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학'에 해당되는 글 114건
- 2020.02.14 :: 양혜왕장구상07(2). 하지 않는 것이지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 2020.02.14 :: 양혜왕장구상07(1). 소를 양으로 바꾸다
- 2020.02.14 :: 양혜왕장구상06. 왕께선 벼싹을 아십니까?
- 2020.02.14 :: 논어집주서설
- 2020.02.14 :: 학이16. 내가 남을 알지 못함을 근심하라
- 2020.02.14 :: 학이15. 자공과는 시를 말할 수 있겠구나
- 2020.02.14 :: 학이14. 배움을 좋아한다는 것
- 2020.02.12 :: 양혜왕장구상05. 인자무적
7-9. 王說曰 詩云 他人有心을 予忖度之라하니 夫子之謂也로소이다 夫我乃行之하고 反而求之하되 不得吾心이러니 夫子言之하시니 於我心有戚戚焉하여이다 此心之所以合於王者는 何也잇고
왕이 기뻐하며 말했다. "《시경》에 이르기를, '타인의 마음가짐을 내가 헤아린다.'라고 하였으니, 부자를 말한 것입니다. 내가 마침 행하고 돌이켜 구하였지만 내 마음에 얻어지지 않았는데 부자께서 말씀하시니 내 마음에 뭉클함이 있습니다. 이 마음이 왕 노릇 하기에 합당한 까닭은 무엇입니까?"
戚 : 가슴뭉클할 척
詩는 小雅巧言之篇이라 戚戚은 心動貌라 王因孟子之言하여 而前日之心이 復萌하여 乃知此心不從外得이라 然이나 猶未知所以反其本而推之也라
시는 《시경·소아》의 〈교언〉 편이다. '戚戚'은 마음이 감동한 모양이다. 왕은 맹자의 말로 인하여 전일의 마음이 다시 싹터서 이에 이 마음이 밖에서 얻어지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오히려 그 근본을 돌이켜 미루어 볼 줄은 알지 못했다.
7-10. 曰 有復於王者曰 吾力足以擧百鈞이로되 而不足以擧一羽하며 明足以察秋毫之末이로되 而不見輿薪이라하면 則王許之乎잇가 曰 否라 今恩足以及禽獸로되 而功不至於百姓者는 獨何與잇고 然則一羽之不擧는 爲不用力焉이며 輿薪之不見은 爲不用明焉이며 百姓之不見保는 爲不用恩焉이니 故로 王之不王은 不爲也언정 非不能也니이다
"왕에게 아뢰는 사람이 있어 말하기를, '내 힘이 백 균(삼천 근)을 들기에 충분하지만 한 개의 깃털을 들기에는 부족하며, 시력이 추호의 끝을 살피기에 충분하지만 수레에 실린 땔나무를 보지 못한다.'라고 하면 왕께서는 그것을 인정하시겠습니까?"
"불가합니다."
"지금 은혜가 충분히 금수에게 미치는데 공이 백성들에게 이르지 않음은 유독 어째서입니까? 그런즉 하나의 깃털을 들지 못함은 힘을 쓰지 않아서이고, 수레에 실린 땔나무를 보지 못함은 시력을 쓰지 않아서이며, 백성들이 보호받지 못함은 은혜를 쓰지 않아서입니다. 그러므로 왕께서 왕 노릇 하지 못함은 것은 하지 않는 것이지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復 : 아뢸 복 鈞 : 서른근 균
復은 白也라 鈞은 三十斤이니 百鈞은 至重難擧也라 羽는 鳥羽니 一羽는 至輕易擧也라 秋毫之末은 毛至秋而末銳하니 小而難見也요 輿薪은 以車載薪이니 大而易見也라 許는 猶可也라
'復'은 아룀이다. '鈞'은 서른 근이니 '百鈞'은 지극히 무거워 들기에 어렵다. '羽'는 새의 깃털이니 '一羽'는 지극히 가벼워 들기에 쉽다. '秋毫之末'은 털이 가을에 이르러 끝이 가늘어진 것이니 작아서 보기에 어렵다. '輿薪'은 수레에 실린 땔나무이니 커서 보기에 쉽다. '許'는 '可(가하다)'와 같다.
今恩以下는 又孟子之言也라 蓋天地之性에 人爲貴라 故로 人之與人은 又爲同類而相親이라 是以로 惻隱之發은 則於民切而於物緩하고 推廣仁術은 則仁民易而愛物難이어늘 今王此心이 能及物矣면 則其保民而王은 非不能也요 但自不肯爲耳니라
'今恩' 이하는 다시 맹자의 말이다. 대개 천지의 성 중에 사람이 귀하다. 그러므로 사람과 사람은 또 동류가 되어 서로 친하다. 이 때문에 측은지심의 발함은 백성에게는 간절하고 물건에게는 느슨하며, 인을 행하는 방법을 미루어 넓힘은 백성을 사랑함이 쉽고 물건을 아낌이 어렵다. 지금 왕은 이 마음이 능히 물건에까지 미쳤으니 그 백성을 보호하고 왕 노릇 하는 것은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고 단지 스스로 기꺼이 하려고 하지 않는 것일 뿐이다.
7-11. 曰 不爲者與不能者之形이 何以異잇고 曰 挾太山하여 以超北海를 語人曰 我不能이라하면 是誠不能也어니와 爲長者折枝를 語人曰 我不能이라하면 是不爲也언정 非不能也니 故로 王之不王은 非挾太山以超北海之類也라 王之不王은 是折枝之類也니이다
"하지 않는 것과 하지 못하는 것의 모양이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태산을 끼고 북해를 넘는 것을 사람이 말하기를, '내가 할 수 없다.'라고 하면 이것은 진실로 할 수 없는 것이지만, 어른을 위하여 가지를 꺾는 것을 사람이 말하기를, '내가 할 수 없다.'라고 하면 이것은 하지 않는 것이지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왕께서 왕 노릇 하지 못함은 태산을 끼고 북해를 넘는 종류가 아닙니다. 왕께서 왕 노릇 하지 못함은 바로 가지를 꺾는 종류입니다.
形은 狀也라 挾은 以腋持物也라 超는 躍而過也라 爲長者折枝는 以長者之命으로 折草木之枝니 言不難也라
'形'은 형상이다. '挾'은 겨드랑이에 물건을 끼는 것이다. '超'는 뛰어서 지나가는 것이다. '爲長者折枝'는 장자의 명으로 초목의 가지를 꺾는 것이니 어렵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是心固有하여 不待外求니 擴而充之는 在我而已니 何難之有리오
이 마음은 고유하여 밖에서 구해지기를 기대할 필요가 없으니 넓혀서 보충하는 것은 나에게 달려있을 뿐이다. 어찌 어려움이 있겠는가.
7-12. 老吾老하여 以及人之老하며 幼吾幼하여 以及人之幼하면 天下可運於掌이니 詩云 刑于寡妻하여 至于兄弟하여 以御于家邦이라하니 言擧斯心加諸彼而已니 故로 推恩이면 足以保四海요 不推恩이면 無以保妻子니 古之人이 所以大過人者는 無他焉이라 善推其所爲而已矣니 今恩足以及禽獸로되 而功不至於百姓者는 獨何與니잇고
내 노인을 노인으로 섬겨서 남의 노인에게까지 미치고, 내 어린아이를 어린아이로 길러서 남의 어린아이에게까지 미친다면 천하를 손바닥에 놓고 움직일 수 있습니다. 《시경》에 이르기를, '과덕한 이의 아내에게 모범이 되어서 형제에 이르고, 집안과 나라를 다스린다.'라고 하였으니 이 마음을 들어서 저쪽에 더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은혜를 미루며 사해를 보전하기에 충분하고 은혜를 미루지 않으면 처자를 보호할 수 없습니다. 옛날 사람이 그냥 사람보다 크게 뛰어난 까닭은 다른 것이 없습니다. 그 하는 것을 미루기를 잘 했을 뿐입니다. 지금 은혜가 충분히 금수에게까지 미치나 공이 백성들에게 이르지 않음은 유독 어째서입니까?
