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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7.03 :: 팔일13. 아랫목 신과 부엌 신
- 2020.07.01 :: 양혜왕장구하11. 제나라의 연나라 정벌(2)
- 2020.07.01 :: 팔일12. 제사지낼 때에는
- 2020.07.01 :: 팔일11. 체 제사의 이론
- 2020.07.01 :: 팔일10. 예에 맞지 않는 체 제사
- 2020.07.01 :: 팔일09. 하나라의 예와 은나라의 예
- 2020.06.30 :: 양혜왕장구하10. 제나라의 연나라 정벌(1)
- 2020.06.30 :: 팔일08. 시경과 예의 해석
13(53)-1. 王孫賈問曰:「與其媚於奧,寧媚於竈,何謂也?」
왕손가가 물었다. “아랫목 신에 아첨하기보다는 차라리 부엌 신에 아첨하라고 하니, 무엇을 말한 것입니까?”
王孫賈,衛大夫。媚,親順也。室西南隅爲奧。竈者,五祀之一,夏所祭也。凡祭五祀,皆先設主而祭於其所,然後迎尸而祭於奧,略如祭宗廟之儀。如祀竈,則設主於竈陘,祭畢,而更設饌於奧以迎尸也。故時俗之語,因以奧有常尊,而非祭之主;竈雖卑賤,而當時用事。喻自結於君,不如阿附權臣也。
왕손가는 위나라 대부이다. 媚은 가까이하고 따르는 것이다. 집의 서남쪽 모퉁이를 奧라고 한다. 竈는 다섯 제사 중 하나인데, 여름에 제사하는 곳이다. 무릇 다섯 제사를 제사지낼 때에는 모두 먼저 신주를 설치하여 그곳에서 제사하고 그런 뒤에 시동을 맞이하여 奧에서 제사하는데, 대략 종묘에서 제사하는 의례와 같다. 만약 竈에 제사할 때에는, 신주를 부엌 부뚜막에 설치하고, 제사가 끝나면 다시 奧에 음식을 진설하고 시동을 맞이한다. 그러므로 당시 세속의 말에 인하여 ‘奧는 항상 높음이 있으나 제사의 주체가 아니고, 竈는 비록 낮고 천하지만 때를 당하여 일에 쓰인다.’라고 하였다. 스스로 군주에게 결탁하는 것이 권신에게 아부하는 것만 못하다는 것을 비유하였다.
賈,衛之權臣,故以此諷孔子。
왕손가는 위나라의 권신이었으므로 이로써 공자를 풍간한 것이다.
13(53)-2. 子曰:「不然,獲罪於天,無所禱也。」
공자가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하늘에 죄를 얻으면 빌 곳이 없습니다.”
天,卽理也;其尊無對,非奧竈之可比也。逆理,則獲罪於天矣,豈媚於奧竈所能禱而免乎?
하늘은 곧 이치이니, 그 높음이 상대가 없어 아랫목 신과 부엌 신이 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치에 거스르면 하늘에 죄를 얻는 것이니, 어찌 아랫목 신과 부엌 신에게 아첨하고, 빌어서 면할 수 있는 것이겠는가.
言但當順理,非特不當媚竈,亦不可媚於奧也。다만 마땅히 이치를 따라야 하니, 단지 부엌 신에게 아첨하지 않아야 할 뿐 아니라 또한 아랫목 신에게도 아첨하지 않아야 함을 말한 것이다.
