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학/논어집주 2020. 7. 1. 15:49

12(52)-1. 祭如在,祭神如神在。

제사지낼 때에는 마치 선조가 있는 것처럼 하였으며, 신에게 제사지낼 때에는 마치 신이 있는 것처럼 하였다.

程子曰:「祭,祭先祖也。祭神,祭外神也。祭先主於孝,祭神主於敬。」
정자가 말했다. “祭는 선조를 제사하는 것이다. 祭神은 바깥 신을 제사하는 것이다. 선조를 제사하는 것은 효를 위주로 하고, 바깥 신을 제사하는 것은 경을 위주로 한다.”

愚謂此門人記孔子祭祀之誠意。
내가 생각하기에 이것은 문인이 공자가 제사지낼 때의 정성스러운 뜻을 기록한 것이다.

12(52)-2. 子曰:「吾不與祭,如不祭。」

공자가 말했다. “내가 제사에 참여하지 않으면 마치 제사지내지 않은 것과 같다.”

又記孔子之言以明之。
또 공자의 말을 기록하여 밝힌 것이다.

言己當祭之時,或有故不得與,而使他人攝之,則不得致其如在之誠。故雖已祭,而此心缺然,如未嘗祭也。
자기가 마땅히 제사지낼 때를 당하여 혹시라도 까닭이 있어 참여할 수 없게 되어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그것을 대신하게 하면, 그 마치 있는 것처럼 하는 정성스러움을 다할 수 없게 되니, 그러므로 비록 이미 제사지냈더라도 이 마음에 빠진듯한 느낌이 마치 일찍이 제사지내지 않은 것과 같다고 말한 것이다.

范氏曰:「君子之祭,七日戒,三日齊,必見所祭者,誠之至也。是故郊則天神格,廟則人鬼享,皆由己以致之也。有其誠則有其神,無其誠則無其神,可不謹乎?吾不與祭如不祭,誠爲實,禮爲虛也。」
범씨가 말했다. “군자가 제사지낼 때에 7일을 경계하고 3일을 재계하여 반드시 제사지내는 대상을 보는 것은 정성이 지극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교 제사를 지내면 천신이 이르고, 사당에서 제사를 지내면 인귀가 흠향하니, 모두 자기로부터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 정성이 있으면 그 신이 있고, 그 정성이 없으면 그 신이 없으니, 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내가 제사에 참여하지 않으면 마치 제사지내지 않은 것 같다.’라는 것은, 정성이 실제가 되고, 예가 형식이 되기 때문이다.”
posted by 취상
:
한문학/논어집주 2020. 7. 1. 15:31

11(51). 或問禘之說。子曰:「不知也。知其說者之於天下也,其如示諸斯乎!」指其掌。

혹자가 체 제사의 이론을 물었다. 공자가 ‘알지 못한다. 그 이론을 아는 사람은 천하를 다스림에 있어서 아마도 그것을 여기에 두고 보는 것 같을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그 손바닥을 가리켰다.

先王報本追遠之意,莫深於禘。非仁孝誠敬之至,不足以與此,非或人之所及也。而不王不禘之法,又魯之所當諱者,故以不知答之。
선왕이 근본에 보답하고 먼 조상을 추모하는 뜻이 체 체사보다 깊은 것이 없다. 인, 효, 성, 경의 지극함이 아니면 여기에 참여하기에 부족하니, 혹자가 미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그리고 왕 노릇 하지 않으면 체 제사를 지내지 않는 법도는 또한 노나라가 마땅히 꺼려야 할 것이었으므로 알지 못한다고 대답한 것이다.

示,與視同。指其掌,弟子記夫子言此而自指其掌,言其明且易也。
示는 視(보다)와 같다. 指其掌은 제자가 부자가 이와 같이 말하면서 스스로 그 손바닥을 가리켰다고 기록하여 그것이 명백하고 또 쉬움을 말한 것이다.