老는 以老事之也니 吾老는 謂我之父兄이요 人之老는 謂人之父兄이라 幼는 以幼畜之也니 吾幼는 謂我之子弟요 人之幼는 謂人之子弟라 運於掌은 言易也라 詩는 大雅思齊之篇이라 刑은 法也라 寡妻는 寡德之妻니 謙辭也라 御는 治也라 不能推恩이면 則衆叛親離라 故로 無以保妻子라
'老'는 노인을 섬기는 방법으로써 섬기는 것이니 '吾老'는 나의 부형을 말하고, '人之老'는 남의 부형을 말한다. '幼'는 어린아이를 기르는 방법으로써 기르는 것이니 '吾幼'는 나의 자제를 말하고, '人之幼'는 남의 자제를 말한다. '運於掌'는 쉽다고 말한 것이다. 시는 대아의 사제 편이다. '刑'은 본받음이다. '寡妻'는 과덕한 이의 아내니 겸사이다. '御'는 다스림이다. 은혜를 능히 미루지 못하면 민중이 배반하고 가까운 사람들이 흩어진다. 그러므로 처자를 보존할 수 없다.
蓋骨肉之親은 本同一氣하니 又非但若人之同類而已라 故로 古人이 必由親親推之然後에 及於仁民하고 又推其餘然後에 及於愛物하니 皆由近以及遠하고 自易以及難이어늘 今王反之하니 則必有故矣라 故로 復推本而再問之하시니라
대개 골육의 친척은 본래 한 기운을 같이하였으니 또한 단지 사람의 동류와 같을 뿐만이 아니다. 그러므로 옛 사람이 가까운 사람을 가까이함으로 말미암아 미루어 본 다음에 백성을 사랑함에 미치고 또한 그 나머지로 미루어 본 이후에 물건을 아낌에 미치니 모두 가까운 것으로 말미암아 먼 것에 미치고 쉬운 것으로부터 어려운 것에 미치는 것이다. 지금 왕이 거꾸로 하니 반드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다시 근본을 미루어 재차 질문한 것이다.
7-13. 權然後知輕重하며 度然後知長短이니 物皆然이어니와 心爲甚하니 王請度之하소서
저울로 재어 본 다음에야 가볍고 무거움을 알며 자로 재어 본 다음에야 길고 짧음을 압니다. 물체가 모두 그렇지만 마음이 더욱 심하니, 청컨대 왕께서는 헤아리십시오."
權은 稱錘也요 度는 丈尺也라 度之는 謂稱量之也라 言 物之輕重長短은 人所難齊라 必以權度度之而後可見이니 若心之應物은 則其輕重長短之難齊하여 而不可不度以本然之權度가 又有甚於物者라
'權'은 저울과 저울추이고, '度'는 길과 자이다. '度之'는 저울질하고 헤아림을 말한다. 물건의 경중과 장단은 사람이 가지런하게 하기 어려운 것이니, 반드시 저울과 자로써 저울질하고 헤아린 이후에 볼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마음이 사물에 응하는 경우에는 그 경중과 장단을 가지런하게 하기 어려우니 본연의 저울과 자로써 저울질하고 헤아릴 수 없음이 또한 물건보다 심함이 있다.
今王이 恩及禽獸而功不至於百姓하니 是는 其愛物之心이 重且長하고 而仁民之心이 輕且短하여 失其當然之序而不自知也라 故로 上文에 旣發其端하시고 而於此에 請王度之也하시니라
지금 왕은 은혜가 금수에까지 미치는데 공이 백성들에게 이르지 않는다. 이는 그 물건을 아끼는 마음이 무겁고 길지만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볍고 짧아서 그 당연한 순서를 잃어버리고도 스스로 알지 못했다. 그러므로 윗 문장에 이미 그 단서를 드러내고 이에 왕이 헤아리기를 청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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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齊宣王이 問曰 齊桓晉文之事를 可得聞乎잇가
제 선왕이 물었다. "제 환공과 진 문공의 일을 얻어 들을 수 있겠습니까?"
齊宣王은 姓田氏요 名辟彊이니 諸侯僭稱王也라 齊桓公晉文公은 皆霸諸侯者라
제 선왕은 성이 田氏이고 이름은 벽강이니 제후인데도 주제넘게 왕을 칭했다. 제 환공, 진 문공은 모두 제후들 중에 패자였다.
7-2. 孟子對曰 仲尼之徒無道桓文之事者라 是以로 後世無傳焉하니 臣未之聞也로니 無以則王乎인저
맹자가 대답하였다. "중니의 제자들 중에서 환공과 문공의 일을 말한 사람이 없습니다. 이 때문에 후세에 전하는 것이 없으니 저도 아직 듣지 못했습니다. (대신) 멈추지 않고 왕도정치를 말하겠습니다."
道는 言也라
'道'는 말하는 것이다.
董子曰 仲尼之門에 五尺童子 羞稱五伯는 爲其先詐力而後仁義也라하니 亦此意也라
동자가 말했다. "중니의 문도에 오척동자라도 다섯 백(춘추오패)을 칭하기를 부끄러워하였으니 힘과 속임수를 먼저 하고 인과 의를 뒤로 하였기 때문이다"라고 하였으니 또한 이 뜻이다.
以는 已通用이니 無已는 必欲言之而不止也라 王은 謂王天下之道라
'以'는 '已(멈추다)'와 통용하니 '無已'는 반드시 말하고자 하여 멈추지 않는 것이다. '王'은 천하에 왕 노릇하는 도를 말한다.
7-3. 曰 德何如면 則可以王矣리잇고 曰 保民而王이면 莫之能禦也리이다
"덕이 어떠해야 왕 노릇 할 수 있습니까?"
"백성을 보호하고 왕 노릇 하면 그것을 능히 막을 수 없습니다."
保는 愛護也라
'保'는 아끼고 보호하는 것이다.
7-4. 曰 若寡人者도 可以保民乎哉잇가 曰 可하니이다 曰 何由知吾可也잇고 曰 臣聞之胡齕하니 曰 王坐於堂上이어시늘 有牽牛而過堂下者러니 王見之曰 牛何之오 對曰 將以釁鍾이니이다 王曰 舍之하라 吾不忍其觳觫若無罪而就死地하노라 對曰 然則廢釁鍾與잇가 曰 何可廢也리오 以羊易之라하니 不識케이다 有諸잇가
"과인과 같은 사람도 백성을 보호할 수 있습니까?"
"가능합니다."
"어떤 이유에서 내가 가능한 것을 아십니까?"
