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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2.25 :: 위정03. 백성을 인도하는 법
- 2020.02.25 :: 위정02. 시경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 2020.02.25 :: 위정01. 정사를 함에 덕으로써 하는 것
- 2020.02.14 :: 양혜왕장구상07(4). 항산이 있어야 항심이 있다
- 2020.02.14 :: 양혜왕장구상07(3). 나무에 올라서 물고기를 찾기
5(21)-1. 孟懿子問孝。子曰:「無違。」
맹의자가 효를 물었다. 공자가 말했다. "어김이 없는 것이다."
孟懿子,魯大夫仲孫氏,名何忌。無違,謂不背於理。
맹의자는, 노나라 대부 중손씨이며, 이름은 何忌이다. '無違'는 이치에 배반하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5(21)-2. 樊遲御,子告之曰:「孟孫問孝於我,我對曰『無違』。」
번지가 수레를 몰고, 공자는 그에게 말했다. "맹손이 나에게 효를 묻길래, 내가 '어김이 없는 것이다.'라고 대답하였다."
樊遲,孔子弟子,名須。御,爲孔子御車也。孟孫,卽仲孫也。
번지는 공자의 제자이며 이름은 須이다. '御'는 공자를 위하여 수레를 모는 것이다. '孟孫'은 곧 중손씨이다.
夫子以懿子未達而不能問,恐其失指,而以從親之令爲孝,故語樊遲以發之。
부자는 맹의자가 통달하지 못하여 더 이상 물을 수 없었으니, 그 요지를 잃어버려서 어버이의 명령을 따르기만 하는 것을 효라고 여길까 걱정하였다. 그러므로 번지에게 말하여 밝힌 것이다.
5(21)-3. 樊遲曰:「何謂也?」子曰:「生,事之以禮;死,葬之以禮,祭之以禮。」
번지가 말했다.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공자가 말했다. "살아 계실 때에는 예로써 섬기는 것이고, 돌아가셨을 때에는 예로써 장사지내고, 예로써 제사지내는 것이다."
生事葬祭,事親之始終具矣。
살아 계실 때 섬기고 장사지내고 제사지냄은 어버이를 섬김에 처음과 끝이 갖추어진 것이다.
禮,卽理之節文也。人之事親,自始至終,一於禮而不苟,其尊親也至矣。
예는 곧 이치의 절문이다. 사람이 어버이를 섬김에 처음부터 끝까지 예에 한결같고 구차하지 않으면 그것은 어버이를 높임이 지극한 것이다.
節文 : 예절에 관한 규정
是時三家僭禮,故夫子以是警之,然語意渾然,又若不專爲三家發者,所以爲聖人之言也。
이 때에 삼가가 예를 참람하였으므로 부자가 이로써 경계한 것이다. 그러나 말의 뜻이 혼연하여 또한 오로지 삼가를 위하여 말하지 않은 듯하니, 성인의 말이 되는 것이다.
胡氏曰:「人之欲孝其親,心雖無窮,而分則有限。得爲而不爲,與不得爲而爲之,均於不孝。所謂以禮者,爲其所得爲者而已矣。」
호씨가 말했다. "사람이 그 어버이에게 효도하고자 함에 마음은 비록 무궁하지만 분수에는 한계가 있다. 할 수 있는데 하지 않는 것과 할 수 없는데 하는 것은 똑같이 불효이다. 이른바 예로써 한다는 것은 그 할 수 있는 것을 할 뿐인 것이다."
※삼환(三桓) : 노 환공의 아들들의 후손들이다. 노 환공에게는 네 아들이 있었는데, 동(同), 경보(慶父), 아(牙), 우(友)였다. 이 중 동은 적장자로 환공을 이어 장공으로 즉위한고, 경보, 아, 우는 경이 된다. 이 경보, 아, 우의 후손이 각각 계손(季孫), 숙손(叔孫), 맹손(孟孫)이다. 따라서 여기 나오는 맹의자는 공자 우의 후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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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0)-1. 子曰:「吾十有五而志于學,
공자가 말했다. "나는 15세에 배움에 뜻을 두었고,
古者十五而入大學。心之所之謂之志。此所謂學,卽大學之道也。
옛날에는 15세가 되면 대학에 들어갔다. 마음이 가는 바를 '志'라고 한다. 이 곳에서 말한 '學'은 곧 대학의 도이다.
志乎此,則念念在此而爲之不厭矣。
뜻을 여기에 두면 항상 마음속으로 생각함이 여기에 있어서 그것을 하기를 싫어하지 않을 것이다.
4(20)-2. 三十而立,
30세에 자립하였으며,
有以自立,則守之固而無所事志矣。
자립함이 있으면 그것을 견고히 지켜서 뜻을 일삼음이 없을 것이다.
4(20)-3. 四十而不惑,
40세에 미혹되지 않았고,
於事物之所當然,皆無所疑,則知之明而無所事守矣。
사물의 당연한 것에 모두 의심함이 없으면 밝히 알아서 지킴을 일삼음이 없을 것이다.
4(20)-4. 五十而知天命,
50세에 천명을 알았으며,
天命,卽天道之流行而賦於物者,乃事物所以當然之故也。知此則知極其精,而不惑又不足言矣。
천명은 곧 천도가 흘러가 사물에게 부여한 것이니, 사물의 당연한 것의 이유이다. 이를 알면 앎이 그 정밀함을 지극히 하여 미혹되지 않음을 또한 말하지 않아도 충분할 것이다.
