩하리이다 塡然鼓之하여 兵刃旣接이어든 棄甲曳兵而走하되 或百步而後止하며 或五十步而後止하여 以五十步笑百步則何如하니잇고 曰 不可하니 直不百步耳언정 是亦走也니이다 曰 王如知此則無望民之多於隣國也하소서
맹자가 대답하여 말했다. "왕께서 전쟁을 좋아하시니 청컨대 전쟁으로 비유하겠습니다. 둥둥 북이 울려 병장기와 칼날이 이미 부딪혔는데 갑옷을 버리고 병기를 끌면서 달아나되 어떤 사람은 백 보를 간 뒤에 그치고 어떤 사람은 오십 보를 간 뒤에 그치고서 오십 보로써 백 보를 비웃는다면 어떻겠습니까?"
"불가합니다. 다만 백 보가 아닐 뿐이지 이 또한 도망간 것입니다."
"왕께서 만일 이것을 아신다면 백성이 이웃 나라보다 많아지기를 바라지 마십시오.
塡 : 북 소리 전
塡은 鼓音也니 兵은 以鼓進하고 以金退라 直은 猶但也라 言此하여 以譬鄰國不恤其民하고 惠王能行小惠나 然이나 皆不能行王道以養其民하니 不可以此而笑彼也라
'塡'은 북 소리이니 병사들은 북 소리에 진격하고 징 소리에 퇴각한다. '直'은 '但(다만)'과 같다. 이것을 말하여 이웃 나라가 그 백성을 구휼하지 않고 혜왕은 작은 은혜를 행할 수 있었으나 모두 능히 왕도를 행해서 그 백성을 부양할 수 없었으니 이것을 가지고 저것을 비웃을 수 없음을 비유한 것이다.
楊氏曰 移民, 移粟은 荒政之所不廢也라 然이나 不能行先王之道하고 而徒以是爲盡心焉이면 則末矣니라
양씨가 말했다. "백성을 옮기고 곡식을 옮긴 것은 황폐할 때의 정사에 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선왕의 도를 행하지 못하고 다만 이것으로써 마음을 다했다고 한다면 끝(지엽)이다."
3-3. 不違農時면 穀不可勝食也며 數罟不入洿池면 魚鼈不可勝食也며 斧斤以時入山林이면 材木不可勝用也니 穀與魚鼈을 不可勝食하며 材木을 不可勝用이면 是는 使民養生喪死에 無憾也니 養生喪死에 無憾이 王道之始也니이다
농사철을 어기지 않게 하면 곡식을 다 먹을 수 없으며, 촘촘한 그물을 웅덩이와 연못에 넣지 않게 하면 물고기와 자라를 다 먹을 수 없으며, 큰 도끼와 작을 도끼를 때에 따라 산림에 들어가게 하면 재목을 다 쓸 수 없읍니다. 곡식과 물고기, 자라를 다 먹지 못하며 재목을 다 쓰지 못하면 이는 백성들도 하여금 살아 있는 사람을 봉양하고 죽은 사람을 장사지내는 데 유감이 없게 하는 것이니 살아 있는 사람을 봉양하고 죽은 사람을 장사지냄에 유감이 없게 하는 것이 왕도의 시작입니다.
數 : 촘촘할 삭 罟 : 그물 고 鼈 : 자라 별 洿 : 웅덩이 오 斧 : 도끼 부 憾 : 한할 감
農時는 謂春耕, 夏耘, 秋收之時니 凡有興作에 不違此時하고 至冬乃役之也라 不可勝食은 言多也라 數은 密也요 罟는 網也라 洿는 窊下之地니 水所聚也라
'農時'는 봄에 밭을 갈고, 여름에 김매고, 가을에 추수하는 때를 이른다. 무릇 <일을> 일으킴에 이 때를 어기지 않고 겨울에 이르러서야 부역을 시킨다. '不可勝食'은 많음을 말한다. '數'은 빽빽함이고 '罟'는 그물이다. '洿'는 우묵하게 아래로 들어간 땅이니 물이 모이는 곳이다.