謝氏曰:「聖人之言,遜而不迫。使王孫賈而知此意,不爲無益;使其不知,亦非所以取禍。」사씨가 말했다. “성인의 말은 겸손하지만 박절하지 않다. 가령 왕손가가 이 뜻을 알았다면 유익이 없지 않았을 것이고, 만약 그가 알지 못했더라도 또 화를 취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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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8)-1. 齊人伐燕,取之。諸侯將謀救燕。宣王曰:「諸侯多謀伐寡人者,何以待之?」孟子對曰:「臣聞七十里爲政於天下者,湯是也。未聞以千里畏人者也。
제나라 사람이 연나라를 정벌하여 취하였다. 제후들이 장차 모의하여 연나라를 구원하려고 하였다. 선왕이 말했다. “제후들 중 과인을 정벌하려고 도모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어떻게 이들을 대해야 합니까?” 맹자가 대답하였다. “제가 듣기로 70리를 가지고 천하에 정사를 한 사람은 탕왕이 바로 이 사람입니다. 천 리를 가지고 다른 사람을 두려워한 사람을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千里畏人,指齊王也。
천 리를 가지고 다른 사람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제나라 왕을 가리킨 것이다.
11(18)-2. 書曰:『湯一征,自葛始。天下信之。東面而征,西夷怨;南面而征,北狄怨。曰,奚爲後我?民望之,若大旱之望雲霓也。歸市者不止,耕者不變。誅其君而弔其民,若時雨降,民大悅。』書曰:『徯我后,后來其蘇。』
『서경』에 이르기를, ‘탕왕이 첫 번째 정벌을 갈나라로부터 시작하셨다. 천하가 그것을 믿었다. 동쪽으로 향하여 정벌하면 서이가 원망하고, 남쪽으로 향하여 정벌하면 북적이 원망하여 말하기를, 「어찌 우리를 나중으로 하는가?」라 하였다. 백성들이 그것을 바라기를 마치 큰 가뭄에 구름과 무지개를 바라는 것 같이 하였다. 시장으로 돌아가는 사람이 그치지 않고, 밭가는 사람이 움직이지 않자, 그 군주를 주살하고 그 백성을 위문하기를 마치 때에 맞추어 비가 내리는 것 같이 하니, 백성이 크게 기뻐하였다.’라고 하였습니다. 『서경』에 이르기를, ‘우리 임금을 기다리니, 임금이 오시면 소생하리라.’라고 하였습니다.
兩引書,皆商書仲虺之誥文也。與今書文亦小異。一征,初征也。天下信之,信其志在救民,不爲暴也。奚爲後我,言湯何爲不先來征我之國也。霓,虹也,雲合則雨,虹見則止。變,動也。徯,待也。后,君也。蘇,復生也。
두 번 『서경』을 인용한 것은 모두 『상서』 「중훼지고」의 글이다. 지금 『서경』의 글과는 또한 조금 다르다. 一征은 첫 번째 정벌이다. 天下信之는 그 뜻이 백성을 구하는 데 있고 포학한 일을 하지 않을 것을 믿은 것이다. 奚爲後我는 탕이 어찌하여 먼저 와서 우리의 나라를 정벌하지 않느냐고 말한 것이다. 霓는 무지개이니, 구름이 모이면 비가 내리고 무지개가 보이면 그친다. 變은 움직임이다. 徯는 기다림이다. 后는 임금이다. 蘇는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他國之民,皆以湯爲我君,而待其來,使己得蘇息也。此言湯之所以七十里而爲政於天下也。
다른 나라의 백성이 모두 탕을 우리의 임금으로 여겨서 그가 와서 자기들로 하여금 소생할 수 있게 하기를 기다린 것이다. 이는 탕이 70리를 가지고 천하에 정사를 한 까닭을 말한 것이다.
11(18)-3. 今燕虐其民,王往而征之,民以爲將拯己於水火之中也,簞食壺漿,以迎王師。若殺其父兄,係累其子弟,毁其宗廟,遷其重器,如之何其可也?天下固畏齊之彊也,今又倍地而不行仁政,是動天下之兵也。
지금 연나라가 그 백성들을 학대하니, 왕께서 가서 정벌하시니, 백성들이 장차 자기들을 물과 불 가운데에서 건져 낼 것이라고 여겨 대바구니에 밥을 담고 항아리에 장을 담아서 왕의 군대를 맞이하였습니다. 만약 그 부형을 죽이고 그 자제들을 구속하며 그 종묘를 깨부수고 그 중요한 기물들을 옮겨 온다면 어떻게 그것이 가능하겠습니까? 천하가 진실로 제나라의 강함을 두려워하는데, 지금 또 땅을 배로 하고 인한 정사를 행하지 않는다면 이는 천하의 병사를 움직이게 하는 것입니다.
