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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6.30 :: 팔일07. 군자는 활쏘기로 다툰다
- 2020.06.30 :: 팔일06. 계씨가 태산에 지낸 제사
- 2020.06.30 :: 팔일05. 군주가 있지만 의미가 없다
- 2020.03.23 :: 팔일04. 임방이 예의 근본을 묻다
- 2020.03.23 :: 팔일03. 사람이면서 인하지 못하면
- 2020.03.23 :: 팔일02. 삼가의 참람된 제사
- 2020.03.23 :: 팔일01. 뜰에서 춘 팔일무
- 2020.03.23 :: 양혜왕장구하09. 큰 궁궐과 옥, 국가
7(47). 子曰:「君子無所爭,必也射乎。揖讓而升,下而飲,其爭也君子。」
공자가 말했다. "군자는 다투는 것이 없지만 있다면 반드시 활쏘기일 것이다. 읍을 하고 사양하면서 올라가고 내려와서 마시니, 그 다툼이 군자답다."
揖讓而升者,大射之禮,耦進三揖而後升堂也。下而飲,謂射畢揖降,以俟衆耦皆降,勝者乃揖不勝者升,取觶立飲也。
揖讓而升은 「대사례」에 나란히 나아가 세 번 읍한 후에 당에 올라가는 것이다. 下而飲은 활쏘기가 끝나면 읍하고 내려와 여러 짝이 모두 내려오기를 기다려서, 이긴 사람은 이에 읍하고 이기지 못한 사람은 올라가 술잔을 잡고 서서 마시는 것이다.
觶 : 술잔 치
言君子恭遜不與人爭,惟於射而後有爭。然其爭也,雍容揖遜乃如此,則其爭也君子,而非若小人之爭矣。
'군자는 공손하여 다른 사람들과 다투지 않지만 오직 활쏘기에는 다툼이 있다. 그러나 그 다툼은 온화하며, 읍하고 공손함이 마침내 이와 같으니, 그 다툼은 군자답고 소인의 다툼과 같지 않다.'고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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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6). 季氏旅於泰山。子謂冉有曰:「女弗能救與?」
계씨가 태산에 旅 제사를 지냈다. 공자가 염유에게 말했다. "네가 구원할 수 없겠느냐?"
對曰:「不能。」
염유가 대답하였다. "할 수 없습니다."
子曰:「嗚呼!曾謂泰山,不如林放乎?」
공자가 말했다. "아아! 일찍이 태산이 임방만 못하다고 생각했는가?"
旅,祭名。泰山,山名,在魯地。禮,諸侯祭封內山川,季氏祭之,僭也。冉有,孔子弟子,名求,時爲季氏宰。救,謂救其陷於僭竊之罪。嗚呼,歎辭。
旅는 제사의 이름이다. 泰山은 산의 이름이니 노나라 땅에 있다. 예에 제후는 봉지 내의 산천에 제사한다고 하니 계씨가 제사 지내는 것은 주제넘은 것이다. 염유는 공자의 제자이니 이름은 求이다. 당시에 계씨의 가재(家宰)가 되었다. 救는 그 참람하게 도용하는 죄에 빠지는 것을 구원함이다. 嗚呼는 탄식하는 말이다.
言神不享非禮,欲季氏知其無益而自止,又進林放以厲冉有也。
신은 예가 아닌 것을 흠향하지 않음을 말한 것이며, 계씨가 그것이 무익함을 알아 스스로 그치도록 하고, 임방으로 나아가게 하여 염유를 권면한 것이다.
范氏曰:「冉有從季氏,夫子豈不知其不可告也,然而聖人不輕絕人。盡己之心,安知冉有之不能救、季氏之不可諫也。旣不能正,則美林放以明泰山之不可誣,是亦教誨之道也。」
범씨가 말했다. "염유는 계씨를 따랐으니, 부자가 어찌 그가 말할 수 없음을 알지 못했겠는가. 그러나 성인은 사람을 가볍게 끊어내지 않아 자기의 마음을 다하니, 어찌 염유가 구원할 수 없음과 계씨에게 간할 수 없음을 알았겠는가. 이미 바로잡을 수 없다면, 임방을 찬미하여 태산을 속일 수 없음을 밝혔으니, 이 역시 가르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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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5). 子曰:「夷狄之有君,不如諸夏之亡也。」
공자가 말했다. "이적에게 군주가 있는 것이 제하에 (군주가) 없는 것과는 같지 않다.