窊 : 우묵할 와
古者에 網罟를 必用四寸之目하여 魚不滿尺이면 市不得粥하고 人不得食이라 山林川澤을 與民共之호되 而有厲禁하여 草木零落然後에 斧斤入焉하니 此皆爲治之初에 法制未備하여 且因天地自然之利而撙節愛養之事也라 然이나 飮食宮室은 所以養生이요 祭祀棺槨은 所以送死니 皆民所急而不可無者어늘 今皆有以資之면 則人無所恨矣라 王道는 以得民心爲本이라 故로 以此爲王道之始하니라
옛날에 그물을 반드시 4촌의 눈을 쓰게 해서 물고기가 1자에 차지 않으면 시장에 팔 수 없었고 사람들이 먹을 수 없었다. 산림과 천택을 백성과 함께 공유하되 엄한 금지가 있어 초목이 떨어진 후에 부근이 들어가게 하였다. 이는 모두 다스리는 초기에 법제가 미비하여 또한 천지와 자연의 이로움으로 인해 절제하고 절약하고 아끼고 기르는 일이었다. 그러나 음식과 궁실은 산 사람을 봉양하는 것이고, 제사와 관곽은 죽은 자를 보내는 것이다. 모두 백성이 급하게 여기는 바여서 없을 수 없는 것이다. 지금 모두 그것을 이용할 수 있다면 사람이 한하는 바가 없다. 왕도는 백성의 마음을 얻는 것을 근본으로 여긴다. 그러므로 이것으로써 왕도의 시작이라고 하는 것이다.
粥 : 팔 육 厲 : 엄할 려 撙 : 절제할 준
3-4. 五畝之宅에 樹之以桑이면 五十者可以衣帛矣며 鷄豚狗彘之畜을 無失其時면 七十者可以食肉矣며 百畝之田을 勿奪其時면 數口之家可以無飢矣며 謹庠序之敎하여 申之以孝悌之義면 頒白者不負戴於道路矣리니 七十者衣帛食肉하며 黎民不飢不寒한데 然而不王者未之有也니이다
다섯 묘의 집에 뽕나무를 심으면 오십 세 된 사람이 비단옷을 입을 수 있으며 닭과 돼지와 개와 큰 돼지를 기름에 그 때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하면 칠십 세 된 사람이 고기를 먹을 수 있습니다. 백 묘의 밭에 그 때를 빼앗지 않으면 몇 식구의 집이 굶주리지 않을 것이며, 학교의 가르침을 삼가서 그들에게 효와 제의 의로움으로써 거듭한다면 반백의 사람이 도로에서 이고 지지 않을 것입니다. 칠십 세 된 사람이 비단옷을 입고 고기를 먹으며 서민이 굶주리지 않고 추워하지 않은 후에 왕 노릇 하지 못한 사람은 있지 않습니다.
彘 : 돼지 체 畜 : 기를 휵 庠 : 학교 상 申 : 거듭할 신 頒 : 머리가 반쯤 셀 반
五畝之宅은 一夫所受니 二畝半은 在田하고 二畝半은 在邑이라 田中에 不得有木이니 恐妨五穀이라 故로 於墻下植桑하여 以供蠶事라 五十始衰非帛不煖하니 未五十者不得衣也라 畜은 養也라 時는 謂孕字之時니 如孟春犧牲毋用牝之類也라 七十非肉不飽하니 未七十者不得食也라
다섯 묘 되는 집은 한 장정이 받는 것이니 두 묘 반은 밭에 있고 두 묘 반은 읍내에 있다. 밭 안에 나무가 있을 수 없게 했으니 오곡이 <자라는 데> 방해가 될까 걱정해서이다. 그러므로 담 아래에 뽕나무를 심어서 양잠하는 일에 공급하는 것이다. 오십 세가 되면 노쇠하기 시작하여 비단옷이 아니면 따뜻하지 않으니 오십 세가 되지 않은 사람은 <비단옷을> 입을 수 없는 것이다. '畜'은 기르는 것이다. '時'는 잉태하고 기르는 때를 이르니 마치 맹춘에 희생으로 암컷을 쓰지 말라는 종류와 같다. 칠십 세가 되면 고기가 아니고서는 배부르지 않으니 칠십 세가 되지 않은 사람은 <고기를> 먹을 수 없는 것이다.