"제가 호흘에게 들었습니다. 왕께서 당 위에 앉아 계시다가 소를 끌고 당 아래로 지나가는 사람이 있었으니 왕이 그것을 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소가 어디로 가는가?' 대답하기를, '장차 흔종(釁鍾) 의식에 쓰려고 합니다.'라고 하니, 왕께서 말씀하시기를 '그것을 놓아 주어라. 내가 그것이 마치 죄가 없으면서도 사지에 나아가는 것처럼 두려워 떠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겠다.' 대답하기를, '그렇다면 흔종 의식을 폐지할까요?'라고 하니, 말씀하시기를 '어찌 폐지할 수 있겠는가. 양으로 바꿔라.'라고 하니 알지 못하겠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觳 : 두려울 곡 觫 : 두려울 속 釁 : 피 바를 흔
胡齕은 齊臣也라 釁鍾은 新鑄鍾成이면 而殺牲取血하여 以塗其釁郄也라 觳觫은 恐懼貌라
'胡齕'은 제(齊)나라 신하이다. '釁鍾'은 새로이 주조하여 종이 만들어지면 희생을 죽여 피를 취하여 그 틈에 칠하는 것이다. '觳觫'은 두려워하는 모양이다.
郄 : 틈 극(隙)
孟子述所聞胡齕之語而問王하사되 不知果有此事否아하시니라
맹자가 호흘의 말을 들은 것을 서술하여 왕에게 '이런 일이 과연 있었는지 알지 못하겠습니다.'라고 물은 것이다.
7-5. 曰 有之하니이다 曰 是心足以王矣리이다 百姓皆以王爲愛也어니와 臣固知王之不忍也하노이다
"있었습니다."
"이 마음이 왕 노릇 하기에 충분합니다. 백성들은 모두 왕을 인색하다고 여기지만 저는 진실로 왕께서 차마 하지 못하신 것을 알겠습니다."
王見牛之觳觫而不忍殺은 卽所謂惻隱之心仁之端也니 擴而充之면 則可以保四海矣라 故로 孟子指而言之하사 欲王察識於此而擴充之也시니라 愛는 猶吝也라
왕이 소가 두려워하는 것을 보고 차마 죽이지 못한 것은 곧 이른바 측은지심이 인의 단서라는 것이니 그것을 확대하여 보충하면 사해를 보호할 수 있다. 그러므로 맹자가 그것을 가리켜 말해서 왕이 이것을 살펴 알고 그것을 확대하고 보충하게 하고자 한 것이다. '愛'는 '吝(인색하다)'와 같다.
7-6. 王曰 然하다 誠有百姓者로다마는 齊國雖褊小吾何愛一牛리오 卽不忍其觳觫若無罪而就死地라 故로 以羊易之也하니이다
왕이 말했다. "그렇습니다. 진실로 백성들 중에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제나라가 비록 좁고 작다 하더라도 내가 어찌 소 한 마리를 아끼겠습니까. 곧 그것이 마치 죄가 없으면서도 사지에 나아가는 것처럼 두려워 떠는 것을 차마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양으로 바꾼 것입니다."
褊 : 좁을 편
言 以羊易牛는 其迹似吝하여 實有如百姓所譏者라 然이나 我之心은 不如是也라
양으로 소와 바꾼 것은 그 자취가 아낀 것과 비슷하여 실제로 백성들이 비웃는 바와 같은 것이 있겠지만 내 마음은 이것과 같지 않다고 말한 것이다.
7-7. 曰 王無異於百姓之以王爲愛也하소서 以小易大어니 彼惡知之리잇고 王若隱其無罪而就死地면 則牛羊何擇焉이리잇고 王笑曰 是誠何心哉런고 我非愛其財而易之以羊也언마는 宜乎百姓之謂我愛也로다
"왕께서는 백성들이 왕을 인색하다고 여기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작은 것으로 큰 것을 바꾸었으니 저들이 어찌 그것을 알겠습니까. 왕께서 만약 그것이 죄가 없으면서도 사지에 나아가는 것을 측은히 여기셨다면 소와 양을 어찌 구별하셨겠습니까?"
왕이 웃으며 말했다. "이것이 진실로 어떤 마음이었는가! 내가 그 재물을 아껴서 그것을 양으로 바꾼 것이 아닌데, 백성들이 내가 인색하다고 말하는 것이 당연하겠구나!"
惡 : 어찌 오 隱 : 측은히여길 은
異는 怪也라 隱은 痛也라 擇은 猶分也라 言牛羊이 皆無罪而死어늘 何所分別而以羊易牛乎아
'異'는 괴이함이다. '隱'은 아프게 여김이다. '擇'는 '分(분별하다)'와 같다. 소와 양이 모두 죄가 없으면서도 죽는데 어느 것을 분별하여 양으로 소를 바꿨느냐고 말한 것이다.
孟子故設此難하여 欲王反求而得其本心이러시니 王不能然이라 故로 卒無以自解於百姓之言也라
맹자가 고의로 이 질문을 설정해서 왕이 돌이켜 구해서 그 본심을 얻도록 하고자 하였으나 왕이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끝내 스스로 백성들의 말을 풀어낼 수 없었다.
7-8. 曰 無傷也라 是乃仁術也니 見牛未見羊也일새니이다 君子之於禽獸也에 見其生不忍見其死하며 聞其聲不忍食其肉하나니 是以로 君子遠庖廚也니이다
"속상해하지 마십시오. 이것이 바로 인을 행하는 방법입니다. 소는 보았고 양은 아직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군자는 금수에 대하여 그 태어남을 보면 차마 그 죽음을 보지 못하고 그 소리를 들으면 차마 그 고기를 먹지 못하니 이 때문에 군자는 푸줏간을 멀리 하는 것입니다."
無傷은 言雖有百姓之言이나 不爲害也라 術은 謂法之巧者라
'無傷'은 비록 백성들의 말이 있지만 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이다. '術'은 방법의 정교함을 말한 것이다.
蓋殺牛는 旣所不忍이요 釁鍾은 又不可廢니 於此에 無以處之면 則此心雖發이나 而終不得施矣라 然이나 見牛則此心已發而不可遏이요 未見羊則其理未形而無所妨이라 故로 以羊易牛면 則二者得以兩全而無害니 此所以爲仁之術也라
대개 소를 죽이는 것은 이미 차마 하지 못한 것이고, 흔종은 또한 폐지할 수 없는 것이다. 이에 대처할 수 없으면 이 마음이 비록 발하였더라도 끝내 베풀어질 수 없다. 그러나 소를 보면 이 마음이 이미 발하여 막을 수 없고, 양을 아직 보지 않았으면 그 이치가 나타나지 않아서 방해할 것이 없다. 그러므로 양으로 소를 바꾸면 두 가지가 모두 온전하여지고 해가 없을 수 있으니 이것이 인을 행하는 방법이다.
遏 : 막을 알
聲은 謂將死而哀鳴也라 蓋人之於禽獸에 同生而異類라 故로 用之以禮하고 而不忍之心이 施於見聞之所及이니 其所以必遠庖廚者는 亦以預養是心而廣爲仁之術也니라
'聲'은 장차 죽을 때 내는 슬픈 울음소리를 말한다. 대개 사람은 금수에 대하여 똑같이 살지만 다른 종류이다. 그러므로 예로써 쓰고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이 보고 들음이 미치는 곳에 베풀어지니 그 반드시 푸줏간을 멀리 하는 까닭은 또한 미리 이 마음을 길러서 인을 행하는 방법을 넓히려고 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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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孟子見梁襄王하시고
맹자가 양 양왕을 만나뵈었다.
襄王은 惠王子니 名赫이라
양왕은 혜왕의 아들이니 이름은 赫이다.
6-2. 出語人曰 望之不似人君이요 就之而不見所畏焉이러니 卒然問曰 天下惡乎定고하여늘 吾對曰 定于一이라호라
나와서 사람들에게 말했다. "바라보아도 인군 같지 않았고, 나아가도 두려워할 만한 것을 보지 못했다. 갑자기 물어보기를, '천하가 어디에 정해지겠습니까?'라고하니 내가 대답하기를, '한 곳에 정해질 것입니다.'라고 했다.