4(20)-5. 六十而耳順,
60세에 귀가 순해졌고,
聲入心通,無所違逆,知之之至,不思而得也。
소리가 들어오면 마음으로 통달해서, 어긋나거나 거스르는 것이 없으니, 앎이 지극해서 생각하지 않아도 아는 것이다.
4(20)-6. 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
70세에는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를 따라도 법도를 넘지 않았다."
從,隨也。矩,法度之器,所以爲方者也。隨其心之所欲,而自不過於法度,安而行之,不勉而中也。
'從'은 따름이다. '矩'는 법도의 기물이니, 모난 것을 만드는 도구이다. 그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를 따라도 스스로 법도에 어긋나지 않으니 안심하고 행하여 힘쓰지 않아도 알맞는 것이다.
程子曰:「孔子生而知之也,言亦由學而至,所以勉進後人也。立,能自立於斯道也。不惑,則無所疑矣。知天命,窮理盡性也。耳順,所聞皆通也。從心所欲,不踰矩,則不勉而中矣。」
정자가 말했다. "공자는 태어나면서부터 안 사람인데, 말하기를 '역시 배움으로 말미암아 이르렀다.'라고 한 것은 뒷사람을 권면하여 나아가게 한 것이다. '立'은 능히 스스로 이 도에 서는 것이다. '不惑'은 의심하는 것이 없는 것이다. '知天命'은 리를 궁구하여 성을 다하는 것이다. '耳順'은 들은 바에 모두 통달하는 것이다. '從心所欲,不踰矩'는 힘쓰지 않아도 알맞는 것이다."
又曰:「孔子自言其進德之序如此者,聖人未必然,但爲學者立法,使之盈科而後進,成章而後達耳。」
또 말했다. "공자가 스스로 그 덕에 나아가는 순서가 이와 같다고 말한 것은 성인이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고, 단지 배우는 사람을 위하여 법을 세워서 그들로 하여금 구덩이를 채운 후에 나아가고 문장을 이룬 후에 통달하게 한 것일 뿐이다."
胡氏曰:「聖人之教亦多術,然其要使人不失其本心而已。欲得此心者,惟志乎聖人所示之學,循其序而進焉。至於一疵不存、萬理明盡之後,則其日用之間,本心瑩然,隨所意欲,莫非至理。蓋心卽體,欲卽用,體卽道,用卽義,聲爲律而身爲度矣。」
호씨가 말했다. "성인의 가르침은 또한 방법이 많지만, 그 요지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 본심을 잃지 않게 할 따름이다. 이 마음을 얻고자 하는 사람은, 오직 성인이 제시한 배움에 뜻을 두어서 그 차례를 따라 나아가야 한다. 한 가지 흠도 존재하지 않고, 모든 리를 밝히 다한 다음에 이르면 그 일상생활을 하는 중에 본심이 밝아져 뜻이 하고자 하는 바를 따라도 지극한 이치가 아닌 것이 없다. 대개 마음은 곧 몸이고, 하고자 함은 곧 쓰임이고, 몸은 곧 도이고, 쓰임은 곧 의이니, 소리를 내면 음률이 되고 몸을 움직이면 법도가 되는 것이다."
又曰:「聖人言此,一以示學者當優游𣹢泳,不可躐等而進;二以示學者當日就月將,不可半途而廢也。」
또 말했다. "성인이 이와 같이 말한 것은, 첫째, 배우는 사람들에게 마땅히 오랫동안 푹 빠져야 하고 등급을 뛰어넘어 나아가면 안 됨을 보인 것이다. 둘째, 배우는 사람들에게 마땅히 일취월장해야 하고 중도에 폐해서는 안 됨을 보인 것이다."
優游 : 오랫동안 하는 것
𣹢泳 : 푹 빠져서 하는 것
躐 : 뛰어넘을 렵
愚謂聖人生知安行,固無積累之漸,然其心未嘗自謂已至此也。是其日用之間,必有獨覺其進而人不及知者。故因其近似以自名,欲學者以是爲則而自勉,非心實自聖而姑爲是退託也。後凡言謙辭之屬,意皆放此。
내가 생각컨대, 성인은 태어나면서부터 알고 안심하고 행하여 진실로 점점 쌓아가는 것이 없지만 그 마음에 일찍이 스스로 이미 이에 이르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는 그 일상생활을 하는 중에 반드시 홀로 그 나아감을 깨달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알 수 없음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 가깝고 비슷한 말로 인하여 스스로 이름을 붙여서, 배우는 사람들이 이것으로써 법칙을 삼아서 스스로 힘쓰게 하고자 한 것이고, 마음속으로는 실로 스스로 성인이라고 여겨서 우선 이것으로 물러나 말한 것은 아니다. 후에 모두 겸사로 말한 등속은 뜻이 모두 이것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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凡十六章。
모두 16장이다.
1(8)-1. 莊暴見孟子,曰:「暴見於王,王語暴以好樂,暴未有以對也。」曰:「好樂何如?」孟子曰:「王之好樂甚,則齊國其庶幾乎!」
장포가 맹자를 만나뵙고 말했다. "제가 왕을 알현하였는데 왕께서 제게 음악을 좋아하냐고 물으셔서 제가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음악을 좋아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맹자가 말했다. "왕께서 음악을 좋아하심이 심하면 아마도 제(齊)나라는 거의 다스려질 것이다."