蓋知禘之說,則理無不明,誠無不格,而治天下不難矣。聖人於此,豈眞有所不知也哉?
대개 체 제사의 이론을 알면 이치가 밝아지지 않는 것이 없고 성실함이 맞지 않는 것이 없어서 천하를 다스리는 것이 어렵지 않다. 성인이 이에 어찌 참으로 알지 못하는 것이 있었겠는가.
posted by 취상
:
한문학/논어집주 2020. 7. 1. 15:12

10(50). 子曰:「禘自旣灌而往者,吾不欲觀之矣。」

공자가 말했다. “체 제사에서 강신제 이후의 일은 내가 보고 싶지 않다.”

趙伯循曰:「禘,王者之大祭也。王者旣立始祖之廟,又推始祖所自出之帝,祀之於始祖之廟,而以始祖配之也。」
조백순이 말했다. “禘는 왕 노릇 하는 사람의 큰 제사이다. 왕 노릇 하는 사람이 이미 시조의 사당을 세우고, 또 시조가 나온 바의 임금을 미루어 시조의 사당에서 제사하고, 시조를 배향한다.”

成王以周公有大勳勞,賜魯重祭。故得禘於周公之廟,以文王爲所出之帝,而周公配之,然非禮矣。성왕은 주공이 큰 공로가 있다고 여겨서 노나라에 융숭한 제사를 내렸다. 그러므로 주공의 사당에서 체 제사를 지낼 수 있었고, 문왕으로 나온 바의 임금으로 삼아 주공을 배향하였으나 예가 아니다.

灌者,方祭之始,用鬱鬯之酒灌地,以降神也。
灌은 바야흐로 제사의 처음에, 울창주를 땅에 부어 신을 강림하게 하는 것이다.

魯之君臣,當此之時,誠意未散,猶有可觀,自此以後,則浸以懈怠而無足觀矣。蓋魯祭非禮,孔子本不欲觀,至此而失禮之中又失禮焉,故發此歎也。
노나라의 군신이 이 때를 당해서는 정성스러운 뜻이 아직 흩어지지 않아 오히려 볼 만한 것이 있었지만, 이 때 이후로는 점점 게을러져서 볼 만한 것이 없었다. 대개 노나라의 제사는 예가 아니어서 공자는 본래 보고자 하지 않았고, 이때에 이르러서는 예를 잃어버리는 중에 또 예를 잃었으므로 이러한 한탄을 한 것이다.

謝氏曰:「夫子嘗曰:『我欲觀夏道,是故之杞,而不足徵也;我欲觀殷道,是故之宋,而不足徵也。』又曰:『我觀周道,幽厲傷之,吾舍魯何適矣。魯之郊禘非禮也,周公其衰矣!』考之杞宋已如彼,考之當今又如此,孔子所以深歎也。」
사씨가 말했다. “부자께서 일찍이 말하기를, ‘나는 하나라의 도를 보고 싶어서 이 때문에 기나라로 갔지만 증명하기에 부족했다. 나는 은나라의 도를 보고 싶어서 이 때문에 송나라로 갔지만 증명하기에 부족했다.’라 하셨고, 또 ‘나는 주나라의 도를 보았는데, 유왕과 여왕이 그것을 손상시켰다. 내가 노나라를 버리고 어디로 가겠는가. 노나라의 교 제사와 체 제사는 예가 아니니, 주공이 아마도 쇠하였구나!”라고 하셨다. 기나라와 송나라를 살펴봄에 이미 저와 같았고, 당시를 살펴봄에 또 이와 같았으니, 공자께서 이 때문에 깊이 탄식하신 것이다.”
posted by 취상
:
한문학/논어집주 2020. 7. 1. 15:10

9(49). 子曰:「夏禮吾能言之,杞不足徵也;殷禮吾能言之,宋不足徵也。文獻不足故也,足則吾能徵之矣。」

공자가 말했다. “하나라의 예를 내가 말할 수 있지만 기나라는 증명하기에 부족하다. 은나라의 예를 내가 말할 수 있지만 송나라는 증명하기에 부족하다. 문헌이 부족하기 때문인데, 충분하다면 내가 그것을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杞,夏之後。宋,殷之後。徵,證也。文,典籍也。獻,賢也。
기나라는 하나라의 후예이다. 송나라는 은나라의 후예이다. 徵은 증명함이다. 文은 전적이다. 獻은 현인이다.