語는 告也라 不似人君不見所畏는 言其無威儀也라 卒然은 急遽之貌라 蓋容貌辭氣는 乃德之符니 其外如此면 則其中之所存者를 可知라 王問 列國分爭하니 天下當何所定고한대 孟子對以必合于一然後定也시니라
'語'는 말하는 것이다. '인군 같지 않았고 두려워할 만한 것을 보지 못했다.'는 위의가 없음을 말한 것이다. '卒然'은 급한 모양이다. 대개 용모와 사기는 덕의 증거이니 그 밖에서 이와 같으면 그 안에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왕이 묻기를, '열국이 나뉘어 다투니 천하가 마땅히 어느 곳에 정해지겠습니까?'라고 하니 맹자가 '반드시 하나로 합쳐진 이후에야 정해질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6-3. 孰能一之오하여늘
'누가 능히 통일시키겠습니까?'라고 하시니
王問也라
왕이 물은 것이다.
6-4. 對曰 不嗜殺人者 能一之라호라
대답하기를, '사람 죽이기를 즐기지 않는 사람이 통일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라 하였다.
嗜는 甘也라
'嗜'는 달게 여기는 것이다.
6-5. 孰能與之오하여늘
'누가 그에게 귀순하겠습니까?'라고 하시니
王復問也라 與는 猶歸也라
왕이 다시 물은 것이다. '與'는 '歸(귀순함)'과 같다.
6-6. 對曰 天下莫不與也니 王知夫苗乎잇가 七八月之間에 旱則苗槁矣라가 天油然作雲하여 沛然下雨면 則苗浡然興之矣하나니 其如是면 孰能禦之리오 今夫天下之人牧이 未有不嗜殺人者也니 如有不嗜殺人者면 則天下之民이 皆引領而望之矣리니 誠如是也면 民歸之由水之就下하리니 沛然誰能禦之리오호라
대답하기를, '천하에 귀순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왕께서는 벼싹을 아십니까? 7, 8월 사이에 가물면 벼싹이 말라 죽어가다가 하늘이 뭉게뭉게 구름을 만들어 좍좍 비를 내리면 벼싹이 싱싱하게 일어납니다. 그것이 이와 같다면 누가 능히 막을 수 있겠습니까? 지금 천하의 군주가 사람 죽이기를 즐기지 않는 사람이 있지 않으니 만약 사람 죽이기를 즐기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천하의 백성들이 모두 목을 늘이고 바라볼 것입니다. 진실로 이와 같다면, 백성들이 귀순하는 것은 물이 아래로 가는 것과 같을 것이니 비가 좍좍 내리는 것을 누가 능히 막을 수 있겠습니까?'라 하였다."
苗 : 벼싹 묘 沛 : 비 쏟아질 패
周七八月은 夏五六月也라 油然은 雲盛貌요 沛然은 雨盛貌요 浡然은 興起貌라 禦는 禁止也라 人牧은 謂牧民之君也라 領은 頸也라 蓋好生惡死는 人心所同이라 故로 人君이 不嗜殺人이면 則天下悅而歸之니라
주력 7, 8월은 하력으로 5, 6월이다. '油然'은 구름이 성한 모양이고, '沛然'은 비가 성한 모양이고, '浡然'은 일어나는 모양이다. '禦'는 금지함이다. '人牧'은 백성을 기르는 군주를 말한다. '領'은 목이다. 아마도 삶을 좋아하고 죽음을 싫어하는 것은 사람 마음의 같은 바이다. 그러므로 군주가 사람 죽이기를 즐기지 않으면 천하가 기뻐하여 그에게 귀순하는 것이다.
○蘇氏曰 孟子之言이 非苟爲大而已라 然이나 不深原其意而詳究其實이면 未有不以爲迂者矣라 予觀孟子以來로 自漢高祖及光武及唐太宗及我太祖皇帝히 能一天下者四君이 皆以不嗜殺人致之요 其餘는 殺人愈多而天下愈亂하며 秦晉及隋는 力能合之나 而好殺不已라 故로 或合而復分하고 或遂以亡國하니 孟子之言이 豈偶然而已哉시리오
소씨가 말했다. "맹자의 말은 구차하게 크게 말하는 것 뿐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뜻을 깊이 근원하고 그 내용을 상세하게 연구하지 않으면 에둘러 말한다고 여기지 않을 사람이 있지 않을 것이다. 내가 보니 맹자 이래로 한 고조로부터 광무제, 당 태종과 우리 태조황제(송 태조)에 이르기까지 능히 천하를 통일한 사람이 네 군주인데, 모두 사람 죽이기를 즐기지 않음으로써 그것을 이루었다. 그 나머지는 사람 죽이기를 더욱 많이 하여 천하가 더욱 혼란해졌는데, 진(秦)나라와 진(晉)나라 및 수(隋)나라는 힘은 능히 통합할 수 있었으나 죽이기를 좋아함이 끝없었다. 그러므로 혹은 합쳤더라도 다시 나누어지고 혹은 마침내 나라가 망하였으니 맹자의 말이 어찌 우연일 뿐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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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記世家曰 孔子는 名丘요 字仲尼니 其先은 宋人이라 父는 叔梁紇이요 母는 顏氏니 以魯襄公二十二年庚戌之歲十一月庚子에 生孔子於魯昌平鄉陬邑하니 爲兒嬉戲에 常陳俎豆하고 設禮容이러시니 及長爲委吏하사는 料量平하고
《사기 세가》에 이르기를, 공자의 이름은 丘이고 자는 仲尼이니 그 선조는 송(宋)나라 사람이다. 아버지는 숙량흘이고 어머니는 안씨이니 노(魯)나라 양공 22년 경술년 11월 경자일에 노(魯)나라 창평향 추(鄹)읍에서 공자를 낳았다. 어려서 놀 때에는 항상 조두를 진열하고 예의 바른 용모를 갖추었다. 자라서는 위리가 되어 급료의 분량을 공평하게 하였다.
紇 : 묶을 흘 陬 : 땅 이름 추 嬉 : 놀 희 俎 : 도마 조 豆 : 제기 두
委吏 : 곡식의 출납을 관장하는 관리
委吏는 本作季氏史로되 索隱云一本에 作委吏라하여 與孟子合하니 今從之하노라
위리는 원래 계씨사로 되어 있었는데 《사기색은》에 이르기를, 어떤 책에는 위리라고 되어 있다고 하여 《맹자》와 부합하니 지금은 이것을 따른다.
爲司職吏하사는 畜蕃息하시니라
사직리가 되어서는 가축이 번식하였다.
息 : 번식할 식
職은 見周禮牛人이라 讀爲樴이니 義與杙同하니 蓋繫養犧牲之所라 此官은 卽孟子所謂乘田이라
'職'은 《주례》 〈우인〉을 보면 '樴'으로 읽으니 의미가 '杙'과 같다. 아마도 희생을 매어 놓고 기르는 장소일 것이다. 이 관직은 곧 《맹자》에서 '승전'이라고 말한 것이다.
樴 : 말뚝 직 杙 : 말뚝 익
適周하사 問禮於老子하시고 旣反而弟子益進이러라
주(周)나라에 가서 노자에게 예를 묻고 돌아오니 제자들이 더욱 나아왔다.
昭公二十五年甲申은 孔子年三十五라 而昭公奔齊魯亂하니 於是에 適齊하여 爲高昭子家臣하사 以通乎景公하시다
소공 25년 갑신은 공자의 나이 35세이니, 소공이 제(齊)나라로 도망가서 노(魯)나라가 혼란하였다. 이에 제(齊)나라로 가서 고소자의 가신이 되어 경공과 통하였다.