莊暴,齊臣也。庶幾,近辭也,言近於治。
장포는 제나라 신하이다. '庶幾'는 가깝다는 말이니 다스려짐에 가깝다고 말한 것이다.
1(8)-2. 他日,見於王曰:「王嘗語莊子以好樂,有諸?」王變乎色,曰:「寡人非能好先王之樂也,直好世俗之樂耳。」
다른 날에 (맹자가) 왕을 뵈었다. "왕께서 일찍이 장포에게 음악을 좋아하냐고 물으셨다는데, 그런 일이 있습니까?"
왕이 얼굴빛을 바꾸고 말했다. "과인은 선왕의 음악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세속의 음악을 좋아할 뿐입니다."
變色者,慚其好之不正也。
'變色'은 그 좋아함이 바르지 못함을 부끄러워하는 것이다.
1(8)-3. 曰:「王之好樂甚,則齊其庶幾乎!今之樂猶古之樂也。」
"왕께서 음악을 좋아하심이 심하면, 아마도 제나라는 거의 다스려질 것입니다. 지금의 음악이 옛날의 음악과 같습니다."
今樂,世俗之樂。古樂,先王之樂。
'今樂'은 세속의 음악이다. '古樂'은 선왕의 음악이다.
1(8)-4. 曰:「可得聞與?」曰:「獨樂樂,與人樂樂,孰樂?」曰:「不若與人。」曰:「與少樂樂,與衆樂樂,孰樂?」曰:「不若與衆。」
"얻어 들을 수 있겠습니까?"
"홀로 음악을 즐기는 것과 남과 함께 음악을 즐기는 것 중 어느 것이 즐겁습니까?"
"남과 함께하는 것만 못합니다."
"적은 사람과 음악을 즐기는 것과 많은 사람과 음악을 즐기는 것 중 어느 것이 즐겁습니까?"
"많은 사람과 함께하는 것만 못합니다."
獨樂不若與人,與少樂不若與衆,亦人之常情也。
홀로 즐기는 것이 남과 함께하는 것만 못하며, 적은 사람과 즐기는 것이 많은 사람과 함께하는 것만 못함은 또한 인지상정이다.
1(8)-5. 「臣請爲王言樂:
"제가 청컨대 왕을 위해 음악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此以下,皆孟子之言也。
이 아래는 모두 맹자의 말이다.
1(8)-6. 今王鼓樂於此,百姓聞王鐘鼓之聲,管籥之音,擧疾首蹙頞而相告曰:『吾王之好鼓樂,夫何使我至於此極也?父子不相見,兄弟妻子離散。』今王田獵於此,百姓聞王車馬之音,見羽旄之美,擧疾首蹙頞而相告曰:『吾王之好田獵,夫何使我至於此極也?父子不相見,兄弟妻子離散。』此無他,不與民同樂也。
이곳에서 지금 왕께서 음악을 타시는데 백성들이 왕의 종과 북 소리, 관과 약 소리를 듣고 모두 머리를 아파하고 이마를 찌푸리며 서로 말하기를, '우리 왕께서 음악을 타시기 좋아하심이여, 어째서 우리들로 하여금 이 곤궁함에 이르게 하였는가? 부자가 서로 보지 못하고, 형제와 처자가 떨어지는구나.'라고 하며, 이곳에서 지금 왕께서 사냥하시는데 백성들이 왕의 수레와 말 소리를 듣고, 깃털로 장식한 깃발의 아름다움을 보고 모두 머리를 아파하고 이마를 찌푸리며 서로 말하기를, '우리 왕께서 사냥을 좋아하심이여, 어째서 우리들로 하여금 이 곤궁함에 이르게 하였는가? 부자가 서로 보지 못하고, 형제와 처자가 떨어지는구나.'라고 한다면, 이는 다른 것이 아니라 백성들과 같이 즐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籥 : 피리 약 蹙 : 찌푸릴 축 頞 : 이마 알 田 : 사냥할 전(畋) 旄 : 깃발 모
鐘鼓管籥,皆樂器也。擧,皆也。疾首,頭痛也。蹙,聚也。頞,額也。人憂戚則蹙其額。極,窮也。羽旄,旌屬。不與民同樂,謂獨樂其身而不恤其民,使之窮困也。
'鐘', '鼓', '管', '籥'은 모두 악기이다. '擧'는 모두이다. '疾首'는 두통이다. '蹙'은 모음이다. '頞'은 이마이다. 사람들이 걱정하고 근심하여 그 이마를 찌푸리는 것이다. '極'은 곤궁함이다. '羽旄'는 깃발의 등속이다. '不與民同樂'은 그 자신만 홀로 즐기고 그 백성을 구휼하지 않아 그들로 하여금 곤궁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旌 : 깃발 정
1(8)-7. 今王鼓樂於此,百姓聞王鐘鼓之聲,管籥之音,擧欣欣然有喜色而相告曰:『吾王庶幾無疾病與?何以能鼓樂也?』今王田獵於此,百姓聞王車馬之音,見羽旄之美,擧欣欣然有喜色而相告曰『吾王庶幾無疾病與?何以能田獵也?』此無他,與民同樂也。
이곳에서 지금 왕께서 음악을 타시는데 백성들의 왕의 종과 북 소리, 관과 약 소리를 듣고 모두 기분이 좋아져 기뻐하는 기색을 띠고 서로 말하기를, '우리 왕께서 아마도 질병이 없으신가?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음악을 타실 수 있으시겠는가?'라고 하며, 이곳에서 지금 왕께서 사냥하시는데 백성들이 왕의 수레와 말 소리를 듣고, 깃털로 장식한 깃발의 아름다움을 보고 모두 기분이 좋아져 기뻐하는 기색을 띠고 서로 말하기를, '우리 왕께서 아마도 질병이 없으신가?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사냥하실 수 있으시겠는가?'라고 한다면, 이는 다른 것이 아니라 백성들과 같이 즐겼기 때문입니다.