拯,救也。係累,縶縛也。重器,寶器也。畏,忌也。倍地,并燕而增一倍之地也。
拯은 구원함이다. 係累는 묶는 것이다. 重器는 귀중한 그릇이다. 畏는 꺼리는 것이다. 倍地는 연나라를 병합하여 한 배의 땅을 더하는 것이다.
齊之取燕,若能如湯之征葛,則燕人悅之,而齊可爲政於天下矣。今乃不行仁政而肆爲殘虐,則無以慰燕民之望,而服諸侯之心,是以不免乎以千里而畏人也。
제나라가 연나라를 취하기를 만약 탕이 갈나라를 정벌하는 것 같이 할 수 있었더라면 연나라 사람들이 기뻐하여 제나라가 천하에 정사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 인한 정사를 하지 않고 함부로 잔학한 일을 하였으니 그렇다면 연나라 백성들의 소망을 위안하고 제후들의 마음을 복종시킬 수 없으니 이 때문에 천 리를 가지고도 다른 사람을 두려워함을 면하지 못하는 것이다.
11(18)-4. 王速出令,反其旄倪,止其重器,謀於燕衆,置君而後去之,則猶可及止也。」
왕께서 속히 명령을 내려서 그 노인과 어린이를 돌려보내고 그 중요한 기물을 옮겨 오는 것을 중지하고 연나라 민중들과 모의하여 군주를 세운 뒤에 떠난다면 오히려 미리 전쟁을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反,還也。旄,老人也,倪,小兒也,謂所虜略之老小也。猶,尚也。及止,及其未發而止之也。
反은 돌려보내는 것이다. 旄는 노인이고 倪는 어린이이니, 노략질한 노인과 어린이를 이른다. 猶는 오히려이다. 及止는 전쟁이 아직 시작하지 않은 때에 그것(전쟁)을 중지하는 것이다.
范氏曰「孟子事齊梁之君,論道德則必稱堯舜,論征伐則必稱湯武。蓋治民不法堯舜,則是爲暴;行師不法湯武,則是爲亂。豈可謂吾君不能,而舍所學以徇之哉?」
범씨가 말했다. “맹자가 제나라와 양나라의 군주를 섬길 때에 도덕을 논하면 반드시 요와 순을 칭하고, 정벌을 논하면 반드시 탕과 무왕을 칭했다. 대개 백성을 다스림에 요와 순을 본받지 않으면 이것은 포악함이 되고, 군사를 출동시킴에 탕과 무왕을 본받지 않는다면 이것은 난이 된다. 어찌 우리 군주가 불가능하다고 여겨 배운 바를 버리고 그것(군주의 욕망)을 따를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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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2)-1. 祭如在,祭神如神在。
제사지낼 때에는 마치 선조가 있는 것처럼 하였으며, 신에게 제사지낼 때에는 마치 신이 있는 것처럼 하였다.
程子曰:「祭,祭先祖也。祭神,祭外神也。祭先主於孝,祭神主於敬。」
정자가 말했다. “祭는 선조를 제사하는 것이다. 祭神은 바깥 신을 제사하는 것이다. 선조를 제사하는 것은 효를 위주로 하고, 바깥 신을 제사하는 것은 경을 위주로 한다.”
愚謂此門人記孔子祭祀之誠意。
내가 생각하기에 이것은 문인이 공자가 제사지낼 때의 정성스러운 뜻을 기록한 것이다.
12(52)-2. 子曰:「吾不與祭,如不祭。」
공자가 말했다. “내가 제사에 참여하지 않으면 마치 제사지내지 않은 것과 같다.”