字 : 양육할 자
百畝之田은 亦一夫所受니 至此면 則經界正하고 井地均하여 無不受田之家矣라
백 묘의 밭은 또한 한 장정이 받는 것이니 이에 이르면 경계가 바르게 되고 정지가 균등하여져서 밭을 받지 않은 집이 없게 된다.
庠序는 皆學名也라 申은 重也니 丁寧反覆之意라 善事父母爲孝요 善事兄長爲悌라 頒은 與班同하니 老人頭半白黑者也라 負는 任在背요 戴는 任在首라 夫民이 衣食不足이면 則不暇治禮義요 而飽煖無敎면 則又近於禽獸라 故로 旣富而敎以孝悌면 則人知愛親敬長而代其勞不使之負戴於道路矣라 衣帛食肉을 但言七十擧重以見輕也라
'庠序'는 모두 학교의 이름이다. '申'은 거듭함이니 틀림없이 반복하는 뜻이다. 어버이를 잘 섬기는 것을 '孝'라고 하고, 형과 어른을 잘 섬기는 것을 '悌'라고 한다. '頒'은 '班(아롱지다)'과 같으니 노인의 머리가 반쯤 하얗고 검은 것이다. '負'는 짐이 등에 있는 것이고 '戴'는 짐이 머리에 있는 것이다. 무릇 백성은 옷과 음식이 부족하면 예의를 다스릴 겨를이 없고, 배부르고 따뜻하기만 하고 가르침이 없으면 또한 금수에 가깝다. 그러므로 이미 부유하게 하고 효와 제로써 가르치면 사람이 어버이를 사랑하고 어른을 공경할 줄 알아서 그 노력을 대신하여 그들로 하여금 도로에서 이고 지지 않게 할 것이다. 비단옷을 입고 고기를 먹는 것을 칠십 세만 말한 것은 중한 것을 들어서 가벼운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黎는 黑也라 黎民은 黑髮之人이니 猶秦言黔首也라 少壯之人은 雖不得衣帛食肉이나 然이나 亦不至於飢寒也라 此는 言 盡法制品節之詳하고 極財成輔相之道하여 以左右民이니 是는 王道之成也니라
'黎'는 검은 것이다. '黎民'은 검은 머리의 사람이니 진(秦) 나라 말 '黔首'와 같다. 젊고 건장한 사람들은 비록 비단옷을 입고 고기를 먹지 못하더라도 굶주림과 추위에는 이르지 않는다. 이는 법제와 등급의 상세함을 다하고 제재하고 이루어 서로 도와주는 도를 극진히 하여 백성을 도와줌을 말한 것이니, 이는 왕도의 완성이다.
3-5. 狗彘食人食而不知檢하며 塗有餓莩而不知發하고 人死則曰 非我也라 歲也라하나니 是何異於刺人而殺之曰 非我也라 兵也리오 王無罪歲하시면 斯天下之民至焉하리이다
개와 돼지가 사람의 음식을 먹어도 제재할 줄 알지 못하며, 길에 굶어죽은 시체가 있어도 구제할 줄 알지 못하며, 사람들이 죽는다면 말하기를, '내 탓이 아니다, 흉년 탓이다.'라고 하니, 이것이 사람을 찔러 죽이고 말하기를, '내 탓이 아니다, 병기 탓이다.'라고 하는 것과 어찌 다르겠습니까? 왕께서 해를 정죄하지 않으신다면 천하의 백성들이 <이 나라에> 이를 것입니다."