吳氏曰:「亡,古無字,通用。」
오씨가 말했다. "亡은 옛날에 無와 통용되었다.
程子曰:「夷狄且有君長,不如諸夏之僭亂,反無上下之分也。」
정자가 말했다. "이적에게도 또한 군주와 우두머리가 있는 것이 제하에 그것이 주제넘고 난을 일으켜서 상하의 구분을 뒤집어 없애는 것과는 같지 않다."
尹氏曰:「孔子傷時之亂而歎之也。亡,非實亡也,雖有之,不能盡其道爾。」
윤씨가 말했다. "공자가 그 때의 남으로 상심하고 탄식한 것이다. 亡은 실제로 없는 것이 아니라 비록 있더라도 그 도를 다할 수 없는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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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4)-1. 林放問禮之本。
임방이 예의 근본을 물었다.
林放,魯人。
임방은 노나라 사람이다.
見世之爲禮者,專事繁文,而疑其本之不在是也,故以爲問。
세상 중에서 예를 하는 사람이 오로지 번잡한 꾸밈만을 일삼는 것을 보고 그 근본이 이에 있지 않다고 의심하였으므로 물은 것이다.
4(44)-2. 子曰:「大哉問!
공자가 말했다. "크구나, 질문이여!
孔子以時方逐末,而放獨有志於本,故大其問。蓋得其本,則禮之全體無不在其中矣。
공자는 당시에 (사람들이) 지엽적인 것을 쫓았는데, 유독 임방만이 근본에 뜻을 둠이 있었으므로 그 질문을 크게 여긴 것이다. 대개 그 근본을 얻으면 예의 전체가 그 가운데에 있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4(44)-3. 禮,與其奢也,寧儉;喪,與其易也,寧戚。」
예는 사치스럽기보다는 차라리 검소해야 하고, 상은 잘 다스려지기보다는 차라리 슬퍼해야 한다.
與其A寧B : A하기보다는 차라리 B해야 한다
易,治也。
'易'은 다스림이다.
孟子曰:「易其田疇。」在喪禮,則節文習熟,而無哀痛慘怛之實者也。戚則一於哀,而文不足耳。禮貴得中,奢易則過於文,儉戚則不及而質,二者皆未合禮。然凡物之理,必先有質而後有文,則質乃禮之本也。
맹자가 말했다. '그 밭두둑을 다스린다." 상례에 있어서는 규정은 익숙하나 애통해하고 슬퍼하는 실제가 없다. '戚'은 애통함에 한결같이 하고 꾸밈이 부족한 것이다. 예는 알맞음을 얻는 것을 귀하게 여기니 사치스럽고 다스려지면 꾸밈에 과하고, 검소하고 슬퍼하면 질박함에 미치지 못하니 두 가지가 모두 예에 맞지 않는다. 그런즉 무릇 사물의 이치는 질박함이 먼저 있고 나서 꾸밈이 있으니, 그렇다면 질박함은 바로 예의 근본이다.