又記孔子之言以明之。
또 공자의 말을 기록하여 밝힌 것이다.
言己當祭之時,或有故不得與,而使他人攝之,則不得致其如在之誠。故雖已祭,而此心缺然,如未嘗祭也。
자기가 마땅히 제사지낼 때를 당하여 혹시라도 까닭이 있어 참여할 수 없게 되어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그것을 대신하게 하면, 그 마치 있는 것처럼 하는 정성스러움을 다할 수 없게 되니, 그러므로 비록 이미 제사지냈더라도 이 마음에 빠진듯한 느낌이 마치 일찍이 제사지내지 않은 것과 같다고 말한 것이다.
范氏曰:「君子之祭,七日戒,三日齊,必見所祭者,誠之至也。是故郊則天神格,廟則人鬼享,皆由己以致之也。有其誠則有其神,無其誠則無其神,可不謹乎?吾不與祭如不祭,誠爲實,禮爲虛也。」
범씨가 말했다. “군자가 제사지낼 때에 7일을 경계하고 3일을 재계하여 반드시 제사지내는 대상을 보는 것은 정성이 지극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교 제사를 지내면 천신이 이르고, 사당에서 제사를 지내면 인귀가 흠향하니, 모두 자기로부터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 정성이 있으면 그 신이 있고, 그 정성이 없으면 그 신이 없으니, 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내가 제사에 참여하지 않으면 마치 제사지내지 않은 것 같다.’라는 것은, 정성이 실제가 되고, 예가 형식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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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1). 或問禘之說。子曰:「不知也。知其說者之於天下也,其如示諸斯乎!」指其掌。
혹자가 체 제사의 이론을 물었다. 공자가 ‘알지 못한다. 그 이론을 아는 사람은 천하를 다스림에 있어서 아마도 그것을 여기에 두고 보는 것 같을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그 손바닥을 가리켰다.
先王報本追遠之意,莫深於禘。非仁孝誠敬之至,不足以與此,非或人之所及也。而不王不禘之法,又魯之所當諱者,故以不知答之。
선왕이 근본에 보답하고 먼 조상을 추모하는 뜻이 체 체사보다 깊은 것이 없다. 인, 효, 성, 경의 지극함이 아니면 여기에 참여하기에 부족하니, 혹자가 미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그리고 왕 노릇 하지 않으면 체 제사를 지내지 않는 법도는 또한 노나라가 마땅히 꺼려야 할 것이었으므로 알지 못한다고 대답한 것이다.
示,與視同。指其掌,弟子記夫子言此而自指其掌,言其明且易也。
示는 視(보다)와 같다. 指其掌은 제자가 부자가 이와 같이 말하면서 스스로 그 손바닥을 가리켰다고 기록하여 그것이 명백하고 또 쉬움을 말한 것이다.
蓋知禘之說,則理無不明,誠無不格,而治天下不難矣。聖人於此,豈眞有所不知也哉?
대개 체 제사의 이론을 알면 이치가 밝아지지 않는 것이 없고 성실함이 맞지 않는 것이 없어서 천하를 다스리는 것이 어렵지 않다. 성인이 이에 어찌 참으로 알지 못하는 것이 있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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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0). 子曰:「禘自旣灌而往者,吾不欲觀之矣。」
공자가 말했다. “체 제사에서 강신제 이후의 일은 내가 보고 싶지 않다.”
趙伯循曰:「禘,王者之大祭也。王者旣立始祖之廟,又推始祖所自出之帝,祀之於始祖之廟,而以始祖配之也。」
조백순이 말했다. “禘는 왕 노릇 하는 사람의 큰 제사이다. 왕 노릇 하는 사람이 이미 시조의 사당을 세우고, 또 시조가 나온 바의 임금을 미루어 시조의 사당에서 제사하고, 시조를 배향한다.”