有聞韶問政二事라
소악을 듣고, 정사를 물은 두 가지 일이 있다.
公欲封以尼谿之田한대 晏嬰이 不可라하니 公惑之어늘
공이 이곡의 밭으로 봉하고자 하였으나 안영이 불가하다고 하니 공이 미혹되었다.
有季孟吾老之語라
'季孟'과 '吾老'의 말이 있다.
孔子遂行하사 反乎魯하시니라 定公元年壬辰은 孔子年四十三이라 而季氏強僭하고 其臣陽虎作亂專政이라 故로 孔子不仕하시고 而退修詩書禮樂하시니 弟子彌衆이러라
공자가 드디어 떠나 노(魯)나라로 돌아왔다. 정공 원년 임진은 공자의 나이 43세였는데, 계씨가 강해서 참람하고, 그 가신 양호가 난을 일으켜 정사를 전횡하였다. 그러므로 공자가 벼슬하지 않고, 물러나 《시경》, 《서경》, 《예기》, 《악경》을 닦으니 제자가 더욱 많아졌다.
九年庚子는 孔子年五十一이라 公山不狃以費畔季氏하고 召孔子어늘 欲往而卒不行하시니라
9년 경자는 공자의 나이 51세이다. 공산불뉴가 비읍(費邑)을 가지고서 계씨를 배반하고 공자를 불렀는데, 가고자 하였으나 끝내는 가지 않았다.
畔 : 배반할 반
有答子路東周語라
자로에게 동주로 답한 말이 있다.
定公이 以孔子爲中都宰하니 一年에 四方則之라 遂爲司空하시고 又爲大司寇하시다 十年辛丑에 相定公하사 會齊侯于夾谷하시니 齊人歸魯侵地하다 十二年癸卯에 使仲由爲季氏宰하여 墮三都하고 收其甲兵이러니 孟氏不肯墮成이어늘 圍之不克하다
정공이 공자를 중도재로 삼으니 1년만에 사방이 다스려졌다. 드디어 사공으로 삼고 또 대사구로 삼았다. 10년 신축에 정공을 도와 제후(齊侯)와 협곡에서 회맹하니 제(齊)나라가 노(魯)나라에게서 빼앗은 땅을 돌려주었다. 12년 계묘에 중유로 하여금 계씨의 가재(家宰)가 되게 하여 세 도읍을 허물고 그 갑옷과 병기를 거두려 했다. 맹씨가 기꺼이 성(成) 땅을 허물지 않았으므로 포위하였으나 이기지 못하였다.
墮 : 허물 휴
十四年乙巳는 孔子年五十六이라 攝行相事하사 誅少正卯하시고 與聞國政하시니 三月에 魯國大治라 齊人이 歸女樂以沮之하니 季桓子受之하고 郊又不致膰俎於大夫한대 孔子行하시니라
14년 을사는 공자의 나이 56세였다. 재상의 일을 대신 행하여 소정묘를 주살하고 국정에 참여하여 들으니, 3개월만에 노(魯)나라가 크게 다스려졌다. 제(齊)나라가 여자 악공을 보내어 저지하니 계환자가 그것을 받고 또 교제에 제사지낸 제육(祭肉)이 대부들에게 이르지 않자 공자가 떠났다.
膰 : 제육(祭肉) 번
魯世家에 以此以上이 皆爲十二年事라
《노세가》에 이 이상이 모두 12년의 일이라고 되어 있다.
適衛하사 主於子路妻兄顏濁鄒家하시다
위(衛)나라로 가서 자로의 처형인 안탁추의 집에 우거하였다.
孟子에 作顏讎由라
《맹자》에는 안수유로 되어 있다.
適陳하실새 過匡하시니 匡人以爲陽虎而拘之하다
진(陳)나라로 가서 광(匡) 땅을 지나니 광 땅 사람이 양호라고 여겨 구류하였다.
有顏淵後及文王旣沒之語라
안연이 뒤에 이르렀고, 문왕이 이미 죽었다는 말이 있다.
旣解에 還衛하사 主蘧伯玉家하사 見南子하시다
풀려나서 위(衛)나라에 돌아가 거백옥의 집에 우거하면서 남자(南子)를 만나보았다.
有矢子路及未見好德之語라
자로가 실망하였고, 덕을 좋아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는 말이 있다.
去適宋하신대 司馬桓魋欲殺之어늘
떠나서 송(宋)나라에 갔는데 사마 환퇴가 그를 죽이고자 하였다.
魋 : 상투 퇴
有天生德語及微服過宋事라
하늘이 덕을 낳았다는 말과 미복으로 송나라를 지나간 일이 있다.
又去適陳하사 主司城貞子家하시고 居三歲而反于衛하시니 靈公이 不能用하다
또 떠나서 진(陳)나라에 가서 사성 정자의 집에 우거하여 3년 동안 거한 다음에 위(衛)나라로 돌아오니 영공이 능히 쓰지 못했다.
有三年有成之語라
3년이면 이루어짐이 있다는 말이 있다.
晉趙氏家臣佛肸이 以中牟畔하여 召孔子어늘 孔子欲往이라가 亦不果하시다
진(晉)나라 조씨의 가신 필힐이 중모 땅을 가지고서 배반하여 공자를 불렀는데, 공자는 가고자 하였으나 역시 실행하지 않았다.
佛 : 클 필 肸 : 클 힐 牟 : 보리 모 畔 : 배반할 반
有答子路堅白語及荷蕢過門事라
자로에게 堅白으로 답한 말과 삼태기를 멘 사람이 문을 지나간 일이 있다.
蕢 : 삼태기 궤
將西見趙簡子라가 至河而反하사 又主蘧伯玉家러시니 靈公이 問陳이어늘 不對而行하사 復如陳하시다
장차 서쪽으로 가서 조간자를 만나보려고 하였으나 황하에 이르자 돌아가 또 거백옥의 집에 우거했다. 영공이 진법(陳法)을 물었는데 대답하지 않고 떠나서 다시 진(陳)나라로 갔다.
據論語하면 則絕糧當在此時라
《논어》에 근거하면 식량이 떨어진 일이 마땅히 이 때에 있었을 것이다.
季桓子卒에 遺言謂康子호되 必召孔子라하더니 其臣止之한대 康子乃召冉求하다
계환자가 죽을 때에 계강자에게 유언으로 말하기를, '반드시 공자를 불러라'라고 하였는데 그 가신들이 저지하므로 계강자가 이에 염구를 불렀다.
史記에 以論語歸與之歎으로 爲在此時라하고 又以孟子所記歎辭로 爲主司城貞子時語라하니 疑不然이라 蓋語孟所記 本皆此一時語어늘 而所記有異同耳라
《사기》에는 《논어》의 돌아가야겠다는 탄식이 이 때에 있었다고 하고, 또 《맹자》에 기록된 바 탄식하는 말은 사성 정자의 집에 우거하였을 때의 말이라고 하니 아닐 것 같다. 아마도 《논어》와 《맹자》에 기록된 것은 본래 모두 이 한 때의 말인데 기록된 것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孔子如蔡及葉하시니라
공자가 채(蔡)나라로 가서 섭(葉) 땅에 이르렀다.
有葉公問答子路不對와 沮溺耦耕과 荷蓧丈人等事라
섭공과 문답한 일, 자로가 대답하지 않은 일, 장저(長沮)와 걸익(桀溺)이 함께 밭을 간 일, 지팡이에 삼태기를 꿰어 맨 사람의 일 등이 있다.