怛 : 슬플 달
范氏曰:「夫祭與其敬不足而禮有餘也,不若禮不足而敬有餘也,喪與其哀不足而禮有餘也,不若禮不足而哀有餘也。禮失之奢,喪失之易,皆不能反本,而隨其末故也。禮奢而備,不若儉而不備之愈也;喪易而文,不若戚而不文之愈也。儉者物之質,戚者心之誠,故爲禮之本。」
범씨가 말했다. "무릇 제사는 공경함이 부족하여 예에 남음이 있기보다는 차라리 예가 부족하지만 공경함에 남음이 있는 것만 못하다. 상례는 애통함이 부족하여 예에 남음이 있기보다는 차라리 예가 부족하지만 애통함에 남음이 있는 것만 못하다. 예가 사치스러움에 잘못되는 것과 상이 다스려짐에 잘못되는 것은 모두가 능히 근본을 돌이킬 수 없어서 그 지엽에 빠지는 까닭이다. 예는 사치하여 갖추어짐이 검소하여 갖추어지지 않음의 나음만 못하고, 상은 다스려져 화려한 것이 슬퍼하며 화려하지 않음의 나음보다 못하다."
楊氏曰:「禮始諸飲食,故汙尊而抔飲,爲之簠、簋、籩、豆、罍、爵之飾,所以文之也,則其本儉而已。喪不可以徑情而直行,爲之衰麻哭踴之數,所以節之也,則其本戚而已。周衰,世方以文滅質,而林放獨能問禮之本,故夫子大之,而告之以此。」
양씨가 말했다. "예는 먹고 마시는 데에서 시작했다. 그러므로 웅덩이를 술잔으로 삼고 움켜쥐어 마셨는데 보, 궤, 변, 두, 뇌, 작의 꾸밈을 만든 것은 화려하게 하기 위해서였으니, 그 본질은 검소할 뿐이다. 상례는 감정을 바로 나타내어 그대로 행할 수 없으므로 상복, 마, 곡, 발구르기의 수를 만든 것은 절제하기 위해서였으니 그 근본은 슬퍼함일 뿐이다. 주나라가 쇠하자, 세상에서는 화려함으로써 질박함을 없앴는데 임방이 유독 능히 예의 본질을 물었으므로 부자가 그것을 크게 여겨 이로써 말한 것이다.
汙 : 웅덩이 우 抔 : 움켜쥘 부 簠 : 제기이름 보 簋 : 제기이름 궤 籩 : 제기이름 변 豆 : 제기이름 두 罍 : 술독 뢰 爵 : 술잔 작 踴 : 발구를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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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3). 子曰:「人而不仁,如禮何?人而不仁,如樂何?」
공자가 말했다. "사람이면서 인하지 못하면 어찌 예를 행하겠는가? 사람이면서 인하지 못하면 어찌 악을 행하겠는가?"
游氏曰「人而不仁,則人心亡矣,其如禮樂何哉?言雖欲用之,而禮樂不爲之用也。」
유씨가 말했다. "사람이면서 인하지 못하면 사람의 마음이 없는 것이다. 예와 악을 어떻게 하겠는가? 비록 그것을 쓰고자 하나 예와 악이 그를 위해 쓰여지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程子曰:「仁者天下之正理。失正理,則無序而不和。」
정자가 말했다. "인은 천하의 바른 이치이다. 바른 이치를 잃어버리면 질서가 없어지고 불화한다."
李氏曰:「禮樂待人而後行,苟非其人,則雖玉帛交錯,鐘鼓鏗鏘,亦將如之何哉?然記者序此於八佾雍徹之後,疑其爲僭禮樂者發也。」
계씨가 말했다. "예와 악은 사람을 기다린 후에 행해지니, 진실로 그 사람이 아니면 비록 옥과 비단을 서로 주고받고, 종과 북을 울려도 또한 장차 어찌하겠는가? 그러나 기록한 사람이 이것을 '八佾(팔일편 1장)'과 '雍撤(팔일편 2장)'의 뒤에 쓴 것은 아마도 그 주제넘게 예와 악을 행한 것을 드러내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鏗 : 쇳소리 갱 鏘 : 쇳소리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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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정24. 지켜지지 않는 제사법 (0) | 2020.03.05 |
2(42).三家者以雍徹。子曰:「『相維辟公,天子穆穆』,奚取於三家之堂?」
삼가가 「옹」 편을 연주하며 제사상을 물렸다. 공자가 말했다. "'제후들이 도우니 천자는 엄숙하게 계신다.'라는 가사를 어찌 삼가의 사당에서 취하여 쓰는가?"