成王以周公有大勳勞,賜魯重祭。故得禘於周公之廟,以文王爲所出之帝,而周公配之,然非禮矣。성왕은 주공이 큰 공로가 있다고 여겨서 노나라에 융숭한 제사를 내렸다. 그러므로 주공의 사당에서 체 제사를 지낼 수 있었고, 문왕으로 나온 바의 임금으로 삼아 주공을 배향하였으나 예가 아니다.
灌者,方祭之始,用鬱鬯之酒灌地,以降神也。
灌은 바야흐로 제사의 처음에, 울창주를 땅에 부어 신을 강림하게 하는 것이다.
魯之君臣,當此之時,誠意未散,猶有可觀,自此以後,則浸以懈怠而無足觀矣。蓋魯祭非禮,孔子本不欲觀,至此而失禮之中又失禮焉,故發此歎也。
노나라의 군신이 이 때를 당해서는 정성스러운 뜻이 아직 흩어지지 않아 오히려 볼 만한 것이 있었지만, 이 때 이후로는 점점 게을러져서 볼 만한 것이 없었다. 대개 노나라의 제사는 예가 아니어서 공자는 본래 보고자 하지 않았고, 이때에 이르러서는 예를 잃어버리는 중에 또 예를 잃었으므로 이러한 한탄을 한 것이다.
謝氏曰:「夫子嘗曰:『我欲觀夏道,是故之杞,而不足徵也;我欲觀殷道,是故之宋,而不足徵也。』又曰:『我觀周道,幽厲傷之,吾舍魯何適矣。魯之郊禘非禮也,周公其衰矣!』考之杞宋已如彼,考之當今又如此,孔子所以深歎也。」
사씨가 말했다. “부자께서 일찍이 말하기를, ‘나는 하나라의 도를 보고 싶어서 이 때문에 기나라로 갔지만 증명하기에 부족했다. 나는 은나라의 도를 보고 싶어서 이 때문에 송나라로 갔지만 증명하기에 부족했다.’라 하셨고, 또 ‘나는 주나라의 도를 보았는데, 유왕과 여왕이 그것을 손상시켰다. 내가 노나라를 버리고 어디로 가겠는가. 노나라의 교 제사와 체 제사는 예가 아니니, 주공이 아마도 쇠하였구나!”라고 하셨다. 기나라와 송나라를 살펴봄에 이미 저와 같았고, 당시를 살펴봄에 또 이와 같았으니, 공자께서 이 때문에 깊이 탄식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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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9). 子曰:「夏禮吾能言之,杞不足徵也;殷禮吾能言之,宋不足徵也。文獻不足故也,足則吾能徵之矣。」
공자가 말했다. “하나라의 예를 내가 말할 수 있지만 기나라는 증명하기에 부족하다. 은나라의 예를 내가 말할 수 있지만 송나라는 증명하기에 부족하다. 문헌이 부족하기 때문인데, 충분하다면 내가 그것을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杞,夏之後。宋,殷之後。徵,證也。文,典籍也。獻,賢也。
기나라는 하나라의 후예이다. 송나라는 은나라의 후예이다. 徵은 증명함이다. 文은 전적이다. 獻은 현인이다.
言二代之禮,我能言之,而二國不足取以爲證,以其文獻不足故也。文獻若足,則我能取之,以證吾言矣。
‘두 왕조의 예를 내가 말할 수 있지만 두 나라에서 취하여 증거로 삼기에 부족한 것은 그 문헌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문헌이 만약 충분하다면 내가 그것을 취해 내 말을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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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7)-1. 齊人伐燕,勝之。
제나라 사람이 연나라를 정벌하여 승리하였다.
按史記,燕王噲讓國於其相子之,而國大亂。齊因伐之。燕士卒不戰,城門不閉,遂大勝燕。
『사기』를 살펴보면, 연나라 왕 쾌가 나라를 그 재상 자지에게 양보하니, 나라가 크게 혼란하였다. 제나라가 따라서 연나라를 정벌하였다. 연나라 사졸들은 싸우지 않았고 성문을 닫지도 않았으니, 마침내 연나라를 크게 이겼다.