言二代之禮,我能言之,而二國不足取以爲證,以其文獻不足故也。文獻若足,則我能取之,以證吾言矣。
‘두 왕조의 예를 내가 말할 수 있지만 두 나라에서 취하여 증거로 삼기에 부족한 것은 그 문헌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문헌이 만약 충분하다면 내가 그것을 취해 내 말을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한 것이다.
posted by 취상
:
한문학/맹자집주 2020. 6. 30. 15:10

10(17)-1. 齊人伐燕,勝之。

제나라 사람이 연나라를 정벌하여 승리하였다. 

按史記燕王噲讓國於其相子之而國大亂齊因伐之燕士卒不戰城門不閉遂大勝燕
『사기』를 살펴보면, 연나라 왕 쾌가 나라를 그 재상 자지에게 양보하니, 나라가 크게 혼란하였다. 제나라가 따라서 연나라를 정벌하였다. 연나라 사졸들은 싸우지 않았고 성문을 닫지도 않았으니, 마침내 연나라를 크게 이겼다.

10(17)-2. 宣王問曰:「或謂寡人勿取,或謂寡人取之。以萬乘之國伐萬乘之國,五旬而舉之,人力不至於此。不取,必有天殃。取之,何如?」

선왕이 물었다. "누구는 과인더러 취하지 말라고 하고, 누구는 과인더러 그것을 취하라고 합니다. 만승의 나라를 가지고 만승의 나라를 정벌하여, 50일 만에 함락하였으니 사람의 힘으로는 여기에 이를 수 없습니다. 취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하늘의 재앙이 있을 것입니다. 취한다면 어떻겠습니까?" 

以伐燕爲宣王事與史記諸書不同已見序說
연나라를 정벌한 것을 선왕의 일이라고 한 것은 『사기』 등 여러 책과 같지 않으니, 이미 「서설」에 보인다.

10(17)-3. 孟子對曰:「取之而燕民悅,則取之。古之人有行之者,武王是也。取之而燕民不悅,則勿取。古之人有行之者,文王是也。

맹자가 대답하였다. "취해서 연나라 백성들이 기뻐한다면 취하십시오. 옛날 사람들 중에 그것을 행한 사람이 있으니, 무왕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취해서 연나라 백성들이 기뻐하지 않는다면 취하지 마십시오. 옛날 사람들 중에 그것을 행한 사람이 있으니, 문왕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商紂之世,文王三分天下有其二,以服事殷。至武王十三年,乃伐紂而有天下。
상나라 주왕의 치세에 문왕이 천하를 셋으로 나누어 그 둘을 소유하였는데도 은나라를 섬겼다. 무왕 13년에 이르러서야 주왕을 정벌하여 천하를 소유하였다.

張子曰:「此事間不容髮。一日之間。天命未絕,則是君臣。當日命絕,則爲獨夫。然命之絕否,何以知之?人情而已。諸侯不期而會者八百,武王安得而止之哉?」
장자가 말했다. "이 일은 사이에 머리털 하나라도 용납할 수 없다. 하루 사이라도 천명이 끊어지지 않았으면 군신이고, 당일에 명이 끊어졌으면 독부가 된다. 그러나 명이 끊어졌는지 아닌지는 무엇으로 아는가? 사람의 마음 뿐이다. 제후들 중 기약하지 않았는데도 모인 사람이 800명이었으니 무왕이 어찌 중지할 수 있었겠는가?"

10(17)-4. 以萬乘之國伐萬乘之國,簞食壺漿,以迎王師。豈有他哉?避水火也。如水益深,如火益熱,亦運而已矣。」

만승의 나라로써 만승의 나라를 정벌하였는데, 대바구니에 밥을 담고 항아리에 장을 담아서 왕의 군대를 맞이하였습니다. 어찌 다른 이유가 있겠습니까? 물과 불을 피한 것입니다. 만약 물이 더욱 깊어지고 불이 더욱 뜨거워진다면, 또한 옮겨 갈 뿐입니다."

食,飯也。運,轉也。
食은 밥이다. 運은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言齊若更爲暴虐,則民將轉而望救於他人矣。
제나라가 만약 다시 폭력과 학대를 한다면 백성이 장차 방향을 바꾸어 다른 사람에게 구원을 바랄 것임을 말한 것이다.