欣 : 기쁠 흔
與民同樂者,推好樂之心以行仁政,使民各得其所也。
'與民同樂'은 음악을 좋아하는 마음을 미루어 어진 정사를 행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각자 그 살 곳을 얻게 하는 것이다.
1(8)-8. 今王與百姓同樂,則王矣。」
지금 왕께서 백성들과 같이 즐기신다면 왕 노릇 하실 수 있습니다."
好樂而能與百姓同之,則天下之民歸之矣,所謂齊其庶幾者如此。
음악을 좋아하여 능히 백성들과 같이 즐길 수 있으면 천하의 백성들이 돌아올 것이니, '아마도 제나라가 거의 다스려질 것이다.'라고 말한 것이 이와 같다.
范氏曰:「戰國之時,民窮財盡,人君獨以南面之樂自奉其身。孟子切於救民,故因齊王之好樂,開導其善心,深勸其與民同樂,而謂今樂猶古樂。其實今樂古樂,何可同也?但與民同樂之意,則無古今之異耳。若必欲以禮樂治天下,當如孔子之言,必用韶舞,必放鄭聲。蓋孔子之言,爲邦之正道;孟子之言,救時之急務,所以不同。」
범씨가 말했다. "전국시대에 백성들이 곤궁하고 재물이 다한 것은 인군이 홀로 남면의 즐거움으로써 스스로 그 자신을 받들어서이다. 맹자는 백성을 구원하는 데 간절하였기 때문에 제나라 왕이 음악을 좋아함으로 인하여 그 착한 마음을 열어 인도해서 백성들과 같이 즐김을 깊이 권하기를 지금의 음악이 옛날의 음악과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금의 음악과 옛날의 음악이 어찌 같을 수 있겠는가? 다만 백성들과 같이 즐기려는 뜻이 고금에 차이가 없는 것이다. 만약 반드시 천하를 예와 악으로 다스리고자 하였다면 마땅히 공자의 말과 같이 하여 반드시 '소무(韶舞)'를 쓰고, 반드시 정나라의 음악을 방출했어야 한다. 대개 공자의 말은 나라의 바른 도가 되고, 맹자의 말은 때의 급한 일을 구원하고자 한 것이라 이 때문에 같지 않은 것이다."
楊氏曰:「樂以和爲主,使人聞鐘鼓管弦之音而疾首蹙頞,則雖奏以咸、英、韶、濩,無補於治也。故孟子告齊王以此,姑正其本而已。」
양씨가 말했다. "음악은 화를 위주로 하니 사람들로 하여금 종, 북, 피리, 현악기의 소리를 듣고 머리를 아파하고 이마를 찌푸히게 한다면 비록 〈함(咸)〉, 〈영(英)〉, 〈소(韶)〉, 〈호(濩)〉를 연주한다고 하더라도 다스림에 보탬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맹자는 제나라 왕에게 이것을 말하여 우선 그 근본을 바르게 했을 뿐이다."
※황제(黃帝)의 음악인 운문(雲門), 제요(帝堯)의 음악인 함지(咸池), 제순(帝舜)의 음악인 소(韶), 우(禹)의 음악인 하(夏), 탕왕(湯王)의 음악인 호(濩), 무왕(武王)의 악인 무(武)를 가리켜 육악(六樂)이라고 한다.
※오영(五英)은 제곡(帝嚳)의 음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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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9)-1. 子曰:「道之以政,齊之以刑,民免而無恥;
공자가 말했다. "정치로써 인도하고 형벌로써 가지런히 하면 백성들은 면하기만 하면 될 뿐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道,猶引導,謂先之也。政,謂法制禁令也。齊,所以一之也。道之而不從者,有刑以一之也。免而無恥,謂苟免刑罰,而無所羞愧,蓋雖不敢爲惡,而爲惡之心未嘗亡也。
'道'는 '引導(인도함)'과 같으니, 먼저 함을 말한다. '政'은 법제로 금지하는 명령을 말한다. '齊'는 한 가지로 하는 것이니, 인도해도 따르지 않는 사람을 형벌을 가해서 한 가지로 만드는 것이다. '免而無恥'는 구차히 형벌을 면하여 부끄러워하는 것이 없음을 말한 것이니, 비록 감히 악을 행하지는 못하지만 악을 행하는 마음이 일찍이 없는 것은 아니다.
3(19)-2. 道之以德,齊之以禮,有恥且格。」
덕으로써 인도하고 예로써 가지런히 하면 부끄러움도 있고 또 이르는 것도 있다."
禮,謂制度品節也。格,至也。
'禮'는 제도와 등급을 말한다. '格'은 이름이다.