10(17)-2. 宣王問曰:「或謂寡人勿取,或謂寡人取之。以萬乘之國伐萬乘之國,五旬而舉之,人力不至於此。不取,必有天殃。取之,何如?」
선왕이 물었다. "누구는 과인더러 취하지 말라고 하고, 누구는 과인더러 그것을 취하라고 합니다. 만승의 나라를 가지고 만승의 나라를 정벌하여, 50일 만에 함락하였으니 사람의 힘으로는 여기에 이를 수 없습니다. 취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하늘의 재앙이 있을 것입니다. 취한다면 어떻겠습니까?"
以伐燕爲宣王事,與史記諸書不同,已見序說。
연나라를 정벌한 것을 선왕의 일이라고 한 것은 『사기』 등 여러 책과 같지 않으니, 이미 「서설」에 보인다.
10(17)-3. 孟子對曰:「取之而燕民悅,則取之。古之人有行之者,武王是也。取之而燕民不悅,則勿取。古之人有行之者,文王是也。
맹자가 대답하였다. "취해서 연나라 백성들이 기뻐한다면 취하십시오. 옛날 사람들 중에 그것을 행한 사람이 있으니, 무왕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취해서 연나라 백성들이 기뻐하지 않는다면 취하지 마십시오. 옛날 사람들 중에 그것을 행한 사람이 있으니, 문왕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商紂之世,文王三分天下有其二,以服事殷。至武王十三年,乃伐紂而有天下。
상나라 주왕의 치세에 문왕이 천하를 셋으로 나누어 그 둘을 소유하였는데도 은나라를 섬겼다. 무왕 13년에 이르러서야 주왕을 정벌하여 천하를 소유하였다.
張子曰:「此事間不容髮。一日之間。天命未絕,則是君臣。當日命絕,則爲獨夫。然命之絕否,何以知之?人情而已。諸侯不期而會者八百,武王安得而止之哉?」
장자가 말했다. "이 일은 사이에 머리털 하나라도 용납할 수 없다. 하루 사이라도 천명이 끊어지지 않았으면 군신이고, 당일에 명이 끊어졌으면 독부가 된다. 그러나 명이 끊어졌는지 아닌지는 무엇으로 아는가? 사람의 마음 뿐이다. 제후들 중 기약하지 않았는데도 모인 사람이 800명이었으니 무왕이 어찌 중지할 수 있었겠는가?"
10(17)-4. 以萬乘之國伐萬乘之國,簞食壺漿,以迎王師。豈有他哉?避水火也。如水益深,如火益熱,亦運而已矣。」
만승의 나라로써 만승의 나라를 정벌하였는데, 대바구니에 밥을 담고 항아리에 장을 담아서 왕의 군대를 맞이하였습니다. 어찌 다른 이유가 있겠습니까? 물과 불을 피한 것입니다. 만약 물이 더욱 깊어지고 불이 더욱 뜨거워진다면, 또한 옮겨 갈 뿐입니다."
食,飯也。運,轉也。
食은 밥이다. 運은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言齊若更爲暴虐,則民將轉而望救於他人矣。
제나라가 만약 다시 폭력과 학대를 한다면 백성이 장차 방향을 바꾸어 다른 사람에게 구원을 바랄 것임을 말한 것이다.
趙氏曰:「征伐之道,當順民心。民心悅,則天意得矣。」
조씨가 말했다. "정벌하는 방법은 마땅히 민심에 따라야 한다. 민심이 기뻐하면 하늘의 뜻에 맞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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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8)-1. 子夏問曰:「『巧笑倩兮,美目盼兮,素以爲絢兮。』何謂也?」
자하가 물었다. "'싱그러운 웃음에 보조개가 아름답고, 아름다운 눈에 눈동자가 초롱초롱하니, 흰색으로써 채색을 하였구나.'는 무엇을 말한 것입니까?"