三家,魯大夫孟孫、叔孫、季孫之家也。雍,周頌篇名。徹,祭畢而收其俎也。天子宗廟之祭,則歌雍以徹,是時三家僭而用之。相,助也。辟公,諸侯也。穆穆,深遠之意,天子之容也。
'三家'는 노나라 대부 맹손, 숙손, 계손의 집안이다. '雍'은 『시경·주송』의 편명이다. '徹'은 제사가 끝나면 그 제기를 거두는 것이다. 천자는 종묘의 제사에서 「옹」 편을 부르며 철상하는데, 이 때에 삼가에서 참람하게 썼다. '相'은 도움이다. '辟公'은 제후이다. '穆穆'은 심원한 뜻이니 천자의 용모이다.
此雍詩之辭,孔子引之,言三家之堂非有此事,亦何取於此義而歌之乎?譏其無知妄作,以取僭竊之罪。
이 「옹」 시의 가사를 공자가 인용하여 '삼가의 사당에서 이 일이 있지 않았는데 또한 어찌하여 이 뜻을 취하여 노래하는가?'라고 말한 것이다. 그 무지하여 망령되이 행하여 참람하게 도용한 죄를 비판한 것이다.
程子曰:「周公之功固大矣,皆臣子之分所當爲,魯安得獨用天子禮樂哉?成王之賜,伯禽之受,皆非也。其因襲之弊,遂使季氏僭八佾,三家僭雍徹,故仲尼譏之。」
정자가 말했다. "주공의 공이 진실로 큰 것은 모두 신하의 직분 상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는데 노나라가 어찌 홀로 천자의 예악을 쓸 수 있는가? 성왕의 줌과 백금의 받음은 모두 그른 것이다. 그 답습의 폐단이 드디어 계씨로 하여금 참람하게 팔일무를 추게 하고 삼가로 하여금 「옹」으로 철상하게 하였으므로 중니가 비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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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정24. 지켜지지 않는 제사법 (0) | 2020.03.05 |
위정23. 백 왕조 뒤의 일을 아는 법 (0) | 2020.03.05 |
凡二十六章。通前篇末二章,皆論禮樂之事。
모두 26장이다. 앞 편 끝의 두 장과 통하여 모두 예와 악의 일을 논했다.
3(41). 孔子謂季氏:「八佾舞於庭,是可忍也,孰不可忍也?」
공자가 계씨에게 말했다. "팔일무가 뜰에서 추어지니 이것을 차마 할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지 차마 하지 못하겠는가?"
佾 : 줄춤 일
季氏,魯大夫季孫氏也。佾,舞列也,天子八、諸侯六、大夫四、士二。每佾人數,如其佾數。或曰:「每佾八人。」未詳孰是。
계씨는 노나라 대부 계손씨이다. '佾'은 춤의 열이니 천자는 8열, 제후는 6열, 대부는 4열, 사는 2열이다. 매 열의 사람 수는 그 열 수와 같다. 혹자가 말하기를, '매 열마다 8명이다.'라고 하니 어느 것이 옳은지는 미상이다.
季氏以大夫而僭用天子之樂,孔子言其此事尚忍爲之,則何事不可忍爲。或曰:「忍,容忍也。蓋深疾之之辭。」
계씨가 대부로서 천자의 음악을 참람하게 썼으니 공자가 그가 이 일을 오히려 차마 한다면 어떤 일이든 차마 하지 못하겠느냐고 말한 것이다. 혹자가 말했다. "'忍'은 용인함이니 아마도 그를 심히 미워한 말이다."
范氏曰:「樂舞之數,自上而下,降殺以兩而已,故兩之間,不可以毫髮僭差也。孔子爲政,先正禮樂,則季氏之罪不容誅矣。」
범씨가 말했다. "음악의 춤 수는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오면서 둘씩 줄어들 뿐이다. 그러므로 둘 간에는 터럭만큼도 참람하게 어긋나서는 안 된다. 공자가 정사를 함에 먼저 예와 악을 바로잡았으니, 계씨의 죄는 주살당하여도 용인될 수 없다."