耦 : 나란히 갈 우(偶) 蓧 : 삼태기 조
史記云 於是에 楚昭王이 使人聘孔子하여 孔子將往拜禮어늘 而陳蔡大夫發徒圍之라 故로 孔子絕糧於陳蔡之間이라 有慍見及告子貢一貫之語라
《사기》에 이르기를, 이에 초(楚) 소왕이 사람을 시켜 공자를 부르게 하여 공자가 장차 배례하러 왔는데, 진(陳)나라와 채(蔡)나라의 대부들이 무리를 징발하여 그를 포위하였다. 그러므로 공자가 진(陳)나라와 채(蔡)나라 사이에서 식량이 떨어졌다. 노여워하며 본 일과 자공에게 한 가지로 궤뚫는다고 이른 말이 있다.
按是時陳蔡臣服於楚하니 若楚王來聘孔子면 陳蔡大夫安敢圍之리오 且據論語컨대 絕糧이 當在去衛如陳之時라
내가 살펴보건대 이 때에 진(陳)나라와 채(蔡)나라는 초(楚)나라에 신하로 복종하였는데, 만약 초왕이 와서 공자를 초빙하였다면 진(陳)나라와 채(蔡)나라의 대부들이 어찌 감히 그를 포위하였겠는가. 또 《논어》에 근거하면, 식량이 떨어진 일이 마땅히 위(衛)나라를 떠나서 진(陳)나라로 가던 때에 있었을 것이다.
楚昭王이 將以書社地로 封孔子러니 令尹子西不可라하니 乃止하니라
초 소왕이 장차 서사 땅으로 공자를 봉하려고 하니 영윤 자서가 불가하다고 하여 중지하였다.
史記云 書社地七百里라하니 恐無此理라 時則有接輿之歌라
《사기》에 이르기를 서사 땅은 칠백 리라고 하니 이러한 이치가 없을 것 같다. 이때에 접여가 노래한 일이 있었다.
又反乎衛하시니 時에 靈公已卒하고 衛君輒이 欲得孔子爲政하며
또 위(衛)나라에 돌아왔는데 당시에 영공은 이미 죽었고, 위나라 군주 첩이 공자를 얻어 정사를 하고자 하였다.
有魯衛兄弟及答子貢夷齊, 子路正名之語라
노(魯)나라와 위(衛)나라는 형제라는 말, 자공에게 백이와 숙제로 답한 말, 자로에게 정명으로 답한 말이 있다.
而冉求爲季氏將하여 與齊戰有功한대 康子乃召孔子어늘 而孔子歸魯하시니 實哀公之十一年丁巳而孔子年六十八矣라
염구가 계씨의 장수가 되어 제(齊)나라와의 전투에서 공을 세웠다. 계강자가 이에 공자를 불러서 공자가 노(魯)나라로 돌아오니 실로 애공 11년 정사이고 공자의 나이 68세였다.
有對哀公及康子語라
애공과 계강자에게 대답한 말이 있다.
然이나 魯終不能用孔子하고 孔子亦不求仕하사 乃敘書傳禮記하시며
그러나 노(魯)나라는 끝내 공자를 등용하지 못했고 공자 또한 벼슬하기를 구하지 않아, 《서전》과 《예기》를 서술하였다.
有杞宋, 損益, 從周等語라
杞宋, 損益, 從周 등의 말이 있다.
刪詩正樂하시며
《시경》을 산삭하고 《악경》을 바로잡았다.
有語大師及樂正之語라
태사에게 말한 말과 음악이 바르게 되었다는 말이 있다.
序易彖繫象說卦文言하시니라
《주역》 〈단전〉, 〈계사전〉, 〈상전〉, 〈설괘전〉, 〈문언전〉을 지었다.
序 : 서술할 서
有假我數年之語라
나에게 수 년을 빌려달라는 말이 있다.
弟子蓋三千焉에 身通六藝者七十二人이러라
제자들이 거의 삼천 명이었는데 몸소 육예에 통달한 사람이 72명이었다.
弟子顏回最賢이나 蚤死하고 後惟曾參得傳孔子之道라
제자 중 안회가 가장 현명했으나 일찍 죽었고, 후에 오직 증삼이 공자의 도를 전할 수 있었다.
蚤 : 일찍 조
十四年庚申에 魯西狩獲麟하니
14년 경신에 노(魯)나라에서 서쪽으로 사냥을 갔다가 기린을 잡았다.
有莫我知之歎이라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는 탄식이 있었다.
孔子作春秋하시니라
공자가 《춘추》를 지었다.
有知我罪我等語라 論語에 請討陳恒事도 亦在是年이라
'知我罪我' 등의 말이 있었다. 《논어》에 진항을 토벌하자고 청한 일도 역시 이 해에 있었다.
明年辛酉에 子路死於衛하고 十六年壬戌四月己丑에 孔子卒하시니 年七十三이라 葬魯城北泗上하다 弟子皆服心喪三年而去로되 惟子貢은 廬於冢上하여 凡六年이러라 孔子生鯉하시니 字伯魚라 先卒하고 伯魚生伋하니 字子思니 作中庸하시니라
다음해 신유에 자로가 위(衛)나라에서 죽고 16년 임술 4월 기축에 공자가 죽으니 나이가 73세였다. 노(魯)나라 도성 북쪽 사수(泗水) 가에 안장하였다. 제자들은 모두 심상(心喪) 3년을 지내고 떠났지만 오직 자공만은 무덤 근처에 오두막을 짓고서 모두 6년을 지넀다. 공자는 공리를 낳았으니 자는 백어인데, 먼저 죽었다. 백어는 공급을 낳으니 자가 자사이며, 《중용》을 지었다.
心喪 : 상복은 입지 않되 마음으로 근신하는 일
子思學於曾子하고 而孟子受業子思之門人하니라
자사는 증자에게서 배웠고, 맹자는 자사의 문인에게서 업을 받았다.
何氏曰 魯論語는 二十篇이요 齊論語는 別有問王知道하여 凡二十二篇이요 其二十篇中章句도 頗多於魯論이라 古論은 出孔氏壁中하니 分堯曰下章子張問하여 以爲一篇하여 有兩子張하니 凡二十一篇이요 篇次不與齊魯論同하니라
하씨가 말했다. "《노논어》는 20편이고, 《제논어》는 별도로 〈문왕〉과 〈지도〉가 있어 모두 22편이고, 그 20편 안의 장구도 《노논어》와 파다하게 다르다. 《고논어》는 공씨의 벽 안에서 나왔는데, 〈요왈〉 아래 장에 〈자장문〉을 나누어 한 편을 만들어 두 개의 〈자장〉이 있으니 모두 21편이고, 편의 차례도 《제논어》나 《노논어》와 같지 않다."
程子曰 論語之書는 成於有子曾子之門人이라 故로 其書獨二子以子稱하니라
정자가 말했다. "《논어》 책은 유자와 증자의 문인에게서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그 책에서는 유독 두 사람을 자라고 칭했다."
程子曰 讀論語에 有讀了全然無事者하며 有讀了後에 其中得一兩句喜者하며 有讀了後에 知好之者하며 有讀了後에 直有不知手之舞之足之蹈之者니라
정자가 말했다. "《논어》를 읽음에 다 읽고 나서도 전혀 아무 일도 없는 사람이 있고, 다 읽은 후에 그 마음 속에 한두 구절을 얻고 기뻐하는 사람도 있으며, 다 읽은 후에 깨달아서 좋아하는 사람도 있으며 다 읽은 후에 곧 부지중에 손으로 춤추고 발로 뛰는 사람도 있다."