言躬行以率之,則民固有所觀感而興起矣,而其淺深厚薄之不一者,又有禮以一之,則民恥於不善,而又有以至於善也。
'몸소 행하여 솔선하면 백성들이 진실로 보고 느껴 흥기하는 바가 있을 것이고, 그 깊이와 두께가 균일하지 못한 것을 또 예를 가하여 한 가지로 만든다면 백성들이 불선함을 부끄러워하여 또 선에 이름이 있을 것이다.'라고 말한 것이다.
一說,格,正也。書曰:「格其非心。」
일설에 '格'은 '正(바로잡음)'이라고 하니, 《서경》에 '그 그른 마음을 바로잡는다.'라고 하였다.
愚謂政者,爲治之具。刑者,輔治之法。德禮則所以出治之本,而德又禮之本也。此其相爲終始,雖不可以偏廢,然政刑能使民遠罪而已,德禮之效,則有以使民日遷善而不自知。故治民者不可徒恃其末,又當深探其本也。
내가 생각컨대 정사는 다스림을 행하는 도구이고, 형벌은 다스림을 보완하는 법이다. 덕과 예는 다스림의 근본이 나오는 곳이고, 덕은 또한 예의 근본이다. 이것은 서로 처음과 끝이 되니 비록 어느 한쪽이라도 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정사와 형벌은 백성들을 죄에서 멀어지게 할 수 있을 뿐이고, 덕과 예의 효과는 백성들로 하여금 날로 선으로 옮겨 스스로 알지 못하게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백성을 다스리는 사람은 한갓 그 끝을 믿어서는 안 되고, 또한 마땅히 그 근본을 깊이 탐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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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8). 子曰:「詩三百,一言以蔽之,曰『思無邪』。」
공자가 말했다. "《시경》 300편을 한마디로 덮을 수 있으니, 이를테면 생각에 간사함이 없는 것이다."
詩三百十一篇,言三百者,擧大數也。蔽,猶蓋也。「思無邪」,魯頌駉篇之辭。
《시경》은 311편인데 300편이라고 말한 것은 큰 수를 든 것이다. '蔽'는 '蓋(덮다)'와 같다. '思無邪'는 《노송》 〈경〉 편의 말이다.
駉 : 말건장할 경
凡詩之言,善者可以感發人之善心,惡者可以懲創人之逸志,其用歸於使人得其情性之正而已。然其言微婉,且或各因一事而發,求其直指全體,則未有若此之明且盡者。故夫子言詩三百篇,而惟此一言足以盡蓋其義,其示人之意亦深切矣。
무릇 시의 말이 선하다는 것은 사람의 착한 마음을 감동시켜서 발할 수 있는 것이고, 나쁘다는 것은 사람의 안일한 뜻을 징계하는 것이니 그 쓰임이 사람으로 하여금 그 성정의 바름을 얻는 데 귀결될 뿐이다. 그러나 그 말이 미묘하고 완곡하며 또 혹 각각 한 가지 일을 따라 발하여 그 전체를 직접 가리킨 것을 찾는다면 이와 같이 명확하고 또 뜻을 다한 것이 있지 않다. 그러므로 부자가 '《시경》 300편에 오직 이 한 마디 말이 충분히 그 뜻을 다 덮을 수 있다.'라고 말한 것이니 그 사람에게 보인 뜻이 역시 깊고 간절하다.
創 : 징계할 창
程子曰:「『思無邪』者,誠也。」
정자가 말했다. "생각에 간사함이 없는 것은, 진실함이다."
范氏曰:「學者必務知要,知要則能守約,守約則足以盡博矣。經禮三百,曲禮三千,亦可以一言以蔽之,曰『毋不敬』。」
범씨가 말했다. "배우는 사람은 반드시 요점을 아는 데 힘써야 한다. 요점을 알면 간략함을 지킬 수 있고, 간략함을 지키면 충분히 해박함을 다할 수 있을 것이다. 경례 300가지와 곡례 3000가지 역시 한 마디로 덮을 수 있으니, 이를테면 불경하지 말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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凡二十四章。
모두 24장이다.
1(17). 子曰:「爲政以德,譬如北辰,居其所而衆星共之。」
공자가 말했다. "정사를 함에 덕으로써 하는 것은 비유하자면 북극성과 같아서, 그 자리에 있는데 많은 별들이 그것을 향하는 것과 같다."
辰 : 별 신
政之爲言正也,所以正人之不正也。德之爲言得也,得於心而不失也。北辰,北極,天之樞也。居其所,不動也。共,向也,言衆星四面旋繞而歸向之也。
'政'이라고 말한 것은 바로잡는 것이니 사람의 바르지 못한 것을 바로잡는 것이다. '德'이라고 말한 것은 얻는 것이니 마음에서 얻고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다. '北辰'은 북극성이니 하늘의 지도리이다. 그 자리에 거하면서 움직이지 않는다. '共'은 향하는 것이니 많은 별들이 사면으로 둘러싸서 그것을 향함을 말한다.
繞 : 두를 요
爲政以德,則無爲而天下歸之,其象如此。
정사를 함에 덕으로써 하면 하지 않아도 천하가 그에게 돌아오니, 그 형상이 이와 같다.
程子曰:「爲政以德,然後無爲。」
정자가 말했다. "정사를 함에 덕으로써 한 이후에야 하지 않을 수 있다."