趙氏曰:「征伐之道,當順民心。民心悅,則天意得矣。」
조씨가 말했다. "정벌하는 방법은 마땅히 민심에 따라야 한다. 민심이 기뻐하면 하늘의 뜻에 맞는 것이다."
posted by 취상
:
한문학/논어집주 2020. 6. 30. 14:15

8(48)-1. 子夏問曰:「『巧笑倩兮美目盼兮素以爲絢兮。』何謂也?」

자하가 물었다. "'싱그러운 웃음에 보조개가 아름답고, 아름다운 눈에 눈동자가 초롱초롱하니, 흰색으로써 채색을 하였구나.'는 무엇을 말한 것입니까?"

此逸詩也。倩,好口輔也。盼,目黑白分也。素,粉地,畫之質也。絢,采色,畫之飾也。
이것은 일시(逸詩)이다. 倩은 보조개가 아름다운 모양이다. 盼은 눈에 흑백이 분명한 모양이다. 素는 분칠을 하는 자리이니 그림의 본질이다. 絢은 채색이니 그림의 꾸밈이다.

言人有此倩盼之美質,而又加以華采之飾,如有素地而加采色也。子夏疑其反謂以素爲飾,故問之。
사람이 이 아름다운 보조개와 초롱초롱한 눈동자의 아름다운 바탕을 가지고 있는데도 또 화려한 채색의 꾸밈을 더하여 마치 흰 바탕에 채색을 가하는 것 같았음을 말한 것이다. 자하가 그 반대로 흰 바탕으로 꾸민다고 여겨 의문을 가졌으므로 물은 것이다.

8(48)-2. 子曰:「繪事後素。」

공자가 말했다. "그림 그리는 일은 흰 바탕을 마련한 이후에 한다."

繪事,繪畫之事也。後素,後於素也。
繪事는 그림을 그리는 일이다. 後素는 흰 바탕이 마련된 뒤에 하는 것이다.

考工記曰:「繪畫之事後素功。」謂先以粉地爲質,而後施五采,猶人有美質,然後可加文飾。
「고공기」에 '그림 그리는 일은 흰 바탕을 마련한 뒤에 한다.'라고 하였다. 먼저 분칠할 자리를 본질로 삼은 뒤에 오색으로 채색하니, 사람이 아름다운 바탕을 가진 후에 화려한 꾸밈을 더할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8(48)-3. :「禮後乎?」子曰:「起予者商也始可與言詩已矣。」

자하가 말했다. "예가 나중이라는 것입니까?" 공자가 말했다. "나를 흥기시키는 사람은 상이로구나! 비로소 함께 『시경』을 말할 수 있겠구나."

禮必以忠信爲質,猶繪事必以粉素爲先。起,猶發也。起予,言能起發我之志意。
예는 반드시 충과 신을 바탕으로 삼으니 그림 그리는 일에 반드시 분칠한 바탕을 먼저 만드는 것과 같다. 起는 發(분발함)과 같다. 起予는 능히 나의 뜻을 일으켜 분발하게 할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謝氏曰:「子貢因論學而知詩,子夏因論詩而知學,故皆可與言詩。」
사씨가 말했다. "자공이 배움을 논하고 『시경』을 알았기 때문에, 자하가 『시경』을 논하고 배움을 알았기 때문에 모두 함께 『시경』을 말할 수 있다."

楊氏曰:「『甘受和,白受采,忠信之人,可以學禮。苟無其質,禮不虛行』。此『繪事後素』之說也。孔子曰『繪事後素』,而子夏曰『禮後乎』,可謂能繼其志矣。非得之言意之表者能之乎?商賜可與言詩者以此。若夫玩心於章句之末,則其爲詩也固而已矣。所謂起予,則亦相長之義也。」
양씨가 말했다. "'단맛은 조화로움을 받아들이고, 흰 색은 채색을 받아들인다. 충신한 사람이라야 예를 배울 수 있다. 진실로 그 본질이 없으면 예는 공연히 행해지지 않는다.' 이것은 '그림 그리는 일은 흰 바탕을 마련한 이후에 한다.'는 말이다. 공자가 '그림 그리는 일은 흰 바탕을 마련한 이후에 한다.'고 말하자 자하가 '예가 나중이라는 것입니까?'라고 말했으니, 능히 그 뜻을 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말의 의미의 밖에서 얻은 사람이 아니면 가능하겠는가. 상(자하)과 사(자공)이 함께 시를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이 때문이다. 만약 장구의 지엽에 몰두하면 시경을 해석하는 것이 고루할 뿐이다. 起予라고 말한 것은 또한 교학상장의 뜻이다."
posted by 취상
:
한문학/논어집주 2020. 6. 30. 13:47