程子曰 今人은 不會讀書로다 如讀論語에 未讀時도 是此等人이요 讀了後에도 又只是此等人이면 便是不曾讀이니라
정자가 말했다. "지금 사람들은 독서할 줄을 알지 못한다. 만약 《논어》을 읽을 때에 읽지 않았을 때에도 이와 같은 사람이고, 읽은 후에도 또 단지 이와 같은 사람이면 곧 이것은 읽지 않은 것이다."
會 : 알 회
程子曰 頤自十七八로 讀論語하니 當時已曉文義러니 讀之愈久에 但覺意味深長이로라
정자가 말했다. "나(程頤)는 17, 18세부터 《논어》를 읽었는데 당시에도 이미 글 뜻에 밝았는데 읽기를 더욱 오래 하니 다만 의미가 깊고 길어지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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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子曰 不患人之不己知요 患不知人也니라
공자가 말했다. "남이 나를 알아주지 못함을 근심하지 말고 남을 알지 못함을 근심해야 한다."
尹氏曰 君子는 求在我者라 故로 不患人之不己知요 不知人이면 則是非邪正을 或不能辨이라 故로 以爲患也니라
윤씨가 말했다. "군자는 자신에게 있는 것을 구한다. 그러므로 남이 나를 알아주지 못함을 근심하지 않는다. 남을 알지 못하면 옳고 그름과 사특하고 올바름을 혹 분별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근심으로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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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 子貢曰 貧而無諂하며 富而無驕면 何如하니잇고 子曰 可也나 未若貧而樂하며 富而好禮者也니라
자공이 말했다. "가난하면서도 아첨하지 않으며, 부유하면서도 교만하지 않는다면 어떻겠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가능하다. 그러나 가난하면서도 즐거워하며 부유하면서도 예를 좋아하는 사람보다는 못하다."
諂은 卑屈也요 驕는 矜肆也라 常人은 溺於貧富之中하여 而不知所以自守라 故로 必有二者之病이라 無諂無驕면 則知自守矣나 而未能超乎貧富之外也라 凡曰可者는 僅可而有所未盡之辭也라 樂則心廣體胖하여 而忘其貧이요 好禮則安處善하고 樂循理하여 亦不自知其富矣리라 子貢이 貨殖하니 蓋先貧後富하여 而嘗用力於自守者라 故로 以此爲問에 而夫子答之如此하시니 蓋許其所已能이요 而勉其所未至也시니라
'諂'는 비굴함이고, '驕'는 자랑하며 마음대로 하는 것이다. 평범한 사람은 가난하고 부유한 사이에 빠져서 스스로 지키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반드시 두 가지의 병폐가 있는 것이다. 아첨함이 없고 교만함이 없으면 스스로 지킬 줄 아는 것이지만 가난함과 부유함의 바깥으로 초월할 수 없다. 무릇 '가능하다.'라고 말한 것은 겨우 가능해서 미진한 바가 있다는 말이다. 즐거워한다면 마음이 넓어지고 몸이 펴져서 그 가난함을 잊을 것이고, 예를 좋아한다면 선에 처함을 편안하게 생각하고 이치에 따름을 즐거워하여 역시 그 부유함을 스스로 알지 못할 것이다. 자공은 재물을 증식시켰으니 아마도 먼저 가난하고 뒤에 부유해져서 일찍이 스스로 지키는 것에 힘을 쓴 사람일 것이다. 그러므로 이로써 물음에 부자가 이와 같이 대답한 것이니 대개 그 이미 할 수 있는 것을 허여하고, 그 이르지 못한 것을 힘쓰라는 것이다.
僅 : 겨우 근 胖 : 펴질 반
15-2. 子貢曰 詩云 如切如磋하며 如琢如磨라하니 其斯之謂與인저
자공이 말했다. "《시경》에 이르기를, '자른 듯, 간 듯, 쪼아낸 듯, 갈아낸 듯'이라고 하니, 아마 이것을 말한 것입니까?"
詩는 衛風淇奧之篇이라 言治骨角者는 旣切之而復磋之하고 治玉石者는 旣琢之而復磨之하니 治之已精而益求其精也라 子貢이 自以無諂無驕爲至矣러니 聞夫子之言하고 又知義理之無窮하여 雖有得焉이나 而未可遽自足也라 故로 引是詩以明之하니라
시는 《시경·위풍》의 〈기욱〉편이다. 뼈와 뿔을 다루는 사람은 이미 잘라냈는데도 다시 갈고, 옥과 돌을 다루는 사람은 이미 쪼아냈는데도 다시 갈아내니 다스림이 이미 정밀한데 더욱 그 정밀함을 구함을 말한 것이다. 자공이 스스로 아첨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음을 지극하다고 여겼는데, 부자의 말을 듣고 또 의리가 무궁하여 비록 얻음이 있더라도 급하게 스스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므로 이 시를 인용하여 밝힌 것이다.
淇 : 물이름 기 奧 : 벼랑 욱
15-3. 子曰 賜也는 始可與言詩已矣로다 告諸往而知來者온여
공자가 말했다. "사하고는 비로소 《시경》을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에게 지나간 것을 알려주자 앞으로 올 것을 아는구나."
往者는 其所已言者요 來者는 其所未言者라
지나간 것은 이미 말한 것이고 앞으로 올 것은 아직 말하지 않은 것이다.
○愚按 此章問答은 其淺深高下 固不待辯說而明矣라 然이나 不切則磋無所施요 不琢則磨無所措라 故로 學者雖不可安於小成而不求造道之極致나 亦不可騖於虛遠而不察切己之實病也니라
내가 살펴보건대, 이 장의 문담은 그 얕고 깊음과 높고 낮음이 진실로 변설을 기다리지 않아도 밝다. 그러나 잘라놓지 않으면 갊을 베풀 곳이 없고, 쪼아놓지 않으면 갈아냄을 둘 곳이 없다. 그러므로 배우는 사람은 작은 성취에 안주하여 도에 나아가는 극치를 구하지 않으면 안 되지만, 역시 허무하고 먼 곳으로 달려가 자기에게 간절한 실제의 병통을 살피지 않으면 안 된다.
造 : 나아갈 조 騖 : 달릴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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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이12. 예의 쓰임 중 귀한 것 (0) | 2020.02.12 |
14. 子曰 君子食無求飽하며 居無求安하며 敏於事而愼於言하고 就有道而正焉이면 可謂好學也已니라
공자가 말했다. "군자는 먹을 때에 배부르기를 구하지 않으며, 거할 때에 편안하기를 구하지 않으며 일을 민첩하게 하고 말을 삼가며, 도가 있는 사람에게 나아가서 바로잡음을 받는다면 배움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다."
不求安飽者는 志有在而不暇及也라 敏於事者는 勉其所不足이요 謹於言者는 不敢盡其所有餘也라 然이나 猶不敢自是하고 而必就有道之人하여 以正其是非면 則可謂好學矣라 凡言道者는 皆謂事物當然之理니 人之所共由者也라
편안하고 배부르기를 구하지 않는 것은 뜻이 다른 곳에 있어서 미칠 겨를이 없는 것이다. 일을 민첩하게 하는 것은 그 부족한 것에 힘쓰는 것이고 말을 삼가는 것은 그 남음이 있는 것을 감히 다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감히 스스로를 옳다고 여기지 않고 반드시 도가 있는 사람에게 나아가서 그 옳고 그름을 바로잡는다면 배움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다. 무릇 도라고 말한 것은 모두 사물의 당연한 이치를 말하는 것이니 사람들이 함께 말미암아야 할 것이다.