范氏曰:「爲政以德,則不動而化、不言而信、無爲而成。所守者至簡而能御煩,所處者至靜而能制動,所務者至寡而能服衆。」
범씨가 말했다. "정사를 함에 덕으로써 하면 움직이지 않아도 교화되고, 말하지 않아도 믿고, 하지 않아도 이루어진다. 지키는 것이 지극히 간결한데도 번잡함을 제어할 수 있고, 처하는 곳이 지극히 고요한데도 움직임을 제어할 수 있으며, 힘쓰는 것이 지극히 적은데도 많은 사람을 복종시킬 수 있다.
※현토하는 것이 너무 번잡해서 이제부터는 표점으로만 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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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9. 王曰 吾惛不能進於是矣로니 願夫子輔吾志하여 明以敎我하소서 我雖不敏이나 請嘗試之호리이다 曰 無恒産而有恒心者는 惟士爲能이어니와 若民則無恒産이면 因無恒心이니 苟無恒心이면 放辟邪侈를 無不爲已니 及陷於罪然後에 從而刑之면 是罔民也니 焉有仁人在位하여 罔民而可爲也리오
왕이 말했다. "나는 어두워서 여기에 나아갈 수 없으니, 원컨대 부자께서 내 뜻을 도와 나를 밝히시고 가르치십시오. 내가 비록 불민하나 청컨대 한번 시험해 보겠습니다."
"항산이 없어도 항심이 있는 것은 오직 선비만이 능합니다. 백성의 경우에는 항산이 없으면 따라서 항심이 없으니 진실로 항심이 없으면 방자하고 편벽되며 간사하고 사치스러운 일을 하지 않음이 없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죄에 빠뜨린 이후에 따라서 형벌을 주신다면 이것은 백성들을 그물질하는 것입니다. 어찌 어진 사람이 재위하면서 백성들을 그물질하는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恒은 常也요 産은 生業也니 恒産은 可常生之業也요 恒心은 人所常有之善心也라 士嘗學問하여 知義理라 故로 雖無恒産이라도 而有常心이어니와 民則不能然矣라 罔은 猶羅罔이니 欺其不見而取之也라
'恒'은 떳떳함이고 '産'은 생업이니, '恒産'은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는 일이고, '恒心'은 인간이 떳떳이 가지고 있는 선한 마음이다. 선비는 일찍이 학문을 하여 의리를 안다. 그러므로 비록 항산이 없어도 항심이 있지만, 백성은 그렇게 할 수 없다. '罔'은 '羅罔(그물)'과 같으니 그 보이지 않는 것을 속여서 취하는 것이다.
7-20. 是故로 明君制民之産호되 必使仰足以事父母하며 俯足以畜妻子하여 樂歲終身飽하고 凶年免於死亡하나니 然後驅而之善이라 故로 民之從之也輕하니이다
이 때문에 명군은 백성들의 생업을 제정하되 반드시 위로는 부모를 섬기기에 충분하도록 하고, 아래로는 처자를 기르기에 충분하도록 하여 풍년이 들면 종신토록 배부르고, 흉년이 들면 사망을 면하게 합니다. 그런 뒤에야 몰아서 선으로 가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백성들이 따르기가 쉽습니다.
輕은 猶易也라 此는 言民有常産而有常心也라
'輕'은 '易(쉬움)'과 같다. 이는 백성들이 떳떳한 생업이 있어야 떳떳한 마음이 있다고 말한 것이다.
7-21. 今也制民之産호되 仰不足以事父母하며 俯不足以畜妻子하여 樂歲終身苦하고 凶年不免於死亡하나니 此惟救死而恐不贍이어니 奚暇治禮義哉리오
지금 백성들의 생업을 제정하되 위로는 부모를 섬기기에 부족하도록 하고, 아래로는 처자를 기르기에 부족하도록 하여 풍년이 들어도 종신토록 괴롭고, 흉년이 들면 사망을 면하게 못합니다. 이에 단지 사망에서 구해내기에도 넉넉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어느 겨를에 예의를 다스리겠습니까?
贍은 足也라 此는 所謂無常産而無常心者也라
'贍'은 족함이다. 이는 이른바 떳떳한 생업이 없어서 떳떳한 마음이 없는 것이다.
7-22. 王欲行之시면 則盍反其本矣니잇고
왕께서 이것을 행하고자 하신다면 어찌 그 근본을 돌이켜 보지 아니하십니까?
盍은 何不也라 使民有常産者는 又發政施仁之本也니 說見下文하니라
'盍'은 어찌 아니함이다. 백성들로 하여금 떳떳한 생업이 있게 하는 것은 또한 정사를 베풀고 어진 정치를 시행하는 근본이니 해설이 아래 문장에 보인다.
7-23. 五畝之宅에 樹之以桑이면 五十者可以衣帛矣며 鷄豚狗彘之畜을 無失其時면 七十者可以食肉矣며 百畝之田을 勿奪其時면 八口之家可以無飢矣며 謹庠序之敎하여 申之以孝悌之義면 頒白者不負戴於道路矣리니 老者衣帛食肉하며 黎民不飢不寒이요 然而不王者未之有也니이다
다섯 묘의 집에 뽕나무를 심으면 오십 세 된 사람이 비단옷을 입을 수 있으며, 닭과 돼지와 개와 큰 돼지를 기름에 그 때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하면 칠십 세 된 사람이 고기를 먹을 수 있습니다. 백 묘의 밭에 그 때를 빼앗지 않으면 여덟 식구의 집이 굶주리지 않을 것이며, 학교의 가르침을 삼가서 그들에게 효와 제의 의로움으로써 거듭한다면 반백의 사람이 도로에서 이고 지지 않을 것입니다. 늙은 사람이 비단옷을 입고 고기를 먹으며 서민이 굶주리지 않고 추워하지 않은 후에 왕 노릇 하지 못한 사람은 있지 않습니다."