謝氏曰:「君子於其所不當爲不敢須臾處,不忍故也。而季氏忍此矣,則雖弒父與君,亦何所憚而不爲乎?」
사씨가 말했다. "군자가 그 마땅히 하지 않아야 할 것에 잠시라도 처하지 않는 것은 차마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씨가 이것을 차마 한다면, 비록 아버지와 군주를 시해하더라도 또한 어찌 꺼려서 하지 않는 것이 있겠는가?"
※즉, 범조우(범씨)는 '忍'을 '용인하다'로 해석했고, 사량좌(사씨)는 '忍'을 '차마 하다'로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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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6)-1. 孟子見齊宣王曰:「爲巨室,則必使工師求大木。工師得大木。則王喜,以爲能勝其任也。匠人斲而小之,則王怒,以爲不勝其任矣。夫人幼而學之,壯而欲行之。王曰『姑舍女所學而從我』,則何如?
맹자가 제 선왕을 만나뵙고 말했다. "큰 궁궐을 만드는 대에는 반드시 공사를 시켜 큰 나무를 구하게 합니다. 공사가 큰 나무를 얻으면 왕께서 기뻐하시고 능히 그 임무를 감당할 수 있다고 여기실 것입니다. 장인이 깎아서 작게 만든다면 왕께서 노하시고 그 임무를 감당할 수 없다고 여기실 것입니다. 무릇 사람이 어려서 배움은 장성하여 행하고자 함입니다. 왕께서 '우선 네가 배운 것을 버리고 나를 따라라'라고 말씀하신다면 어떻겠습니까?
斲 : 깎을 착 姑 : 우선 고
巨室,大宮也。工師,匠人之長。匠人,衆工人也。姑,且也。
'巨室'은 큰 궁궐이다. '工師'는 장인의 우두머리이다. '匠人'은 여러 공인이다. '姑'는 우선이다.
言賢人所學者大,而王欲小之也。
현인이 배운 바가 큰데도 왕이 작게 하고자 함을 말한 것이다.
9(16)-2. 今有璞玉於此,雖萬鎰,必使玉人彫琢之。至於治國家,則曰『姑舍女所學而從我』,則何以異於教玉人彫琢玉哉?」
지금 여기에 박옥이 있는데 비록 만 일이더라도 반드시 옥인을 시켜 쪼아낼 것입니다. 국가를 다스리는 데 이르러 '우선 네가 배운 것을 버리고 나를 따르라.'고 말한다면, 옥인에게 옥을 쪼아내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璞,玉之在石中者。鎰,二十兩也。玉人,玉工也。
'璞'은 옥이 돌 안에 있는 것이다. '鎰'은 20냥이다. '玉人'은 옥공이다.
不敢自治而付之能者,愛之甚也。治國家則殉私欲而不任賢,是愛國家不如愛玉也。
감히 스스로 다스리지 않고 유능한 사람에게 맡기는 것은 사랑함이 심한 것이다. 국가를 다스림에 사욕을 따르고 현자에게 맡기지 않으니 이는 국가를 사랑함이 옥을 사랑함만 못한 것이다.
范氏曰:「古之賢者,常患人君不能行其所學;而世之庸君,亦常患賢者不能從其所好。是以君臣相遇,自古以爲難。孔孟終身而不遇,蓋以此耳。」
범씨가 말했다. "옛날의 현자는 항상 인군이 그 배운 것을 능히 행하지 못할까 걱정했지만 세상의 용렬한 군주는 항상 현자가 그 좋아하는 것을 능히 따르지 않을까 걱정했다. 이 때문에 임금과 신하가 서로 만나는 것이 예로부터 어렵게 여겨진 것이다. 공자와 맹자가 종신토록 만나지 못했으니 아마도 이 때문일 뿐이다."
※鎰은 여러 자료를 봤을 때 24냥으로 보인다. 주희가 집주하면서 실수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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