○尹氏曰 君子之學이 能是四者면 可謂篤志力行者矣라 然이나 不取正於有道면 未免有差라 如楊墨이 學仁義而差者也나 其流至於無父無君하니 謂之好學可乎아
윤씨가 말했다. "군자의 배움이 능히 이 네 가지를 할 수 있으면 뜻에 독실하고 행동에 힘쓰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도가 있는 사람에게서 바로잡음을 취하지 않는다면 차이가 생기는 것을 면하지 못한다. 가령 양주와 묵적은 인과 의를 배웠지만 차이가 있어 그 흐름이 아버지가 없고 군주가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으니 배움을 좋아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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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梁惠王曰 晉國天下莫强焉은 叟之所知也라 及寡人之身하야 東敗於齊長子死焉하고 西喪地於秦七百里하고 南辱於楚하니 寡人恥之하여 願比死者하여 一洒之하노니 如之何則可니잇고
양 혜왕이 말했다. "진(晉)나라가 천하에 막강함은 어르신께서도 아시는 바입니다. 과인의 몸에 이르러 동쪽으로는 제(齊)나라에 패하여 장자가 죽었고 서쪽으로는 진(秦)나라에 땅을 칠백 리나 잃었고 남쪽으로는 초(楚)나라에게 모욕을 받았으니 과인이 그것을 부끄러워하여 죽은 사람들을 위하여 한 번 설욕하기를 원하니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比 : 위할 비 洒 : 설욕할 세
魏는 本晉大夫魏斯가 與韓氏趙氏로 共分晉地하여 號曰 三晉이라 故로 惠王이 猶自謂晉國이라 惠王三十年에 齊擊魏破其軍하고 虜太子申하며 十七年에 秦取魏少梁하고 後에 魏又數獻地於秦하며 又與楚將昭陽戰敗하여 亡其七邑하니라 比는 猶爲也니 言欲爲死者하여 雪其恥也라
위(魏)나라는 본래 진(晉)나라의 대부 위사가 한씨, 조씨와 함께 진(晉)나라의 땅을 나누고서 부르기를 '삼진'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혜왕이 아직도 스스로 말하기를 진(晉)나라라고 말한 것이다. 혜왕 30년에 제(齊)나라가 위(魏)나라를 쳐서 그 군대를 격파하고, 태자 신을 포로로 잡았으며, 17년에 진(秦)나라가 위(魏)나라의 소량 땅을 취하였고 뒤에 위(魏)나라가 또 자주 진(秦)나라에 땅을 헌납하였으며, 또 초(楚)나라 장수 소양과의 싸움에서 패하여 그 일곱 읍을 잃었다. '比'는 '爲(위하다)'와 같으니 죽은 사람을 위하여 그 치욕을 설욕하고자 함을 말한 것이다.
5-2. 孟子對曰 地方百里而可以王이니이다
맹자가 대답하였다. "땅이 방백리만 되어도 왕 노릇 할 수 있습니다.
百里는 小國也라 然이나 能行仁政이면 則天下之民이 歸之矣라
백리는 작은 국가이다. 그러나 능히 어진 정치를 행할 수 있으면 천하의 백성들이 귀순해 올 것이다.
5-3. 王如施仁政於民하사 省刑罰하시며 薄稅斂하사 深耕易耨하고 壯者以暇日로 修其孝悌忠信하여 入以事其父兄하고 出以事其長上하게하시면 可使制梃하여 以撻秦楚之堅甲利兵矣리이다
왕께서 만일 백성들에게 어진 정치를 베푸셔서 형벌을 줄이시며 세금을 적게 거두셔서 <백성들로 하여금> 깊게 밭을 갈고 김을 잘 맬 수 있게 하고 장성한 사람들이 여가를 활용하여 그 효제와 충신을 닦게 하시어 들어가서는 그 아버지와 형을 섬기고 나와서는 그 어른과 윗사람을 섬기게 하시면 몽둥이를 만들도록 하여 진나라와 초나라의 견고한 갑옷과 날카로운 병장기를 때리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耨 : 김맬 누 撻 : 때릴 달
省刑罰薄稅斂此二者는 仁政之大目也라 易는 治也요 耨는 耘也라 盡己之謂忠이요 以實之謂信이라 君行仁政이면 則民得盡力於農畝하고 而又有暇日以修禮義라 是以로 尊君親上하여 而樂於效死也라
형벌을 줄이는 것과 세금을 적게 거두는 것, 이 두 가지는 어진 정치의 큰 조목이다. '易'는 다스리는 것이고, '耨'는 김매는 것이다. 자기 마음을 다하는 것을 충이라고 하고, 성실함을 신이라고 한다. 군주가 어진 정치를 행하면 백성들이 농사일에 힘을 다할 수 있고, 또한 여가를 활용하여 예의를 닦을 수 있다. 이로써 군주를 높이고 윗사람을 가까이 해서 기꺼이 목숨을 바칠 수 있는 것이다.
耘 : 김맬 운
5-4. 彼奪其民時하여 使不得耕耨하여 以養其父母하면 父母凍餓하며 兄弟妻子離散하리니
저들이 그 백성의 때를 빼앗아 밭을 갈고 김을 매지 못하게 하여 그 부모를 봉양하지 못하게 하면 부모는 추위에 떨고 굶주리며 형제와 처자들은 흩어질 것입니다.
彼는 謂敵國也라
'彼'는 적국을 말한다.
5-5. 彼陷溺其民이어든 王往而征之하시면 夫誰與王敵이리잇고
저들이 그 백성을 함정에 빠뜨리고 도탄에 빠뜨리거든 왕께서 가서 그들을 정벌하시면 누가 왕과 대적하겠습니까?
陷은 陷於阱이요 溺은 溺於水니 暴虐之意라 征은 正也라 以彼暴虐其民으로 而率吾尊君親上之民하여 往正其罪하면 彼民이 方怨其上하여 而樂歸於我하리니 則誰與我爲敵哉리오
'陷'은 함정에 빠뜨리는 것이고, '溺'은 물에 빠뜨리는 것이니 포학하다는 뜻이다. '征'은 바르게 하는 것이다. 저들이 그 백성을 포학하게 다루므로 군주를 높이고 윗사람을 가까이 여기는 나의 백성들을 이끌고 가서 그 죄를 바르게 하면 저 백성들이 마침 그 윗사람을 원망하고 있어서 우리에게 귀순하기를 기꺼워할 것이니 누가 우리와 대적하겠는가.
阱 : 함정 정
5-6. 故曰 仁者無敵이라하니 王請勿疑하소서
그러므로 말하기를 어진 사람에게는 적이 없다고 하니 왕께서는 의심하지 마십시오."
仁者無敵은 蓋古語也라 百里可王은 以此而已니 恐王疑其迂闊이라 故로 勉使勿疑也라
'仁者無敵'은 아마도 옛 말일 것이다. <땅이> 백 리여도 왕 노릇 할 수 있다는 것은 이 때문일 뿐이니, 왕이 그것을 우활하다고 여겨 의심할까 걱정했기 때문에 의심하지 말라고 권면한 것이다.
○孔氏曰 惠王之志는 在於報怨하고 孟子之論은 在於救民하니 所謂惟天吏則可以伐之니 蓋孟子之本意시니라
공씨가 말했다. "혜왕의 뜻은 원수를 갚는 데에 있고 맹자의 이론은 백성을 구휼함에 있으니 이른바 오직 하늘의 관리가 되어야 그것을 벌할 수 있다는 것이니, 대개 맹자의 본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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