此는 言 制民之産之法也라
이는 백성의 생업을 제정하는 법을 말한 것이다.
趙氏曰 八口之家는 次上農夫也라 此는 王政之本이요 常生之道라 故로 孟子爲齊梁之君하여 各陳之也시니라
조씨가 말했다. "여덟 식구의 집은 상농부에 버금간다. 이는 왕도정치의 근본이고 떳떳하게 살아가는 방법이다. 그러므로 맹자가 제(齊)나라와 양(梁)나라의 군주를 위하여 각각 설명한 것이다."
楊氏曰 爲天下者는 擧斯心하여 加諸彼而已라 然이나 雖有仁心仁聞이라도 而民不被其澤者는 不行先王之道故也라 故로 以制民之産으로 告之하시니라
양씨가 말했다. "천하를 다스리는 사람은 이 마음을 들어서 저쪽에 더할 뿐이다. 그러나 비록 어진 마음과 어진 소문이 있더라도 백성들이 그 혜택을 입지 못하는 것은 선왕의 제도를 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백성의 생업을 제정하는 것으로써 말한 것이다."
○此章은 言 人君이 當黜霸功하고 行王道요 而王道之要는 不過推其不忍之心하여 以行不忍之政而已라 齊王非無此心이로되 而奪於功利之私하여 不能擴充以行仁政이라 雖以孟子反覆曉告하사 精切如此로되 而蔽固已深하여 終不能悟하니 是可歎也로다
이 장은 인군이 마땅히 패도의 공을 내치고 왕도를 행해야 하며, 왕도의 요점은 그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을 미루어서 차마 하지 못하는 정치를 행하는 것에 불과할 뿐임을 말한 것이다. 제나라 왕은 이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공과 이익의 사사로움에 빼앗겨서 넓히고 보충하여 어진 정치를 행할 수 없었다. 비록 맹자가 반복하여 깨우치고 말한 것이 이와 같이 정밀하고 간절한데 가리워짐이 진실로 이미 심하여 끝내 깨달을 수 없었으니 탄식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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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4. 抑王興甲兵하며 危士臣하여 構怨於諸侯然後에 快於心與잇가
"왕께서는 갑병을 일으키시어 군사와 신하를 위태롭게 하고 제후들에게 원한을 맺은 후에야 마음이 흔쾌하시겠습니까?"
抑은 發語辭라 士는 戰士也라 構는 結也라
'抑'은 발어사이다. '士'는 전사이다. '構'는 맺음이다.
孟子以王愛民之心이 所以輕且短者는 必其以是三者爲快也라 然이나 三事는 實非人心之所快니 有甚於殺觳觫之牛者라 故로 指以問王하여 欲其以此而度之也하시니라
맹자는 왕의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볍고 또 짧은 이유가 반드시 이 세 가지를 흔쾌하게 여기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세 가지는 실질적으로 사람의 마음에 흔쾌하게 여길 바가 아니니 두려움에 떠는 소를 죽이는 것보다 심함이 있다. 그러므로 왕에게 지적하여 물어서 이것으로써 헤아리게 하고자 한 것이다.
7-15. 王曰 否라 吾何快於是리오 將以求吾所大欲也로이다
왕이 말했다. "아닙니다. 내가 어찌 이것을 흔쾌히 여기겠습니까? 장차 내가 크게 하고자 하는 바를 구하려고 해서입니다."
不快於此者는 心之正也요 而必爲此者는 欲誘之也니 欲之所誘者 獨在於是라 是以로 其心이 尙明於他而獨暗於此하니 此其愛民之心이 所以輕短而功不至於百姓也니라
이것을 흔쾌히 여기지 않음은 마음의 올바름이고 반드시 이것을 하려고 함은 욕심이 꾀어내는 것이다. 욕심이 꾀어내는 것이 유독 여기에 있었기 때문에 그 마음이 오히려 다른 것에 밝고 유독 여기에 어두우니, 이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볍고 짧으며 공이 백성들에게 이르지 못하는 이유이다.
7-16. 曰 王之所大欲을 可得聞與잇가 王笑而不言하신대 曰 爲肥甘不足於口與며 輕煖不足於體與잇가 抑爲采色不足視於目與며 聲音不足聽於耳與며 便嬖不足使令於前與잇가 王之諸臣이 皆足以供之하나니 而王豈爲是哉시리잇고 曰 否라 吾不爲是也로이다 曰 然則王之所大欲可知已니 欲辟土地하며 朝秦楚하여 莅中國而撫四夷也로소이다 以若所爲로 求若所欲이면 猶緣木而求魚也니이다
"왕께서 크게 하고자 하시는 바를 얻어 들을 수 있겠습니까?"
왕이 웃기만 하고 말하지 않았다.
"살지고 단 음식이 입에 부족하고, 가볍고 따뜻한 옷이 몸에 부족해서입니까? 아니면 채색이 눈으로 보기에 부족하고, 소리가 귀로 듣기에 부족하고, 친숙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앞에서 사령함에 부족해서입니까? 왕의 여러 신하들이 모두 이것을 충분히 공급하니 왕꼐서 어찌 이것 때문이시겠습니까?"