7(47). 子曰:「君子無所爭,必也射乎揖讓而升,下而飲,其爭也君子。」

공자가 말했다. "군자는 다투는 것이 없지만 있다면 반드시 활쏘기일 것이다. 읍을 하고 사양하면서 올라가고 내려와서 마시니, 그 다툼이 군자답다."

揖讓而升者,大射之禮,耦進三揖而後升堂也。下而飲,謂射畢揖降,以俟衆耦皆降,勝者乃揖不勝者升,取觶立飲也。
揖讓而升은 「대사례」에 나란히 나아가 세 번 읍한 후에 당에 올라가는 것이다. 下而飲은 활쏘기가 끝나면 읍하고 내려와 여러 짝이 모두 내려오기를 기다려서, 이긴 사람은 이에 읍하고 이기지 못한 사람은 올라가 술잔을 잡고 서서 마시는 것이다.
觶 : 술잔 치


言君子恭遜不與人爭,惟於射而後有爭。然其爭也,雍容揖遜乃如此,則其爭也君子,而非若小人之爭矣。
'군자는 공손하여 다른 사람들과 다투지 않지만 오직 활쏘기에는 다툼이 있다. 그러나 그 다툼은 온화하며, 읍하고 공손함이 마침내 이와 같으니, 그 다툼은 군자답고 소인의 다툼과 같지 않다.'고 말한 것이다.
posted by 취상
:
한문학/논어집주 2020. 6. 30. 13:02

6(46). 季氏旅於泰山。子謂冉有曰:「女弗能救與?」

계씨가 태산에 旅 제사를 지냈다. 공자가 염유에게 말했다. "네가 구원할 수 없겠느냐?"

對曰:「不能。」

염유가 대답하였다. "할 수 없습니다."

子曰:「嗚呼!曾謂泰山,不如林放乎?」

공자가 말했다. "아아! 일찍이 태산이 임방만 못하다고 생각했는가?"

旅,祭名。泰山,山名,在魯地。禮,諸侯祭封內山川,季氏祭之,僭也。冉有,孔子弟子,名求,時爲季氏宰。救,謂救其陷於僭竊之罪。嗚呼,歎辭。
旅는 제사의 이름이다. 泰山은 산의 이름이니 노나라 땅에 있다. 예에 제후는 봉지 내의 산천에 제사한다고 하니 계씨가 제사 지내는 것은 주제넘은 것이다. 염유는 공자의 제자이니 이름은 求이다. 당시에 계씨의 가재(家宰)가 되었다. 救는 그 참람하게 도용하는 죄에 빠지는 것을 구원함이다. 嗚呼는 탄식하는 말이다. 

言神不享非禮,欲季氏知其無益而自止,又進林放以厲冉有也。
신은 예가 아닌 것을 흠향하지 않음을 말한 것이며, 계씨가 그것이 무익함을 알아 스스로 그치도록 하고, 임방으로 나아가게 하여 염유를 권면한 것이다.

范氏曰:「冉有從季氏,夫子豈不知其不可告也,然而聖人不輕絕人。盡己之心,安知冉有之不能救、季氏之不可諫也。旣不能正,則美林放以明泰山之不可誣,是亦教誨之道也。」
범씨가 말했다. "염유는 계씨를 따랐으니, 부자가 어찌 그가 말할 수 없음을 알지 못했겠는가. 그러나 성인은 사람을 가볍게 끊어내지 않아 자기의 마음을 다하니, 어찌 염유가 구원할 수 없음과 계씨에게 간할 수 없음을 알았겠는가. 이미 바로잡을 수 없다면, 임방을 찬미하여 태산을 속일 수 없음을 밝혔으니, 이 역시 가르치는 방법이다."
posted by 취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