莩 : 굶어 죽은 시체 표
檢은 制也라 莩는 餓死人也라 發은 發倉廩以賑貸也라 歲는 謂歲之豐凶也라 惠王不能制民之産하고 又使狗彘得以食人之食하니 則與先王制度品節之意로 異矣라 至於民飢而死로되 猶不知發하니 則其所移는 特民間之粟而已어늘 乃以民不加多로 歸罪於歲凶하니 是는 知刃之殺人이요 而不知操刃者之殺人也라 不罪歲면 則必能自反而益修其政하여 天下之民이 至焉하리니 則不但多於鄰國而已니라
'檢'은 제어함이다. '莩'는 굶어 죽은 사람이다. '發'은 창름을 열어서 구휼하고 꾸어 주는 것이다. '歲'는 해의 풍흉을 이른다. 혜왕이 백성들의 재산을 제정하지 못하고 또한 개와 돼지로 하여금 사람의 음식을 먹을 수 있게 하니 선왕이 제도를 만들고 등급을 나눈 뜻과 달랐다. 백성들이 굶어서 죽는 지경에 이르러도 오히려 창름을 열 줄 알지 못했으니 그 백성을 이동한 것은 다만 민간의 곡식일 뿐이었다. 그런데도 백성들이 더 늘어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죄를 흉년에 돌리니 이는 칼날이 사람을 죽인 것만을 알고 칼날을 잡은 사람이 사람을 죽인 것은 알지 못하는 것이다. 해를 정죄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능히 스스로 돌아보고 더욱 그 정사를 닦아 천하의 백성들이 이를 것이니 단지 이웃 나라보다 <백성이> 많아질 뿐만이 아닐 것이다.
廩 : 곳집 름 賑 : 구휼할 진
○程子曰 孟子之論王道 不過如此하시니 可謂實矣로다
정자가 말했다. "맹자가 왕도를 논한 것이 이와 같음에 지나지 않으니 진실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又曰 孔子之時에 周室雖微나 天下猶知尊周之爲義라 故로 春秋엔 以尊周爲本하고 至孟子時하여는 七國爭雄하여 天下不復知有周하고 而生民之塗炭已極하니 當是時諸侯能行王道면 則可以王矣니 此는 孟子所以勸齊梁之君也라 蓋王者는 天下之義主也니 聖賢亦何心哉시리오 視天命之改與未改耳시니라
또 말했다. "공자의 때에 주(周)나라 왕실이 비록 미약하였으나 천하가 오히려 주나라를 높이는 것이 의가 됨을 알았다. 그러므로 춘추시대에는 주(周)나라를 높이는 것으로 근본을 삼았다. 맹자의 때에 이르러서는 일곱 나라가 쟁웅하여 천하가 다시 주(周)나라가 있음을 알지 못하고 산 백성의 도탄이 이미 지극하였으니, 이 때를 당하여 제후들이 능히 왕도를 행할 수 있었으면 왕 노릇 할 수 있었을 것이니, 맹자가 제(齊)나라와 양(梁)나라의 군주에게 권한 까닭이다. 대개 왕 노릇 하는 사람은 천하의 의로운 군주이니 성현은 또한 무슨 마음이었겠는가? 천명이 바뀌었는지 바뀌지 않았는지를 보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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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子禽問於子貢曰 夫子至於是邦也하사 必聞其政하시나니 求之與아 抑與之與아
자금이 자공에게 물었다. "부자께서 어떤 나라에 이르시면 반드시 그 정사를 들으시니 구해서입니까 아니면 주어서입니까?"
子禽은 姓陳이요 名亢이며 子貢은 姓端木이요 名賜니 皆孔子弟子라 或曰 亢은 子貢弟子라하니 未知孰是라 抑은 反語辭라
자금은 성이 陳이고 이름은 亢이며, 자공은 성이 端木이고 이름은 賜다. 모두 공자의 제자이다. 혹자가 말하기를 항은 자공의 제자라 하는데, 누가 옳은지 알지 못하겠다. '抑'은 반어사이다.
10-2. 子貢曰 夫子溫良恭儉讓以得之시니 夫子之求之也는 其諸異乎人之求之與인저
자공이 말했다. "부자께서는 온화하시고, 어지시고, 공손하시고, 검소하시고, 겸손하시어 그것을 얻으시니, 부자의 구하는 것은 아마도 다른 사람의 구하는 것과는 다를 것이다."