"아닙니다. 나는 이것 때문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왕께서 크게 하고자 하시는 바를 알 수 있겠습니다. 토지를 개척하며 진(秦)나라와 초(楚)나라를 입조하게 하며 중원에 임하여 사방 오랑캐를 어루만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소행으로 이와 같은 소욕을 구한다면 나무에 올라가 물고기를 구하는 것과 같습니다."
嬖 : 사랑할 폐 莅 : 임할 리
便嬖는 近習嬖幸之人也라 已는 語助辭라 辟은 開廣也라 朝는 致其來朝也라 秦楚는 皆大國이라 莅는 臨也라 若은 如此也라 所爲는 指興兵結怨之事라 緣木求魚는 言必不可得이라
'便嬖'는 가까이 두어서 익숙하고 사랑하는 사람이다. '已'는 발어사이다. '辟'은 열어서 넓힘이다. '朝'는 그들이 와서 조회하게 함이다. 진(秦)나라와 초(楚)나라는 모두 큰 나라이다. '莅'는 임함이다. '若'은 이와 같음이다. '所爲'는 병사를 일으켜서 원한을 맺는 일을 가리킨다. '緣木求魚'는 반드시 얻을 수 없음을 말함이다.
幸 : 임금의 사랑을 받다.
7-17. 王曰 若是其甚與잇가 曰 殆有甚焉하니 緣木求魚는 雖不得魚나 無後災어니와 以若所爲로 求若所欲이면 盡心力而爲之라도 後必有災하리이다 曰 可得聞與잇가 曰 鄒人與楚人戰則王以爲孰勝이니잇고 曰 楚人勝하리이다 曰 然則小固不可以敵大며 寡固不可以敵衆이며 弱固不可以敵强이니 海內之地方千里者九에 齊集有其一하니 以一服八이 何以異於鄒敵楚哉리잇고 蓋亦反其本矣니이다
왕이 말했다. "이와 같이 심합니까?"
"이보다도 심함이 있으니 나무에 올라가 물고기를 구하는 것은 비록 물고기를 얻지 못하여도 뒤에 재앙이 없지만, 이와 같은 소행으로 이와 같은 소욕을 구한다면 마음과 힘을 다해 하더라도 뒤에 반드시 재앙이 있습니다."
"얻어 들을 수 있겠습니까?"
"추(鄒)나라가 초(楚)나라와 전쟁한다면 왕께서는 누가 이길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초(楚)나라가 이길 것입니다."
"그런즉 작은 것은 진실로 큰 것을 대적할 수 없으며, 적은 것은 진실로 많은 것을 대적할 수 없으며, 약한 것은 진실로 강한 것을 대적할 수 없습니다. 해내에 땅이 사방 천 리인 것이 아홉인데, 제(齊)나라가 <땅을> 모으면 그 하나를 가지고 있으니, 하나로써 여덟을 복종시키는 것이 추(鄒)나라가 초(楚)나라를 대적하는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역시 그 근본을 돌이켜 보아야 합니다.
殆蓋는 皆發語辭라 鄒는 小國이요 楚는 大國이라 齊集有其一은 言集合齊地면 其方千里니 是는 有天下九分之一也라 以一服八은 必不能勝이니 所謂後災也라 反本은 說見下文하니라
'殆'와 '蓋'는 모두 발어사이다. '鄒'는 작은 나라이고, '楚'는 대국이다. '齊集有其一'은 제나라 땅을 모아 합하면 사방 천 리이니 천하의 9분의 1을 소유함을 말함이다. '以一服八'은 반드시 이길 수 없음이니 이른바 뒤에 있는 재앙이다. '反本'은 해설이 아래 문장에 보인다.
7-18. 今王發政施仁하사 使天下仕者皆欲立於王之朝하며 耕者皆欲耕於王之野하며 商賈皆欲藏於王之市하며 行旅皆欲出於王之途하시면 天下之欲疾其君者 皆欲赴愬於王하리니 其如是면 孰能禦之리잇고
지금 왕께서 정사를 펴서 어진 정치를 시행하여 천하에 벼슬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모두 왕의 조정에 서고 싶게 하고, 밭 가는 사람들로 하여금 모두 왕의 들에서 밭을 갈고 싶게 하고, 장사치들로 하여금 모두 왕의 시장에 물건을 저장하고 싶게 하고, 행려객들로 하여금 모두 왕의 길로 나아가고 싶게 한다면 천하에 그 군주를 미워하는 사람이 장차 모두 왕께 나아와 하소연하고자 할 것입니다. 이와 같다면 누가 능히 막을 수 있겠습니까?"
行貨曰 商이요 居貨曰 賈라
다니면서 파는 것을 '商'이라고 하고, 한 곳에 거하면서 파는 것을 '賈'라고 한다.
發政施仁은 所以王天下之本也라 近者悅하고 遠者來하면 則大小彊弱은 非所論矣라 蓋力求所欲이면 則所欲者를 反不可得이요 能反其本이면 則所欲者不求而至니 與首章意同하니라
정사를 펴고 어진 정치를 시행하는 것은 천하에 왕 노릇하는 근본이다. 가까이 있는 사람이 기뻐하고 멀리 있는 사람이 오면 대소와 강약은 논할 바가 아니다. 대개 소욕을 힘써 구하면 소욕을 도리어 얻지 못할 것이고, 그 근본을 돌이켜 볼 수 있다면 소욕이 구하지 않아도 이르니 첫 장과 뜻이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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