此逸詩也。倩,好口輔也。盼,目黑白分也。素,粉地,畫之質也。絢,采色,畫之飾也。
이것은 일시(逸詩)이다. 倩은 보조개가 아름다운 모양이다. 盼은 눈에 흑백이 분명한 모양이다. 素는 분칠을 하는 자리이니 그림의 본질이다. 絢은 채색이니 그림의 꾸밈이다.
言人有此倩盼之美質,而又加以華采之飾,如有素地而加采色也。子夏疑其反謂以素爲飾,故問之。
사람이 이 아름다운 보조개와 초롱초롱한 눈동자의 아름다운 바탕을 가지고 있는데도 또 화려한 채색의 꾸밈을 더하여 마치 흰 바탕에 채색을 가하는 것 같았음을 말한 것이다. 자하가 그 반대로 흰 바탕으로 꾸민다고 여겨 의문을 가졌으므로 물은 것이다.
8(48)-2. 子曰:「繪事後素。」
공자가 말했다. "그림 그리는 일은 흰 바탕을 마련한 이후에 한다."
繪事,繪畫之事也。後素,後於素也。
繪事는 그림을 그리는 일이다. 後素는 흰 바탕이 마련된 뒤에 하는 것이다.
考工記曰:「繪畫之事後素功。」謂先以粉地爲質,而後施五采,猶人有美質,然後可加文飾。
「고공기」에 '그림 그리는 일은 흰 바탕을 마련한 뒤에 한다.'라고 하였다. 먼저 분칠할 자리를 본질로 삼은 뒤에 오색으로 채색하니, 사람이 아름다운 바탕을 가진 후에 화려한 꾸밈을 더할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8(48)-3. 曰:「禮後乎?」子曰:「起予者商也!始可與言詩已矣。」
자하가 말했다. "예가 나중이라는 것입니까?" 공자가 말했다. "나를 흥기시키는 사람은 상이로구나! 비로소 함께 『시경』을 말할 수 있겠구나."
禮必以忠信爲質,猶繪事必以粉素爲先。起,猶發也。起予,言能起發我之志意。
예는 반드시 충과 신을 바탕으로 삼으니 그림 그리는 일에 반드시 분칠한 바탕을 먼저 만드는 것과 같다. 起는 發(분발함)과 같다. 起予는 능히 나의 뜻을 일으켜 분발하게 할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謝氏曰:「子貢因論學而知詩,子夏因論詩而知學,故皆可與言詩。」
사씨가 말했다. "자공이 배움을 논하고 『시경』을 알았기 때문에, 자하가 『시경』을 논하고 배움을 알았기 때문에 모두 함께 『시경』을 말할 수 있다."
楊氏曰:「『甘受和,白受采,忠信之人,可以學禮。苟無其質,禮不虛行』。此『繪事後素』之說也。孔子曰『繪事後素』,而子夏曰『禮後乎』,可謂能繼其志矣。非得之言意之表者能之乎?商賜可與言詩者以此。若夫玩心於章句之末,則其爲詩也固而已矣。所謂起予,則亦相長之義也。」
양씨가 말했다. "'단맛은 조화로움을 받아들이고, 흰 색은 채색을 받아들인다. 충신한 사람이라야 예를 배울 수 있다. 진실로 그 본질이 없으면 예는 공연히 행해지지 않는다.' 이것은 '그림 그리는 일은 흰 바탕을 마련한 이후에 한다.'는 말이다. 공자가 '그림 그리는 일은 흰 바탕을 마련한 이후에 한다.'고 말하자 자하가 '예가 나중이라는 것입니까?'라고 말했으니, 능히 그 뜻을 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말의 의미의 밖에서 얻은 사람이 아니면 가능하겠는가. 상(자하)과 사(자공)이 함께 시를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이 때문이다. 만약 장구의 지엽에 몰두하면 시경을 해석하는 것이 고루할 뿐이다. 起予라고 말한 것은 또한 교학상장의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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