溫은 和厚也요 良은 易直也요 恭은 莊敬也요 儉은 節制也요 讓은 謙遜也라 五者는 夫子之盛德光輝 接於人者也라 其諸는 語辭也라 人은 他人也라 言夫子未嘗求之나 但其德容如是라 故로 時君敬信하여 自以其政就而問之耳요 非若他人必求之而後得也라 聖人過化存神之妙를 未易窺測이나 然이나 卽此而觀이면 則其德盛禮恭而不願乎外를 亦可見矣니 學者所當潛心而勉學也니라
'溫'은 화하고 후한 것이다. '良'은 평평하고 곧은 것이다. '恭'은 씩씩하고 공경스러운 것이다. '儉'은 절제하는 것이다. '讓'은 겸손한 것이다. 다섯 가지는 부자의 성한 덕의 광휘가 다른 사람들에게 접하는 것이다. '其諸'는 어조사이다. '人'은 타인이다. 부자가 일찍이 그것을 구하지 않았으나 단지 그 덕스러운 용모가 이와 같았을 뿐이다. 그러므로 당시의 군주가 공경하고 믿어서 스스로 그 정사로써 나아와서 물었을 뿐이며, 다른 사람이 반드시 그것을 구한 다음에 얻는 것과는 같지 않다. 성인이 지나가면 교화되고 마음속에 보존하면 신묘해지는 묘함을 쉽게 엿보아 측정할 수가 없다. 그러나 곧 이것을 가지고 관찰한다면 그 덕이 성함과 예가 공손해서 외면에서 원하지 않았음을 또한 볼 수 있을 것이다. 배우는 사람은 마땅히 마음을 침착하게 하고 힘써 배워야 할 것이다.
易 : 평탄할 이
○謝氏曰 學者觀於聖人威儀之間이면 亦可以進德矣니 若子貢이면 亦可謂善觀聖人矣요 亦可謂善言德行矣라 今去聖人이 千五百年이로되 以此五者로 想見其形容하면 尙能使人興起어든 而況於親炙之者乎아
사씨가 말했다. "배우는 사람이 성인의 위엄과 거동의 사이에서 관찰한다면 또한 덕을 나아가게 할 수 있다. 자공의 경우는 또한 성인을 잘 관찰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고 또한 덕행을 잘 말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성인과 떨어진 거리가 천오백년인데 이 다섯 가지로써 그 형용을 상상하여 본다면 아직도 능히 사람으로 하여금 흥분하여 일어나게 하는데, 하물며 직접 가르침을 받은 사람이겠는가."
親炙 : 스승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음
張敬夫曰 夫子至是邦하사 必聞其政이로되 而未有能委國而授之以政者는 蓋見聖人之儀刑而樂告之者는 秉彝好德之良心也나 而私欲害之라 是以로 終不能用耳니라
장경부가 말했다. "부자께서 어떤 나라에 이르시면 반드시 그 정사를 들으셨는데 능히 나라를 맡겨서 정사를 맡긴 사람은 있지 않았다. 대개 성인의 거동과 모습을 보고 그에게 고하기를 즐거워한 사람은 떳떳함을 잡고 덕을 좋아하는 어진 마음을 가졌으나 사사로운 욕망이 해친 것이다. 이 까닭으로 끝내 등용할 수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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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曾子曰 愼終追遠이면 民德이 歸厚矣리라
증자가 말했다. "상례를 신중히 하고 오랜 조상을 추모하면 백성의 덕이 후한 데로 돌아갈 것이다."
愼終者는 喪盡其禮요 追遠者는 祭盡其誠이라 民德歸厚는 謂下民化之하여 其德亦歸於厚라 蓋終者는 人之所易忽也어늘 而能謹之하고 遠者는 人之所易忘也어늘 而能追之면 厚之道也라 故로 以此自爲면 則己之德厚요 下民化之면 則其德亦歸於厚也니라
'愼終'은 상례에 그 예를 다하는 것이고, '追遠'은 제사에 그 정성을 다하는 것이다. '백성의 덕이 후한 데로 돌아간다.'는 아래 백성이 교화되어 그 덕이 또한 후한 데로 돌아가는 것을 말함이다. 대개 마치는 것은 사람이 소홀이 여기기 쉬운 것이나 능히 삼갈 수 있고, 먼 조상은 사람이 잊기 쉬운 것이나 능히 추모할 수 있으면 후한 덕이다. 그러므로 이로써 스스로 한다면 자기의 덕이 후해지는 것이고, 아래 백성이 교화되면 그들의 덕이 또한 후한 데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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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子曰 君子不重則不威요 學則不固니라
공자가 말했다. "군자가 중후하지 않으면 위엄도 없고 배우면 견고하지 못하다.
重은 厚重이요 威는 威嚴이요 固는 堅固也라 輕乎外者는 必不能堅乎內라 故로 不厚重이면 則無威嚴하여 而所學이 亦不堅固也라
'重'은 중후함이고 '威'는 위엄이며 '固'는 견고함이다. 외면에 가벼운 사람은 반드시 내면도 견고할 수 없다. 그러므로 중후하지 않으면 위엄이 없어 배운 것이 또한 견고하지 못한 것이다.
8-2. 主忠信하며
충과 신을 주장하며
人不忠信이면 則事皆無實하여 爲惡則易하고 爲善則難이라 故로 學者必以是爲主焉이니라
사람이 충성스럽고 미덥지 않으면 일이 모두 바탕이 없어 악을 행하기가 쉽고 선을 행하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배우는 사람은 반드시 이것으로써 주장을 삼는 것이다.
○程子曰 人道唯在忠信이니 不誠則無物이요 且出入無時하여 莫知其鄕者는 人心也니 若無忠信이면 豈復有物乎아
정자가 말했다. "사람의 도는 오직 충과 신에 있으니 성실하지 않으면 사물이 없다. 또한 나가고 들어옴에 때가 없어 그 향하는 바 알지 못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이니 만약 충과 신이 없다면 어찌 다시 사물이 있을 수 있겠는가."
8-3. 無友不如己者하며
자기와 같지 않은 사람을 벗하지 말며
無는 毋通이니 禁止辭也라 友는 所以輔仁이니 不如己면 則無益而有損이니라
'無'는 '毋'와 통하니 금지하는 말이다. '友'는 인을 돕는 것이니 자기와 같지 않으면 이익이 없고 손해만 있다.
8-4. 過則勿憚改니라
잘못이 있으면 고치기를 꺼리지 말아야 한다."
勿은 亦禁止之辭라 憚은 畏難也라 自治不勇이면 則惡日長이라 故로 有過則當速改요 不可畏難而苟安也니라
'勿' 또한 금지하는 말이다. '憚'은 두려워하여 어려워하는 것이다. 스스로 다스려 용감하지 않으면 악이 날로 자란다. 그러므로 잘못이 있으면 마땅히 빨리 고쳐야 하고 두려워하고 어려워하여 구차히 편안하게 있으면 안 된다.
程子曰 學問之道는 無他也라 知其不善이면 則速改以從善而已니라
정자가 말했다. "학문의 도는 다른 것이 없다. 그것이 선하지 않음을 알았다면 빨리 고쳐서 선을 따르는 것일 뿐이다."
○程子曰 君子自修之道 當如是也니라
정자가 말했다. "군자가 스스로 닦는 도는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한다."
游氏曰 君子之道는 以威重爲質하고 而學以成之요 學之道는 必以忠信爲主하고 而以勝己者輔之라 然이나 或吝於改過면 則終無以入德하여 而賢者未必樂告以善道라 故로 以過勿憚改로 終焉하시니라
유씨가 말했다. "군자의 도는 위엄과 중후함으로써 바탕을 삼고, 배워서 완성한다. 배움의 도는 반드시 충과 신으로써 주장을 삼고 자기보다 나은 사람으로써 돕는 것이다. 그러나 혹시 잘못을 고치는 데 인색하면 끝내 도에 들어갈 수 없어 반드시 현자가 선한 도로써 일러 주는 것을 즐기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잘못이 있으면 고치기를 꺼리지 말아야 한다'로 끝맺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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